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 16GW·용수 107만t의 현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전력과 물을 ‘나중에’로 미루는 순간 좌초한다. 총량을 쪼개고, 공정을 분산하고, 인허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6.01.12
숫자가 말해주는 진짜 위험
용인에 계획된 반도체 공장이 늘어난 만큼, 필요한 전력과 용수가 ‘추가 업무’가 아니라 ‘물리적 한계’로 변했다. 기사에 언급된 전력 10~16GW와 용수 하루 107만2000t은 여론전을 위한 과장이 아니라, 기반시설이 감당해야 할 실물 수요다. 전력은 송전망과 변전소가 연결되기 전까지 종이 위 전력이고, 용수는 관로와 취수권이 정리되기 전까지 장부 속 물이다. 이 두 축이 동시에 지연되면, 공장은 세워도 가동이 멈춘다. 반도체는 공정 중단 비용이 치명적이라, “공장 먼저, 인프라는 나중”이 가장 비싼 선택이 된다.
전력과 용수는 ‘조달 가능성’이 아니라 ‘연결 일정’이 성패를 결정한다.
전력 해법은 발전소가 아니라 계통과 갈등관리다
산단 내부에 1GW급 LNG 발전소 3기를 짓는 구상은 ‘첫 단추’일 뿐이다. 핵심은 나머지 물량을 외부에서 끌어오는 초고압 송전망과 변전소 확충인데, 여기서 지역 반발이 터지면 전력은 계획표에서 멈춘다. 송전탑이 지연되는 순간, 반도체 공장은 RE100 이슈까지 함께 막힌다. 재생에너지 전력은 계통에 연결돼야 계약도 의미가 생기고, 고객사는 “계약서”보다 “실사용 데이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전력 문제를 기술의 언어로만 설명하면 갈등이 커지고, 갈등이 커질수록 사업비는 숨은 비용으로 폭증한다.
전력 총량을 ‘공장 단위’로 쪼개는 설계
전력 수요를 산단 전체 한 덩어리로 잡으면, 계통 지연이 곧 전면 지연이 된다. 반대로 팹 단위로 전력 확보를 인증하고, 확보가 끝난 공정부터 착공하도록 규칙을 바꾸면 리스크가 분산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니라 조건부 인허가다. “변전소 준공 확인 전에는 특정 공정 장비 반입 불가”처럼, 공정 진행과 전력 확보를 결박해야 한다. 불편해 보여도, 이 장치가 없으면 준공 뒤 ‘전기 없는 공장’이라는 최악의 장면이 현실이 된다.
송전망의 본질은 ‘보상’이 아니라 ‘이익공유’
송전탑 반대는 단순 민원이 아니라, 부담과 편익의 불균형에 대한 집단적 신호다. 따라서 해법은 일회성 보상이 아니라, 운영 기간 내내 지역이 체감할 수 있는 이익공유 구조다. 전력요금 일부의 지역 환류, 지역 투자펀드, 정주 인프라 패키지 같은 제도가 빠지면 협상은 반복된다. 특히 변전소가 들어서는 지자체는 “이미 포화”라는 인식이 강해, 기술 설명만으로 설득이 끝나지 않는다. 갈등관리는 선택 업무가 아니라 전력망의 일부로 봐야 한다.
전력 문제의 절반은 공학이고, 나머지 절반은 제도와 신뢰다.
용수는 ‘물길의 물리학’과 ‘권리의 법학’이 같이 움직인다
현재 수도권 반도체 공장은 한강 수계의 다목적댐 용수를 흘려보내는 구조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여유분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새 산단이 하루 100만t 이상을 요구하면 균형은 깨진다. 화천댐 활용, 하수 재이용, 기존 용수의 재배분 같은 대안이 거론되지만, 각각에 취수권과 관로, 처리수 품질, 주민 수용성이라는 문턱이 있다. 물은 전기처럼 선로만 깔면 끝나지 않고, 유역과 권리, 환경영향이 동시에 따라온다. “가능해 보인다”와 “공급이 확정됐다” 사이의 간격이 큰 이유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정별 물발자국’부터 공개하는 것
용수를 산단 전체 총량으로만 제시하면, 지역은 최악을 가정하고 반발한다. 반대로 초순수, 냉각수, 생활용수로 쪼개고, 재이용률 목표를 공정별로 제시하면 논의가 숫자에서 설계로 넘어간다. 특히 하수 재이용은 “대체 가능한 물”을 늘리는 수단이지만, 처리수 품질과 배관망 비용이 좌우한다. 물 공급은 ‘원천’만큼이나 ‘이송’과 ‘정수’가 비싸다. 그래서 용수 대책은 댐 하나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관로와 처리시설, 운영비를 묶은 패키지로 제시돼야 한다.
