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의 인생과 연기: 루저에서 거장까지
코미디 루저에서 중국 블록버스터 감독까지,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는 한 도시의 흥망과 함께 움직였다.
단역과 아동 프로그램 시절부터 모레이타우 코미디, 희극지왕과 서유쌍기, 소림축구·쿵푸허슬, 그리고 2010년대 중국 본토 블록버스터까지, 그는 실패한 소시민과 다시 일어나는 웃음을 끝까지 붙잡았다. 사랑과 첫사랑의 정서는 그 위에 얹힌 한 겹의 공기일 뿐, 주성치의 영화 인생 전체는 코미디 기술과 노동 서사, 산업의 변화와 동료들과의 협업이 동시에 관통하는 긴 궤적에 가깝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7
주성치라는 서사, 왜 지금 다시 돌아보는가
주성치는 1962년 홍콩에서 태어나, 부모의 이혼과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TVB 연기자 훈련반을 거쳐 방송국에 들어갔지만, 처음 맡은 일은 드라마의 단역과 아동 프로그램 MC였다. 영화 팬들이 기억하는 화려한 코미디 스타와는 달리, 그의 출발선은 화면 가장자리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얼굴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그의 연기와 연출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인정받지 못하는 단역과 엑스트라의 감각이, 훗날 그의 영화 속 루저와 언더독 캐릭터의 밑바닥 정서를 책임지게 된다.
2020년대를 사는 관객에게 주성치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옛날 스타”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다. 홍콩 비디오·케이블 전성기, 영화 산업이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이동한 시기, 디지털 CG와 IP 비즈니스가 주도권을 잡은 시대를 한 사람의 커리어를 통해 압축해서 보는 작업에 가깝다. 동시에 희극지왕의 단역 배우, 서유쌍기의 지존보와 자하, 소림축구의 낙오자 팀, 쿵푸허슬의 뒷골목 주민들처럼,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지금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동자와 실패자들의 얼굴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를 다시 정리하는 것은, 한 시대의 웃음과 좌절을 함께 정리하는 일과 맞닿는다.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를 따라가면, 세기말 홍콩과 중국식 블록버스터까지 한 번에 읽히는 긴 서사가 드러난다.
단역·아동 프로그램 시절, 루저 감각의 뿌리
TVB 입사 후 주성치는 한동안 단역과 조연을 전전했다. 형사·범죄극에서 잠깐 등장하는 형사나 건달, 주인공 곁에서 떠들다가 금방 사라지는 친구 같은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아동 프로그램 ‘430 우주선’의 진행자로 어린이 시청자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건 캐릭터를 맡는 일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이 시기를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지만 쉽게 열리지 않던 시간”으로 회상해 왔다. 이 시절의 서운함과 자존심이 뒤섞인 감정은, 이후 그의 코미디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의 몸부림”으로 느껴지는 밑바탕을 만든다.
단역 시절 주성치는 연기뿐 아니라 촬영·연출·편집의 리듬을 유심히 지켜보며 현장을 통째로 익혔다. 화면의 중심에 서지 못하던 대신, 자신을 둘러싼 카메라의 움직임과 동료 배우들의 동선을 관찰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훗날 그가 감독이 되었을 때, 구석 캐릭터의 표정과 허투루 흘려보낼 수 있는 엑스트라의 몸짓까지 놓치지 않는 연출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성치 영화에서 작은 단역까지도 각자의 리듬을 가지고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한때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카메라 뒤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TVB 단역과 아동 프로그램 시절은, 주성치의 루저 감각과 현장 전체를 보는 감독의 눈을 동시에 만들어냈다.
