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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표절 의혹 제기, 무엇이 쟁점인가: 사극 창작의 경계

형성하다2026. 3. 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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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표절은 역사보다 창작적 표현의 중복에서 갈립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둘러싼 논란은 같은 역사 인물을 썼느냐보다 역사 밖의 장면 설계와 각색 선택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겹치느냐를 묻게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단종 서사가 오래전부터 소설과 사극, 전승 계열에서 반복돼 왔다는 사실까지 함께 봐야만 치우치지 않은 판단이 가능합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6-03-10

논란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번 논란은 유족 측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고인이 생전 집필했다는 비제작 드라마 초고 ‘엄흥도’ 사이에 여러 유사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공개 보도에 따르면 유족 측은 단종이 처음에는 음식을 거부하다가 엄흥도의 권유로 마음을 여는 장면,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는 단종을 구하는 장면, 여러 궁녀를 한 인물로 압축한 설정, 엄흥도의 자녀 구성을 바꾼 각색 등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단종과 엄흥도라는 같은 역사 인물을 썼다는 차원을 넘어, 장면 구성과 인물 설계의 겹침을 지적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제작사 온다웍스는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순수 창작물이며, 창작 과정 전반이 기록돼 있고 해당 작품을 접한 경로나 인과성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획과 개발, 제작 과정에서 다른 저작물을 표절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도 함께 내놨습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만 놓고 보면, 한쪽은 구체적 유사성을 말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접근 가능성과 표절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단계의 핵심은 유사성보다 그 유사성이 어디서 왔는지입니다.

먼저 짚어야 할 사실, ‘엄흥도’는 방영작이 아니었다

현재 공개 보도 기준으로 ‘엄흥도’는 실제로 방영된 드라마가 아닙니다. 2000년대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초고 또는 시나리오로 소개되며, 방송사에 전달되거나 공모전에 출품됐지만 제작으로 이어지지 못한 작품으로 전해집니다. 제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이 시나리오가 책으로 출판됐거나 일반 대중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 게시됐다는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논란의 방향을 바꿉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방영작이었다면 ‘누구나 봤을 수 있다’는 전제가 상대적으로 쉬워지지만, 비제작 초고라면 쟁점은 자연스럽게 ‘제작진이 실제로 그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는가’로 옮겨갑니다. 다만 방영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권리 주장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나리오나 대본도 독자적인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제작 초고라는 사실은 면책도 확정도 아닌, 접근 가능성의 문제를 남깁니다.

역사 속 단종과 엄흥도, 어디까지가 기록인가

실록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보여주는 역사 속 엄흥도의 핵심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는 영월의 호장이었고, 단종이 시해된 뒤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해 장사지낸 인물로 기억됩니다. 영조 대에는 그의 충절을 기려 증직과 제물 지급을 청하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료가 단단하게 보여주는 뼈대는 엄흥도의 신분, 단종 사후의 행동, 후대의 추숭 정도입니다.
이 말은 곧 영화나 드라마가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를 촘촘한 감정 서사로 확장하는 순간부터 상당 부분이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첫 만남의 방식, 마음을 여는 계기, 음식과 말의 오고감, 절망과 구원의 장면, 가족관계와 주변 인물의 재구성은 대체로 후대의 상상력과 각색이 채우는 빈칸입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의 진짜 쟁점도 역사적 사실의 공유가 아니라, 그 빈칸을 채운 방식이 얼마나 닮았는가에 놓입니다.
역사 기록이 적을수록 사극의 자유는 넓어지지만 분쟁의 여지도 커집니다.

단종 서사는 원래부터 반복돼 온 이야기였다

이번 사건을 공정하게 보려면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가 이번 영화나 이번 시나리오에서 처음 나온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이미 1928년부터 1929년까지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장편 역사소설로, 단종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엄흥도의 시신 수습까지 서사화한 대표 텍스트입니다. 즉 단종의 비극과 엄흥도의 충절이라는 큰 줄기는 오래전부터 한국 대중서사 안에서 널리 재현돼 왔습니다.
텔레비전 사극도 마찬가지입니다. MBC ‘조선왕조 500년’ 계열처럼 단종과 세조 시기를 정통사극 문법으로 재현해 온 작품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누적돼 왔습니다. 또 ‘전설의 고향’은 단종과 엄흥도를 직접 다뤘는지 여부와 별개로, 한국 텔레비전이 역사적 사실 위에 민간전승과 설화적 상상력을 겹쳐 드라마 문법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축적이 있기 때문에 단종 서사에서 어떤 장면이 낯익게 느껴지는 것은 한 편의 현대 시나리오 때문만이 아니라 오래된 문화적 기억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단종, 청령포, 유배, 충신, 비운의 소년 왕 같은 큰 요소는 한국 문화 안에서 이미 여러 번 변주된 공용 재료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서 더 엄밀하게 따져야 할 것은 그 공용 재료 자체가 아니라, 역사에 없는 세부 설정과 장면 배열, 인물 압축, 가족관계의 변형 같은 창작적 설계입니다.
오래된 단종 서사와 이번 유사성은 같은 층위에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사극에서 표절은 어디서부터 문제 되나

사극은 구조적으로 표절 논란이 자주 생길 수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 공간과 비극적 결말처럼 여러 창작자가 함께 쓰는 재료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은 원칙적으로 아이디어나 역사적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창작 형식을 보호합니다. 따라서 단종을 주인공으로 삼거나, 엄흥도를 충절의 인물로 재현하거나, 영월과 청령포를 배경으로 삼는 것만으로는 표절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다른 설정이 여러 개 묶여 구체적으로 겹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역사에는 없는 장면을 같은 순서로 배치하고, 여러 인물을 한 인물로 압축하는 방식이 비슷하며, 가족 구성이나 감정의 이동 경로까지 비슷하게 설계됐다면 그것은 단순한 소재 공유를 넘어 창작적 표현의 중첩으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이번 사건에서 유족 측 주장에 일정한 검토 가치가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동시에 제작사가 접근 자체를 부인하는 이상, 유사성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합니다.
사극의 표절 논란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 밖의 각색이 어디까지 겹치느냐에서 갈립니다.

