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파는 언론, 설명을 잃은 사회
자극은 빠르고 설명은 느립니다. 노란 저널리즘에서 오늘의 알고리즘 뉴스까지, 언론이 사회 갈등을 키워 온 역사와 현재의 구조를 차분히 살피고, 갈라치기의 문법을 해체한 뒤 다시 읽는 법을 제안합니다.
읽기 경로와 예상 소요
1부 역사와 맥락, 2부 한국의 제도와 관행, 3부 오늘의 플랫폼 구조, 4부 갈라치기의 문법, 5부 짧은 사례, 맺음말 순으로 읽으시면 약 10분 걸립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5-10-11
1부 역사: 과장은 왜 오래 살아남았나
갈등은 설명을 건너뛰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 말의 ‘황색저널리즘’은 커다란 활자와 과장된 삽화로 분노의 방향을 먼저 지정했고, 전쟁이라는 정치적 결정에 상업적 성공을 포개었습니다. 20세기 말 르완다의 라디오는 타집단을 사람 바깥으로 밀어내는 말을 반복했고, 재판 기록은 그 말을 범죄의 도구로 인정했습니다. 언론이 불씨를 키우고 권력이 그 불씨를 바람 삼아 움직인 사례는, 나라와 시대가 달라도 문법이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한 줄 회수: 과장은 시장에서 팔리고 정치에서 쓰이며, 그래서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2부 한국의 기억: 통폐합의 그늘과 출입처의 관성
1980년 언론통폐합은 매체의 입을 모으는 방식으로 권력을 정리했습니다. 제도가 바뀐 뒤에도 취재가 기관의 방을 통과해야 하는 출입처의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이는 뉴스의 질문 방향을 좁게 만들었습니다. 속보에는 유리하지만 원인과 책임, 대안의 층위를 세우는 데는 늘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그 부족한 시간을 언어의 자극이 메우기 시작하면, 뉴스는 설명보다 감정을 먼저 싣기 시작합니다.
한 줄 회수: 제도는 변했지만 관행은 남아, 갈등 프레임의 재료를 꾸준히 공급합니다.
3부 오늘의 구조: 알고리즘이 분노에 주는 보상
디지털 환경에서 참여가 높은 글이 더 멀리 갑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제목에 더 쉽게 손이 가고, 도덕적 분노가 묻은 문장을 더 자주 퍼 나릅니다. 사실보다 거짓이 먼 곳까지 빨리 도달한다는 연구 결과는 놀랍지만, 체감상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의 뉴스 소비는 포털과 SNS에 깊게 의존하고, 기사형 광고와 낚시형 제목의 유인이 함께 작동합니다. 이렇게 설계된 환경에서는 설명보다 대립이, 맥락보다 확신이 이기기 쉽습니다.
한 줄 회수: 플랫폼의 보상 구조가 분노와 확신을 키우고, 신뢰는 그만큼 닳아갑니다.
4부 갈라치기의 문법: 섞기, 자르기, 낙인찍기
오늘의 갈라치기는 세 가지 손놀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서로 다른 항목을 한 그릇에 섞습니다. 기본급과 총보수, 봉급과 적립·정부 매칭을 뒤섞어 숫자의 체면을 바꿉니다. 둘째, 시간을 자릅니다. 한 해의 적자와 전입금만 떼어내 제도의 목적과 개편 연혁, 세대 구조를 지웁니다. 셋째, 낙인을 찍습니다. ‘그들’이라는 이름을 먼저 붙여 놓고, 사실을 그 뒤에 따르게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걸리면, 독자는 이미 결론에 도착한 뒤 기사를 읽게 됩니다.
한 줄 회수: 갈라치기는 사실을 바꾸지 않지만, 사실이 놓일 자리를 바꿉니다.
5부 짧은 사례: 병장만이 아니라 ‘등등’의 풍경
의무복무의 봉급과 만기 적립금을 한 달치 월급처럼 제시해 간부의 기본급과 나란히 붙이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상병수당을 “아프면 돈 준다”로 요약하며 대기기간과 자격 요건을 생략하는 글도 보입니다. 지하철 무임수송의 손실액만 확대해 법적 취지와 분담 구조를 감추거나, 전기요금을 생활물가 한두 품목에 빗대어 원가 구조와 정책 시차를 흐리는 방식도 흔합니다. 연금 논쟁에서는 개편 이력과 산식을 지운 채 특정 연도 전입금만 부각하는 문장이 반복됩니다. 서로 다른 사안 같지만, 독자의 감정이 먼저 움직이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한 가족입니다.
한 줄 회수: 사안은 다르지만 문법은 같고, 그래서 교정법도 비슷합니다.
맺음말: 설명을 파는 언론, 설명을 요구하는 독자
해법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같은 것끼리, 숫자는 같은 시점끼리, 제도는 목적과 연혁까지. 제목은 감정을 주문하더라도 본문은 이유를 먼저 보여 주어야 합니다. 플랫폼은 설명과 근거를 랭킹의 신호로 삼아야 하고, 독자는 자신의 분노가 보상받는 구조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번 더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등을 덜 팔고 설명을 더 파는 쪽으로, 느리지만 분명히 옮겨갈 수 있습니다.
한 줄 회수: 언어의 속도를 조금 늦추면, 판단의 품격은 의외로 빨리 회복됩니다.
참고·출처
노란 저널리즘과 스페인–미국 전쟁의 여론 형성은 미국 국무부 역사국과 의회도서관의 개설문을 따랐습니다. (U.S. Office of the Historian, 1895–1898; Library of Congress, 2024)
르완다의 증오 방송과 재판 기록은 국제형사재판소 판결 요약과 ICRC Casebook을 참조했습니다. (UN-ICTR, 2003; ICRC Casebook, n.d.)
한국의 언론통폐합과 출입처 관행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역사넷,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80; 우리역사넷, 1980;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디지털 환경의 주목 메커니즘은 클릭과 확산에 관한 최근 연구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부정적 제목의 효과, 도덕정서 어휘의 확산, 거짓 정보의 빠른 전파는 각각 Nature Human Behaviour(2023), PNAS(2017), Science(2018)에서 인용했습니다. (Robertson 외, 2023; Brady 외, 2017; Vosoughi 외, 2018)
한국의 신뢰와 소비 환경은 로이터 디지털 뉴스 리포트(2025)와 언론중재위, 기사형 광고 인식 조사 결과를 참조했습니다. (Reuters Institute, 2025; 언론중재위, 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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