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은 어떻게 전쟁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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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펜의 평화, 그리고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서막


윌리엄 펜과 레나페족이 맺은 평화 조약은 17세기 북미 식민지 역사에서 드문 기록이었다.
그 조약은 무력 없이, 말과 악수로, 그리고 상호 존중 속에서 체결되었고,
수십 년간 실제로 잘 지켜졌다.

하지만 그 조약은 18세기 초 무너졌고,
그 조약의 붕괴는 단지 펜실베이니아의 질서를 깨뜨린 것이 아니라
북미 대륙 전체를 전쟁으로 이끄는 불씨가 되었다.


1. 펜의 조약은 평화를 실현했지만

  • 1682년~1718년 (윌리엄 펜 생전):
    레나페족은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면서 유럽 이민자들과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했다.
    조약은 단지 종이에 쓰인 문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질서였다.
  • 하지만 펜 사후, 그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1737년 ‘워킹 퍼처스’ 사기극을 벌이며
    원주민의 광대한 영토를 탈취하고, 일방적인 추방을 강행했다.

2. 강탈된 레나페족, 프랑스 진영으로 넘어가다

레나페족은 고립됐다.
더 이상 펜실베이니아 정착민들과 신뢰도 없고, 대화의 채널도 끊겼다.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1. 영국 식민정부와의 불균형한 관계를 감수할 것인가
  2. 프랑스와 손을 잡고 저항의 길로 나설 것인가

결국 레나페족을 포함한 많은 부족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영국 식민지에 맞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전선 구성이다.


3.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기본 구도

  • 프랑스 + 여러 원주민 부족(레나페, 쇼니, 오타와 등)
    vs
  • 영국 + 일부 동부 부족(이로쿼이 연맹 등)

레나페족은 전쟁 초기

  • 피츠버그, 오하이오 강 유역 등지에서 주도적으로 영국 정착지를 습격했고
  • 영국의 식민 확장에 맞서 싸운 핵심 원주민 세력이었다.

즉, 윌리엄 펜이 맺었던 ‘동맹’은 아들들에 의해 ‘적’으로 바뀌었고,
그 전환이 프랑스-영국 간 대리전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4. 조약의 붕괴가 만든 지정학적 결과

  • 펜실베이니아의 평화가 깨진 이후,
    원주민들은 전략적 파트너에서 무장 저항 세력으로 전환되었고
  • 북미 내 식민 경계는 단순한 영토 갈등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문화적 충돌의 전장이 되었다.

특히 영국 입장에서는

  • 내부에서 배신당한 자들과의 전쟁이었고
    레나페족 입장에서는
  • 한때 약속했던 ‘대화의 공간’을 앗아간 자들에 대한 복수였다.

5. 윌리엄 펜의 조약은 왜 중요했나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단순한 식민지 충돌이 아니다.
그 안엔 하나의 실패한 약속이 있다.

  • 그 약속은 무력 없는 공존이 가능하다는 실험이었다.
  • 하지만 그 실험은 상속된 권력에 의해 배신당했고,
  • 그 배신이 결국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전면전의 단초가 되었다.

✅ 결론

  • 윌리엄 펜과 레나페족의 조약은 실제로 존재했고, 지켜졌다.
  • 하지만 그 조약은 펜의 아들들에 의해 사기극으로 대체되었고,
  • 레나페족은 그 배신을 기억하며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 결과적으로 조약의 붕괴는 전쟁의 뿌리가 되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땅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말의 배신에서 시작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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