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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와 황금의 제국 이후, 한국 드라마는 왜 권력의 구조를 잃었나

형성하다2026. 6. 1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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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 드라마가 권력 구조를 쓰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드라마에는 권력을 꽤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들이 있었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 〈비밀의 숲〉, 〈돈꽃〉 같은 작품들이 그 예다. 이 글이 묻는 것은 “왜 없었나”가 아니라 “왜 요즘은 그 밀도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나”이다.

〈신입사원 강회장〉을 보며 다시 떠오른 질문

〈신입사원 강회장〉을 보며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는 권력을 어떻게 써왔고, 지금은 왜 자꾸 그 구조를 놓치는가.

재벌 드라마는 여전히 많다. 검찰 드라마도 있고, 정치 드라마도 있고, 언론과 자본의 부패를 말하는 작품도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최근 드라마에서 권력은 점점 단순해진다. 나쁜 회장, 타락한 검사, 탐욕스러운 정치인, 악독한 가족, 양심 없는 언론인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그들을 응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물론 그런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이다는 필요하고, 분노는 드라마를 움직이는 강한 동력이다. 그러나 권력극이 오래 남으려면 악인이 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그 악인이 어떻게 버티는가이다. 어떤 제도와 돈과 관계가 그를 보호하는가. 누가 침묵하고, 누가 거래하고, 누가 손해를 보며, 누가 살아남는가. 그 구조가 보여야 권력극이 된다.

권력극의 핵심은 나쁜 사람을 세게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쁜 사람이 계속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추적자〉는 개인 복수극처럼 시작했지만 권력 시스템의 드라마였다

〈추적자 THE CHASER〉는 표면적으로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다.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의 이야기다. 이 설정만 보면 개인 복수극처럼 보인다. 한 아버지의 분노와 슬픔이 중심에 있는 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추적자〉가 강했던 이유는 단순히 아버지의 분노를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한 사건 뒤에 정치, 검찰, 언론, 재벌, 선거, 법정, 여론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줬다. 개인의 비극이 사회 구조와 연결되는 순간, 드라마의 무게는 달라졌다.

딸의 죽음은 한 가정의 비극이지만, 그 비극을 덮는 과정은 권력의 작동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증거를 감추고, 누군가는 여론을 돌리고, 누군가는 법을 이용하고, 누군가는 선거판을 계산한다. 그 속에서 아버지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뚫고 들어가는 힘이 된다.

그래서 〈추적자〉의 인물들은 선악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악인은 악하지만, 그 악은 개인의 성격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제도와 조직과 이해관계가 악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이 〈추적자〉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권력 시스템의 드라마로 남은 이유다.

〈추적자〉의 진짜 무서움은 악인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악인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에 무서웠다.

〈황금의 제국〉은 재벌 막장이 아니라 자본 권력의 드라마였다

〈황금의 제국〉은 더 노골적으로 구조를 다뤘다. 이 작품은 재벌가 가족 싸움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가족 안에서 배신하고, 결혼하고, 거래하고, 밀어내고, 차지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가족 막장이 아니라 자본 권력의 드라마였다.

〈황금의 제국〉은 한국 경제의 격동기 속에서 누가 기업을 차지하고, 누가 돈의 흐름을 잡고, 누가 제왕의 자리에 오르는지를 다뤘다. 가족은 감정의 단위이면서 동시에 지분과 승계의 단위였다. 사랑과 배신도 있었지만, 그 감정은 언제나 자본과 회사의 구조 안에서 움직였다.

이 드라마가 쉽게 소비되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승리해도 찝찝하고, 패배해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세계였다. 자본의 질서는 냉혹했고, 권력은 쉽게 선한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 점에서 〈황금의 제국〉은 지금 보면 더 드문 드라마다. 재벌가를 화려한 공간이나 자극적인 가족 갈등으로만 쓰지 않았다. 회사와 돈, 지분과 승계, 경제 격동기와 개인의 욕망이 함께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었다.

〈황금의 제국〉은 재벌가의 감정극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얼굴을 한 자본 권력의 드라마였다.

박경수·조남국 조합이 보여준 것은 구조를 쓰는 힘이었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을 함께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두 작품은 권력을 감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연출의 조합은 인물의 분노를 세게 밀고 가면서도, 그 분노가 부딪히는 구조를 놓치지 않았다.

