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화 속 한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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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화 속 한국은 1.5선 문화 강국의 좌표에 서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대중문화는 가파르게 상승해, 이제 음악·드라마·영화·문학 전 영역에서 미국 바로 아래 줄에 이름을 올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일본·영국·프랑스와 콜롬비아·브라질·멕시코, 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이미 긴 축적을 가진 나라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신흥 강국에 가깝다. 자학과 설레발 사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륙이 아니라 개별 국가 단위로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릴 필요가 있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9

K-문화라는 간판과 30년의 상승 곡선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음악은 일본과 대만, 홍콩, 중국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이때 붙은 이름이 한류였다. 당시에는 비디오와 CD, 위성 채널이 주요 매체였고, 한국 대중문화는 동아시아 권역의 신흥 콘텐츠 공급처 정도 위치에 머물렀다. 2000년대 후반부터 유튜브와 SNS, 201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K-팝과 K-드라마라는 표현이 자리 잡았고, 두 영역을 묶어 부르는 K-문화라는 간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 이름 아래에서 한국은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문화 시장의 상위 리그로 진입했다.

K-문화 간판의 명암은 동시에 뚜렷하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아이돌과 드라마, 영화와 웹툰, 게임과 문학까지가 하나의 브랜드 아래 묶이면서, 각 장르가 지닌 다른 속도와 역사, 비교 대상이 흐려졌다. 미국과 일본, 영국처럼 일찍부터 세계 시장에 진출한 나라들, 콜롬비아와 브라질·멕시코처럼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음악을 키워 온 나라들,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아프리카 대중음악을 이끌어 온 나라들의 긴 축적이 동시에 보이지 않게 된다. K-문화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국이 갑자기 세계 중심에 섰다”는 인상이 생기지만, 실제 좌표는 조금 더 복잡한 여러 층으로 나뉜다.

2025년 넷플릭스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는 이 간판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가상의 걸그룹 HUNTR/X가 악마를 사냥하는 서사는, 서울의 콘서트 무대와 팬덤 문화를 이야기의 엔진으로 삼는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영화 시청 순위 최상단에 오르고, 싱어롱 극장판이 북미 박스오피스 주말 1위를 기록했다. OST 수록곡 Golden과 Free는 미국 빌보드와 영국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실물 음악 시장에서도 기록을 세웠다. 한국이 만든 K-팝을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해외 스튜디오가 K-팝의 문법과 팬덤 구조를 빌려 세계 히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단계로 옮겨간 셈이다.

동시에, 물리적 인프라의 빈곳도 드러난다. K-팝 시상식 상당수는 서울이 아닌 일본과 대만, 홍콩, 방콕 같은 해외 아레나에서 열린다. MAMA Awards는 2010년대 이후 마카오와 싱가포르, 홍콩과 일본 돔 구장을 오가며 개최됐다. 골든디스크어워즈는 2025년 후쿠오카 미즈호 페이페이돔에서 열렸고, 2026년 40회 행사는 타이베이 돔 개최를 예고했다.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는 2024년 방콕 임팩트 챌린저 홀에서 진행됐다. K-팝의 생산과 기획은 서울이 주도하지만, 도쿄돔급 장기 공연을 소화할 아레나 인프라는 일본·대만·홍콩·방콕이 더 넓게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 모순적인 풍경이 K-문화의 위상과 현실 기반 사이 간격을 상징한다.

K-문화 간판은 한국의 급격한 상승을 요약하지만, 축적과 인프라의 불균형까지 함께 드러내는 이름이다.

음악 시장에서 본 한국의 좌표

세계 레코드 산업 통계를 보면,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인 1위다. 그 뒤를 일본과 영국, 독일과 프랑스, 중국이 잇고, 바로 아래 계단에 한국이 자리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기준으로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세계 음악 시장 상위 10개국 안에 꾸준히 포함되며, 매출 규모로는 7위권에 올라 있다. 인구와 영토, 언어권 규모를 고려하면 캐나다·브라질·멕시코와 비슷한 중대형 음악 시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한국산 아티스트가 글로벌 차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규모 이상으로 크다.

