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와 비급여, 국가가 떠넘긴 의료비
응급실 뺑뺑이와 비급여, 결국 국가 책임을 개인과 병원에 떠넘겨 온 구조의 결과일 뿐이다.
소아과와 응급의학 같은 필수의료 인력은 빠르게 줄어드는데, 건강보험 재정은 낮은 수가와 높은 본인부담으로 버텨 왔다. 그 틈을 비급여와 실손보험이 비틀린 방식으로 메우면서, 국민은 건강보험료와 여러 민간보험료를 동시에 부담하고 병원은 또다시 수가가 낮다고 호소하는 기형 구조가 만들어졌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18
응급실 뺑뺑이는 왜 멈추지 않는가
응급실 뺑뺑이는 한 번 터졌다가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징후에 가깝다. 소아환자나 중증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유는 개별 병원의 악의라기보다, 당직 인력과 병상, 수술 인력, 중환자실이 동시에 모자라는 상태가 상시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과 야간, 주말에는 소아과 당직 자체가 없는 병원이 많아, 응급실이 받아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수용이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 사건은 병원 이름만 바뀔 뿐, 구조는 그대로 남아 다음 환자를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보호자는 진료 거부를 당했다고 느끼고, 의료진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떠안으라고 강요받는다고 느낀다. 양쪽의 분노가 언론과 온라인에서 부딪히지만, 문제의 뿌리는 필수의료 인력과 인프라 부족, 그리고 그 뒤에 놓인 재정 구조에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단순한 도덕 문제나 태도 문제로만 다루면, 분노는 커지지만 구조는 손대지 못한다.
응급실 뺑뺑이는 개별 병원의 일탈이 아니라 인력·병상·재정이 동시에 모자란 구조가 만든 일상적 사고다.
필수의료 인력 붕괴와 낮은 수가의 현실
필수의료라 불리는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외과, 중환자의학 분야는 공통적으로 야간과 주말 근무가 많고, 의료사고와 소송 위험이 크다. 그러나 이 과들이 받는 건강보험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왔다. 같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도, 비급여 비중이 높은 인기과에 비해 수입과 삶의 질에서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것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인센티브의 결과다.
병원 입장에서도 필수의료를 유지할수록 인건비와 인력관리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은 악화된다. 결국 필수의료는 최소한으로 유지하거나 축소하고, 비급여 비중이 높은 과와 서비스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선택이 반복된다. 그 결과 필수의료 공백은 응급실 뺑뺑이와 지방 의료 붕괴라는 형태로 드러나고, 그 비용은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하게 된다.
필수의료는 위험과 노동은 크지만 수가와 보상이 낮아, 시스템이 스스로 인력을 밀어내는 구조가 되었다.
건강보험 재정과 국가가 비켜 선 몫
한국의 건강보험은 소득과 재산에 연동된 강제 보험료로 운영되지만, 국가 재정 통계에서 보면 공적 재정이 전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세금과 건보료를 통해 의료비를 넉넉히 책임지는 대신, 낮은 수가와 높은 본인부담, 비급여 영역을 통해 지출을 통제해 온 셈이다. 표면적으로는 보험료율 인상을 최소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만큼의 부담과 위험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정부는 재정 폭발을 막기 위해 행위별 수가를 원가 이하에 가깝게 책정하고, 인상 폭도 제한적으로 관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은 환자 수를 늘려야만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물량 경쟁에 내몰렸고, 환자는 낮은 본인부담으로 잦은 이용을 하는 대신 비급여와 민간보험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구조로 적응했다. 국가가 전면에 서지 않은 만큼, 공백은 자연스럽게 개인과 병원, 보험사 사이에서 나누어 떠안게 되었다.
건강보험은 낮은 수가와 높은 본인부담으로 재정을 버텼고, 그만큼의 책임은 조용히 사적 영역으로 밀려났다.
비급여 폭증과 다중 보험 가입의 악순환
급여 진료의 수가가 낮게 묶여 있으면, 병원은 비급여 항목을 늘릴수록 재정적으로 숨통이 트인다. 선택진료, 각종 검진과 시술, 도수치료와 고가 영상검사, 신의료기술 항목들이 비급여나 예비급여 형태로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비 영수증을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보다 병원이 자체적으로 책정한 비급여 항목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비급여가 구조적 탈출구가 되면서, 급여와 비급여 사이의 괴리는 점점 커졌다.
이 괴리는 곧바로 사적보험 시장으로 이어진다. 비급여 항목이 많고 가격이 불투명할수록, 실손보험과 각종 질병·상해보험의 비급여 특약은 포기하기 어려운 안전벨트가 된다. 한 번 가입한 실손과 특약은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올라가도 쉽게 해지하지 못하고, 부족할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추가 보험까지 덧붙는다. 그 결과 국민은 건강보험료에 더해 실손보험료, 질병보험료, 상해보험료를 동시에 납부하는 다중 부담 상태에 놓이게 된다.
