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거〉, 총구에 비춘 한국 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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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손에 총이 쥐어진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방아쇠를 당기겠는가?

혹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는 총기 불모지 한국에 불법 총기가 유입된다는 섬뜩한 가정 위에서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표면은 액션 스릴러지만, 실제로는 총이 아니라 사람을 말하는 드라마다. 곧 무기보다 관계, 제도, 그리고 양심의 문제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글은 그 주제 의식을 중심축으로 드라마를 보려 한다.



[이도]
분쟁지역을 떠돌던 전직 용병. 현직 순경. 지금은 테이저건을 선호할 정도로 폭력의 최소화를 신념으로 삼는다. 그가 다시 총을 들 수밖에 없게 되는 과정은 개인 트라우마를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는 역설을 드러낸다.  아버지,어머니,동생을 살해한 강도를  총으로 죽일 기회를 스스로 멈춘 소년 이도는 이후 전쟁터를 떠돌며 스스로를 더욱 성장 시킨다.


[문백]
피해의 언어로 가해를 설계하는 전략가. 약자에게 총을 쥐여주는 방식으로 사회적 분열을 확장한다. 캐릭터의 이중성은 드라마의 도덕적 심문을 촉진한다. 아기 시절
인신매매 조직에 유인된 그는 10살도 안되어 한쪽 눈을
적출 당하고 미국으로 팔려나가 전신의 장기를 적출되려는 순간 난입한 FBI에게 구출된후  총기불법매매조직에 들어간다.


이야기의 장치와 인물의 서사

작품은 두 축으로 긴장을 설계한다. 전직 용병 출신 순경 이도(김남길)와 정체를 숨긴 문백(김영광)의 공조가 한 축,

그리고 충동의 경계에 선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한 축이다.

이들은 고시 낙오자, 전자발찌 전과자, 사적 복수를 꿈꾸는 부모, 학교 폭력 피해 소년 등 분노를 감정은행에 저축해온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한국 사회가 전제해온 안전 신화를 비틀며, 총이 주어졌을 때 인간의 도덕이 어디까지 흔들리는지 보여준다.

총은 특정 범죄자만의 소유물이 아닌, 일상으로 흘러들어온 위협인 것이다.

특히 이 드라마가 가장 날카로워지는 곳은 '소년'의 서사다.
학교 폭력과 무력감의 시간 속에서 어떤 소년은 총을 들고, 다른 소년은 끝내 총을 내려놓는다.

동일한 억압과 분노가 다른 선택으로 귀결될 때, 작품은 개인의 결단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소환한다.

피해가 가해로 전이되는 순간을 막는 장면들은, 정의가 복수의 즉각적 실행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중지와 보류의 기술임을 보여준다.




가해와 피해, 그리고 멈춤의 미학

〈트리거>의 가해자들은  죄책감이 없다. 그 무감각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구조적 학습의 결과이자 손쉬운 생존이다.

반대로 피해자들은 정의와 도덕을 지키려는 순간 더 큰 고통을 감내한다.

이 대비는 한국 사회가 처방 대신 인내를 요구해 온 오랜 관성을 비판한다.

법과 제도가 무력할 때, 정의는 누구의 몸과 시간 위에서 유지되는가.

이것이 작품이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클라이맥스의 윤리는 '응징'보다 '멈춤'에 가깝다.

이도는 폭력을 최소한의 방어 수단으로만 쓰는 인물로 그려지며, 최종 선택의 순간에도 공감과 보전을 우선한다.

멈춤은 비겁함이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강조된다.

이 드라마는 총과 액션을 볼거리로 소비하기보다 철학적 자제와 억제를 미덕으로 삼는 것이다.




문백, 정의를 유통하는 선동가

문백은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실행하는 모순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그는 총이 세상을 평등하게 만든다는 위험한 명제를 퍼뜨리며 약자들의 분노를 동원한다.

그의 서사는 관객의 미학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무책임하게 미화되지 않는다.

이 인물은 낭만적 악당이 아니라, '정의의 말투를 빌려 폭력을 유통하는' 선동가의 얼굴이다.


결론: 멈춤의 기술이 만든 정의

〈트리거>는 묻는다. 정의는 방아쇠를 당기는 즉시 도착하는가, 아니면 당기지 않기로 한 끝없는 연습에서 태어나는가. 이 작품은 후자를 택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영웅들은 단지 잘 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과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총'이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진짜 대상은, 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우리 안의 폭력성과 사회의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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