분노는 있었다. 억울함도 있었고, 복수도 있었고, 가족의 비극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공중에 떠 있지 않았다. 검찰, 정치권, 언론, 재벌가, 기업, 법정, 선거, 금융이 함께 움직였다. 감정은 구조 안에서 발생했고, 구조는 감정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좋은 권력극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든다. 다만 그 감정이 제도와 조직과 돈의 흐름 속에 놓일 때 힘이 생긴다. 아버지의 분노는 권력 시스템과 부딪힐 때 더 강해지고, 재벌가의 욕망은 자본 구조 안에서 움직일 때 더 설득력 있어진다.

작품 표면의 이야기 실제 힘이 나온 지점
추적자 딸을 잃은 아버지의 진실 추적 정치·검찰·언론·재벌이 사건을 덮는 권력 구조
황금의 제국 재벌가 내부의 가족·승계 싸움 한국 경제 격동기와 자본 권력의 작동 방식
좋은 권력극 분노와 복수, 배신과 갈등 그 감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돈의 구조

권력의 얼굴은 많아졌지만 권력의 통로는 흐려졌다

지금 한국 드라마가 권력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자는 많이 나온다. 재벌 회장도 나오고, 검사장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오고, 언론사 대표도 나온다. 권력의 얼굴은 넘쳐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권력의 얼굴이 아니라 권력의 통로다. 그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누구에게 전화하는가. 어떤 문서가 사라지는가. 어떤 기사가 나가고 어떤 기사가 묻히는가. 어떤 인사가 승진하고 어떤 사람이 좌천되는가. 어떤 돈이 계열사를 돌아 어디로 들어가는가.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은 그 통로를 보여줬다. 그래서 오래 남았다. 지금 많은 드라마가 놓치는 것은 권력이라는 소재가 아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경로를 보여주는 집요함이다.

권력극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누가 나쁜가가 아니라, 그 나쁜 힘이 어떤 통로를 통해 계속 작동하는가이다.

요즘 드라마는 악인을 세게 만들지만 구조는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최근 드라마에서 악인은 더 강해졌다. 더 잔인하고, 더 뻔뻔하고, 더 권력적이다. 문제는 그 악인이 왜 계속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쁜 회장이 있다. 그런데 그 회장이 어떻게 지분을 장악했는지, 어떤 금융권과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법률팀과 언론을 이용하는지, 어떤 정치적 안전망을 갖고 있는지는 흐릿하다. 나쁜 검사가 있다. 그런데 검찰 조직의 인사 구조와 정치적 거래, 수사권의 작동 방식은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권력은 인물의 성격으로 축소된다. 악한 사람 하나가 모든 문제의 원인처럼 보인다. 그리고 주인공이 그 사람을 이기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권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이 물러나도 구조는 남는다.

권력을 악인의 성격으로만 설명하면 드라마는 쉬워진다. 그러나 그 순간 권력극의 깊이는 약해진다.

권력은 사람보다 구조로 오래 버틴다

권력은 나쁜 사람 하나로 유지되지 않는다. 권력은 자리, 돈, 인사, 법, 정보, 네트워크로 버틴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 누가 어떤 문서에 접근하는가, 누가 돈줄을 쥐는가, 누가 보도를 막는가, 누가 사건을 늦추는가가 권력을 만든다.

좋은 권력극은 이 지점을 안다. 그래서 인물을 세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인물이 움직이는 통로를 보여준다. 전화 한 통이 왜 힘을 갖는지, 회의실의 침묵이 왜 무서운지, 보고서 하나가 왜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인사 발령 하나가 왜 판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이 오래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작품은 권력을 얼굴로만 보여주지 않았다. 권력의 통로를 보여줬다. 법정과 선거판, 기업 회의실과 가족 식탁, 언론 보도와 내부 거래가 서로 이어지는 방식을 보여줬다.

얕은 권력극: 악인이 강해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깊은 권력극: 악인이 작동할 수 있는 제도와 돈의 구조가 보인다.
얕은 재벌극: 가족 싸움과 불륜, 배신만 남는다.
깊은 재벌극: 가족 갈등이 지분, 승계, 사업, 정치와 연결된다.

