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청하의 인생 속 영화: 경요 에서 서극·왕가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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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하의 인생은 대만의 멜로 시스템에서 홍콩의 세기말 장르로 이주하며 스스로의 시간을 선택해 온 이동기다. 영화는 그 이동을 기록한 흔적이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5

경요는 누구였나, 임청하를 만든 세계

경요는 본명 진철로 1938-04-20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태어났고, 1949년 가족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전쟁과 피난의 기억은 그의 문학에 ‘사랑이 곧 이별을 예고하는 감정’이라는 긴장을 남겼다. 아버지는 중국문학 교수, 어머니는 국문 교사로 알려져 있으며, 집안 분위기 자체가 고전 문학과 글쓰기의 습관으로 채워져 있었다. 경요는 십대 시절부터 신문과 잡지에 글을 투고했고, 한 번의 실패와 상처를 서사로 바꾸는 능력 속에서 일찍 작가로 성장했다. 그의 멜로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이 사회 규범과 충돌할 때 생기는 상처와 선택의 대가를 끝까지 보려는 세계관으로 서 있었다.

경요는 사랑을 윤리와 규범의 충돌로 밀어붙인 작가였다.

사랑의 체험이 산업이 되기까지

경요는 자전적 소설 〈창외〉를 발표하며 대중적 돌파구를 만들었다. 그 작품을 연재하던 잡지가 ‘관’이고, 발행인 핑신타오는 경요의 문학을 영화와 드라마로 확장시키는 핵심 동반자가 된다. 경요는 첫 결혼을 끝낸 뒤 핑신타오와 오랜 연인 관계를 거쳐 1979년에 혼인했고, 두 사람은 제작사를 세워 경요 원작의 대규모 영화화를 추진했다. 경요는 원작자에 그치지 않고 각색과 제작을 직접 주도하며 타이완 멜로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사랑을 시대의 감정 표준으로 삼았고, 그 표준을 화면에서 구현할 얼굴을 필요로 했다. 임청하의 데뷔는 그 필요와 정확히 맞물렸다.

경요는 문학을 멜로드라마 산업으로 확장한 제작자였다.

1954-1972, 외성인 가정의 소녀로 자라다

임청하는 1954-11-03 타이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1949년 전후 중국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해 정착한 외성인 가정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성장기 환경은 전후 이주민 특유의 보수적 생활 규범과, 대만 사회 내부의 긴장감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는 여학교를 다니며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이었고, 연예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1972년 타이베이 거리에서 우연히 캐스팅되면서 삶이 급격히 뒤집힌다. 이 발탁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시대가 새 얼굴을 발견한 사건에 가까웠다.

임청하의 출발은 꿈의 선언보다 우연한 발견에 가까웠다.

1973-1979, 경요 멜로의 여주인공으로 살다

1973년 〈창외〉는 임청하를 단숨에 타이완 청춘 멜로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경요 원작을 중심으로 문예 멜로에 연속 출연하며 순정 스타로 자리 잡는다. 그 시기 임청하, 임봉교, 진한, 진상림이 반복적으로 주연을 나누며 ‘이진이림’이라 불린 스타 체제가 형성됐다. 스크린의 커플 이미지는 곧 현실 열애설과 삼각 관계 소문으로 번지며 사생활까지 작품의 연장선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임청하는 흥행과 기대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순정의 반복’과 ‘과열된 시선’의 피로를 동시에 견뎌야 했다. 이 전성기는 영광이었지만, 그만큼 다음 세계로 밀어내는 압력으로도 작동했다.

대만 전성기는 스타의 영광과 사생활의 소진이 함께 온 시간이었다.

1979-1982, 미국 체류와 관계의 정리

1979년 임청하는 미국에서 머무르며 학업과 휴식을 택했다. 당시 대중 담론 속에서 반복되던 진한과의 인연, 경요식 멜로의 굴레, 그리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사생활 소비가 이 선택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된다. 미국 체류는 도피라기보다 자신을 분리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 동안 그는 ‘경요 영화의 전속 여주인공’으로 남지 않겠다는 방향을 더 분명히 한다. 이후 대만으로 돌아오더라도 같은 방식의 멜로로 복귀할 수 없다는 감각이 굳어진다. 이 시기의 멈춤이 홍콩 이주의 전경이 된다.