BTS와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 뉴진스 등은 여러 해 동안 IFPI 글로벌 아티스트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다. 앨범 판매와 스트리밍, 투어 매출, 팬덤 활동이 결합된 구조 덕분에, 한국은 매출 대비 수출 효율이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미국이 팝 문법과 플랫폼을 장악한 중심국이라면, 일본과 영국은 록과 아이돌, 밴드 문화를 바탕으로 50년 이상 상위 리그를 유지해 온 장기 축적형 국가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 대륙의 핵심 시장이고, 중국은 거대 내수와 자체 플랫폼을 바탕으로 별도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도 세부 국가를 나눠 보면 구조가 달라진다. 브라질과 멕시코는 삼바와 MPB, 세르타네주, 레게톤·지역 포크 음악을 합쳐 남미와 미국 히스패닉 시장을 잇는 음악 허브로 기능한다. 콜롬비아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아티스트들이 만든 리듬은 이미 글로벌 팝의 일부가 되었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로비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마피아노로 세계 클럽 사운드와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를 재구성하는 중이다. 이들 국가는 전체 매출 규모 면에서는 한국보다 작을 수 있지만, 특정 장르와 리듬에서 세계적인 선도력을 갖는다.

이 지형 속에서 한국의 자리는 비교적 선명하다. 상위 10개 음악 시장 중 하나로서, 미국 중심 팝 구조와 유튜브·스트리밍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아이돌 시스템과 글로벌 팬덤 조직 모델을 완성한 나라다. 한국산 K-팝은 이미 미국과 일본, 영국, 브라질, 멕시코, 나이지리아에서 생성된 기존 장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옵션이 되었다. “세계 음악 1등”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과장이고, “아직 변방”이라는 자기평가는 현재 수치와 영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현실에 가까운 표현은 “미국 바로 아래 줄, 상위 음악국 클럽의 막내급” 정도다.

음악에서 한국은 상위 10개국 안에서 수출 효율이 과대표된, 미국 한 칸 아래의 중대형 시장이다.

드라마와 영화, OTT 시대의 1.5선 국가

OTT 플랫폼을 기준으로 드라마 지도를 그려 보면, 중심에는 여전히 미국이 자리한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HBO 시리즈 다수가 미국 제작이며, 예산과 편수, IP 파워를 합치면 단일 국가로는 비교 대상이 없다. 그 옆줄에서 비영어권 시리즈의 중심 역할을 하는 나라가 몇 곳 있다. 한국과 스페인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넷플릭스 비영어 시리즈 상위권에 꾸준히 작품을 올렸고, 스페인은 종이의 집과 엘리트들 등으로 유럽과 중남미를 동시에 공략했다.

터키 드라마는 중동과 동유럽, 중앙아시아 방송사 편성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멕시코와 콜롬비아는 전통적인 텔레노벨라와 새 형식의 시리즈를 결합해 라틴아메리카와 미국 히스패닉 시장을 묶는 역할을 한다. 나이지리아의 노લી우드 드라마와 영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리즈는 넷플릭스와 현지 플랫폼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과 디아스포라로 뻗어나가고 있다. 일본과 대만, 태국 드라마도 아시아권과 글로벌 팬덤을 중심으로 고정 시청층을 확보했다. 여러 국가가 각자 다른 권역에서 중심 역할을 나눠 가진다.

극장 영화의 좌표는 또 다르다. 박스오피스 매출 규모만 보면 미국과 중국, 인도가 가장 크고, 그 뒤를 일본과 프랑스, 영국, 독일이 잇는다. 한국은 멕시코와 비슷한 상위 10위권 시장으로, 인구와 영토에 비하면 큰 소비 규모를 유지해 왔다. 2019년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한국 영화는 예술영화 평판에서 프랑스·이탈리아·이란·멕시코와 같은 테이블에 이름을 올렸다. 상업 영화 규모에서는 미국·중국·인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장르와 미학, 사회비판을 결합한 작품이 세계 영화제에서 반복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드라마와 영화에서 한국의 위치는 “미국 다음 줄 1.5선 국가”로 정리할 수 있다. 시리즈 부문에서는 한국과 스페인이 비영어권 투톱에 가깝고, 터키·멕시코·나이지리아·콜롬비아·태국이 각자 권역 중심국으로 이어진다. 극장 영화에서는 프랑스와 일본, 영국, 독일, 멕시코와 더불어 중대형 시장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이 좌표는 대륙이나 문명권으로는 보이지 않고, 개별 국가 단위로 지도를 그릴 때 비로소 드러난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한국은 미국 옆줄에 선 비영어 시리즈 강국이자, 중대형 극장 시장의 한 축이다.

