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작가

김용의 강호 연대기: 홍콩에서 쓴 중화의 신화와 말년의 균열

형성하다 2025. 11. 25. 14:58

김용은 강호를 세웠고 말년에 다시 무너뜨린, 중화권 무협 문법의 설계자다.

그의 생애는 본토의 상실, 홍콩의 매체, 중화 정통의 과열이 겹친 디아스포라의 기록이었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연재된 15편은 무협을 ‘힘의 판타지’에서 ‘윤리의 사회’로 바꿨다. 그리고 노년의 신수정은 그 윤리를 스스로 재판한 끝없는 수정의 흔적이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5

중국에서 홍콩으로, 잃어버린 중화의 감각

김용의 본명은 차량융이다. 1924년 중국 저장성 하이닝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과 혁명, 분단으로 ‘중국이 더 이상 하나일 수 없는 시대’를 통과했다. 1948년 홍콩으로 건너와 기자와 편집자로 일하며, 글이 매일 팔리고 사라지는 근대 매체의 속도를 몸으로 배웠다. 그에게 홍콩은 피난처이자 중화 세계가 축소되는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한 도시였다. 강호는 바로 그 축소의 불안에서 태어난 상상 공동체였다.

김용의 강호는 상실과 이주가 만든 디아스포라의 세계다.

연재의 발명과 강호라는 사회

김용이 만든 새로움은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이었다. 그는 신문 연재라는 리듬 속에서 독자와 매일 호흡하며 서사를 키웠고, 그 리듬은 강호를 ‘하나의 사회’로 확장시켰다. 문파의 위계, 사제 관계, 의형제의 결속이 국가 법보다 먼저 사람을 묶는 질서가 구축됐다. 영웅은 무공의 높낮이로만 결정되지 않고, 그 질서 안에서 어떤 윤리를 선택하느냐로 시험받는다. 무협이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인간의 사회적 감정과 도덕을 다루는 장르로 변한 이유가 여기 있다.

연재의 속도는 강호를 이야기에서 사회로 바꿔 놓았다.

역사 위의 강호, 정통의 윤리를 세우다

김용은 강호를 공중에 띄우지 않고 실제 역사 위에 얹었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송·금·원 전쟁, 소오강호의 권력 균열, 천룡팔부의 제국 경쟁은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심장으로 작동한다. 이 결합은 영웅의 선택을 ‘개인의 의협’에서 ‘문명과 공동체의 편에 설 것인가’로 확장시켰다. 중화 정통은 여기서 윤리의 기준선이 된다. 김용의 무협이 우울할 만큼 진지한 이유는, 사랑과 의리가 끝내 역사와 정통의 무게를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용은 강호를 역사에 붙여 정통의 윤리를 핵으로 만들었다.

민족주의의 힘과 그늘, 타자의 자리

정통의 감정이 강할수록 힘도 커지지만, 그만큼 그늘도 생긴다. 김용의 역사적 강호는 대체로 한족 중심의 중화 정통을 감정의 중심에 두고 움직인다. 그 결과 몽골, 거란, 여진, 만주 같은 타민족과 변방은 복잡한 사회로 충분히 서술되기보다, 한족 영웅의 윤리를 시험하고 비극을 촉발하는 기능적 장치로 놓이기 쉽다. 강호의 ‘정답’이 정통으로 기울 때, 주변부는 넘어야 할 타자로 소비된다. 김용 민족주의의 역설은 결속의 언어가 동시에 시선의 편향을 낳는다는 데 있다.

다만 김용은 그 편향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는다. 천룡팔부의 교봉처럼 타자의 비극을 중심에 세워, 민족이 윤리를 대신할 때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말년의 녹정기에서는 영웅주의와 정통 담론 자체를 희극으로 비틀어, 자신이 세운 도덕의 신화를 스스로 의심한다. 이 자기부정이 있었기에 김용의 강호는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끝내 질문으로 남는다.

김용은 정통을 세우면서도 정통의 폭력을 내부에서 드러냈다.

세기말 홍콩이 김용을 다시 읽는 방식

김용 강호는 반복 영상화를 통해 세대 공통의 표준어가 됐다. 쇼브라더스 영화와 TV 드라마는 문파의 규칙과 무공의 계보, 의리와 사랑의 충돌을 대중의 감각으로 굳혔다. 그러나 표준이 강해질수록 강호는 평평해지기 쉽고, 그 평평함을 깨뜨린 것이 세기말 홍콩 영화의 변주였다. 서극은 정통을 뒤집는 초월의 비극을, 왕가위는 강호를 기억과 후회의 사막으로 해체했다. 이 것은 세기말의 홍콩, 임청하의 얼굴: 대만 멜로에서 중성 신화와 도시적 고독까지에서 더 길게 이어진다.

세기말 홍콩은 김용 강호를 표준에서 해체로 밀어붙였다.

