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전략과 예산 구조
KF-21과 핵잠은 서로 경쟁할 사업이 아니다. 하늘과 바다에서 한국이 스스로 버틸 힘을 세우는 국가전략이며, 문제는 이를 단년도 예산표 안에서 흔드는 구조다.
KF-21 양산 연기 논란은 전투기 한 기종의 문제가 아니다. 국산 전투기 개발을 기다리며 노후기를 오래 운용해 온 공군 조종사의 시간, 항공산업 생태계, 무장 통합, 핵잠 추진, 세입 회복과 재정 경직성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국가전략의 문제다.
국산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후 전투기 시대를 끝내고, 공군 조종사에게 더 안전한 하늘을 주겠다는 국가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이제 KF-21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양산과 전력화의 문턱에 섰는데, 다시 비용과 일정 조정 논리가 앞에 나온다. 개발할 때는 자주국방의 상징이라 말하고, 양산할 때는 부담스러운 예산 항목으로 보는 태도다.
이러면 국산 전투기 개발의 의미가 기체를 띄운 성과로만 축소된다. 전투기는 행사장에서 박수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전투기는 조종사를 태우고, 무장을 달고, 정비망 안에서 반복 출격하며, 전시에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KF-21은 비행에 성공한 기념물이 아니라, 공군 전력 안에서 실제로 굴러가야 할 무기체계다.
더구나 이 사업은 이미 단순한 실험 단계가 아니다. KF-21 블록Ⅰ은 기본성능과 공대공 능력 검증을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고, 양산 1호기 인도와 후속 전력화가 이어져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양산을 늦춘다는 말은 개발 실패의 위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개발을 전력화하지 못하는 위험을 말한다. 전투기 사업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실패한 시제품이 아니라, 성공한 시제품을 두고도 국가가 결정을 늦추는 순간이다.
KF-21 양산 연기 논란은 전투기 한 기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전략사업을 일반 예산표 안에서 흔드는 한국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다.
KF-21은 오래된 국가 약속이다
KF-21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전투기가 아니다. 국산 전투기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한국 안보 담론의 한복판에 있었다. 한국은 미국산 전투기를 도입해 공군을 유지해 왔고, 그 덕분에 일정 수준의 전력은 지켜 왔다. 하지만 그 방식은 항상 한계를 품고 있었다. 기체를 사올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우리 무장을 붙이고, 우리 일정에 맞춰 개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KF-21은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사업이었다. 노후 전투기 대체, 조종사 안전, 항공산업 생태계, 국산 레이더와 항전장비, 장기적인 무장 통합, 수출 가능성까지 함께 걸려 있었다. 그러므로 KF-21을 단순히 국산 전투기 한 대로 보면 안 된다. 이 사업은 한국이 하늘에서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가질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였다.
노후 F-4와 F-5가 남긴 문제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오래된 기체는 정비 난도가 올라가고, 부품 확보가 어려워지며, 조종사는 매번 위험을 더 크게 감수해야 한다. 노후 전투기 사고는 한국 공군 전력교체 논쟁의 가장 아픈 배경이었다. 국산 전투기 개발을 기다린다는 말 뒤에는, 그 기간 동안 낡은 기체를 계속 몰아야 했던 조종사들의 시간이 있었다.
이 지점은 이미 앞선 글에서도 다룬 바 있다. KF-21 보라매 개발 사업의 현황과 추진 배경은 이 전투기가 왜 노후기 대체와 항공산업의 문제였는지를 보여 준다. 또 KF-21의 현재와 미래, 블록 1에서 다목적 전폭기까지는 KF-21이 공대공 중심 단계에서 시작해 공대지 능력과 다목적 전투기로 확장되는 시간표를 설명한다. 지금의 양산 논란은 바로 그 시간표가 흔들리는 문제다.
국산 전투기 개발을 이유로 시간을 벌었다면, 그 시간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기술자는 기체를 띄웠고, 시험은 통과했고, 공군은 전력화를 기다린다. 이제 남은 것은 국가가 예산과 양산과 무장과 부품을 하나의 전력 패키지로 묶어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이다.
