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작 '중경삼림'속 임청하
임청하의 중경삼림 1부는 금발 가발 여인의 피로한 고독이 홍콩의 속도와 맞물리며, 사랑이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잔상을 가장 깊게 새긴다.
왕가위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은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엮은 도시 멜로다. 1부에서 임청하는 익명의 마약밀매상으로 잠깐 출연하지만, 그 짧음이 오히려 은퇴작의 쓸쓸한 마침표가 된다. 이 리뷰는 1부의 서사와 스타일, 그리고 ‘마지막 임청하’가 남긴 감정의 무게를 중심으로 작품을 다시 본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4
영화가 태어난 홍콩의 공기
〈중경삼림〉은 1990년대 홍콩의 속도와 불안을 그대로 품은 영화다. 도시가 너무 빨리 변해 감정도 유통기한을 가진다는 감각이 전편을 지배한다. 왕가위는 거대한 사건 대신 일상의 파편과 우연을 붙잡아 사랑의 형태를 설명한다. 화면은 흔들리고 끊기며, 사운드는 과도하게 반복된다. 이 리듬이 ‘스치는 만남’이라는 주제를 형식으로 이미 말해 버린다.
도시의 속도와 불안이 사랑의 유통기한으로 번역된 영화다.
1부의 서사, 헤어진 마음의 계산법
1부의 주인공 경찰 223은 이별을 날짜로 버틴다. 전 연인 ‘메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1994-05-01에 마음을 끝내겠다고 정하고, 그 날짜가 찍힌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은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품의 기한처럼 손에 쥐고 버티는 셈이다. 이런 인물이 술집에서 만난 금발 가발의 여자와 하룻밤을 공유한다. 둘의 관계는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고독의 잠깐 겹침으로 끝난다.
이 만남이 특별한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지금’에 온전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223은 과거의 메이에 붙들려 있고, 여인은 실패한 밀수 작전 이후 쫓기는 현재를 견디는 중이다. 서로의 결핍이 잠깐 같은 방의 공기를 채우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각자의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왕가위는 이 짧은 밤이 사랑인지 위로인지조차 규정하지 않는다. 정의되지 않기에 더 도시적이고, 더 현실적이다.
이별을 날짜로 버티는 남자와 도망치는 여자가 스쳐 지나간다.
금발 가발 여인의 이미지와 임청하의 연기
임청하가 연기한 여인은 이름이 없다. 과거도 설명되지 않고, 목표도 끝까지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트렌치코트, 선글라스, 금발 가발, 땀에 젖은 얼굴이 인물을 대신한다. 임청하는 ‘강한 악당’의 기세보다 ‘소진된 생존자’의 피로를 먼저 전면에 내세운다. 걷는 속도는 빠르지만 체온은 낮고, 말은 적지만 표정은 무겁다. 이 조합이 여인을 매혹보다 쓸쓸함으로 읽히게 만든다.
술집에서 223을 바라보는 눈에는 유혹보다 체념이 깔려 있다. 상대를 끌어들이려는 시선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쉬고 싶은 사람의 눈이다. 호텔 방에서 그녀가 잠든 장면은 로맨틱하지 않다. 오히려 잠이라는 행위가 유일한 피난처처럼 보인다. 223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옆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그 밤의 윤리를 조용히 증명한다. 임청하는 몸을 낮추고 말을 줄여, 이 파트의 정서를 ‘아름다운 피로’로 고정한다.
임청하는 위험을 힘이 아니라 피로와 체념의 얼굴로 바꾼다.
형식이 만든 감정, 스텝 프린팅과 도시의 밤
1부의 영상은 ‘쫓기고 스치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낮은 셔터와 스텝 프린팅이 인물의 움직임을 끊어 보이게 하고, 홍콩의 밤거리를 환영처럼 흔들어 놓는다. 여인이 골목을 지나갈 때 배경이 흐려지는 방식은, 그녀가 도시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반대로 223의 달리기는 과거를 붙잡으려는 무의미한 분투처럼 찍힌다. 스타일이 곧 감정의 해석이 되는 순간이다.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도시 소음, 반복되는 팝 음악, 중얼거리는 내레이션이 사랑의 단절감을 더 깊게 만든다. 여인은 음악의 중심에 서기보다 소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남는다. 그래서 그녀가 화면에서 사라져도 소음만 남아 잔향이 길어진다. 왕가위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속도 속에서 사랑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영상의 끊김과 소음의 반복이 사랑의 단절감을 형식으로 말한다.
퇴장 장면, 은퇴작의 쓸쓸한 마침표
새벽, 여인은 홀로 돌아가 보스를 쏘고 금발 가발을 벗어 던진 뒤 사라진다. 이 장면은 승리나 복수의 쾌감으로 연출되지 않는다. 가발을 벗는 행위는 변장의 해제이자, 역할의 종결에 가깝다. 임청하는 감정의 폭발 없이 그 퇴장을 끝낸다. 그래서 여인은 영웅처럼 떠나지 않고, 도시의 공기처럼 흩어진다. 하룻밤의 겹침도, 마지막 걸음도 모두 ‘잠깐의 체류’였다는 사실이 여기서 확정된다.
이 퇴장이 특별한 이유는 영화 안팎의 의미가 겹치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에서 여인은 이야기를 떠나고, 스크린 밖에서 임청하는 배우로서의 시간을 떠난다. 마지막 얼굴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말 없는 소진’의 표정이라는 점이 오히려 임청하답다. 한 시대의 스타가 익명의 여인으로 사라지는 끝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품은 불안과도 닮아 있다. 그래서 은퇴작이라는 말이 단순한 사실을 넘어 정서로 느껴진다.
가발을 버리고 사라지는 순간, 영화와 배우의 시간이 함께 닫힌다.
임청하 필모그래피에서의 의미
임청하는 멜로와 무협,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늘 ‘초월적 이미지’를 만들어 온 배우다. 그런데 〈중경삼림〉의 그녀는 초월이 아니라 탈진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그럼에도 화면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한다. 말이 적을수록 존재가 커지는 임청하 특유의 밀도가 마지막까지 작동하기 때문이다. 동방불패가 권력의 고독이었다면, 금발 가발의 여인은 도시적 고독이다. 서로 다른 고독이 같은 배우의 얼굴에서 이어진다.
그래서 1부는 단편처럼 짧아도 영화 전체의 첫 인상을 지배한다. 관객은 223의 사랑보다, 여인이 남긴 피로한 잔상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사랑은 잠깐이었고, 사람은 스쳐 갔지만, 그 스침의 온도가 도시의 기억으로 남는다. 임청하의 마지막이 오래 보존되는 이유가 바로 그 온도에 있다.
임청하의 마지막은 초월이 아닌 도시적 고독의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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