노벨문학상 이후, 문학장에서의 자리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좌표를 크게 바꾸어 놓은 사건이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 등 작품들은 이미 주요 언어권으로 번역돼 왔고, 수상 이후 번역과 연구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수상으로 한국어 문학은 “아직 노벨 수상자가 없는 주변 언어”에서 “적어도 한 번은 세계 문단의 중심 조명을 받은 언어”로 격이 달라졌다. 동시에, 노벨 수상 경험이 곧바로 프랑스·영국·독일처럼 여러 명의 수상자와 긴 비평 전통을 가진 나라들의 위치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 문학장을 나라 단위로 보면 오래된 중심이 먼저 보인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미국은 여러 노벨 수상자와 번역 네트워크, 비평 전통을 갖춘 핵심 블록이다. 이들 나라 작가들은 “세계 문학사 필수 목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콜롬비아와 칠레, 페루와 멕시코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네루다, 바르가스 요사, 옥타비오 파스 등을 통해 20세기 중반부터 이미 세계 문학 흐름을 갈라 놓았다. 아프리카와 아랍권에서는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가 소잉카와 쿠체어, 마흐푸즈 등을 통해 각자의 목소리를 세계에 남겼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 터키가 각각 가와바타·오에, 모옌, 오르한 파묵을 통해 주요 언어권의 자리를 확보했다.

한국은 이 구조의 안쪽으로 이제 막 들어온 상태에 가깝다. 한강이 노벨 수상자로 기록되었고, 황석영과 김영하, 신경숙과 김애란, 편혜영과 정세랑, 김초엽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영어와 유럽어로 꾸준히 번역되고 있다. 해외 출판 목록과 연구 논문에서 한국 문학의 이름은 과거보다 훨씬 자주 등장하지만, 여전히 번역 종수와 판매 규모, 연구 축적 면에서는 프랑스나 콜롬비아, 일본, 나이지리아에 비해 얇다. “노벨 수상국이 되었으니 선진 문학국”이라는 단정은 과도하고, “아직 노벨도 못 받았다”는 오래된 자학은 이미 사실이 아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중심 테이블 안쪽으로 막 들어온 신입 수상국” 정도다. 한국 문학은 이제 세계 문학사와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본과 중국이 겪었던 비슷한 과정이 뒤늦게 시작된 셈이다. 이 구조를 인정할 때, 한국 문학은 더 이상 영원한 후보생도,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중심도 아니다. 이미 자리를 얻었지만 아직 채울 것이 많은 나라의 문학으로 볼 수 있다.

문학에서 한국은 노벨 수상으로 중심 테이블에 들어섰지만, 축적 면에서는 이제 막 시작한 신입에 가깝다.

자학과 설레발 사이, 나라 단위로 다시 그리는 지도

한국에서 K-문화 논의가 나올 때마다, 담론은 자주 두 극단을 오간다. 한쪽에서는 “아직 미국·유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자학이 반복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장악했다”는 설레발이 이어진다. 감정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두 입장은 모두 현재의 수치와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자학은 일본과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와 브라질·멕시코,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미 이뤄 놓은 긴 축적을 지워 버리는 동시에, 한국이 실제로 움직인 상승 폭까지 축소한다. 설레발은 미국과 중국, 인도, 프랑스와 일본이 가진 규모와 제도, 인프라의 차이를 간과한 채 상징적 사건 몇 개를 과도하게 일반화한다.

이 진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대륙과 문명권이라는 거친 구획을 버리고, 개별 국가 단위로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아시아 문화”나 “라틴 음악”, “아프리카 예술”이라는 표현은 매우 다른 언어와 계급, 식민 경험을 가진 수많은 나라를 한 번에 묶어 버린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과 독일, 일본과 중국, 콜롬비아와 브라질·멕시코,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와 터키처럼 국가 이름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한국의 위치도 함께 선명해진다. 음악에서는 상위 10개국 중 하나이자 수출 효율이 특히 높은 시장,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미국 옆줄의 1.5선 국가, 문학에서는 중심 테이블에 이제 막 이름을 올린 신입 수상국이라는 식이다.

이 좌표를 인정하는 태도는 자학과 설레발을 모두 줄인다. 한국은 더 이상 영원한 수험생도, 세계를 전부 지배하는 절대 강자도 아니다. 여러 나라와 함께 상위 리그를 구성하는 하나의 플레이어에 가깝다. 자학은 여전히 부족한 구조와 인프라, 특히 공연장과 제작 시스템, 번역과 비평 생태계를 고칠 때 쓸모가 있다. 설레발은 이미 이룬 성취의 범위를 또렷하게 요약하고, 다른 나라들이 먼저 쌓아 온 층위를 인정할 때 제한된 범위에서 의미가 생긴다. 대륙이 아니라 나라, 추상적인 “서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도시와 장르 단위로 세계 문화를 바라볼 때, K-문화 속 한국의 현재 위치도 한결 현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K-문화 속 한국의 좌표는 자학과 설레발 사이가 아니라, 여러 나라와 어깨를 맞댄 1.5선 문화 강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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