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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만든 여론재판

형성하다2026. 5. 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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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소비하려는 글이 아니다. 사람을 사건으로 만들고, 의혹과 조롱을 상품으로 바꾸는 언론과 대중의 여론재판을 기록하려는 글이다.

최종 업데이트 2026-05-19

미디어 비평

언론이 만든 여론재판, 사람은 그렇게 무너졌다

사람은 기사 한 줄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 한 줄은 방향을 만들고, 반복 보도는 분위기를 만들며, 분위기는 어느 순간 판결처럼 굳어진다.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의 무게

이름을 다시 꺼내는 일은 조심스럽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은 더 조심스럽다. 그 이름이 다시 클릭이 되고, 다시 분노가 되고, 다시 소비가 되는 순간, 기록은 추모가 아니라 또 다른 전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어 두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범죄가 확정되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의혹과 루머와 조롱과 기사 속에서 먼저 무너졌다. 그 장면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팬이 아니어도 알 수 있다. 그때 벌어진 일은 정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사람을 사건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최진실, 설리, 구하라, 이선균, 마이클 잭슨. 이 이름들을 한 줄에 세우는 일은 위험하다. 이들의 삶은 다르고, 사건도 다르고, 죽음의 배경도 다르다. 그래서 이 글은 그들의 사연을 하나로 뭉개려는 글이 아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보려는 글이다.

의혹은 사실보다 빨랐고, 이미지는 사람보다 컸고, 언론은 기다리지 않았다. 대중은 그 속도를 따라갔다. 팬이 맥락을 말하면 팬까지 조롱당했다. 한 사람은 자신을 향한 공격뿐 아니라, 자신을 믿어 준 사람들까지 다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이유는 죽음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방식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사실보다 빨랐던 이미지

사람은 기사 한 줄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 한 줄은 방향을 만든다. 자극적인 제목은 대중이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하는지 정한다. 잘린 장면은 한 사람의 시간을 지운다. 익명 관계자의 말은 사실처럼 번지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로 살아남는다.

그다음에는 커뮤니티가 붙고, 유튜브가 붙고, 댓글이 붙는다. 처음에는 의혹이었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된다. 분위기는 다시 확신처럼 굳는다. 그렇게 한 사람은 법정에 서기도 전에, 해명하기도 전에, 이미 사회적으로 판결받는다.

여기서 언론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다. 어떤 말을 제목으로 올릴지, 어떤 장면을 반복할지, 어떤 표현으로 사람을 부를지 정하는 순간 언론은 이미 판을 짠다. 그리고 그 판 위에서 대중은 자신이 직접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이미 놓인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의혹은 사실보다 빨랐고, 이미지는 사람보다 컸으며, 언론은 기다리지 않았다.

여론재판은 진실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팔리는 이미지를 판결처럼 굳힌다.

마이클 잭슨, 무죄보다 오래 남은 낙인

마이클 잭슨은 이 구조를 세계적인 규모로 보여 준 사례다. 그는 끝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2005년 형사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그런데 언론은 법정의 판단보다 오래 남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는 음악가이기 전에 의혹의 이름으로 불렸고, 무대 위의 사람이기 전에 괴물처럼 소비되었다. 돈을 노린 공격, 그 공격을 팔아먹은 언론, 사건을 통해 명예와 존재감을 얻으려 한 수사·기소 권력의 이해관계가 한 사람 위에서 맞물렸다. 법은 그를 유죄로 확정하지 못했지만, 언론은 이미 그를 유죄처럼 팔았다. 그리고 한 번 팔린 이미지는 무죄 판결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이클 잭슨이 마지막에 향한 곳은 다시 무대였다. 그는 언론의 용서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기자회견장이나 법정이나 해명문 앞에 서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돌아가려 한 곳은 팬들이 기다리는 공연장이었다.

세상은 그를 의혹으로 불렀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무대 위의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 기억이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현실의 끈이었을 수 있다. 죽음의 의미를 무엇으로 해석하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 힘이 팬이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은 그를 무너뜨렸지만, 팬들은 끝까지 그를 마이클 잭슨으로 불렀다.

마이클 잭슨에게 남은 것은 유죄가 아니라 낙인이었고, 그를 다시 무대 쪽으로 부른 것은 언론이 아니라 팬이었다.

제멋대로 재단된 사람들

설리에게도 같은 방식의 재단이 있었다. 사람들은 설리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 연예인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과 선택과 자기표현을 제멋대로 해석했다.