미국 체류는 경요의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첫 거리 두기였다.

1983-1990, 홍콩으로 이주하며 삶의 언어가 바뀌다

1980년대 초 임청하는 홍콩 영화로 활동 중심을 옮긴다. 대만 멜로가 쇠퇴하던 시기와 맞물린 선택이었고, 무엇보다 반복되는 순정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존의 결정이었다. 홍콩 영화 현장은 언어와 리듬이 완전히 달랐다. 장르는 빠르게 섞였고 흥행 속도는 곧 생존이었다. 임청하는 초기에는 낯선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과제였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 순정 스타의 껍질을 벗게 만들었다.

홍콩에서 그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몸의 장르’였다. 1985년 성룡이 연출하고 주연한 〈폴리스 스토리〉에서 임청하는 핵심 증인 살리나 펑 역을 맡아, 대만 시절과 전혀 다른 액션 현장의 속도에 올라탄다. 스턴트 대역 제안이 있었지만 직접 소화하려 했고, 첫 위험 장면에서 공포로 기절했다는 일화는 홍콩 액션의 현실을 몸으로 배운 순간을 상징한다. 이 경험은 그가 이후 무협의 체온을 견디는 기반이 된다.

1986년 서극의 〈도마단〉은 홍콩 이행기의 중심 좌표다. 서극은 임청하, 엽천문, 종초홍을 한 화면에 묶어 여성들이 혼돈의 시대를 돌파하는 리듬을 만들었고, 임청하에게는 코미디와 액션, 시대극이 한꺼번에 뒤섞인 홍콩식 혼종 장르의 중심을 잡는 훈련장이 됐다. 서극은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배우를 보호하며 심리적 준비를 중시했다고 말했는데, 임청하가 홍콩에서 ‘안전하게 위험해지는 방법’을 배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마단〉에서 드러난 중성적 기운과 기민한 몸의 리듬은, 서극이 곧바로 이어서 그에게 맡길 무협의 얼굴을 예고한다.

홍콩 이주는 스타의 확장이 아니라 배우로의 재탄생이었다.

1990-1994, 세기말 홍콩의 정점에서 스스로 퇴장하다

1990년대 초 홍콩 영화는 전성기의 끝과 1997년 반환을 앞둔 불안이 동시에 고조되던 시기였다. 뉴웨이브의 혁신과 상업 장르의 과잉이 충돌하며, 도시는 화려하지만 언제든 무너질 것 같은 세기말의 공기를 품고 있었다. 임청하는 그 공기 한가운데서 가장 크고 위험한 역할들을 연속으로 맡는다. 1992년 〈소오강호 2 동방불패〉는 정통 무협의 규칙을 뒤집는 서극 제작 체제의 핵심 작품이었고, 액션 연출가 정소동의 날 선 동선 위에서 임청하는 ‘성별을 넘어선 절대자’의 카리스마를 완성한다. 서극은 〈도마단〉에서 확인한 중성적 잠재력을 이 역할로 폭발시켰다.

같은 해 〈신용문객잔〉에서도 서극의 제작 감각은 뚜렷하다. 감독은 이인항이지만 서극이 프로듀서로 전면에 섰고, 임청하는 장만옥, 양가휘, 견자단과 함께 무협 부흥기의 한가운데를 달렸다. 이 작품에서 그는 남장 검객 추모언으로 서서히 지쳐 가는 윤리와 책임의 얼굴을 보여 준다. 동방불패의 초월이 신화라면, 추모언의 피로는 그 신화를 현실의 체온으로 되돌리는 장치였다.

