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 한국 현대사의 권력 재편과 민주주의의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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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밤의 ‘설계도’를 따라가며, 하나회·보안사·총리공관·연희동 만찬·사후 재가·연합사 OPCON 파열음까지, 법정 판결과 2025년의 국가배상 확정까지 한 줄로 꿰어 읽는다.

읽기 경로(약 14분): 서론 → 보안사 시나리오 → 연희동 만찬 → 총리공관 장악 → OPCON의 붕괴선 → 새벽 5시 10분 → 법정의 판결과 2025년 후일담 → 맺음말.
관련 글: 1961년 백악관 ‘한국 태스크포스’ 보고서로 본 한미 재편(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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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그 밤, 총성이 설계도를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

12월의 찬 공기가 군화 밑에서 갈렸다. 총성은 우발이 아니었다. 박정희의 빈자리를 노리고, ‘젊은 장교들’이 그려둔 동선 위로 병력이 흘렀다. 암호와 호출부호, 사전 배치, 그리고 전화선이 끊기는 순서까지, 그 밤은 계획의 과거형이었다. 다음 날 외신 전문엔 “이름만 안 붙였을 뿐 쿠데타”라는 문장이 남았다(1979.12.13, 미 대사 글라이스틴 전문). 이 글은 그 설계도를 따라 걷는다.
한 줄 회수: 12월 12일은 우발이 아니라, 미리 그려진 밤이었다. (국가안보 아카이브)

보안사의 시나리오 | 합수본이라는 무대, 전두환의 연출

10·26 직후 보안사는 합동수사본부라는 무대를 만들었다. 정보·검찰·경찰의 스위치를 한 손에 쥔 자리였다. 그 무대는 ‘수사’보다 ‘동원’을 위해 설계되었다. 보고서는 편집되고, ‘정치 불개입’ 대신 ‘정치 조정’이 일상이 됐다. 한국 신군부의 장악술을 복기한 기록들은 합수본이 애초부터 권력찬탈의 작전실이었음을 말한다. 다음 페이지, 병력은 이제 '수사기관'의 명령으로 움직인다.
한 줄 회수: 합수본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권력 이동의 컨트롤타워였다. (경향신문)

연희동 만찬 | 충성파의 팔을 묶는 가장 한국적인 방법

정병주·장태완·김진기. 반란을 막을 수 있는 축들이 연희동 식탁에 묶였다. 초대장엔 의전의 말들이 적혔다. 한국적 공작의 정수는 총보다 먼저 식탁을 깔아놓는 데 있었다. 장태완의 육필 수기는 그 밤의 ‘빈자리’를 기록한다. 그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동안, 시내는 반란군의 트럭 소리로 가득 찼다. 수도를 지킬 손을 먼저 식탁에 앉힌 뒤, 도시는 순서대로 점령되었다.
한 줄 회수: 총부리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자리’였다. (위키백과)

총리공관 |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가장 빠른 길

대통령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그를 외롭게 만들면 된다. 보안사와 경호 라인은 총리공관을 선점했고, 경호부대(55·101)는 반란 시나리오의 ‘중립’을 깨는 방식으로 배치됐다. 총리공관에서 울린 총성은 신군부가 이미 ‘정치의 문’을 돌파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튿날 새벽, 청와대는 더 이상 정보의 허브가 아니었다.
한 줄 회수: 공관이 장악되자, 국가는 청와대 바깥에서 굴렀다. (위키백과)

OPCON의 붕괴선 | 연합사의 보이지 않는 금을 넘다

그 밤의 민낯은 여기서 드러난다. 전방의 9사단 같은 부대가 한미연합사 작전통제(OPCON) 체계를 무시하고 수도로 이동했다. 전화 한 통, 통보 한 줄 없이 방어망의 기둥을 뽑아 서울로 돌린 것이다. 미 대사는 “사실상의 쿠데타”라 전했고, 연합사령관은 ‘신뢰 기반 프로그램’을 재고하라고 워싱턴에 보냈다. 국방은 선으로 지킨다. 그 선을 끊는 순간, 국가는 바람 앞의 초가 된다.
한 줄 회수: 야전의 선을 뽑아 수도로 돌린 순간, 국방의 계약은 깨어졌다. (국가안보 아카이브)

