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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정 『불타는 빙벽』 서평, 군대의 영웅 신화는 왜 다시 불붙었나

형성하다2026. 6. 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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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정의 『불타는 빙벽』은 『빙벽』의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다. 『빙벽』이 독재시대 군대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얼어붙는지를 보여주었다면, 『불타는 빙벽』은 그 얼어붙은 군대 신화가 시간이 지난 뒤 사회 밖에서 어떻게 다시 불붙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장석천과 현철기라는 이름, 그들을 둘러싼 영웅 신화, 그리고 그 신화를 다시 사용하려는 군대와 사회의 욕망이 놓여 있다.

『불타는 빙벽』은 군인을 단죄하는 소설이 아니라, 군대와 사회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고 다시 포장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본편 『빙벽』의 빙벽이 독재시대 군대라는 얼음벽이었다면, 『불타는 빙벽』의 불은 그 벽이 무너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신화와 기억의 갈등이다.

『불타는 빙벽』은 『빙벽』의 후일담이 아니라 신화의 재판이다

『빙벽』을 읽은 뒤 『불타는 빙벽』을 읽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시간의 차이다. 『빙벽』의 중심이 군대 내부의 폐쇄성, 명령, 폭력, 영웅 만들기였다면, 『불타는 빙벽』은 그 일이 세월이 지난 뒤 어떻게 사회적 기억으로 남는지를 본다. 군대 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끝난 듯하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이름과 기념물과 기록은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핵심 질문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일이 이후에 어떻게 이야기되었는가”이다. 조직은 자기에게 유리한 기억을 남기려 하고, 누군가는 그 기억의 틈을 파고들어 진실을 묻는다. 『불타는 빙벽』은 바로 이 기억의 충돌을 다룬다.

작품 설명

『불타는 빙벽』은 고원정의 『빙벽』을 잇는 후속 장편이다. 전작의 장석천과 현철기를 둘러싼 영웅 신화, 군 의문사, 조직의 은폐와 기억의 조작, 그리고 민주화 이후 사회에서 그 신화가 다시 소환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군대 문제는 부대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 언론, 시민단체, 가족, 세대 갈등으로 확장된다.

빙벽은 왜 불타는가

『빙벽』의 제목이 차가운 권력의 벽을 가리켰다면, 『불타는 빙벽』의 제목은 모순처럼 보인다. 얼음벽이 불탄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이 제목은 작품의 성격을 정확히 말한다. 얼어붙은 군대 신화가 사라지지 않고, 사회적 갈등 속에서 다시 뜨거워지는 것이다.

빙벽은 독재시대의 군대, 전체주의적 명령 체계, 조직의 침묵을 뜻한다. 불은 그 침묵이 뒤늦게 깨질 때 생기는 충돌이다. 진실을 묻는 사람과 신화를 지키려는 사람, 개혁을 말하는 사람과 권위를 되살리려는 사람, 과거를 덮으려는 사람과 다시 꺼내려는 사람이 부딪힐 때 빙벽은 차가운 벽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불붙은 기억의 전장이 된다.

이 제목이 강한 이유는 여기 있다. 『불타는 빙벽』은 과거가 끝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는 이름과 추모탑과 다큐멘터리와 정치적 수사 속에서 계속 되살아난다. 한 번 만들어진 영웅 신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할 때마다 다시 호출된다.

장석천과 현철기, 영웅인가 조작된 우상인가

작품의 중심에는 장석천과 현철기가 있다. 두 사람은 전작 『빙벽』에서 이미 군대 신화의 핵심에 놓인 인물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느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 이후에 어떻게 쓰였느냐이다.

군대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영웅은 조직의 명예를 세우고, 구성원의 복종을 정당화하며, 군인의 희생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꾼다. 그러나 『불타는 빙벽』은 묻는다. 그 영웅은 정말 진실 위에 세워졌는가. 아니면 조직이 필요로 한 이야기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낸 우상인가.

여기서 작품은 군인을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문제를 본다. 한 인간의 죽음과 희생이 조직의 필요에 따라 포장될 때, 그 사람은 다시 한 번 사용된다. 살아 있을 때 조직에 쓰였고, 죽은 뒤에는 신화로 쓰인다. 『불타는 빙벽』의 불편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용어 설명: 영웅 신화

영웅 신화는 실제 인물의 삶과 죽음이 조직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뜻한다. 『불타는 빙벽』에서 영웅 신화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다. 그것은 군대의 권위, 조직의 체면, 정치적 명분, 사회적 갈등이 한 사람의 이름 위에 겹쳐지는 방식이다.

