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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나라 원전’을 믿고도 탈원전에 실패했나: 독일·이탈리아·스웨덴 사례로 본 한국형 논쟁의 핵심

형성하다 2026. 2. 2. 11:09

‘옆나라 원전’을 믿고도 탈원전에 실패했나: 독일·이탈리아·스웨덴 사례로 본 한국형 논쟁의 핵심

국경 연계망이 있어도 탈원전은 가격·안보·산업경쟁력의 비용을 지우지 못했고, 고립계통인 한국은 같은 선택의 충격이 더 크게 증폭됐다.

최종 업데이트 2026-02-02

1. ‘옆나라 원전을 믿고 탈원전’이 가능한 조건

“이웃 나라가 원전을 돌리니 우리는 원전을 줄여도 된다”는 문장은 전력시스템의 한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국경을 넘는 송전선과 상시 전력거래가 존재해, 부족하면 수입하고 남으면 수출하는 구조가 작동해야 한다. 유럽 대륙처럼 연계망이 촘촘한 곳에서는 이런 설명이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 구조는 ‘물리적 수급 붕괴’를 늦추거나 피하게 할 수는 있어도, ‘가격과 안보 리스크’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전력수입은 결국 시장가격으로 사오는 전기이며, 위기 때는 더 비싸지고 더 불안해진다. 이 지점이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이 탈원전의 비용을 다시 말하게 되는 핵심이다.

2. 한국에서 같은 논리가 작동하지 않은 3가지 구조

2-1. 고립계통: 전기를 ‘사올’ 길이 없다

한국 전력망은 국경 간 송전으로 전력을 수입·수출하는 구조가 없다. 즉, 원전을 줄이면 그 공백은 국내 발전원으로만 메워야 한다. 유럽식 논리처럼 “부족하면 옆나라에서 사온다”는 선택지가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2-2. 단기 대체가 LNG로 고정되기 쉽다

원전 감축과 재생 확대가 동시에 진행될 때, 저장장치와 계통 보강이 충분하지 않으면 변동성의 틈을 메우는 조정전원이 필요해진다. 단기간에 늘리기 쉬운 조정전원은 가스복합(LNG)로 수렴하기 쉽고, 이때부터 정책의 중심 쟁점이 “발전원 전환”이 아니라 “연료비·환율·국제가격을 누가 감당하느냐”로 이동한다.

2-3. 전기요금과 공기업 재무로 비용이 전가된다

연료비가 오르면 요금에 반영되거나, 반영이 지연되면 전력공기업 재무로 누적된다. 이 구조에서는 탈원전이든 재생 확대든 어떤 전환 정책도 비용 충격을 숨길 수 없다. 결국 논쟁은 “정책의 옳고 그름”만이 아니라 “요금 제도와 재정·부채의 지속가능성”으로 번진다.

3. 독일의 ‘고백’이 의미하는 것: 수급이 아니라 가격·전략의 문제

독일은 국경 연계망이 있어 한국과 달리 전력수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독일 내부에서 탈원전이 “전략적 실수”라는 발언이 등장한 이유는, 수입이 수급의 최후 안전판이 될 수는 있어도 ‘저렴한 전기’와 ‘정책 자율성’까지 보장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정치권,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공개 발언은 탈원전의 비용을 “전력 생산능력과 전략적 결과” 관점에서 정면으로 문제 삼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 고백의 핵심은 “원전의 안전성 논쟁”이 아니라, 상시전원 감소가 가져온 전력가격 상방 압력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안보 비용의 복합 부담이다.

4. 이탈리아의 실패: ‘원전 제로’는 전력수입과 가스 의존을 고착시켰다

이탈리아는 1987년 국민투표 이후 원전을 사실상 종료했고, 마지막 원전 가동도 1990년에 멈췄다. 이후 2000년대 후반 재도입 움직임이 있었지만, 2011년 국민투표에서 재도입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장치가 강하게 부정되며 “원전 없는 체제”가 장기간 굳어졌다.

이 체제의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전력의 일부를 국경 연계망으로 수입해 충당한다. 둘째, 국내 전환의 중심 축이 LNG와 재생의 조합으로 고정되며, 국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전기요금과 산업비용에 크게 반영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소형모듈원전(SMR) 등 ‘신기술 기반 재도입’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재점화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여기서 “실패”라는 평가는, 탈원전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것이 아니라 비용·안보 압력을 견디다 정책 복귀 논의가 반복된다는 뜻에 가깝다.

5. 스웨덴의 실패: ‘탈원전 목표’가 유지되지 못해 정책이 번복됐다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로 장기적인 단계적 퇴출 목표가 제시됐지만, 2009년 이후 정책 방향이 사실상 전환됐다. 2010년에는 기존 부지에서의 원전 대체 건설을 허용하는 형태로 “단계적 폐지”를 제도적으로 되돌리는 흐름이 강화됐다.

스웨덴 사례에서 “실패”는 이탈리아처럼 ‘원전 제로의 함정’보다는, 탈원전 목표가 전력수급·가격·기후목표와 충돌해 장기간 유지 가능한 국가전략으로 정착되지 못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 특히 전기화 수요 확대, 산업 전력수요, 기후목표의 압력이 커질수록 ‘상시전원’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게 되며, 그 결과 정책 언어가 재생 100퍼센트보다 “화석연료 없는 전력”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6. 결론: ‘옆나라 원전’은 면죄부가 아니라 비용을 옮기는 장치다

독일·이탈리아·스웨덴을 한 문장으로 묶으면 이렇게 정리된다. 국경 연계망이 있는 나라조차도 탈원전은 수급의 문제를 ‘가격과 전략의 문제’로 바꿔 놓았고, 그 비용이 누적되면 결국 정책은 되돌아가거나 재설계 압력을 받는다.

한국은 여기에 고립계통이라는 조건이 더해져, 동일한 선택이 더 빠르게 “대체전원 고정(LNG)과 요금·재무 충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한국의 탈원전 논쟁은 단지 원전의 찬반이 아니라, 계통·연료·요금제도·산업정책을 한 묶음으로 설계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참고·출처

독일 관련 발언과 맥락은 2026년 1월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원전 퇴출은 전략적 실수” 취지 발언을 전한 Anadolu Agency 보도 내용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이탈리아의 원전 폐쇄 경위와 2011년 재도입 좌절, 원전 수입전력 비중의 설명은 World Nuclear Association의 이탈리아 국가 프로필을 1차 정리 자료로 사용했다. 1987년 및 2011년 국민투표의 구체 항목과 결과 수치는 이탈리아 내무부 통계를 인용한 공개 정리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스웨덴의 정책 전환 시점과 2010년 대체 건설 허용의 제도 변화는 World Nuclear Association의 스웨덴 국가 프로필과 NTI 해설 자료, 스웨덴 관련 정부 법안 설명을 종합했다.

Anadolu Agency, World Nuclear Association, NTI, climate-laws.org(스웨덴 정부 법안 문서), 1987·2011 이탈리아 국민투표 공개 통계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