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걷는 만큼의 땅’이라는 거짓말
미국 건국의 서사 뒤에는 말없이 쫓겨난 한 민족이 있다. 그들은 백인과 가장 먼저 평화를 맺었고,
가장 먼저 조약을 체결했으며, 가장 먼저 모든 조약이 깨진 민족이었다. 레나페족(Delaware Nation).
이 시리즈는 그들의 250년 궤적을 따라가며 조약이 어떻게 희망이었고, 어떻게 배신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무엇을 남길 수 있었는가를 기록한 여정이다.
윌리엄 펜과 펜실베이니아, 진짜 이야기
펜실베이니아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전설이 있다.
“하루 동안 걸어간 거리만큼의 땅만 원한다.”
정직한 백인이 정직한 거래로 원주민의 신뢰를 얻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말이 실현된 사건은 오히려 사기극이었다.
그리고 이 사기극은, 그 전 세대의 진심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 윌리엄 펜, 진짜 평화를 시도한 사람
1681년,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해군 제독의 아들이자 퀘이커 교도인 윌리엄 펜에게 막대한 식민지 땅을 하사한다.
그는 그 땅을 'Pennsylvania', 즉 ‘펜의 숲’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펜은 땅을 가진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땅의 원래 거주민, 레나페(Delaware)족 원주민들과 만나 정식으로 조약을 맺고 대가를 지불했다.
1682년, 펜은 슈아킬 강 근처 느릅나무 아래에서 말 그대로 악수와 약속으로 땅을 얻었다.
그 조약은 어떠한 강제력도 없이, 상호 존중으로 체결되었고 수십 년간 유지되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이 사건을 두고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지켜진 조약”
이라 평했다.
팝파윈소 추장, 1737년, 미의회도서관
🧾 문제는 1737년, 아들 토머스 펜부터였다
윌리엄 펜이 1718년 사망한 뒤, 펜실베이니아의 실권은 그의 아들들—특히 토머스 펜—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이들은 1737년, 충격적인 사건을 벌인다.
그 유명한 워킹 퍼처스(Walking Purchase) 사기극이다.
그들은 추장 팝파윈소등 원주민들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1686년에 네 조상들이 ‘하루 동안 걷는 만큼의 땅’을 넘긴다는 계약을 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이제 이행하려 한다.”
하지만,
- 그 계약서는 진짜인지도 불분명했고,
- 당시 원주민 추장들은 본 적도 없는 문서였으며,
- ‘걷는다’는 조건을 악용해 훈련된 러너로 120km 가까이를 ‘달리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레나페족은 예정된 10배가 넘는 영토를 빼앗겼다.
🗺️ 식민지 정부는 왜 이런 사기를 벌였나?
- 18세기 중엽, 유럽계 정착민들의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고
- 식민지 정부는 ‘합법적인 명분’을 통해 서부 확장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 윌리엄 펜의 명성과 조약 이력은 강탈을 포장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결국 펜의 이름으로 원주민은 쫓겨났고,
펜의 명예는 침묵 속에서 소비되었다.
⚖️ 진실이 지워지는 방식
“하루 걸은 만큼만 땅을 달라.”
이 말은 본래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다고 주장된 계약서도 아들 세대에서 목적을 위해 위조되었거나 오용된 것이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전설은
사기를 덮기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텔링이다.
✍️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 윌리엄 펜은 실제로 원주민을 존중한 예외적인 식민지 개척자였다.
- 그러나 그의 후손은 아버지의 명성을 이용해 땅을 탈취했고,
- 그 결과로 만들어진 전설은 조약이 아닌 강탈의 기억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모순이 아니라,
좋은 뜻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볼테르가 말한 ‘역사상 유일하게 지켜진 조약’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시리즈 목차>
- ‘하루 동안 걷는 만큼의 땅’이라는 거짓말
- 볼테르가 말한 ‘역사상 유일하게 지켜진 조약’
- 조약은 어떻게 전쟁이 되었는가
- 레나페족은 이후 어떻게 되었나
- 인디언 이주법과 레나페족의 최후 거주지
- 프렌치-인디언 전쟁 이후, 레나페족의 운명
- 미국 독립전쟁과 레나페족의 마지막 분열
- 왜 레나페족은 미국 독립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는가
- 조약은 모두 깨졌지만, 레나페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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