모레이타우와 90년대 홍콩, 스타가 된 루저
1990년대 초 도성, 도학위룡, 북경 007 같은 영화들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주성치는 단숨에 홍콩 상업영화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이 시기 그의 코미디는 모레이타우라고 불리는 독특한 스타일로 정의된다. 역사극과 현대극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말장난, 고전 배경에 최신 유행어를 던져 넣는 대사, 엄밀한 인과관계보다 박자와 타이밍에 의존하는 개그가 그 핵심이다. 관객은 이야기의 설득력보다는 다음 컷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즉흥성과 과잉에서 쾌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주성치의 캐릭터는 늘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루저와 언더독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비디오와 케이블로 홍콩영화가 소비되던 시기, 주성치 영화는 영웅본색이나 성룡 액션에 비해 한 단계 아래의 B급 코미디로 분류되곤 했다. 세련된 느와르와 정통 액션에 비해, 과장된 몸짓과 싸구려 세트, 장난스러운 특수효과가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드러난 것은, 이 “싸구려” 속에 당시 홍콩 소시민의 불안과 피로, 체제와 시장 사이에서 흔들리던 정서가 녹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도박사 패러디나 학원 코미디의 껍질을 벗겨 보면, 늘 제도에 끼이지 못한 채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청년들의 얼굴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며 그의 영화는 더 이상 숨기고 싶은 guilty pleasure가 아니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한 시대의 취향과 기억으로 재배열되었다.
모레이타우는 한때 싸구려 취급받던 B급 코미디였지만, 지금 보면 세기말 홍콩 소시민의 정서를 품은 루저들의 연대기로 읽힌다.
희극지왕과 서유쌍기, 자기반영적 연기와 정서
1999년 희극지왕은 주성치 커리어에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단역과 엑스트라를 전전하는 무명 배우를 연기하며, “나는 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대사를 집요하게 반복한다. 과장된 슬랩스틱을 줄이고, 생활에 가까운 표정과 목소리로 단역 배우의 자존심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이 연기는, TVB 시절 자신의 경험과 거의 겹쳐 보인다. 관객은 처음으로 그의 코미디 뒤에 숨어 있던 진지한 얼굴, 웃음을 지우고 남은 사람의 윤곽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희극지왕은 단순한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주성치라는 배우 자신의 자화상에 가까운 캐릭터로 기억된다.
서유쌍기, 즉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에서는 사랑과 시간, 운명에 대한 그의 집착이 정점에 이른다. 지존보와 자하는 타임루프와 윤회를 건너 세 번의 이별을 겪는 구조 속에 놓인다. 백정정과의 끊어진 인연에 매달리느라 눈앞의 자하를 사랑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지존보, 늦게야 자신의 사랑을 깨닫지만 이미 죽음과 윤회가 사이를 가로지른 손오공, 떠나가는 뒷모습을 몇 번이고 바라보아야 하는 자하의 얼굴은,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는 주성치 특유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일생소애 같은 테마송은 이런 정서를 하나의 노래로 응축해,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영화 전체의 기조로 만들었다.
이 두 작품을 중심에 두고 보면, 주성치의 연기는 코미디와 멜로드라마 사이를 빠르게 왕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희극지왕에서 그는 작은 표정과 호흡으로 단역 배우의 삶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서유쌍기에서는 과장된 몸짓과 진지한 독백을 한 장면 안에 동시에 배치한다. 웃음과 슬픔을 확실히 나누기보다, 웃는 얼굴 바로 아래에 슬픔을 깔아 두는 연기 방식이 이 시기에 완성된다. 이 정서는 이후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미인어 같은 작품으로 이어지며,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목이 메이는” 주성치 영화의 공기로 남는다.
희극지왕과 서유쌍기는, 단역 배우와 서유기를 통해 주성치 자신의 인생과 감정을 정면으로 연기한 자기반영적 정점이다.
소림축구·쿵푸허슬, 팀플레이와 몸 코미디의 확장
소림축구는 실패한 축구선수와 적응하지 못한 소림 승려들이 한 팀을 이루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과거의 영광을 잃었지만, 기묘한 동료들과 함께 다시 공을 차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개인의 재능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올리며 재도전하는 과정을 중심에 둔다. 공중제비처럼 튀어 오르는 CG와 과장된 슬로모션, 만화적 과장이 쏟아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노동자로서의 몸과 팀워크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경기장 위의 몸짓들은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니라, 한 번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몸의 연습과 상처를 견뎌야 하는지를 상징한다.