조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숨지 않았다는 이유,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 기대된 이미지에 맞지 않았다는 이유는 공격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군가의 취향에 맞게 존재할 의무가 없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표정과 말과 선택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이 기대한 모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공격하는 순간,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지배 욕망이 된다.

구하라의 경우는 더 선명하게 아프다. 그는 사생활 스캔들의 주인공처럼 소비되었지만, 그 안에는 피해자의 시간이 있었다.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보여야 한다는 기준이 따라붙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의심받고, 단호하면 공격적이라고 해석되고, 무너지면 또 무너졌다고 소비된다.

피해자의 말보다 장면이 팔리고, 피해자의 고통보다 자극적인 제목이 먼저 달린다. 그렇게 사람은 보호받아야 할 자리에서도 다시 심판받는다. 피해자가 된 사람에게까지 대중은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아파하라”고 요구한다.

사람은 누군가가 정한 이미지에 맞게 존재할 의무가 없고, 피해자는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아파야 할 의무가 없다.

수사 보도와 사생활 소비의 속도

이선균은 수사 보도와 사생활 소비가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벼랑으로 몰 수 있는지 보여 준다. 확정된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의혹은 매일 기사로 재생산되었다. 수사는 공적 절차였지만, 보도는 너무 쉽게 사적 처벌이 되었다.

포토라인 앞에 선 사람은 피의자이기 전에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생활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팔렸고, 대중은 그 조각들을 이어 붙여 이미 사람을 판단했다. 한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따지는 절차보다, 한 사람을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게 만들 것인지가 더 빨랐다.

최진실은 루머가 어떻게 사람을 덮치는지 오래전에 보여 준 이름이다. 근거 없는 말은 처음에는 가벼운 소문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언론이 그것을 건드리고, 댓글이 그것을 키우고, 대중이 그것을 반복하면 소문은 사실처럼 행세한다.

루머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퍼뜨린 사람은 “들은 말”이라고 하고, 소비한 사람은 “궁금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무책임한 말들이 한 사람에게는 숨 쉴 수 없는 공기가 된다. 루머는 칼처럼 보이지 않지만, 오래 돌면 칼보다 깊게 들어간다.

수사와 루머가 기사와 결합하는 순간, 절차는 쉽게 구경거리가 되고 사람은 빠르게 이미지가 된다.

팬은 마지막으로 남은 맥락이다

여기서 팬의 자리는 중요하다.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어떤 팬은 몇 년을, 어떤 팬은 수십 년을 한 사람의 무대와 작품과 말과 침묵을 따라오며, 대중이 기사 제목과 잘린 장면으로 판단하는 순간에도 그 앞뒤에 쌓인 시간을 기억한다.

물론 팬덤 안에는 무조건적인 옹호, 소유욕, 현실 부정 같은 왜곡도 있다. 그러나 그 일부로 팬 전체를 눈먼 집단처럼 재단하면, 한 사람을 가장 오래 지켜본 기억과 맥락까지 함께 사라진다.

스타는 팬의 응원 속에서 자신이 아직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느끼고, 팬은 스타를 통해 자기 삶의 한 시기와 감정을 붙잡는다. 그래서 사건이 터졌을 때 팬까지 조롱당하면, 당사자는 자신을 향한 공격뿐 아니라 자신을 믿어 준 사람들까지 다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 순간 남는 것은 사실을 따지는 공론장이 아니라, 사람과 그 사람을 지켜 온 시간까지 한꺼번에 지워 버리는 여론재판이다.

팬은 완벽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래 봤기 때문에 중요하다. 팬의 기억이 사라지면, 언론이 만든 이미지와 대중이 소비한 프레임만 남는다.

팬을 조롱하는 일은 단순한 팬덤 비판이 아니라, 당사자를 오래 지켜본 기억까지 무력화하는 일이다.

당사자와 팬을 함께 무너뜨리는 방식

언론과 대중은 당사자만 공격하지 않는다. 그를 방어하는 팬까지 함께 공격한다. 팬이 맥락을 말하면 실드가 되고, 팬이 반박하면 광신이 되고, 팬이 침묵하지 않으면 현실 부정으로 몰린다. 그렇게 팬은 가장 오래 지켜본 관찰자가 아니라 방해물로 처리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팬의 기억이 남아 있으면 사람을 기사 제목 하나로 완전히 재단하기 어렵다. 오래 본 사람들의 말이 남아 있으면, 언론이 만든 이미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론재판은 팬의 기억까지 무력화하려 한다.