새벽 5시 10분 | 펜 끝의 사후 재가, 책임의 바깥

최규하는 재가를 거부하다, 새벽 5시 10분 서명을 남겼다. 기록은 말이 다르고 해석은 엇갈리지만, 새벽이라는 시간은 냉정하다. 재가는 사후였고, 병력은 이미 움직였으며, 도시의 권력지도는 바뀌고 있었다. 서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반란군은 그 도장을 ‘합법’의 증빙으로 흔들었지만, 시곗바늘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한 줄 회수: 새벽 5시 10분의 서명은 허락이 아니라, 기정사실의 날인이었다. (한겨레)

법정의 판결 | 국가 기억의 틀을 만든 문장들, 그리고 2025년

1995년 특별법은 시효를 멈췄고, 1996~97년 판결은 12·12를 군형법상 반란으로 확정했다. 무기·징역형과 추징액, 그리고 판결문 곳곳의 문장이 국가기억의 프레임이 됐다. 이 프레임은 2025년에 다시 현재형이 된다. 특전사 비서실장이던 김오랑 중령. 그는 연희동의 밤을 막다 쓰러졌고, 46년 뒤 법원은 국가의 배상을 명했다. 정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법은 늦게 오지만, 때로는 온다.
한 줄 회수: 판결문과 배상 확정은 ‘그 밤’을 오늘의 법질서로 되돌려 세웠다. (우리 역사넷)

맺음말 | ‘밤의 설계도’를 읽는 이유

12월 12일은 단지 ‘하룻밤’이 아니다. 식탁과 전화선, 병력표와 호출부호, 그리고 새벽의 서명까지. 그 모든 것이 권력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 ‘절차’였다. 민주주의는 투표만이 아니라 절차의 집합이다. 절차가 무너지면, 법은 사후에 숨 가쁘게 따라붙는다. 우리는 설계도를 읽어야 한다. 다음 번에 같은 도면이 등장했을 때, 더 빨리 찢기 위해서다.
한 줄 회수: 절차를 지키는 법은 느리지만, 절차를 무너뜨리는 속도는 언제나 빠르다.


업데이트 표기: 2025-09-25 KST(김오랑 국가배상 항소 포기 반영).

이미지 메모: 기사 스틸컷이나 사료 사진을 쓴다면, 캡션은 “1979.12.13 새벽, 사후 재가를 알리는 신문 지면(연도·출처)”처럼 목적·연도·출처를 함께 적고, 대체 텍스트는 “새벽 5시 10분 재가를 보도한 1979년 신문 지면”처럼 독자가 화면 낭독기로 맥락을 이해하도록 짧고 명료하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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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합수본의 ‘무대’로 본다. B. 연합사 OPCON 붕괴의 경보로 본다. C. 새벽 5시 10분, 사후 재가의 상징으로 본다. D. 김오랑 판결로 현재에 소환된 사건으로 본다.


주요 근거와 읽을거리
– 미국 대사관 전문: “we have been through a coup in all but name”(1979.12.13). 사건 직후 워싱턴에 보낸 글라이스틴의 총평. (국가안보 아카이브)
– 한미연합사 OPCON 무시와 병력 이동: 미 육군전쟁대학 ‘WAR ROOM’의 2025년 회고. 연합사 통보 없이 이동한 부대가 있었다는 기술. (War Room - U.S. Army War College)
– 연희동 만찬의 육필 증언: 장태완의 손글씨 수기 일부 공개 기사. 현장 지휘관들의 ‘식탁 구속’을 확인. (위키백과)
– 총리공관 선점과 경호부대의 역할: 사건 전개·공관 총격 등 세부 묘사. (위키백과)
– 1996~97년 판결과 특별법: 특별법의 시효정지 취지, 대법 확정판결 요지와 형량·추징. (위키백과)
– 김오랑 국가배상 1심 승소(2025.8.12)와 정부 항소 포기(8.28) 확정 보도. (법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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