추모탑과 다큐멘터리, 기억은 어떻게 제도화되는가

『불타는 빙벽』에서 추모탑과 다큐멘터리는 중요한 장치다. 추모탑은 죽은 사람을 기리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공식 기억을 고정하는 장치다.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기록하는 형식처럼 보이지만, 누가 만들고 어떤 의도로 편집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신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작품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은 그냥 남지 않는다. 국가와 군대와 언론과 시민단체와 정치권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다시 말한다. 그 과정에서 같은 죽음도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군인정신의 상징이고, 누군가에게는 조작된 우상이며, 누군가에게는 자기 인생의 빚이다.

그래서 『불타는 빙벽』은 기억의 소설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개인의 추억이 아니다. 제도화된 기억, 기념되는 기억, 공격받는 기억, 다시 쓰이는 기억이다. 작가는 과거가 어떻게 사회적 장치 속에서 재가공되는지를 보여준다.

우깨우깨, 인터넷 시민사회가 군대 신화에 균열을 낸다

『불타는 빙벽』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인터넷 시민단체의 등장이다. 전작 『빙벽』의 세계에서는 군대 내부의 폐쇄성과 명령 체계가 강했다. 그러나 후속작에서는 군대가 더 이상 완전히 닫힌 공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사회 밖에서 질문이 들어오고, 인터넷을 통해 의혹이 퍼지고, 시민들이 군대의 공식 서사에 균열을 낸다.

시민단체 우깨우깨는 장석천과 현철기의 신화가 조작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단순한 반군 정서가 아니다. 군대가 스스로 만든 영웅담을 사회가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과거에는 부대 안에서 끝났을 일이 이제는 사회 전체의 논쟁이 된다.

이 지점에서 『불타는 빙벽』은 본편보다 더 사회소설에 가까워진다. 군대 내부의 문제는 정치적 갈등, 언론의 프레임, 시민운동, 세대 간 인식 차이와 연결된다. 군대라는 빙벽은 여전히 서 있지만, 이제 그 앞에는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심 판단

『불타는 빙벽』의 핵심은 군대의 과거를 다시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조직이 만든 영웅 신화가 민주화 이후에도 어떻게 살아남고, 시민사회가 그 신화에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지를 보여준다. 『빙벽』이 닫힌 군대의 소설이었다면, 『불타는 빙벽』은 열린 사회로 끌려 나온 군대 기억의 소설이다.

박지섭, 방관자에서 증언자로 이동하는 인물

『불타는 빙벽』에서 중요한 인물은 박지섭이다. 그는 전작의 사건을 바깥에서만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그의 역할은 단순한 해설자나 관찰자가 아니다. 그는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 과거를 다시 말해야 하는 자리에 놓인 사람이다.

이 인물이 중요한 이유는 책임의 문제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과거를 직접 만든 사람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보고도 침묵한 사람, 알면서도 미룬 사람,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진실과 거리를 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질문 앞에 선다. 『불타는 빙벽』은 그 불편한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박지섭은 과거의 사건을 다시 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다시 보게 된다. 이것이 작품을 단순한 고발소설로 끝나지 않게 만든다. 군대와 권력의 문제는 외부의 악인을 찾아내는 일만이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침묵했는지를 보는 일이기도 하다.

군 의문사, 사고 이후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 작품에서 군 의문사는 단순한 사건 소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 그 자체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이다. 누구는 보고서를 만들고, 누구는 책임을 피하고, 누구는 명예를 지키려 하고, 누구는 진실을 말하려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조직의 민낯이 드러나는 시작점이 된다.

군대는 특수한 조직이다. 명령과 보안, 위계와 폐쇄성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불타는 빙벽』은 그 폐쇄성이 어떻게 의혹을 낳고, 의혹이 어떻게 가족과 사회를 오래 붙잡는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작품은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이 군대 안에서 죽었을 때, 그 죽음은 누구의 언어로 기록되는가. 가족의 언어인가, 조직의 언어인가, 국가의 언어인가. 『불타는 빙벽』은 바로 그 기록의 권력을 겨냥한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 작품의 장점이자 한계

