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월병: 역사적 기록과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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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월병은 중국의 중추절 상징 음식으로, 조선의 왕실 병과·식재·기록 맥락을 종합하면 세종대왕이 월병을 즐겨 먹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타당하다.

1. 서론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에는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대군이 서양 사제 일행에게 중국 전통 음식인 월병피단을 대접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이 장면은 당시 동북공정 이슈와 맞물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되는 사태로 번졌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큰 만큼, 잘못된 역사 묘사는 사회적 논란과 함께 “세종이 정말 월병을 즐겨 먹었는가?”라는 질문을 낳았다.

2. 월병의 기원과 중국 내 위상

월병은 남송 시기 이후 전승된 과자로 알려지며, 음력 8월 15일 중추절둥근 달을 상징하여 만든다. 밤·수박·배·감 등 둥근 과일과 함께 달에게 바치고 이웃과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전설적으로 당 고조 이연과 장수 이정의 공을 기념하는 이야기나, 청대 궁중의 ‘월병산’(제사용 대형 월병 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질 만큼, 월병은 특정 역사·의례·명절과 긴밀히 맞물린 중국 고유의 상징 음식이다.

이러한 배경은 월병이 조선의 자생적 전통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편입되기 어려웠음을 시사한다. 곧, 세종대왕이 월병을 상시적으로 즐겼을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 문화사적 근거를 제공한다.

3. 조선시대 식문화와 밀가루의 위상

조선 왕실은 유교적 의례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을 중시했다. 임금의 아침·저녁 수라상은 통상 12첩 반상이 기본이었고, 보양과 절제의 관념이 음식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왕실·사대부가에선 병과(餅果)가 발달했다. 예) 유밀과(약과·매작과·만두과 등), 강정·산자, 다식, 정과, 엿강정 등. 특히 밀가루와 설탕은 매우 귀한 재료였기에 일상적 소비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밀가루·설탕을 넉넉히 쓰는 월병의 상시적 생산·소비는 구조적으로 제약을 받는다. 이는 세종 시기의 왕실에서도 월병이 ‘즐겨 먹는’ 상비 과자였을 가능성을 낮춘다.

4. 세종대왕의 식성 및 건강

殿下平昔非肉進膳 — “전하께서는 평소에 고기가 아니면 수라를 들지 못하셨다.” (『세종실록』)

세종은 육류 선호가 두드러졌고, 말년에는 비만·당증(당뇨 추정)·풍질 등 성인병으로 고통받았다. 어의들은 상태에 맞춘 식치(食治)를 시행해 약떡·약밥·전약 등의 보양식을 권했다. 이런 건강·치료 맥락을 고려하면 당·지방이 높은 외래 과자류(월병 등)를 상습적으로 즐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5. 조선과 명나라의 음식 교류 양상

조선은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 국가 의례로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상차림에는 우협상·주상·좌협상·면협상·대선·소선·미수 등이 있었고, 과일을 제외한 여러 과자류는 상당수가 유밀과 계열이었다. 육류·해산물·약재(산삼 등)와 더불어 만두(돼지고기 소) 같은 음식도 안주로 자주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상세한 접대 기록들 속에 월병 언급이 확인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월병이 당시 조선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져 소비된 음식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설령 일회성 반입·접대가 있었다 해도, 그것이 임금의 기호식으로 정착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중화요리의 본격 유입·현지화는 대체로 개항기(19세기 말~20세기 초) 화교 네트워크와 맞물린다. 세종대왕(15세기)과는 수백 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6. 결론

종합하면 다음의 이유로 “세종대왕이 월병을 즐겨 먹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1. 문화적 맥락: 월병은 중추절 중심의 중국 고유 상징 음식으로, 조선 전통 체계에 자연 편입되기 어려움.
  2. 재료·제도 제약: 조선 왕실에서도 밀가루·설탕 상시 대량 사용이 어려웠고, 병과는 자국 전통(유밀과 등) 중심으로 발달.
  3. 사료·건강 맥락: 세종의 육류 편식 경향만성질환 기록, 식치 관점상 당·지방 많은 외래 과자를 기호식으로 보기 어려움.
  4. 대외 교류 기록: 명 사신 접대 상차림에 다양한 유밀과·만두 등은 보이나, 월병 언급은 확인되기 어려움.

대중문화는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지만, 고증 없는 상상력은 왜곡과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역사 인물·사건을 다룰 때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기본 맥락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참고·사료

  •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 세종의 식성·건강 관련 기사(“殿下平昔非肉進膳” 등)
  • 동국세시기 — 중추절 풍속과 조선 세시
  • 음식디미방 — 밀가루·병과 사용 맥락
  • 시의전서, 증보산림경제 — 조과(병과)·당류 기록
  • 국립고궁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 왕실 수라·병과 전시/해설
  • 중국 중추절·월병 관련 1차/학술 해설(궁정 제례·월병의 의례성)

근거 요약 — (1) 월병의 의례 중심 중국 고유성, (2) 조선의 병과 체계/재료 제약(밀가루‧당류 희소), (3) 세종의 식성·건강·식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