젊은 김용의 강호, 원래 규칙은 무엇이었나

김용이 처음 강호를 세울 때, 가장 뚜렷했던 것은 “세계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감각이었다. 문파의 위계와 사제 관계, 정통을 둘러싼 역사적 갈등은 우연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뼈대를 이루는 질서였다. 독자는 작품마다 다른 인물과 사건을 만나면서도, 강호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 규칙이 있다고 느끼며 그 세계를 신뢰했다. 이 신뢰가 있었기에 김용의 무협은 흥미를 넘어, 한 시대 중국어권의 정서 지도가 될 수 있었다.

그 규칙의 중심에는 보상과 책임의 윤리가 있었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천룡팔부와 소오강호를 따라가다 보면, 영웅은 단순히 검이 세서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는가”로 시험받는다. 오랜 의리와 사랑, 공동체를 향한 헌신은 언젠가 보상받고, 배신과 이기심, 허영은 비극으로 돌아온다. 이 보상 구조는 현실보다 단순하지만, 현실에서 쉽게 얻지 못하는 도덕적 위안을 제공했다. 독자는 강호를 읽으며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의리가 헛되지 않는다”는 감정을 공유했다.

강호의 환상미라는 기준이 어떻게 형성되고 말년에 어떤 균열을 맞는지는 김용의 무협 절세미녀 TOP 26, 강호의 환상에서 이어서 정리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규칙이 연재의 속도와 함께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김용은 신문 연재라는 리듬 속에서 독자의 호흡을 매일 확인하며 서사를 키웠다. 하루하루 쌓이는 회차와 반응이 강호의 규칙을 동시에 구축한 셈이다. 그래서 초판의 김용 강호는 어딘가 거칠고 모순도 있지만, 살아 있는 사회처럼 느껴진다. 완성된 설계도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규칙이라는 실시간성이 그 매력이었다.

젊은 김용의 강호는 거칠지만, 세계의 규칙을 믿을 수 있는 사회였다.

신수정본이 건드린 세 층위: 텍스트·윤리·독자 경험

김용은 집필을 끝낸 뒤에도 작품을 놓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고, 1999년부터 2006년까지는 이른바 신수정본에서 서사와 인물, 역사 해석을 대대적으로 다시 손봤다. 이 작업은 단순한 문장 정리나 오탈자 수정이 아니었다. 인물의 관계와 결말, 무공의 계보, 역사적 사건의 의미까지 건드리는 재작성에 가까웠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라도, 초판과 신수정본은 어떤 장면에서는 사실상 다른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첫 번째로 바뀐 층위는 텍스트 자체다. 일부 설정이 정리되고, 인과가 더 논리적으로 보완된 부분도 있다. 젊은 시절의 과장된 서술을 줄이고, 무공과 사건을 현실 쪽으로 끌어당긴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초판의 거친 에너지와 모순이 지우리듯 사라진 장면도 함께 발생했다. 독자가 오래 기억해 온 문장과 장면이 “정확성”의 이름으로 바뀌거나 삭제될 때, 텍스트는 매끈해지지만 세계의 질감은 함께 희미해진다.

두 번째로 바뀐 층위는 윤리다. 신수정본의 김용은 젊은 시절 자신이 믿었던 보상 구조와 영웅주의를 부분적으로 철회하려 한다. 영웅의 선택이 항상 옳지 않을 수 있고, 사랑과 의리가 자동으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정통과 민족주의에 대한 표현도 일부 완화되거나 비틀린다. 이것만 놓고 보면, 신수정은 “더 성숙한 자기 비판”처럼 읽히기도 한다. 다만 이 회의가 항상 인물의 해방과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뒤에서 문제로 돌아온다.

세 번째로 흔들린 층위는 독자 경험이다. 신수정본은 “정본”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이후 번역과 재판의 기준이 되었다. 그 순간 독자가 수십 년 동안 공유해 온 강호의 규칙과 기억은 작가의 손에 의해 다시 교체되기 시작한다. 강호의 역사와 장면, 인물의 최종 선택이 “실시간으로 갈아 끼워지는 세계”가 된 것이다. 강호는 더 이상 단단한 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공사가 벌어지는 현장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다시 쓰는 권리는 인정할 수 있지만, 독자가 이미 쌓아 올린 기억을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질문으로 남는다.

신수정본은 텍스트를 다듬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윤리와 독자의 기억까지 다시 쓴 개정이었다.

왕어언, 닫힌 탈출구: 한 인물로 본 변질의 얼굴

천룡팔부의 왕어언 결말 변경은 신수정본의 혼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젊은 김용이 그린 왕어언은 처음부터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그는 모용복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감정과 시간을 태우면서도,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인물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 왜곡된 사랑과 허망한 복국의 꿈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왕어언의 비극은 “순진한 여인”의 비극이 아니라, 똑똑한 인간이 잘못된 세계관에 심하게 투자했을 때 생기는 소진에 가깝다.