KF-21은 개발 성공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양산과 무장과 정비로 완성되는 국가 약속이다.
625억 원 예산은 안심 신호가 아니라 위험 신호다
최근 KF-21 블록Ⅱ 양산 첫 예산으로 625억 원이 의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겉으로 보면 양산 연기 우려가 한고비를 넘긴 것처럼 보인다. 내년 후반기 블록Ⅱ 양산 계약과 2029년 후반기 전력화 개시가 가능하다는 설명도 붙었다. 그러나 이 숫자를 안심 신호로만 읽으면 안 된다. 625억 원은 KF-21 블록Ⅱ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는 돈이라기보다, 사업을 예산표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게 붙잡아 둔 첫 문턱에 가깝다.
KF-21 후속양산 80대에는 18조 4,422억 원 규모의 돈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왔다. 그 규모와 비교하면 625억 원은 전체 사업비의 1%도 되지 않는다. 대략 0.34% 수준이다. 국가전략사업을 시작하는 첫 예산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그 자체로 양산 안정성을 보장하는 규모는 아니다. 오히려 이 숫자는 KF-21이 얼마나 얇은 예산선 위에 올라와 있는지를 보여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예산이 아직 최종 방어선을 통과한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의결은 중요한 단계지만, 이후 기획재정부 협의와 국회 심의를 지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예산은 줄어들 수 있고, 다른 대형 국방사업과의 우선순위 싸움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핵잠 추진, 미사일 방어, 드론, 우주전력, 병력구조 개편이 모두 같은 예산표 안으로 들어오면 KF-21 블록Ⅱ 예산은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
625억 원은 KF-21 블록Ⅱ가 살아났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이 사업이 아직 장기 전략계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18조 원대 사업을 수백억 원 첫 예산으로 겨우 열어 놓고 “예정대로”라고 말하는 순간, 국산 전투기 전력화는 다시 정치와 예산의 바람을 맞게 된다.
이 대목에서 정부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625억 원을 “양산 예정대로”라는 홍보 문장으로만 소비하면 안 된다. 후속양산 전체 사업비는 몇 년에 걸쳐 어떻게 나눌 것인지, 공대지 무장 통합 예산은 어디에 묶을 것인지, 캐노피와 핵심 부품 국산화 예산은 별도 항목으로 잠글 것인지, 후속군수지원과 정비 인력과 훈련체계 비용은 양산비와 함께 계산하고 있는지까지 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625억 원은 시작 신호가 아니라 또 다른 미봉책이 된다.
KF-21 블록Ⅱ는 공대공 중심의 블록Ⅰ을 넘어 공대지 능력까지 갖춘 다목적 전투기로 가는 단계다. 이 단계가 흔들리면 KF-21은 “국산 전투기”라는 이름은 얻지만, 실제 작전능력에서는 반쪽 전력으로 오래 머물 수 있다. 그러므로 625억 원 보도는 양산 연기 논란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부터 국가가 정말로 18조 원대 후속양산을 감당할 장기 예산 구조를 만들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625억 원은 KF-21 블록Ⅱ의 안전판이 아니라, 18조 원대 국가전략사업을 장기계정으로 잠가야 한다는 경고음이다.
미사일과 캐노피 문제는 양산 연기의 핑계가 될 수 없다
KF-21을 둘러싼 가장 답답한 대목은 기체와 무장, 부품과 양산 일정이 따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전투기는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미사일을 달아야 전력이 되고, 정비망이 있어야 지속되고, 핵심 부품 공급망이 안정돼야 운용된다. 기체만 만들어 놓고 미사일이 부족하면 반쪽 전력이다. 양산만 말하면서 캐노피 같은 핵심 안전부품 공급망을 단단히 잠그지 못하면 후속 전력화가 흔들린다.
미사일 문제는 특히 뼈아프다. KF-21은 공대공 전투기로 먼저 전력화되고, 이후 공대지 능력을 추가해 다목적 전투기로 넓어지는 구조다. 그렇다면 최소한 공대공 미사일은 양산 일정과 같이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국산 공대지 미사일 개발이 늦어지면서 블록Ⅰ은 공중전 중심의 기체로 먼저 출발하게 됐다. 이 자체는 단계적 개발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블록Ⅱ 양산과 무장 통합까지 흔들리면 문제는 달라진다.