당사자를 사건으로 만들고, 팬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적 맥락까지 지워 버린다. 스타는 자신이 공격받는 것만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을 믿어 준 사람들까지 자기 때문에 공격받는 장면을 볼 때, 그 고립감은 더 깊어진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공격은 당사자만 때리지 않고, 그 사람을 붙잡아 주던 마지막 관계까지 함께 흔든다.

비판과 소비는 다르다

스타와 유명인은 공격과 응원을 동시에 받으며 살아간다. 그건 직업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조롱과 재단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적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도 사적 삶이 있고,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자기 방식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

연예인은 대중에게 보인다는 이유로 자기 삶 전체를 대중에게 넘긴 사람이 아니다. 유명하다는 사실은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인기를 얻었다는 이유로 모욕을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수를 받는 사람도 사람이고, 조명을 받는 사람도 사람이다.

문제는 비판이 아니다. 범죄가 있다면 수사받아야 하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과 조롱은 다르다. 검증과 낙인은 다르다. 보도와 사냥은 다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지, 사람을 팔기 좋은 이미지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은 의견을 갖는 것이지, 누군가의 삶 전체를 자기 취향에 맞게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그 경계를 넘는다. 정의감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구경하고 있다. 비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비하고 있다.

책임을 묻는 일과 사람을 소비하는 일은 다르며, 그 경계를 잃는 순간 비판은 여론재판이 된다.

팬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일

이 글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평가하려는 글이 아니다. 그들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던 언론과 대중의 태도를 기록하려는 글이다.

나는 이들의 팬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앨범을 전부 들은 것도 아니고, 작품을 빠짐없이 따라간 것도 아니며, 그들의 삶을 오래 좇아온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과 대중에게 소비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팬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때 그들을 향한 공격은 비판이 아니라 소비에 가까웠다. 확정된 범죄가 아니라 의혹과 루머와 사생활과 이미지가 먼저 사람을 덮었다. 누군가는 자유로웠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해명하기도 전에 이미 유죄처럼 취급되었다.

그 장면들은 팬이 아니어도 이상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기사와 조롱과 클릭의 재료로 바뀌는 과정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팬이 아니어도 기록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기록은 단죄가 아니라 기억이다

기록은 단죄가 아니다. 그러나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누가 칼을 들었는지만 보지 않고, 누가 조명을 켰고, 누가 사람을 무대 위에 묶어 두었는지 보겠다는 말이다.

사람을 사건으로 만들고, 사건을 상품으로 팔고, 상품이 된 사람을 끝내 인간으로 돌려놓지 않는 세계를 기록하겠다는 말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은 조심스럽다. 그러나 아무도 적지 않으면, 그들은 또 한 번 기사와 루머와 짧은 기억 속에만 남는다.

그래서 기록해야 한다.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취향에 맞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대를 벗어나도, 누군가가 만든 이미지에 갇히지 않아도 사람은 사람이다. 언론이 그것을 잊고, 대중이 그것을 잊을 때, 글은 적어도 그 사실 하나를 붙잡아야 한다.

기록은 죽음을 다시 전시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사건으로만 남기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저항이다.

참고·출처

최진실 사망 이후 악성 루머와 악플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었고, 온라인상 처벌 강화 여론과 사이버 괴롭힘 논의가 이어졌다는 점은 연합뉴스와 경향신문 보도를 참고했다. 연합뉴스 2008년 10월 2일 보도, 경향신문 2008년 12월 21일 보도.

설리 사망 이후 카카오가 다음 연예 뉴스 댓글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사실과, 온라인 괴롭힘 문제가 함께 논의되었다는 점은 로이터 보도와 코리아헤럴드 보도를 참고했다. Reuters 2019년 10월 25일 보도, The Korea Herald 2019년 10월 25일 보도.

구하라 사건에서 전 남자친구가 폭행과 협박 혐의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는 점은 연합뉴스 영문판과 KBS 월드 보도를 참고했다. Yonhap News Agency 2020년 10월 15일 보도, KBS World 2020년 10월 15일 보도.

이선균 사망 이후 봉준호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이 경찰 수사 과정과 언론 보도 문제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는 내용은 AP와 연합뉴스 영문판 보도를 참고했다. AP 2024년 1월 12일 보도, Yonhap News Agency 2024년 1월 12일 보도.

마이클 잭슨이 2005년 형사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받았고, 2009년 런던 O2 아레나에서 This Is It 공연을 준비했다는 점은 AP를 전재한 가디언 보도, 로이터 보도, FBI 공개 자료를 참고했다. The Guardian/AP 2005년 6월 13일 보도, Reuters 2009년 5월 13일 보도, FBI Vault Michael Jackson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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