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아귀
극한의 고립이 낳은 생존 본능을 1억 년의 진화 서사로 풀어냈다.
심해라는 절대적 어둠 속에서 만남을 영원으로 바꾼 생물학적 필연을 다룬다.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해 진화의 비장미를 조명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5-12-13
1억 년 전 백악기, 아직 우리는 둘이었다
백악기 후기 100,000,000년 전, 나는 아직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 또한 기다리는 우주가 아니었고, 우리는 빛이 닿는 바다의 중층을 자유롭게 유영했다. 각자의 턱으로 먹이를 씹고 지느러미로 해류를 가르던 우리에게 심해는 영원한 집이 아니었다. 그저 때때로 스쳐 지나는 어둠이었고,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빛으로 돌아오는 길목이었다.
만남은 흔했기에 절박하지 않았고, 교미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 운명은 아니었다. 번식이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고, 각자의 바다로 미련 없이 흩어졌다. 그 리듬이 보통의 삶이었고, 그때의 우리는 수많은 포식자 중 하나로 충분했다. 바다는 넓었지만, 넓음이 절망이 되기 전의 시대였다.
평범했던 우리는 수많은 포식자 중 하나였다.
6,600만 년 전 대멸종, 어둠으로의 망명
K–Pg 경계 66,000,000년 전, 하늘이 불타오르고 바다가 뒤집힌 뒤 바다는 다시 채워졌지만 규칙은 완전히 바뀌었다. 표층은 불안정해졌고 먹이는 줄어들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더 깊은 곳으로 밀려났다. 빛이 사라진 공간과 먹이가 눈처럼 드물게 내려오는 심연으로의 이주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였다. 살아남으려면 삶의 방식 자체를 갈아엎어야 했다.
우리가 살던 빛의 세계는 더 이상 안전한 무대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시간은 태양이 아니라, 짓누르는 압력과 짙은 어둠에 맞춰 흐르기 시작했다. 이동은 더 조심스러워졌고, 사냥은 더 드물어졌으며, 만남은 더 비싸졌다. 심해의 침묵은 곧 생존의 언어가 되었다.
빛을 버리고 심연을 택한 순간, 운명은 갈라졌다.
5,600만 년 전 PETM, 운명의 분화
팔레오세–에오세 최대 온난화기 56,000,000년 전, 바다는 급격히 뜨거워지고 해양 순환이 뒤엉켰다. 산소와 영양분의 지도가 다시 그려지면서 심해는 더욱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광활한 어둠 속에서 만남은 통계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같은 종 안에서 서로 다른 전략을 택해야 했다.
암컷의 기록, 미끼의 탄생
나는 기다림을 택했다. 에너지를 보존하고 한 번의 사냥으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몸을 키웠다. 머리 위에 가느다란 돌기가 자라났고, 그 끝에 살점 같은 혹이 달렸다. 처음엔 우연히 흔들린 돌기에 먹잇감이 반응했을 뿐이지만, 반복된 우연은 곧 기관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사냥하러 다니지 않는다, 사냥감이 나에게로 온다.
실패가 곧 소멸인 심해에서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필연이었다. 움직일수록 비용이 늘고, 비용이 늘수록 굶주림이 가까워진다. 기다림은 나약함이 아니라 계산이었고, 계산은 생존으로 환전됐다. 암컷의 몸은 그렇게 덫이자 무대가 되었다.
수컷의 기록, 목적의 단순화
나는 탐색을 택했다. 넓은 바다에서 그녀를 찾기 위해 나를 유지하는 비용을 과감히 버렸다. 위장은 줄어들었고 턱은 약해졌지만, 나는 작고 빨라졌으며 냄새와 기척에 예민해졌다. 내 삶은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되었다. 찾지 못하면 끝이었다.
나는 먹는 입이 아니라, 어둠을 뚫고 찾는 감각 그 자체가 되었다. 사냥은 목표가 아니라 부차적 연명이 되었고, 이동은 습관이 아니라 임무가 되었다. 심해에서 확률은 잔인하게 작다. 그래서 수컷은 스스로를 줄여 확률을 견디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암컷은 덫이 되었고, 수컷은 추적자가 되었다.
4,500만 년 전 에오세, 빌려온 빛
에오세 중기 45,000,000년 전, 미끼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바다에 존재하던 발광세균을 포획해 정착시킨 결과였다. 세균은 안전한 서식처를 얻고 우리는 어둠을 밝힐 빛을 얻는 계약을 맺었다. 어떤 세대는 빛났고 어떤 세대는 실패했지만, 빛은 분명한 생존의 이득이었다.
그 빛은 먹이를 부르는 사냥의 도구였다. 동시에 어둠 속을 헤매는 나에게 보내는 유일한 만남의 좌표이기도 했다. 심해에서 신호는 목적을 가리지 않는다. 먹이를 부르는 신호가, 결국 짝을 부르는 신호가 된다. 빛은 그렇게 생존과 번식의 양쪽을 동시에 강화했다.
빛은 사냥의 도구이자 만남의 신호였다.
2,500만 년 전, 면역의 포기
지구가 냉각되며 심해는 차갑고 안정된 고립의 공간으로 굳어졌다. 만남의 확률이 0에 수렴하는 이곳에서, 나는 기적처럼 만난 그녀를 물었고 놓지 않았다. 정상적인 생물이라면 그녀의 면역계가 나를 외부의 적으로 인식해 제거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부의 회로를 끊어버렸다.
적응 면역의 핵심 유전자는 사라지거나 약화되었고, 그 결과 조직 융합이 가능해졌다. 살점은 이어졌고 혈관은 하나로 연결되었다. 타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능력조차, 생존과 번식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는 포기해야 할 비용이었다.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는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다.
타자를 적으로 인식하는 능력마저 포기한 선택이었다.
인류세, 사랑이 아닌 생존
수심 약 2,000m의 심해, 이제 내게 눈은 필요 없다. 지느러미도 소화기관도, 독립적인 심장 박동도 점점 무의미해진다. 나는 오직 정자를 만드는 기관으로서 그녀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이한 사랑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이것은 로맨스가 아니다.
이것은 1억 년 동안 반복된 멸종 위기 속에서 우리가 찾아낸 가장 효율적이고 처절한 해답이다. 우리는 만나지 못하면 끝나는 세계에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순간 끝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나를 지우고 종을 남기는 것, 그 단순한 규칙이 심해의 시간을 관통한다.
나를 지우고 종을 남기는 것, 그것이 심해의 규칙이다.
'과학과 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국발 미세먼지는 줄어들었나? (0) | 2026.01.09 |
|---|---|
| 쿠루에서 쏘아 올릴 아리랑 7호, 한국 초고해상도 위성의 능력과 한계 (0) | 2025.12.01 |
| 챗GPT vs 제미나이, 경쟁이 아니라 분업이다 (0) | 2025.12.01 |
| 누리호 4호 발사와 잃어버릴 뻔한 궤도, 대한민국의 116도 이야기 (4) | 2025.11.27 |
| X 접속 안 된 진짜 이유: Cloudflare 5xx 전세계 서버 장애 정리 (0) | 202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