전투기에서 미사일은 선택 장식이 아니다.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정밀유도무장, 전자전 장비가 붙어야 기체는 작전의 언어를 갖는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과 지휘부, 이동식 발사대, 장사정포 진지를 상정한다면 공대지 능력은 장식이 아니라 필수다. 블록Ⅱ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KF-21이 완전한 다목적 전투기로 가려면 후속 양산과 국산 공대지 무장 통합이 같이 가야 한다.
캐노피도 마찬가지다. 조종석 캐노피는 단순 덮개가 아니다. 조종사의 시야, 생존성, 고속비행 안정성, 비상탈출과 직결되는 안전부품이다. 해외 업체가 단가를 올리고 공급 조건을 압박한다면, 그것은 양산을 늦출 이유가 아니라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더 빨리 해야 할 이유다. 미리 못 챙긴 공급망 문제가 나중에 양산 연기의 명분으로 둔갑하면 책임의 방향이 뒤집힌다.
정상적인 대응은 양산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 추가 확보, 국산 항공무장 개발, 캐노피 국산화, 대체 공급망, 후속군수지원 체계를 하나의 묶음으로 잠그는 것이다. 기체 양산과 무장 확보와 부품 국산화가 따로 놀면 국산 전투기는 전력화 단계에서 계속 발목을 잡힌다.
이 문제는 낯설지 않다. 어뢰 없는 잠수함 킬러, 포세이돈과 시호크에서 이미 플랫폼과 무장이 따로 움직일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다룬 바 있다. 비싼 장비를 들여오거나 개발해도, 거기에 붙을 무장과 군수체계가 따라오지 못하면 전력은 서류 속 숫자로만 남는다. KF-21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정부가 미리 챙기지 못한 미사일과 캐노피 문제를 이제 와서 양산 지연의 근거로 쓰면, 그것은 국산기 개발을 두 번 망치는 일이다. 처음에는 무장과 공급망을 늦게 챙겨 전력화를 약하게 만들고, 다음에는 그 약점을 이유로 양산을 늦추는 구조가 된다. 이것이야말로 국가전략사업에서 가장 피해야 할 악순환이다.
미사일과 캐노피 문제는 KF-21 양산을 늦출 이유가 아니라, 패키지 전력화를 서두를 이유다.
핵잠도 반드시 해야 한다, 문제는 둘을 싸움 붙이는 구조다
여기서 핵잠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핵잠은 중요하다. 한국이 원자력추진잠수함을 갖는다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략적 염원이 현실의 문턱에 왔다는 뜻이다. 장기 잠항, 빠른 수중 기동, 북한 잠수함발사 미사일 위협 대응, 원해 작전 능력, 해상교통로 보호까지 생각하면 핵잠은 단순한 과시용 대형사업이 아니다.
정부가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을 내놓고 장보고 N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 흐름 안에 있다. 목표는 단순히 큰 잠수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디젤잠수함보다 긴 잠항 능력과 높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북한의 잠수함 기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 한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핵잠은 수상함처럼 눈에 띄는 전력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억제 수단이다.
특히 지금은 기회다. 핵잠은 한 번 놓치면 다시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렵다. 연료, 원자로, 조선소, 승조원, 운용교리, 한미 협력, 국제규범을 모두 풀어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2030년대 중반 1번함 진수와 2030년대 후반 전력화라는 목표를 내세웠다면, 지금부터 기본설계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예산을 끊기지 않게 이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핵잠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KF-21과 핵잠을 같은 예산표 안에서 서로 잡아먹는 항목처럼 만드는 구조다. KF-21은 지금 마무리해야 할 사업이고, 핵잠은 지금 착수해야 할 사업이다. 하나는 하늘의 자주 플랫폼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의 지속 억제 플랫폼이다.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같은 시대가 요구한 두 개의 답이다.