비급여 확대는 실손과 질병보험을 키우고, 다중 보험 가입은 다시 비급여 이용을 늘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실손보험이 비틀어 놓은 의료 이용과 부담
실손보험은 애초에 건강보험이 남겨 둔 본인부담과 비급여 부분을 보완하는 장치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제 상품 설계와 판매 과정에서 실손은 자잘한 통원과 반복 검사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환자와 병원은 “어차피 실손에서 나온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더 많은 검사와 치료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는 전체 의료 이용량과 비용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스템 입장에서는 안전망이 아니라 가속 페달이 된 셈이다.
비용이 늘어나자 보험사는 손해율을 이유로 보험료를 크게 인상하고, 보장 범위를 줄이거나 면책 조건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국민 입장에서는 비급여 리스크가 여전하기 때문에 실손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 실손보험료를 모두 합쳐 보면, 국가가 감당하지 않은 의료비 리스크를 가계가 현금 지출과 보험료 형태로 중복 부담하는 구조가 선명해진다. 실손보험은 공백을 메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덧붙였다.
실손보험은 공적보험의 빈틈을 메우기보다 의료 이용과 비용을 키우며, 장기적으로는 보험료와 불안을 함께 올려 놓았다.
“수가 낮다”와 “비급여가 너무 많다”는 말이 동시에 성립하는 이유
국민에게 비급여 항목과 병원비 영수증은 이미 충분히 과도해 보인다. 그럼에도 병원과 의사가 “수가가 낮다”고 호소하는 장면은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급여와 비급여를 분리해서 보면 양쪽의 인식 차이가 설명된다. 급여 영역에서는 진찰료와 입원료, 수술료가 낮은 단가로 묶여 있어, 필수의료와 일반 외래는 많은 환자를 보아야 겨우 수지를 맞춘다. 반면 비급여 영역에서는 병원이 가격과 제공 범위를 비교적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어, 여기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전체 재정을 떠받치는 구조가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비급여와 각종 보험료가 부담의 중심에 있으므로 병원의 어려움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반대로 병원은 필수의료와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적자로 버티기 때문에 “비급여 없이는 문을 닫는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대립이 결국 국가가 지지 않은 몫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과 수가, 비급여 규제, 사적보험 구조를 함께 손보지 않는 한, 국민의 “과도한 부담”과 병원의 “낮은 수가”는 동시에 계속 주장될 수밖에 없다.
급여 수가는 낮고 비급여는 비대해져, 국민과 병원이 서로를 탓하면서도 같은 구조의 피해자가 되는 모순이 생겼다.
의사와 국민의 갈등을 넘어, 국가 책임의 범위를 다시 묻기
지금까지의 선택은 국가가 부담해야 할 의료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비급여와 사적보험, 낮은 수가와 과로 노동의 형태로 개인과 병원에 나누어 떠안게 한 결과를 낳았다. 응급실 뺑뺑이, 필수의료 붕괴, 비급여 폭증, 실손보험료 급등은 서로 다른 뉴스처럼 보이지만, 같은 구조가 드러나는 서로 다른 얼굴이다. 그 구조의 중심에는 건강보험 재정과 공적 재정의 범위, 그리고 필수의료에 대한 차별적 보상이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의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공적 재정을 늘려 필수의료 수가와 인력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비급여와 실손 구조를 정비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도 있다. 반대로 총액은 유지한 채 내부 재배분과 규제로만 버티는 길을 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응급실과 필수의료, 고가 치료와 장기 요양에서 발생하는 의료 리스크를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남는 부담을 개인과 병원, 보험사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응급실 뺑뺑이와 비급여 문제는 결국 국가가 의료 리스크를 어디까지 회수하고 재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참고·출처
필수의료 인력 감소와 전공의 지원 추세는 보건복지부와 의학회가 발표한 통계, 의료단체와 연구자의 분석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건강보험 재정 구조와 공적 재정 비중, 급여·비급여의 분리와 수가 억제의 역사적 배경은 건강보험공단과 관련 학술 연구를 참고해 서술했다. 실손보험의 손해율, 보험료 인상, 비급여 확대와의 연관성은 금융당국 자료와 손해보험 업계 공시,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응급실 전원 사례와 소아 응급 진료 거부 논란은 개별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을 중심으로 다루기 위해, 여러 사건을 압축해 구조적 특징만 추려 소개했다.
'사회 > 사회 구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편도 2차로 1차로 추월차로의 역설, 과속 문화가 규칙을 점령할 때 (0) | 2025.11.23 |
|---|---|
| 패스트트랙 충돌 1심 전원 유죄, 그런데 의원직은 왜 안 잃었나 (2) | 2025.11.20 |
| 혐오는 어떻게 성장했는가: 한국 사회 35년의 구조적 조건과 기술 환경의 변화 (0) | 2025.11.13 |
| 무죄추정과 사회적 재판 (1) | 2025.11.13 |
| 검찰 선택적 침묵과 반발: 대장동 1심·항소 포기의 의미 (0) | 2025.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