쿵푸허슬은 무술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뒷골목 주민들을 중심에 세운 액션 코미디다.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심하고 비겁한 양아치에 가까우며, 진짜 힘을 가진 사람들은 허름한 아파트에 숨어 사는 노부부와 동네 사람들이다. 영화는 전통 쿵푸 영화의 명장면들을 과장된 CG와 결합시켜 새로운 몸 코미디로 재탄생시키면서, 동시에 “영웅은 어디에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후반부의 각성 장면에서 주인공은 어린 시절 롤리팝을 든 소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비겁했던 과거의 자신을 직면하고, 그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을 지키는 쪽으로 나아간다. 사랑과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정서 코드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동네 사람들의 몸과 삶을 지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 두 작품에서 주성치는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자신의 세계를 팀과 공간 단위로 확장한다. 화면에는 주인공만큼이나 많은 조연과 단역이 등장하고, 개그의 상당 부분은 이들의 몸에서 나온다. 그는 카메라를 주연에게만 고정하지 않고, 팀 전체의 리듬과 동선에 맞춰 움직인다.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을 기점으로, 주성치는 카메라 앞에서 점점 물러나면서도, 화면에는 여전히 루저와 노동자의 몸, 동네 사람들의 표정을 가득 채워 넣는 연출자로 자리매김한다.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은, 개인 루저의 서사를 팀과 동네라는 집단의 몸짓으로 확장한 주성치식 세계 설계의 완성형이다.
사적인 얼굴과 정서 코드, 사랑은 왜 늘 늦게 도착하는가
주성치의 사생활과 연애는 작품만큼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몇몇 이름은 공식 기사와 회고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TVB 드라마 파이널 컴뱃을 함께 찍으며 연인이 된 나혜연(羅慧娟, Jacqueline Law)은 흔히 ‘첫사랑’으로 불리며, 주성치가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이로 회고된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반 결별한 뒤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나혜연은 사고로 청각을 잃은 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훗날 저우싱츠가 서유기: 월광보합의 전사인 두 선생, 서유기: 모험의 시작의 두 선생 등 ‘두(段)’라는 이름을 다시 호출한 장면을 첫사랑을 향한 뒤늦은 인사로 읽는 해석은, 이 구체적인 연대와 이름 위에서 힘을 얻는다.
1990년대 중반으로 오면, 서유쌍기의 자하로 함께한 주인(朱茵)과, 희극지왕·소림축구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막문위(莫文蔚, Karen Mok)이 연인으로 거론된다. 관계의 세부 내막을 여기서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 시기 주성치의 연애사는 홍콩·중국 언론과 팬덤에서 끊임없이 이야기의 대상이었고, 서유기 2부작·희극지왕에 퍼져 있는 ‘늦게야 깨닫는 사랑’ ‘지나가고 나서야 후회하는 남자’라는 정서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사랑 앞에서 머뭇거리다 타이밍을 놓치는 남자의 모습은, 구체적인 이름을 안다고 해서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더 선명해 보인다.
1999년 무렵부터 2010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함께한 Alice Yu(于文鳳)는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그는 주성치의 투자와 제작사를 함께 관리하며, 쿵푸허슬·장강7호·미인어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가능한 자본·리스크 구조를 짜는 데 깊이 관여했다. 두 사람이 결별한 뒤 투자 이익을 둘러싼 소송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은, 한 편으로는 오랜 동행의 끝을 보여 주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주성치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과 일, 개인 감정과 제작자의 역할을 완전히 분리하기 어려운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드러낸다. 이 시기 이후 작품들에서 연애 자체는 전면에서 한 발 물러나고, 대신 ‘노동’과 ‘생존’, ‘시스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젊은 날의 첫사랑 나혜연, 서유쌍기와 희극지왕을 함께 만든 주인과 막문위, 감독·제작자로 도약하던 국면을 함께 넘긴 Alice Yu까지, 이들은 주성치의 시간대와 선택을 구체적인 연도로 고정시켜 준다. 그 위에서 보면, 그의 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한발 늦은 고백’과 ‘이미 떠난 사람을 뒤늦게 이해하는 남자’라는 모티프는 추상적인 감상이 아니라, 실제로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멀리서의 회고처럼 들린다.