이 대목은 앞서 쓴 누리호·핵잠·ICBM, 진짜 강대국 세트인가와도 이어진다. 핵잠은 강대국 흉내를 내기 위한 장난감이 아니다. 한국이 주변 강대국과 북한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버티기 위해 필요한 전략 자산이다. 장거리 타격·잠수함·우주전력으로 본 한국 군사력의 현재에서 다룬 것처럼, 한국 군사력은 이미 단순 방어선의 문제가 아니라 장거리 감시와 타격, 해상 억제, 우주 기반 정보까지 함께 봐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KF-21은 하늘의 자주 플랫폼이고, 핵잠은 바다의 지속 억제 플랫폼이다. 둘은 경쟁 사업이 아니라 같은 시대가 요구한 두 개의 국가전략이다.
정부가 정말 다른 길을 선택하려면 차라리 솔직해야 한다. F-35 추가 도입과 드론 고도화, 핵잠 중심 전략에 올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산 전투기 개발을 국가적 약속으로 밀어 놓고, 막상 양산 단계에서 비용 부담을 이유로 흔드는 것은 가장 나쁜 방식이다. 개발의 시간에는 자주국방을 말하고, 양산의 시간에는 경제성만 말하면 산업도 군도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KF-21 양산과 항공무장, 캐노피 국산화, 후속군수지원은 하나의 전력화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핵잠은 별도 국가전략계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두 사업을 일반 방위력개선비 안에서 해마다 경쟁시키면, 결국 어느 한쪽은 지연되고 다른 한쪽도 나중에 같은 방식으로 흔들린다.
핵잠도 해야 하고 KF-21도 해야 한다. 문제는 둘을 선택지처럼 만드는 예산 구조다.
세계질서가 달라졌기 때문에 둘 다 필요하다
KF-21과 핵잠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는 한국 내부 예산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질서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 중심 질서는 여전히 강하지만, 과거처럼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보장해 주는 질서는 아니다. G7 중심의 세계경제와 안보질서는 약해지고, BRICS와 글로벌 사우스는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경쟁은 무역을 넘어 반도체, 배터리, 해양, 우주, 사이버, 군사동맹까지 번지고 있다.
이 흐름은 세계 질서는 어디로 가는가, G7·BRICS·글로벌 사우스의 재편된 지도에서 이미 다룬 문제와 연결된다. 한국은 미국을 버릴 수 없다.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미국만 믿고 모든 전략자산을 외부 공급망에 맡길 수도 없다. 미국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동맹을 거래표 위에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KF-21은 반미의 상징이 아니다. KF-21은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이 스스로 고치고, 개량하고, 무장을 붙이고, 수출하며, 위기 때 운용할 수 있는 하늘의 보험이다. 핵잠도 마찬가지다. 핵잠은 동맹을 버리자는 선언이 아니라, 동맹이 흔들릴 때도 한국 해군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는 바다의 보험이다.
이 점은 미국만 믿기 어려운 시대의 생존형 보험이라는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었지만, 동시에 각자 스스로 버틸 능력을 더 키워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일본·대만 군사력, 위협은 커지는데 증강 계획은 모호하다에서 짚은 것처럼 동북아의 위협은 커지는데, 각국의 전력 증강은 정치와 예산과 산업의 한계에 계속 부딪힌다.
KF-21은 하늘의 보험이고, 핵잠은 바다의 보험이다. 미국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도 거래하는 시대에 한국이 스스로 버틸 능력을 갖추자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KF-21과 핵잠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과욕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세계질서에서 한국이 해야 할 최소한의 전략적 준비에 가깝다. 문제는 둘 다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둘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예산과 제도로 뒷받침할 의지가 있느냐이다.
미국만 믿기 어려운 시대에 KF-21과 핵잠은 선택지가 아니라 하늘과 바다의 생존 보험이다.
세입은 회복되지만 자유재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여기서 늘 나오는 말이 있다. 돈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국가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KF-21도 돈이 들고, 핵잠도 돈이 든다. 미사일을 확보하고 캐노피를 국산화하고 후속군수지원 체계를 짜는 일도 돈이 든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돈이 없다”는 말로 끝낼 수 없다. 국세수입은 세수결손 국면을 지나 다시 회복되는 흐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다만 “세금이 엄청나게 늘어나니 그냥 쓰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 기준으로 국세수입은 2025년 372.3조 원, 2026년 396.1조 원으로 늘어난다. 2024년 336.5조 원과 비교하면 회복 폭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6년 증가분을 보면 2025년보다 23.8조 원 늘어나는 수준이다. 국가전략사업을 모두 편하게 감당할 만큼의 자유재원이 갑자기 생기는 구조는 아니다.