판례와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나

역사물 표절 논란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가 ‘선덕여왕’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일부 공통 요소와 사전 접촉 정황이 있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극본이 원고 저작물에 의거해 작성됐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실질적 유사성도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즉 역사물에서는 몇몇 상징적 장면이나 분위기 유사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접근 가능성과 구체적 표현의 겹침이 훨씬 엄격하게 검토된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영화 ‘암살’ 사건도 비슷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역사적 격동기, 비슷한 인물군이 등장하더라도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창작적 표현 형식에서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이 사례들이 뜻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역사물은 비슷해 보이기 쉬운 장르지만, 법원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더 세밀하게 선을 그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물 판례는 사극의 면죄부가 아니라, 더 엄격한 비교 기준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는 것이 가장 공정한가

지금 단계에서 가장 공정한 평가는 이 정도일 것입니다. 유족 측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억측이라고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역사 인물을 썼다는 수준을 넘어, 음식 장면의 감정 구조, 투신 장면, 궁녀의 압축, 자녀 설정의 각색처럼 역사 바깥의 선택들을 묶어서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제작 초고라 하더라도 실제로 존재했고 방송사 전달이나 공모전 출품 정황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문제 제기의 자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제작사 반박도 가볍게 취급해선 안 됩니다. 제작사는 창작 전 과정이 기록돼 있고, 해당 작품을 접한 경로나 인과성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순수 창작물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기획안의 변천 과정, 개발 문서, 참고 자료 목록이 이를 뒷받침한다면 일부 유사해 보이는 장면만으로는 표절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따라서 지금 이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안전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현재 공개된 사실만으로 표절 여부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역사 소재 중복을 넘는 주장들이 제기된 만큼 검증 가치는 분명한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확신보다 자료 비교와 창작 경로의 검증입니다.

결론

이번 ‘왕과 사는 남자’ 논란은 한편으로는 표절 의혹 사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종 서사가 한국 문화 안에서 어떻게 누적되고 변주돼 왔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단종과 엄흥도의 이야기는 실록의 기록, 『단종애사』 같은 문학, 정통사극의 문법, 전승과 설화의 상상력 속에서 이미 오래 반복돼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유사성은 장르와 전통의 공유분일 가능성이 높고, 어떤 유사성은 실제로 저작권 검토가 필요한 창작적 중복일 수 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한쪽 편을 먼저 드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주장들을 문화사적 맥락과 법적 기준 위에 정확히 올려놓는 일입니다. 역사극의 자유를 지키려면 창작 보호도 필요하고, 창작 보호를 지키려면 역사와 관습의 공유분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 균형 감각을 시험하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극 표절 논란의 승부처는 역사 공유가 아니라 창작 설계의 구체성입니다.
PS.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과 엄흥도를 다시 대중 앞으로 불러낸 것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영화 속 단종과 엄흥도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극적 인물이며, 실제 기록 속 단종과 엄흥도는 지금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모습보다 훨씬 적은 정보만 남아 있습니다. 단종은 조선의 비운의 군주로, 영월 유배와 죽음 자체가 역사적으로 분명한 인물이고, 엄흥도는 그 사후 시신을 거두고 장사한 충절의 인물로 기억됩니다. 결국 영화는 역사를 그대로 복제한 작품이 아니라, 실존 인물의 빈칸 위에 오늘의 감정과 상상력을 덧씌운 사극입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볼 때도 영화적 감동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창작적 각색은 구분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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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출처

이번 논란의 사실관계는 머니투데이, 아시아경제, 조선일보 등 2026년 03월 09일과 10일 보도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유족 측이 문제 삼은 유사 장면과 설정, ‘엄흥도’가 실제 방영작이 아니라 방송사 전달과 공모전 출품 단계에 머문 비제작 초고라는 설명, 제작사의 전면 부인 입장은 아래 기사들을 참고했습니다.
머니투데이 관련 기사
아시아경제 관련 기사
조선일보 관련 기사
역사 속 엄흥도와 단종 관련 기본 사실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와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했습니다. 엄흥도의 영월 호장 신분과 단종 사후 시신 수습, 후대 추숭 관련 설명은 아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엄흥도 항목
조선왕조실록
단종 서사의 선행 텍스트와 문화사적 축적은 이광수의 『단종애사』, MBC ‘조선왕조 500년’ 관련 자료, KBS ‘전설의 고향’ 프로그램 설명을 참고했습니다. 이 자료들은 단종 서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 정통사극, 전승 기반 드라마 문법 속에서 반복 재현돼 왔음을 보여줍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종애사 항목
MBC 조선왕조 500년 관련 페이지
KBS 전설의 고향 프로그램 페이지
사극과 역사물의 표절 판단 기준, 그리고 ‘선덕여왕’과 ‘암살’ 사례는 대법원 판단 취지와 연합뉴스 보도를 함께 참고했습니다. 핵심은 역사적 사실과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접근 가능성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창작적 표현을 비교한다는 점입니다.
연합뉴스 선덕여왕 관련 보도
연합뉴스 암살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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