1994년은 세기말 홍콩의 별들이 한꺼번에 모인 해이기도 하다. 왕가위의 〈동사서독〉은 장국영, 양가휘, 양조위, 장만옥, 장학우, 유가령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사막에서 장기간 촬영을 이어 간 작품이었고, 임청하는 그 속에서 모용음과 모용양이라는 분열된 자아를 연기한다. 장국영과 임청하는 이 영화에서 같은 프레임을 공유하며, 세기말 홍콩이 품은 사랑과 자아의 균열을 각자의 방식으로 밀어붙인다. 긴 제작 기간과 고된 촬영은 배우들에게도 소진을 남겼지만, 그 소진이야말로 영화의 정서가 된다.

그 고된 무협 제작이 끝나갈 무렵, 임청하의 얼굴은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왕가위는 〈동사서독〉 촬영 중 임청하가 “의상과 무협에 지쳤으니 현대극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즉석에서 〈중경삼림〉 1부의 역할을 제안했다. 〈중경삼림〉은 〈동사서독〉 후반 작업의 틈에서 짧은 시간에 완성된 영화였고, 임청하는 금발 가발의 밀매상으로 도시의 피로와 익명을 응축한다. 세기말 홍콩이 신화의 도시에서 고독의 도시로 기울어가던 그 변곡점에, 배우 임청하의 마지막 얼굴이 정확히 걸렸다.

세기말 홍콩의 종말감 속에서 임청하는 정점의 방식으로 퇴장했다.

1994 이후,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 사는 시간

은퇴 뒤 임청하는 생활인으로 긴 시간을 보냈고, 두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며 스크린 바깥의 리듬을 선택했다. 2000년대에는 에세이를 출간하며 영화가 아닌 글로 자신의 시간을 정리한다. 간헐적인 공개 활동이 있었으나 연기 복귀로 삶을 되돌리지 않았다. 2023년 금마장 평생공로상 수상은 그가 남긴 1973-1994의 궤적이 동아시아 영화사 속 좌표로 굳어졌음을 다시 확인한 사건이었다. 임청하의 현재는 배우의 신화를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신화를 다른 시간으로 옮겨 사는 삶에 가깝다.

은퇴 이후의 삶은 신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으로 옮겨 가는 일이었다.

이 글의 자리와 시리즈로 이어지는 문

이 허브는 임청하의 인생을 ‘영화의 결과’로 요약하지 않고, 삶의 궤적 속에서 영화가 어떤 자리였는지를 되짚기 위한 좌표다. 대만 멜로의 시스템이 스타를 만들고, 홍콩의 장르가 배우를 다시 만들며, 세기말 도시가 그 배우를 조용히 보내는 흐름을 한 줄로 꿰었다. 시기별 연대기 자체를 먼저 한눈에 보고 싶다면 세기말의 홍콩, 임청하의 얼굴: 대만 멜로에서 중성 신화와 도시적 고독까지에서 전체 구조를 선행해서 확인해도 좋다. 이 글은 그 구조를 바탕으로, 인생의 선택과 이동에 더 가까운 재구성을 시도한 버전이다.

임청하의 인생을 선택과 이동의 시간선으로 다시 묶는 허브다.

대표작 심화 리뷰 읽기 동선

연작은 전쟁 멜로의 침묵에서 시작해 무협의 초월로 번지고, 도시의 잔상으로 닫히는 흐름으로 배치했다. 먼저 임청하의 ‘홍진’ 리뷰에서 떠나보내는 사랑의 윤리를 확인한 뒤, 임청하의 ‘동방불패’ 리뷰로 넘어가 초월과 고독이 맞물리는 순간을 마주하는 순서가 가장 자연스럽다. 이어 임청하의 ‘몽중인’ 리뷰을 통과하면 운명 멜로의 차가운 유예가 명확해지고, 임청하의 ‘백발마녀전’ 리뷰에서 상처가 전설로 변하는 무협 멜로의 정점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은퇴작 ‘중경삼림’ 속 임청하‘추모언의 책임, 모용의 상처’를 나란히 읽으면, 세기말의 도시가 남긴 공기가 이 시리즈 전체를 하나로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