게다가 2026년도 예산은 총수입 675.2조 원, 총지출 727.9조 원 규모로 확정됐다. 세입은 늘지만 지출 압력도 함께 커진다. 복지, 연금, 지방이전, 국방, 연구개발, 이자비용, 기존 계속사업이 모두 같은 예산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이 글의 핵심은 “돈이 넘치는데 왜 안 쓰느냐”가 아니다. 세입은 회복되지만 자유재원은 제한적이니, 더더욱 국가전략사업을 일반 예산경쟁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돈의 총량만이 아니다. 세입 회복분이 기존 제도와 계속사업의 흐름에 먼저 흘러가고, KF-21·핵잠 같은 장기 국가전략사업은 해마다 다시 심사대에 올라가는 구조가 문제다.
이 구조에서는 “내년에 얼마를 넣었느냐”보다 “몇 년 동안 얼마를 잠갔느냐”가 더 중요하다. 625억 원은 시작 예산일 수 있지만, 장기계정이 없으면 다음 해에도 다시 흔들린다. 18조 원대 후속양산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총사업비와 연차별 지출계획, 무장 통합비, 부품 국산화비, 후속군수지원비를 하나의 패키지로 고정해야 한다. 핵잠도 마찬가지다. 기본계획만으로는 부족하고, 원자로·연료·선체·정비기반·승조원 양성 비용이 끊기지 않게 이어져야 한다.
세입은 회복되지만 자유재원은 제한적이므로, KF-21과 핵잠은 일반 예산경쟁이 아니라 장기 전략계정으로 보호해야 한다.
문제는 특정 예산이 아니라 장기 전략을 담는 방식이다
국가예산을 말할 때 교육재정, 복지, 지방이전, 조세감면을 낭비로 몰아가면 논점이 흐려진다. 각각의 지출과 제도에는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교육재정은 학교와 학생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였고, 복지와 연금은 고령화 사회의 기본 안전망이며, 조세감면도 투자 유도와 서민 부담 완화 같은 정책 목적을 갖는다. 문제는 그 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KF-21과 핵잠 같은 장기 국가전략사업이 해마다 같은 예산표 안에서 다시 경쟁해야 하는 방식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도는 초·중등교육 재정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학생 수가 많고 학교 시설을 계속 확충해야 했던 시기에는 분명한 역할을 했다. 다만 지금은 학령인구가 줄고, 교육 수요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초·중등교육 재정, 대학 재정, 직업교육, 첨단산업 인재양성 재정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교육을 줄이자는 말이 아니라, 바뀐 인구구조와 산업구조에 맞게 돈의 흐름을 다시 보자는 뜻이다.
조세감면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비과세, 세액공제, 소득공제, 감면은 예산서의 지출 항목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국가가 거둘 수 있는 세입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연구개발과 투자, 서민 부담 완화처럼 필요한 감면도 있다. 다만 감면 규모가 커질수록 정부가 새 전략사업에 배정할 수 있는 재정 여지는 좁아진다. 그래서 조세감면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목적과 효과를 주기적으로 검증해야 할 재정 항목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의무지출도 마찬가지다. 복지, 연금, 지방이전, 법정지출은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장치다. 이 돈을 단순히 줄이자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의무지출 비중이 커질수록 정부가 새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 공간은 좁아진다. 이런 구조에서 KF-21과 핵잠 같은 장기 전략사업을 매년 일반 예산심사에 올려놓으면, 사업의 전략적 의미보다 그해의 재정 사정과 단기 경제성 평가가 앞서게 된다.