왜 구조를 쓰는 드라마가 줄어들었을까

그렇다면 왜 요즘 드라마에서는 이런 구조극이 드물어졌을까. 단순히 작가의 능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산업 환경도 달라졌다.

요즘 드라마는 빠르게 시청자를 붙잡아야 한다. 플랫폼은 초반 이탈을 두려워하고, 클립은 강한 장면을 요구하며, 제작비는 커졌고, 실패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구조를 천천히 쌓는 작품보다, 바로 이해되는 설정과 빠른 자극이 선호된다.

권력 구조를 제대로 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인물 관계를 세워야 하고, 제도와 조직을 설명해야 하며, 돈과 권력이 이동하는 방식을 누적해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다. 한 장면의 사이다보다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구조극은 귀하다. 쉽게 소비되지는 않지만, 잘 만들어지면 오래 남는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이 지금도 거론되는 이유는 당시의 화제성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읽을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윤리와 분노는 필요하지만 구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권력 드라마에는 분노가 필요하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 억울한 사람의 절망, 무너진 제도에 대한 질문이 있어야 시청자가 움직인다. 윤리도 필요하다. 드라마가 아무 질문 없이 권력의 기술만 보여주면 차갑고 공허해질 수 있다.

문제는 윤리와 분노가 구조를 대신할 때다. 작가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충분히 쓰지 못하면 가장 쉬운 길로 간다. 권력은 나쁘다. 돈은 사람을 망친다. 욕망은 허무하다. 복수는 비극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만 남으면 드라마는 얕아진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은 분노가 있었지만, 그 분노가 구조와 부딪혔다. 그래서 힘이 있었다. 시청자는 단지 악인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악인을 보호하는 구조를 보았다. 그래서 더 답답했고, 더 몰입했고, 더 오래 기억했다.

윤리와 분노는 권력극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극의 완성은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를 보여줄 때 가능하다.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 문제는 현대 권력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드라마의 고증과 왜곡 논란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시대의 구조를 모르고 현대인의 감정만 덧씌우면 작품은 쉽게 어긋난다.

역사드라마에서 고증이 중요한 이유는 옷 색깔이나 말투를 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왕권과 신권, 신분제, 관료제, 군제, 재정, 외교 질서, 생활 조건을 알아야 인물이 그 시대 사람처럼 움직인다. 그것을 모르면 왕은 현대 정치인처럼 말하고, 신하는 시민단체처럼 행동하며, 전쟁은 선악 대결처럼 단순해진다.

원작 각색도 마찬가지다. 원작의 장르 구조를 모른 채 작가가 자기 메시지를 덧씌우면 원작 훼손 논란이 생긴다. 역사 구조를 모른 채 자기 감정을 앞세우면 역사왜곡 논란이 생긴다. 결국 문제는 바꾸는 것이 아니다. 모르고 바꾸는 것이다.

원작 각색 문제도 구조를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이 흐름은 최근 웹소설·웹툰 원작 드라마에서도 반복된다. 원작을 가져오면서도 원작의 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설정은 가져오지만, 구조는 바꾸려 한다. 독자가 왜 그 이야기를 따라갔는지보다,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앞세운다.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 논란이 대표적이었다. 산경 원작은 기업 권력게임의 쾌감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드라마는 마지막에 윤리극과 회귀 해소의 방향으로 꺾였다. 시청자가 분노한 것은 결말이 슬퍼서가 아니라, 그동안 따라온 장르의 약속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강회장〉을 보며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경 원작의 구조가 살아나면 강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조를 감정극이나 교훈으로 덮으면 〈재벌집 막내아들〉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 강회장〉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신입사원 강회장〉은 단순한 영혼 교환 코미디로만 볼 수 없다. 회장 머리를 가진 신입사원이 회사의 낮은 자리에서 다시 조직을 본다는 설정은 권력 구조를 보여주기에 좋은 장치다.

회장은 회사 전체를 안다. 돈이 어디서 흐르는지, 누가 누구 편인지, 어느 사업이 핵심인지, 어떤 인사가 판을 바꾸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몸은 신입사원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회사의 부조리와 현장의 진짜 표정을 본다. 이 두 시선이 겹칠 때 드라마는 힘을 얻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에서 보는 권력과 아래에서 겪는 조직이 동시에 보일 수 있다. 회장실의 계산과 사무실의 체감이 함께 움직일 수 있다. 이 구조가 살아나면 〈신입사원 강회장〉은 단순한 사이다극을 넘어설 수 있다.

