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를 지탱한 기업, 사모펀드의 먹잇감으로 떠돌다
경기도 의왕시에는 ‘용기 만드는 집’이라 불리던 기업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도, 인근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그 회사를 특별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화장품 펌프나 샴푸통, 미스트 용기를 찍어내는 플라스틱 공장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평범한 회사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모펀드들 사이의 치열한 인수전 중심에 놓여 있다.
그 기업의 이름은 삼화다. 그리고 지금, 미국계 사모펀드 TPG는 삼화를 9천억 원에 팔기 직전이다. TPG가 이 회사를 인수한 건 불과 1년 반 전. 그때 가격은 약 3천억 원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불과 18개월 만에 몸값이 세 배가 되었는데, 기술이 세 배 좋아졌을 리도 없고, 매출이 세 배 뛴 것도 아니다. 무엇이 이 가격을 만든 걸까.
그 중심엔 ‘팔기 좋은 회사’로 다듬어진 삼화가 있었다. 삼화는 단순한 용기 회사가 아니다. 이 회사의 진짜 경쟁력은 ‘분사 펌프’에 있다. 점도가 서로 다른 화장품 내용물을 얼마나 일정하게, 적절한 압력으로, 원하는 각도에서 뿜어낼 수 있는가. 화장품 품질의 마지막 경험은 결국 이 ‘칙칙’ 하는 펌프에서 결정되는데, 삼화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K-뷰티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보이지 않는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주체가 한국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계 사모펀드는 이 가능성을 알아보고 삼화를 인수했고, 이제는 삼화를 한껏 포장해서 세계 시장에 되팔려 한다. 현재 입찰 후보로는 KKR, 칼라일, 블랙스톤 같은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거론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한국 기술력이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식으로 포장하지만, 이게 정말 자랑스러운 일인가?
사실 많은 언론은 이런 내용을 “한국 중소기업의 위상”이라며 대단한 일인 듯 보도한다. “K-뷰티 히든챔피언”, “글로벌 큰손이 몰려든다”, “3배 차익 기대” 같은 문장이 그럴싸하게 제목을 장식한다. 하지만 그 뉴스 어디에도 한국 기술이 어떻게 보호받고 있는지, 이 기업이 한국 산업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는 없다. 오직 가격과 거래만 있다. 대단한 건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을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만든 사모펀드의 기술인것처럼 포장된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서 되파는 게 목적이다. 그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을 보호하거나, 내수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R&D는 줄고, 조직은 재편되고, 현금흐름은 외부로 빠져나간다. 기술과 브랜드는 넘기고, 제조 기반은 줄이고, 필요하면 생산까지 해외로 돌린다. 국내 산업 생태계엔 오히려 공백만 남는다.
이게 한국이 자랑스러워해야 할 모습인가? 삼화는 대단한 기업이 맞다. 문제는 그 대단한 기업이 이제 한국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수십 년간 축적해온 제조 기술을 단기 수익 모델 안에 흘려보내고 있다. 기술은 국경을 넘고, 자본은 수익을 쫓으며, 산업의 뿌리는 조용히 흔들린다.
한 기업의 매각은 단순한 거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래가 반복될 때, 우리는 산업의 근간을 조금씩 잃게 된다. 한국 기술이 세계에서 주목받는다고? 아니다. 그건 한국 기술이 팔릴 만한 상품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한국은 그 기술을 지킬 생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기술이 다시 한국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지금처럼 외부 자본에 박수만 치고 있다면, 언젠가 남는 건 껍데기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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