나혜연·주인·막문위·Alice Yu라는 구체적인 이름들은, 주성치 영화에 흐르는 ‘늦게 도착한 사랑’의 정서를 조용히 지탱하는 현실의 좌표다.
2010년 이후, 본토 블록버스터와 보이지 않는 얼굴
2000년대 후반 CJ7 이후, 주성치는 점점 중국 본토 시장을 향해 무게중심을 옮긴다. 2013년 서유기 강마편에서 그는 감독과 각본, 제작을 맡으며 서유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작품에서 손오공과 삼장법사, 요괴들의 이야기는 훨씬 어두운 톤과 강한 CG를 통해 재구성된다. 이전의 모레이타우 코미디에 비해 공포와 잔혹한 이미지가 늘어나고, 서유기라는 텍스트를 본격적인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틀에 옮겨 심으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중국 내에서 큰 흥행을 거두며, 주성치가 여전히 대중의 감각을 읽는 데 능한 연출자임을 증명했다.
2016년 미인어는 환경 파괴와 개발, 자본의 탐욕을 인어 이야기와 결합한 판타지 멜로드라마다. 요괴와 인간 사이의 사랑, 자연과 도시의 충돌, 탐욕과 희생이라는 이미지는 이전 작품들과 동일한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중국식 블록버스터의 스케일과 CG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며, 당시 기준 최고 흥행 중국 영화로 기록되었다. 주성치는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세계 시장과 중국 내수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웃음과 눈물을 유지하면서도, 상품으로서의 영화와 IP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2019년 신 희극지왕은 제목 그대로 옛날 희극지왕의 변주다. 이번에도 그는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중국 영화 산업에서 단역과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기술과 자본,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단역 인생”에 대한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동시에 주성치는 서유기 강마편과 미인어, 후속편과 스핀오프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IP로 재편하는 데 집중한다. 직접 연기하지 않아도 “주성치식 세계”라는 이름만으로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2010년대 이후의 주성치는 언론과 인터뷰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감독의 얼굴에 가깝다. 세트장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를 지휘하지만, 스크린 속에서는 점점 사라진다. 이 시기의 그는 더 이상 한 명의 배우라기보다, 여러 작품과 캐릭터, IP를 묶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로 남는다. 주성치라는 이름을 알고 자란 세대와, 그의 작품만 알고 이름은 잘 모르는 세대가 공존하는 지금, 2010년대 이후의 행보는 “사라진 스타”가 아니라 “뒤에서 세계를 굴리는 감독”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2010년 이후의 주성치는 카메라 앞을 비운 대신, 중국식 블록버스터와 IP 확장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넓혀 온 설계자다.
동료·싱녀·패밀리, 함께 만든 주성치의 세계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를 이야기할 때, 늘 곁에 있었던 동료 배우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오맹달은 그의 세계를 함께 구축한 대표적인 파트너다. 둘은 도성, 도학위룡, 희극지왕, 소림축구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루저 콤비를 연기하며 모레이타우 코미디의 절반을 책임졌다. 영화 속에서 둘은 사사건건 다투고 엉뚱한 짓을 벌이지만, 관객은 이들을 하나의 단위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사람이 인터뷰에서 전한 애정 어린 회상은, 이 콤비가 단순한 스크린 파트너를 넘어 서로의 인생에 깊이 얽힌 동료였음을 보여준다.
