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경기전 이야기: 왕의 얼굴, 나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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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사적 339호로, 1410년 태종 때 창건되어 1442년에 ‘경기전’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가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역사와, 국보 제317호 태조 어진을 둘러싼 의례·보존의 이야기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공간이다.



촬영: 형성하다 ❘ 블로그: 장르없다




전주 한옥마을 남쪽 담장을 따라 걷다 보면, 고목과 대숲 사이로 붉은 홍살문이 시야를 가른다. 그 문을 지나 정전에 이르면 조선의 시작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선다. 1410년 태종 때 전주·경주·평양에 각각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전각이 세워졌고, 전주는 처음 ‘어용전’이라 불리다가 1442년 세종 때 지금의 ‘경기전’으로 이름이 정해졌다. 왕덕을 기리고 나라의 근본을 닦는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경기전의 심장은 정전이다. 중앙의 제향 공간과 양측 익랑이 이루는 단정한 구성이 의례 건축의 긴장을 유지한다.



 



현재 정전에는 1872년에 다시 그려 봉안한 태조 어진이 자리했는데, 이 계열의 어진 가운데 현존 진본은 전주에 보관된 태조 어진으로 국보 제317호다. 왕의 초상, 곧 어진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가의 핵심 상징물이었고, 제작과 봉안 과정이 의궤에 기록될 만큼 엄중했다.



촬영: 형성하다 ❘ 블로그: 장르없다




경기전 동쪽에는 전주사고가 복원되어 있다.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본이 잿더미가 되었을 때, 전주의 실록이 살아남아 조선왕조실록 전체 전승의 구심이 되었다. 전주가 ‘나라의 기억’을 지켜낸 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실록의 맥은 이곳에서 이어졌다.




경기전 경내의 어진박물관은 2010년 문을 열어 태조 어진과 어진 문화의 전모를 상설 전시로 보여준다. 전시실에서는 왕의 복식과 의장, 어진 봉안 의식과 재현 행사까지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일부 기간에는 태조 어진 진본을 제한 공개하며, 최근에는 어진 봉안 행렬을 재현하는 시민 참여 의식도 치러졌다.

이 공간의 의미는 두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개창 군주의 얼굴을 통해 조선의 정통성을 눈앞에 세우는 상징성이다. 다른 하나는 전주사고의 기억처럼, 기록과 보존을 통해 국가의 서사를 시민과 함께 지켜낸 실천성이다. 전주 경기전의 담장 안에서 우리는 초상 한 폭과 문서 한 벌이 어떻게 한 왕조의 정신을 오래 지탱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촬영: 형성하다 ❘ 블로그: 장르없다


정전의 박공지붕과 이중 처마, 전면의 개방 마루는 사진 구도에 깊이를 준다. 어진박물관은 촬영 제한 구역이 있으니 안내 표지를 꼭 확인하자. 인근의 풍패지관은 조선 시대 전주 객사로, 경기전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보여주는 별도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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