감정극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장르의 위치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감정극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드라마는 결국 감정을 다룬다. 사랑, 분노, 후회, 상처, 연민이 없다면 드라마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감정이 작품의 본질인지, 구조 위에 얹히는 요소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사랑의 오해와 마음의 번역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감정이 중심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작품에서는 인물의 마음이 곧 구조다.

하지만 권력극은 다르다. 권력극에서 감정은 구조 안에서 힘을 얻는다. 가족 갈등도 지분과 승계 속에 놓일 때 더 강해지고, 복수도 법과 돈과 조직의 벽에 부딪힐 때 더 절실해진다. 감정이 구조를 보강하면 좋지만, 감정이 구조를 지워버리면 작품은 약해진다.

장르 안에서 메시지를 넣는 것은 가능하다

메시지 자체도 문제는 아니다. 드라마는 사회를 말할 수 있고, 제도의 문제를 말할 수 있고, 인간의 욕망과 윤리를 말할 수 있다. 다만 메시지는 장르의 뼈대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액션 스릴러는 액션 스릴러답게 움직이면서도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법정물은 법정물답게 싸우면서도 정의의 허점을 말할 수 있다. 재벌물도 재벌물답게 권력게임을 밀고 가면서 인간의 욕망과 허무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메시지를 넣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가 장르를 이겨버리는 순간이다. 권력극이 갑자기 착한 교훈극으로 닫히면, 시청자는 그동안 따라온 권력의 판이 허무해졌다고 느낀다.

한국 드라마가 잃어버린 것은 권력의 소재가 아니라 권력의 경로다

한국 드라마가 권력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의 소재는 넘친다.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경로다. 재벌 회장이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과 재벌 권력의 작동 방식이 보이는 것은 다르다. 검사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과 검찰 조직의 인사, 수사, 정치적 거래가 보이는 것은 다르다.

권력극은 얼굴보다 통로가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누구에게 전화하는가. 어떤 문서가 사라지는가. 어떤 기사가 나가고 어떤 기사가 묻히는가. 어떤 사람이 승진하고 어떤 사람이 좌천되는가. 어떤 돈이 계열사를 돌아 어디로 들어가는가. 이런 경로가 살아 있을 때 권력은 드라마 안에서 실제처럼 움직인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 이후의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지금도 한국 드라마가 권력을 다루려면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악인은 충분히 세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악인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를 얼마나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느냐다.

한국 드라마가 잃어버린 것은 권력의 얼굴이 아니다. 권력이 움직이는 경로를 끝까지 추적하는 힘이다.

마지막 정리: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 이후, 남은 질문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은 한국 드라마 안에서도 권력 구조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개인의 분노와 가족의 욕망을 다루면서도, 그 감정이 정치, 검찰, 언론, 자본, 재벌가, 법과 제도 속에서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두 작품은 단순히 오래된 명작으로만 남지 않는다. 지금 드라마를 볼 때도 하나의 기준처럼 떠오른다. 악인이 강한가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구조로 보이는가다. 사건이 자극적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어떤 제도와 돈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가다.

많은 최근 드라마가 자주 놓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권력자는 많지만 권력의 구조는 약하다. 분노는 많지만 분노가 부딪히는 제도는 흐릿하다. 윤리는 많지만 윤리를 필요하게 만든 시스템은 잘 보이지 않는다.

좋은 권력극은 악인을 처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악인이 가능했던 구조를 보여줄 때 오래 남는다.

〈신입사원 강회장〉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다시 회사와 재벌가, 위와 아래, 회장실과 신입사원의 자리를 동시에 볼 기회를 갖고 있다. 그 구조가 살아난다면 단순한 사이다극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구조가 감정과 교훈으로 흐려진다면 또 익숙한 권력극의 한계로 돌아갈 수 있다.

〈추적자〉와 〈황금의 제국〉 이후, 한국 드라마는 왜 권력의 구조를 잃었나. 이 질문은 한두 작품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지금도 권력을 말하는 드라마들이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권력은 얼굴이 아니라 구조로 움직인다. 그 구조를 볼 때 드라마는 비로소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