민생지원금 논쟁도 여기서 분리해야 한다. 국민에게 몇만 원씩 나눠주는 정책을 무조건 선심성 예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기 하강기에는 소비 진작, 골목상권 매출 보전, 취약계층 유동성 보강이라는 정책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설계가 나쁘면 비판할 수 있지만, 그 논쟁만 물고 늘어지면 정작 더 큰 문제는 가려진다. 장기 국가전략사업이 매년 예산철마다 흔들리는 구조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핵심은 어느 예산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다. 교육재정, 복지, 지방이전, 조세감면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KF-21과 핵잠 같은 장기 전략사업은 단년도 예산경쟁 밖에서 따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KF-21과 핵잠은 한 해 예산 사정에 따라 넣었다 뺐다 할 사업이 아니다. KF-21은 양산, 무장 통합, 핵심 부품 국산화, 후속군수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핵잠은 선체, 원자로, 연료, 승조원, 정비기지, 운용교리까지 긴 시간표로 묶여야 한다. 이런 사업은 일반 예산 항목처럼 매년 다시 줄 세우면 산업도 군도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특정 예산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국가전략사업을 위한 별도 재정 구조다.
예산 논쟁의 핵심은 다른 지출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 국가전략사업을 단년도 예산경쟁에서 분리하는 데 있다.
효율 점수표가 아니라 잃는 것의 점수표가 필요하다
KF-21 양산 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접근은 단순 효율성 평가다. 한 대당 가격이 얼마인지, 수입 전투기보다 경제성이 있는지, 6세대 전투기 시대에 4.5세대 전투기를 얼마나 더 사야 하는지를 묻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산 전투기 사업은 단순 구매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붙잡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양산을 미루면 당장 돈을 아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잃는 것이 있다. 노후 전투기 대체가 늦어진다. 조종사 안전 부담이 이어진다. 항공산업 생산라인이 불안정해진다. 협력업체는 투자 판단을 미룬다. 캐노피와 핵심 부품 공급업체는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공대지 무장 통합 일정은 뒤로 밀린다. 수출 협상에서는 “한국도 충분히 사지 않는 기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잃는 것의 점수표다. 예산심사에서 “얼마를 쓰느냐”만 물으면 KF-21은 늘 비싸 보인다. 그러나 “미루면 무엇을 잃느냐”를 묻기 시작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조종사 생명, 노후기 교체, 산업 생태계, 무장 통합, 공급망 협상력, 수출 신뢰, 동맹 의존도 축소, 전시 지속성은 단순한 부대효과가 아니다. 그것들이 바로 국산 전투기를 만든 이유다.
KF-21을 평가할 때는 가격표만 보면 안 된다. 양산 지연으로 잃는 조종사 안전, 항공산업 생산라인, 부품 협상력, 무장 통합 일정, 수출 신뢰, 국가 약속의 신뢰까지 함께 점수화해야 한다.
핵잠도 같은 방식으로 봐야 한다. 핵잠은 당장 숫자로 드러나는 효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장기 잠항, 빠른 수중 기동, 보이지 않는 억제력, 북한 잠수함발사 미사일 대응, 해상교통로 보호, 원해 작전 능력은 평시에는 비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그 능력은 상대의 계산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래서 핵잠도 단순 가격표가 아니라 잃는 것의 점수표로 봐야 한다.
국가전략사업은 원래 비싸다. 문제는 비싸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돈을 쓰지 않았을 때 무엇을 잃는지 계산하지 않는 태도다. KF-21과 핵잠은 당장 싸게 끝낼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미뤘을 때 잃는 것이 더 크다면, 국가는 비싸더라도 밀어붙여야 한다. 그것이 예산 행정과 국가전략의 차이다.
KF-21과 핵잠은 효율표만으로 볼 사업이 아니라, 미뤘을 때 잃는 것을 계산해야 하는 국가전략사업이다.
KF-21과 핵잠은 장기 전략계정으로 묶어야 한다
KF-21과 핵잠은 단년도 예산의 남는 칸에 넣을 사업이 아니다. KF-21은 기체 양산, 미사일 확보, 캐노피 국산화, 항전장비 개량, 정비 인력, 훈련체계, 후속군수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어느 하나만 빠져도 전력화는 늦어진다. 핵잠도 마찬가지다. 선체를 만드는 문제만이 아니라 원자로, 연료, 승조원, 정비기지, 안전규제, 운용교리, 한미 협력, 국제규범이 동시에 묶여야 한다.