『불타는 빙벽』은 『빙벽』보다 시야가 넓다. 군대 내부의 사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과정을 본다. 군 개혁, 보수적 군 문화, 시민단체, 정치권력, 언론, 세대의 기억이 함께 등장한다. 이 확장은 작품의 장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한계가 되기도 한다. 『빙벽』은 군대라는 폐쇄 공간 안에서 인간이 얼어붙는 감각이 매우 강했다. 반면 『불타는 빙벽』은 사회 이슈가 넓게 들어오면서 문학적 응축력보다 사회 논쟁의 밀도가 앞서는 순간이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본편의 압도적인 병영 감각보다 산만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이를 단점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불타는 빙벽』은 애초에 다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본편이 “군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묻는다면, 후속작은 “그 일이 사회에서 어떻게 다시 소비되는가”를 묻는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문체와 구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빙벽』을 읽은 사람에게 『불타는 빙벽』은 어떤 의미인가

『불타는 빙벽』은 『빙벽』을 읽은 독자에게 일종의 사후 질문을 던진다. 본편의 인물들이 겪은 비극은 작품 안에서 끝났는가. 장석천과 현철기는 죽은 뒤 조용히 남겨졌는가. 아니면 그들의 이름은 이후에도 조직과 사회가 필요로 할 때마다 다시 사용되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어떤 비극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은 뒤부터 더 복잡한 싸움이 시작된다. 누가 그 사람을 기억할 권리를 갖는가. 누가 그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누가 그 이름을 정치적 명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불타는 빙벽』은 이 사후의 싸움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빙벽』의 그림자를 사회로 끌고 나온다. 독재시대 군대 안에서 얼어붙었던 인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의 시민사회, 정치권력, 군 개혁 논쟁 속에서 다시 불붙는다.

『하얀 전쟁』, 『빙벽』, 『불타는 빙벽』으로 이어지는 독서선

『하얀 전쟁』, 『빙벽』, 『불타는 빙벽』은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함께 읽을 때 하나의 큰 질문을 만든다. 『하얀 전쟁』은 국가가 보낸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참전자의 비극을 다룬다. 『빙벽』은 독재시대 군대와 권력 구조 안에서 인간이 한계까지 밀려가는 비극을 보여준다. 『불타는 빙벽』은 그 군대 신화가 시간이 지난 뒤 사회에서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를 묻는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군인 개인을 쉽게 단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문제는 개인의 선악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이 인간을 어떻게 동원하고, 포장하고, 기억하는가이다. 전쟁터로 보낸 국가, 군대 안에서 인간을 밀어붙인 조직, 죽은 뒤에도 이름을 사용하는 사회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이 독서선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공간을 문학으로 읽는 길이다. 전쟁, 군대, 독재, 조직, 영웅 신화, 기억 정치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타는 빙벽』은 그 선의 마지막에서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싸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종 평가, 『불타는 빙벽』은 불붙은 기억의 소설이다

『불타는 빙벽』은 『빙벽』보다 더 넓고 더 사회적이다. 그만큼 본편의 밀도와는 다른 결을 가진다. 군대 내부의 차가운 공포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조금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빙벽』의 문제의식이 사회 바깥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려는 독자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의 강점은 영웅 신화를 다시 묻는 데 있다. 영웅은 숭고한 이름으로 남지만, 그 이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조직의 필요와 정치적 욕망이 끼어들 수 있다. 『불타는 빙벽』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리는 것과 그 이름을 이용하는 것 사이의 위험한 경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불타는 빙벽』은 『빙벽』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은 본편에서 만들어진 질문이 시간이 지나 사회로 번져 나간 결과다. 얼어붙은 군대의 벽은 무너진 듯 보였지만, 그 벽의 기억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른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불붙은 기억을 다룬다.

작품 정보

작품명 : 『불타는 빙벽』

작가 : 고원정

형식 : 전 3권 장편소설

분류 : 한국 장편소설, 군대소설, 사회소설, 후속 장편

전작 : 『빙벽』

주요 배경 : 군 의문사, 군대 신화, 민주화 이후의 사회 갈등

주요 인물 : 장석천, 현철기, 박지섭 등

핵심 주제 : 영웅 신화, 군 의문사, 조직의 은폐, 기억의 정치, 군 개혁, 진실과 추모의 충돌

『불타는 빙벽』은 『빙벽』에서 만들어진 군대의 영웅 신화가 시간이 지난 뒤 사회적 갈등 속에서 다시 소환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작품은 군대 내부의 사건을 넘어, 죽은 사람의 이름과 기억이 군대, 정치, 시민사회, 가족의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다시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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