여배우들과의 협업 역시 주성치 영화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주인은 서유쌍기에서 자하를 연기하며 시간과 인연, 첫사랑의 얼굴을 한 번에 맡았다. 막문위는 서유쌍기와 식신, 소림축구 등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면서도, 늘 어딘가 비틀린 사랑과 자존심을 품은 인물을 표현해 냈다. 이 두 배우는 단순한 사랑의 상대역이 아니라, 주성치 영화 속 정서와 공기를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관객이 자하와 백정정을 떠올릴 때 동시에 주성치라는 이름을 함께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으로 완전히 전환한 뒤, 주성치는 싱녀라 불리는 새로운 여배우들을 발굴하는 역할을 계속 이어간다. 희극지왕의 장백지, 장강7호와 이후 작품들에 등장한 배우들, 미인어의 히로인들은 모두 이 계보에 속한다. 그는 이들에게 단순한 미모의 역할이 아니라, 루저와 첫사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황금기의 공기를 맡긴다. 싱녀라는 말에는 스타를 발굴한 감독의 성취와 함께, 자신이 구축해 온 정서를 후배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주성치는 이렇게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왔고, 이 패밀리 감각이 그의 영화에 독특한 친밀감을 부여한다.
오맹달과 주인·막문위, 싱녀의 얼굴들은, 주성치가 혼자가 아니라 패밀리와 함께 만든 세계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주성치 영화가 남긴 것들, 루저·노동·몸·시간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를 종합해서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남는다. 첫째는 루저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경찰·배우·선수·깡패·도사 어떤 옷을 입고 있든, 늘 제도와 시장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겨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주성치는 이 루저들을 한 번도 우습게 소비하지 않고, 끝까지 존중과 애정을 담아 그린다. 웃음은 이들을 비하하는 장치가 아니라, 견디게 만드는 방어기제로 기능한다.
둘째는 노동과 계급이다. 희극지왕의 단역 배우, 소림축구의 낙오자 팀, 쿵푸허슬의 뒷골목 주민들은 모두 도시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얼굴이다. 그들의 몸은 자주 다치고, 값싸게 소비되며, 쉽게 대체된다. 주성치는 화려한 영웅보다 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며, 영화 산업과 도시 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의 가치를 끈질기게 비춘다. 코미디와 액션은 그 노동을 포장하는 장르일 뿐, 근본적인 관심사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가깝다.
셋째는 몸과 시간이다. 주성치 영화의 코미디는 얼굴과 대사 못지않게 몸의 움직임에 의존한다. 슬랩스틱과 과장된 액션, 비현실적인 점프와 착지, 만화적 타이밍의 폭력과 상처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동시에 그의 영화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돌아갈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타임루프와 윤회, 롤리팝 소녀와 단역 배우의 과거, 사막 위의 이별과 마지막 스침 같은 장면들은, 결국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으로 연결된다. 사랑과 첫사랑의 정서는 이 몸과 시간의 서사 위에 얹힌 한 겹의 색채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고립된 성공이라는 키워드가 남는다. 주성치는 홍콩과 중국, 아시아와 세계를 넘나드는 흥행 감독이 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카메라 앞에서는 사라지고 말수가 적어지는 인물이 되었다. 세트장 안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지휘하지만, 대중 앞에서는 점점 모습을 감추는 이 모순된 위치는, 그가 평생 연기해 온 루저와 언더독, 그리고 뒤늦게 성공한 사람의 외로움이 뒤섞인 결과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는 “성공한 스타의 영광”보다는, 실패와 노동, 몸과 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을 끝까지 품고 가는 한 사람의 서사로 남는다.
루저·노동·몸·시간 위에 얹힌 얇은 첫사랑의 정서, 그것이 주성치 인생과 연기를 끝까지 관통하는 세계관이다.
주성치의 세계를 더 깊이 읽고 싶다면, 일생소애로 읽는 월광보합·선리기연, 주성치의 ‘도성’ 리뷰, 주성치의 ‘심사관’ 리뷰, 주성치의 ‘희극지왕’ 리뷰,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속 주성치 리뷰, 주성치의 인생과 연기: 루저에서 거장까지 를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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