용수는 총량 논쟁을 넘어, 공정 설계와 재이용률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전이냐 고수냐가 아니라 ‘부분 분산’이 현실 해법이다
전면 이전은 산업 생태계와 인력, 협력망을 단숨에 옮기는 문제라 정치 구호로는 쉬워도 실행이 어렵다. 반대로 현 위치 고수는 전력·용수의 병목을 방치한 채, 갈등을 송전 경과지로 외주화하는 형태가 되기 쉽다. 현실적인 해법은 공정의 성격에 따라 ‘부분 분산’을 설계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력·용수 집약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공정, 또는 신규 투자분의 일부를 전력 여력이 큰 권역으로 유도하면 총량이 줄어든다. 그러면 용인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최첨단 공정에 집중하면서, 계통과 용수의 병목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낮출 수 있다.
인센티브는 “이전하라”가 아니라 “분산하면 이익이 된다”여야 한다
기업은 도덕적 설득보다 비용과 리스크로 움직인다. 따라서 분산을 유도하려면 세제, 인허가 속도, 전력·용수 우선배정, 전용 인프라 지원을 패키지로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용인에 남는 공정에는 전력망과 용수망의 확정 일정표를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일정 리스크를 숫자로 인지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동기가 생긴다. “기업 판단”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 판단을 바꾸는 것은 제도의 설계다.
전면 이전이 아니라, 공정별 분산이 ‘기술·정치·재정’의 교집합이다.
예타 면제와 승인 속도전이 남긴 것은 ‘신뢰 적자’다
대형 국책 사업은 경제성만 보지 않고 정책성과 기술성, 지역균형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절차 간소화가 반복되면 속도는 빨라져도 신뢰는 줄어든다. 특히 송전망과 용수 같은 기반시설은 지역이 납득하지 못하면 멈춘다. 더 큰 문제는 멈추는 순간, 비용과 시간이 복리로 불어난다는 점이다. 결국 “속도전”이 “지연전”으로 바뀌는 구간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한다.
법적 변수는 ‘결론’이 아니라 ‘설계 변경의 신호’로 읽어야 한다
행정소송은 사업의 완전한 중단만 의미하지 않는다. 조건 변경, 절차 보강, 영향 저감 같은 설계 수정의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은 판결을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라, 판결 전후에 적용 가능한 수정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력·용수 확보의 단계 기준, 분산 유도 인센티브, 지역 이익공유 모델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소송을 “정치 이벤트”로만 보면, 공학적 조정의 시간을 놓친다.
신뢰 적자를 메우지 못하면, 어떤 기술 대안도 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정책설계자가 제안하는 3단 구조: 조건부 진행, 총량 축소, 갈등의 제도화
첫째, 조건부 진행이다. 전력과 용수의 확보가 확인되기 전에는 공정 단계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인허가를 설계해야 한다. 둘째, 총량 축소다. 용인에 몰린 총량을 공정별로 분산해, 계통과 수계가 감당 가능한 범위로 낮춰야 한다. 셋째, 갈등의 제도화다. 송전망과 용수망은 갈등을 없애는 사업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며 진행하는 사업이다. 협의체를 상설화하고 이익공유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갈등은 공정표를 반복해서 찢는다.
이 구조의 장점은 단순하다. 어느 한쪽의 승패가 아니라, 실패 확률을 낮춘다. 반도체는 ‘한 번 크게 미끄러지면’ 회복 비용이 산업 전체로 번진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작동하느냐다. 작동하는 설계는 늘 불편하고, 대신 확실하다.
승부가 아니라 작동을 목표로 할 때, 용인 문제는 풀기 시작한다.
참고·출처
주간경향, 「용인에 올인한 대한민국…‘전기·물 없는 반도체 산단’ 해법을 찾아라」, 2026.01.12 및 경향신문 동시 게재본 2026.01.11을 참고했다. 노컷뉴스, 「‘새만금 이전 논란’ 속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2026.01.15 취소소송 1심 선고」, 2026.01.12 보도를 통해 전력 공급 구상과 소송 일정 관련 공개 내용을 교차 확인했다. 용인특례시 공식 ‘언론보도’ 게시자료 및 관련 보도에서 전력 공급 단계 계획과 일정 언급을 추가로 확인했다.
동일 이슈는 매체별 표현이 달라, 날짜와 수치를 교차 확인해 읽는 편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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