이런 사업을 해마다 “올해 예산 사정이 어렵다”는 말로 흔들면 안 된다. 국가전략사업은 착수할 때부터 다년도 총사업비, 연차별 지출, 핵심 부품 국산화 일정, 무장 통합 일정, 인력 양성 계획, 후속군수지원 비용까지 잠가야 한다. 그래야 업체도 투자하고, 군도 전력화 일정을 세우고, 조종사와 승조원도 훈련계획을 짤 수 있다. 예산이 매년 흔들리면 산업도 흔들리고 군도 흔들린다.
KF-21 블록Ⅱ만 보더라도 후속 80대 양산에는 18조 원대의 돈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핵잠은 더 크고 더 길다. 정부의 기본계획이 현실화되면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 원자로, 연료, 정비기반, 승조원 양성까지 묶인 장기 사업이 된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은 해마다 남는 예산을 모아 처리할 수 없다. 시작할 때부터 국가전략계정으로 따로 묶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단순 증액이 아니다. 전략계정화다. KF-21 전력화 패키지 계정, 핵잠 장기추진 계정, 핵심 무장·부품 국산화 계정처럼 사업의 성격에 맞는 칸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조세감면과 자동지출 구조는 시대 변화에 맞게 점검하고, 세입 회복분의 일부는 국가전략투자에 직접 묶어야 한다. 이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KF-21과 핵잠은 예산표의 경쟁 항목이 아니라, 한국이 하늘과 바다에서 버티기 위해 따로 잠가야 할 장기 전략계정이다.
결국 정부의 의지는 여기서 드러난다. 말로는 자주국방을 말하면서 양산 단계에서 흔들리면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말로는 핵잠을 말하면서 장기 재정계정을 만들지 못하면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말로는 재정개혁을 말하면서 자동지출과 조세감면과 단년도 심사 구조를 손보지 못하면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국가전략은 구호가 아니라 예산의 칸과 법의 구조로 증명된다.
국가전략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고, 다년도 예산과 법정 계정과 공급망 패키지로 완성된다.
KF-21과 핵잠이 동시에 온 것은 부담이 아니라 기회다
한국은 지금 드문 국면에 서 있다. 하늘에서는 KF-21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양산과 전력화 단계로 들어섰다. 바다에서는 핵잠 추진이 현실의 문턱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나는 수십 년 국산 전투기 염원의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수십 년 해양 전략 염원의 출발점이다. 둘이 동시에 온 것은 우연이지만, 동시에 밀어야 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KF-21을 미루면 노후 전투기 대체, 조종사 안전, 항공산업 생태계, 국산 무장 통합, 수출 신뢰가 흔들린다. 핵잠을 미루면 해상 억제력, 장기 잠항 능력, 북한 잠수함발사 미사일 대응, 원해 작전 기반이 뒤로 밀린다.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방식은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큰 결정을 회피하는 예산 행정에 가깝다.
국가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KF-21은 양산과 무장과 부품과 후속군수를 묶어 끝까지 간다. 핵잠은 별도 국가전략계정으로 착수해 장기적으로 밀어붙인다. 교육교부금만이 아니라 조세감면, 의무지출, 지방이전, 단년도 심사 구조까지 함께 점검한다. 민생지원과 복지와 전략투자를 뒤섞어 서로 싸움 붙이지 않는다. 이 정도 원칙이 없으면, 한국은 개발은 성공하고 전력화에서 흔들리는 나라로 남게 된다.
결국 문제는 돈 한 줄이 아니다. 문제는 의지와 구조다. KF-21과 핵잠은 예산표에서 경쟁할 사업이 아니다. 흔들리는 세계질서 속에서 한국이 동시에 밀어야 할 두 개의 국가전략이다. 정부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답은 분명하다. KF-21은 미루지 말고 마무리해야 하고, 핵잠은 늦추지 말고 시작해야 한다.
KF-21과 핵잠이 동시에 현실 문턱에 온 것은 부담이 아니라 기회이며, 그 기회를 살리려면 예산표가 아니라 국가전략표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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