초판의 결말에서 단예와 이어지는 선택은 단예의 상처럼 보기 쉽지만, 왕어언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모용복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이 사람들 말고, 다른 삶이 있을지 모른다”라는 가능성을 향해 몸을 돌리는 움직임이다. 왕어언은 단예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을 지탱하는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다. 과거의 사랑과 이상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중심에 두려는 작은 이동이다. 이 이동의 크기는 정치적 신분 상승과 무관하게, 서사적·윤리적으로는 분명한 진전이다.

노년의 신수정본은 바로 이 지점을 되돌린다. 신수정본에서 왕어언은 결국 모용복 곁, 추억과 집착이 엉킨 자리로 다시 귀속된다. 젊은 김용의 낭만적 보상 구조, “착한 사랑은 언젠가 보상된다”는 문장은 사라진다. 겉으로 보면 더 현실적인 회의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회의는 왕어언을 해방시키기보다, 과거의 세계에 더 깊이 묶어 두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한 번 열렸던 탈출구가 노년의 작가에 의해 다시 닫힌 셈이다.

그래서 이 결말 변경은 단예의 손해 여부로만 볼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왕어언의 주체적 궤적이 어떻게 축소되었는가이다. 젊은 김용이 그린 왕어언은, 비록 늦었지만 모용복의 세계를 떠나 자기 삶의 미래를 택한 인물이었다. 노년의 신수정본은 그 결단을 철회하고, 왕어언을 다시 옛 사랑과 야망의 잔해 곁에 머무르게 한다. 말년의 회의는 젊은 시절의 허세를 해체했을지 모르지만, 여성 인물이 그 세계 밖으로 나아갈 가능성까지 함께 걷어낸다. 그래서 독자에게 남는 인상은 “더 성숙한 비판”이 아니라 “열려 있던 길이 닫혔다”는 상실감에 가깝다.

결국 왕어언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수정본이 강호의 낭만을 걷어내면서도 관계의 기본 구도는 바꾸지 못한 한계다. 젊은 김용의 강호가 낭만적 보상에 기대었다면, 노년의 강호는 그 보상을 철회하면서도 여전히 인물을 과거와 남성 중심 구도에 귀속시킨다. 윤리는 회의의 방향으로 이동하지만, 인물의 미래는 넓어지지 않는다. 독자는 여기서 노년의 자기 비판을 넘어, 노년의 보수성을 함께 목격하게 된다.

왕어언의 닫힌 탈출구는, 신수정본이 어디서부터 변질로 보이는지를 보여 주는 얼굴이다.

작가 개정과 독자의 세계, 누구의 강호를 고친 것인가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고칠 권리가 있다. 특히 젊은 시절의 과장과 오류, 시대적 편견을 노년에 돌아보며 정리하는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김용의 신수정본에는 그런 진지한 자기 비판의 흔적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통의 과열을 조정하고, 지나치게 영웅화된 장면을 낮추고, 역사 해석의 거친 부분을 다듬으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개정이 어느 순간 “세계의 정비”를 넘어 “독자의 세계 재작성”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강호는 텍스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책과 드라마, 영화와 만화를 오가며 독자 각자의 기억 속에 구축된 거대한 공동체다. 초판의 강호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살아 있는 세계였다. 신수정본이 그 세계를 고치기 시작할 때, 김용은 더 이상 혼자 강호의 주인이 아니었다. 젊은 김용과 노년의 김용, 그리고 각 세대 독자가 함께 쌓아 올린 공동 세계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어디까지 다시 쓸 수 있는가, 누가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여기서 생긴다.

김용의 신수정본은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긴다. 젊은 시절 강호를 세운 김용과, 말년에 그 강호를 다시 판결한 김용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작가라는 점이다. 독자는 이제 둘 중 어느 강호를 더 신뢰할지 선택해야 한다. 초판의 거칠지만 살아 있는 세계를 더 가깝게 느낄 수도 있고, 노년의 회의와 자기 비판이 반영된 개정을 더 성숙한 버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혹은 둘을 나란히 놓고, 강호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다시 의심되는 전 과정을 함께 읽는 방법도 있다.

이 글이 내리는 작은 결론은 단 하나다. 김용의 신수정본은 강호를 완성한 정본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노년 윤리가 남긴 상처와 균열까지 포함한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독자는 그 사건을 통과해, 각자 마음속에서 “나에게 유효한 강호”를 다시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젊은 김용과 늙은 김용, 그리고 각자의 시간 속 독자가 함께 만난다. 강호는 그렇게 여전히 살아 있고, 동시에 영원히 완성되지 않은 세계로 남는다.

김용의 개정은 정본이라기보다, 작가와 독자가 각자 자기 강호를 다시 선택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