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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가 피해의 얼굴을 쓰는 순간, 이스라엘과 한국 언론의 전쟁 서사

형성하다2026. 3. 2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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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 피해 서사 · 보도 프레임

먼저 전쟁을 연 국가는
왜 가장 먼저 피해자의 얼굴을 얻는가

이스라엘의 문제는 고통을 말한다는 데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그 고통이 전쟁의 시작과 책임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배치될 때 생긴다.

최종 업데이트 2026-03-24

문제는 전쟁만이 아니라 서사다

전쟁은 언제나 사람을 다치게 한다. 미사일이 떨어진 도시의 공포도 현실이고, 그 안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일상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전쟁의 문을 연 쪽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 피해의 얼굴만 앞세우기 시작하면, 전쟁은 어느 순간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가 된다.

지금 이스라엘을 둘러싼 가장 큰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받은 충격과 불안을 가장 먼저 보여 주지만, 그 장면 앞에 놓여야 할 시작과 책임은 자꾸 뒤로 밀어 둔다. 먼저 움직인 손은 배경이 되고, 뒤늦게 맞은 얼굴만 화면의 중심이 된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원인보다 표정을 먼저 보게 된다.

이것이 단순한 인상 비평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쟁에서 무엇을 먼저 말하고 무엇을 나중에 설명하느냐는 곧 윤리의 순서를 바꾸기 때문이다. 먼저 때린 쪽이 가장 먼저 상처를 말하는 순간, 전쟁의 도덕적 좌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쟁의 핵심은 충격의 장면보다 시작과 책임의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스라엘 시민이 공포를 겪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공습 경보와 미사일 낙하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민간인의 감정은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위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개인의 고통은 존중할 수 있어도, 국가의 책임까지 함께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의 사실과 책임의 순서는 같은 것이 아니다. 실제 피해를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이 먼저 전쟁을 연 책임까지 덮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반대 방향에서 더 선명해진다. 이스라엘은 자기 영토에 떨어진 미사일은 문명의 균열처럼 말하면서도, 이란 국민의 죽음과 다른 지역의 파괴는 전략과 안보의 언어로 정리하는 인상을 남긴다. 자기 고통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상대의 고통은 군사적 필요의 어휘로 정리된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 피해의 호소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하나의 정치적 서사로 굳어진다.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먼저 때린 책임까지 지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불편함과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피해를 말하는 그 입이 동시에 더 큰 파괴를 정당화하고 있을 때, 연민과 설득은 쉽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린 손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데 맞은 얼굴만 오래 내미는 태도는 누구에게나 이중기준으로 읽히기 쉽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이 책임을 밀어내는 방식에 있다.

먼저 적어야 할 것은 누가 더 놀랐는가가 아니다

누가 더 놀랐는가보다
누가 먼저 문을 열었는가를
먼저 적어야 한다.

전쟁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기록해야 할 것은 충격의 크기가 아니다. 누가 더 아프게 울었는가도 아니다. 핵심은 누가 먼저 전쟁의 문을 열었고, 누가 더 넓고 오래 파괴를 지속하고 있는가다. 이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화면은 빠르게 거꾸로 선다. 먼저 때린 쪽은 불쌍한 쪽이 되고, 맞받아친 쪽은 설명 없는 폭력의 주체로만 남는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윤리는 사라지고 감정의 배열만 남는다. 시청자는 한 장면의 충격에 몰입하지만, 그 장면이 어떤 순서 위에 놓여 있는지는 놓치게 된다. 바로 그 틈에서 국가의 자기연출은 힘을 얻는다. 피해의 장면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시작의 책임은 더 빠르게 흐려진다.

충격은 강하다.
그러나 시작이 지워지면
전쟁의 윤리도 함께
지워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균형을 가장한 모호한 문장이 아니다. 먼저 때린 쪽을 먼저 적는 문장이다. 그래야 실제 민간인의 공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해가 피해자의 얼굴을 쓰는 방식에 쉽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전쟁을 해석할 때 가장 먼저 남겨야 할 기록은 시작의 책임이다.

국가와 국민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분리할 수도 없다

국가는 국민 바깥에 떠 있는 추상적 기계가 아니다. 선거와 여론, 침묵과 동의, 일상적 협조와 묵인이 모두 국가의 방향을 떠받친다. 물론 모든 개인의 책임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또 다른 단순화다. 그러나 반대로 소수의 반대자 몇 명을 앞세워 다수 사회 전체를 도덕적으로 정화하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국가의 얼굴

국가는 법과 군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수 사회가 용인하고 묵인하고 감정적으로 지지할 때 국가의 방향은 더 오래 지속된다.

