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태슬'이 아닙니다: 한국 전통 '술'의 진짜 이야기
요즘 한복이나 전통 소품에서 '태슬'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우리 전통 장식인 '술'과는 그 뿌리부터 다릅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두 장식은 그 유래와 의미, 제작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차이점을 명확히 짚어보겠습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장식, 서양의 '태슬'과 한국의 '술'. 하지만 두 이름 사이에는 수 세기의 역사와 완전히 다른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히 외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술'을 '태슬'이라 부르는 것은, 그 안에 깃든 장인의 혼과 선조들의 염원을 지우는 것과 같습니다.
1. 서양의 태슬(Tassel): 권위, 장식, 그리고 기념
서양에서 태슬의 역사는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의 의복이나 왕족의 휘장을 장식하며 권위와 부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군복의 견장, 고급 가구의 장식품으로 널리 쓰이며 그 용도가 확장되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졸업식 태슬' 역시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학문적 성취를 기념하고 소속을 나타내는 상징적 아이템인 셈이죠. 태슬의 제작 방식은 주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실을 금속이나 플라스틱 캡으로 묶어 간단히 완성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즉, 태슬의 가치는 '장식'과 '기념'이라는 명확한 목적성에 있습니다.
2. 한국의 술(術): 염원과 예술의 결정체
반면, 한복 노리개나 선추에 달린 우리의 '술'은 그 시작부터 다릅니다. '술'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예술 공예품이자 염원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 과정의 미학: 하나의 '술'이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정성이 들어갑니다. 손수 명주실을 천연 염료로 물들이고(염색), 여러 가닥을 꼬아 끈(끈목)을 만들고, 그 끈으로 국화, 나비, 연봉 등 길한 의미를 지닌 매듭을 엮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의 '술'이 완성됩니다.
- 철학의 상징: '술'에 사용된 오방색(五方色)은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며, 매듭의 모양은 각각 부귀, 장수, 다산, 부부애 등 선조들의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 여성들의 대표적인 장신구였던 **'노리개'**는 집안의 번영과 자손의 행복을 비는 마음을 담아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대물림되던 소중한 가보(家寶)였습니다. 단작 노리개부터 가장 화려한 삼작(三作) 노리개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구성에는 모두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3. 이름의 무게: 왜 '술'이라 불러야 하는가?
우리의 전통 '술'을 영어 단어 '태슬'로 부르는 것은, 마치 정성껏 빚은 '송편'을 그저 '떡(rice cake)'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송편에 담긴 반달 모양의 의미와 솔잎 향, 추석이라는 고유의 문화적 배경을 모두 지워버리는 행위입니다.
'술'이라는 이름에는 비단실의 감촉, 복을 비는 마음,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장인의 기술과 조선 시대 여성들의 미의식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태슬'로 칭하는 순간, 이 모든 문화적 맥락과 역사의 깊이가 사라지고 평범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두 장식은 모두 각자의 문화 속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과 역사를 제대로 알고 구분해서 부를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 이제는 '태슬'이 아닌 '술'이라는 이름을 자신 있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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