사회의 책임

모든 사람이 같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어도, 소수의 양심적 반대만으로 다수 사회의 동의와 침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만 가해자이고 사회는 대체로 무고하다고 정리해 버리면, 지금의 전쟁을 떠받치는 집단적 감정과 정치적 지지의 구조는 설명되지 않는다. 국가의 폭력이 장기간 유지된다는 것은, 그 폭력이 완전히 고립된 결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수의 반대가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존재만으로 다수 사회 전체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읽을 때도 한국식 민주화 서사를 그대로 자동 적용하면 곤란하다. 시위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 전체가 자기 교정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는 없고, 반대 목소리가 있다고 해서 다수의 동의 구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와 사회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질기고 더 복합적이다.

국가의 방향이 오래 유지될수록 사회의 동의와 묵인도 함께 보아야 한다.

한국 언론이 반복하는 것은 사건보다 먼저 시선이다

한국 언론의 더 큰 문제는 특정 기사 한 편의 표현이 아니다. 더 넓게 보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선제 행동은 짧은 배경처럼 처리하고 이란의 대응은 전면 제목으로 끌어올리는 식의 반복된 문법이 존재한다. 이 문법이 계속되면 독자의 감각은 어느새 같은 방향으로 조직된다.

그 결과 독자는 시작보다 반응을 먼저 기억하게 된다. 원인은 축소되고 결과는 확대된다. 먼저 전쟁을 연 장면은 설명문 안에 묻히고, 되돌아온 충격의 장면은 감정의 전면으로 나온다.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어느 순간 이스라엘이 먼저 연 전쟁의 맥락보다, 이스라엘이 당한 장면만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된다.

언론은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 무엇을 먼저 말하고 무엇을 뒤에 두는지를 통해 독자의 도덕 감각과 감정의 방향까지 함께 조직한다.

이 점에서 한국 언론은 단순히 외신을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정리된 프레임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의 장면은 선명하게 확대되고, 가해의 시작은 차분한 배경 문장으로 축소된다. 그러면 독자는 사건을 이해하기보다, 이미 배열된 감정선 위에서 사건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더 거슬리는 것이다. 현실의 전쟁도 불편한데, 그 전쟁을 설명하는 문장들까지 같은 방향으로 비틀릴 때 독자는 이중의 피로를 느낀다. 하나는 실제 전쟁이 주는 피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전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언어가 주는 피로다.

시작을 흐리고 반응만 키우는 보도는 사실 전달보다 프레임 재생산에 가깝다.

결국 남는 것은 피해의 표정보다 책임의 순서다

이스라엘의 공포가 사실일 수는 있다. 민간인의 두려움 역시 현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이스라엘의 책임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포가 어떤 맥락 속에 놓여 있는가다. 먼저 전쟁의 문을 연 국가가 자기 피해의 얼굴만 앞세우는 순간, 사실은 여전히 사실이어도 그 배치는 정치가 된다.

피해의 표정은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정이 책임의 순서를 바꾸는 순간, 전쟁을 읽는 기준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정도 아니고, 감정의 자동 반응도 아니다. 먼저 때린 쪽을 먼저 적는 문장, 더 크게 무너뜨린 쪽을 더 분명하게 적는 문장, 그리고 민간인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자기연출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래야 실제 인간의 두려움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해가 피해자의 얼굴을 쓰는 방식에 속지 않을 수 있다.

전쟁을 제대로 보려면 피해의 장면보다 책임의 순서를 먼저 붙들어야 한다.

참고·출처

이 글은 2026년 03월 24일 기준 공개 보도와 여론조사 흐름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전쟁 국면의 전개와 이스라엘의 테헤란 공습 지속 여부는 로이터 2026년 03월 23일 보도를 참고했다.

이번 직접 충돌의 개시 국면과 확전 흐름은 로이터 2026년 03월 23일 보도와 AP 보도 흐름을 함께 참고해 정리했다.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대이란 군사작전 지지 흐름은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 2026년 03월 조사 내용을 참고했다.

한국 언론의 프레임 문제는 같은 시기 한국 주요 매체 기사 제목과 리드 문장 비교를 바탕으로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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