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인디언 전쟁 이후, 레나페족의 운명
프렌치-인디언 전쟁 이후, 레나페족의 운명
프랑스를 위해 싸운 대가, 돌아온 건 또 다른 배신
레나페족(Delaware족)은 한때 윌리엄 펜과 평화로운 조약을 맺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조약은 1737년 ‘워킹 퍼처스’ 사기극으로 깨졌고,
레나페족은 백인 정착민에 대한 신뢰를 잃은 채
1750년대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에서 프랑스 측에 가담하게 된다.
그들은 영국 식민지 확장을 막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그 대가는 새로운 추방과 분열이었다.
⚔️ 1. 전쟁 중, 레나페족은 누구와 어떻게 싸웠는가?
- 프랑스 연합군 소속으로, 영국 정착지를 공격
- 오하이오강 유역과 펜실베이니아 변두리에서
영국 정착민 수백 명을 습격하는 게릴라 전술 수행 - 1755년 브래독 전투(Battle of the Monongahela)에서
영국군을 궤멸시킨 주역 부족 중 하나
이 시기 레나페족은 단순한 연합세력이 아니라,
전략적 주체로서 북미 중부 전선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인 부족이었다.
🏳️ 2. 전쟁 결과: 프랑스 패배 → 원주민의 외교 붕괴
- 1763년 파리조약 체결 → 프랑스는 북미에서 완전히 철수
-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 동부의 대부분 영토가 영국령으로 편입
📌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 프랑스는 레나페족과 맺은 모든 조약과 지원을 철회했고
- 영국은 레나페족을 반역자 혹은 적대세력으로 분류하며
어떠한 보상도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레나페족은
자신이 지킨 땅에서 프랑스를 위해 싸운 대가로
영국과 원한만 남긴 채 완전히 고립된다.
🔥 3. 포티악 전쟁(1763–1766): 절망 속 최후의 봉기
전쟁 직후 레나페족은 **오타와 족 추장 포티악(Pontiac)**과 함께
영국 식민지에 최후의 반란을 일으킨다.
- 이 전쟁에서 레나페는 다시 주력 부족으로 싸웠고
- 디트로이트 요새, 포트피트, 포트레보니아 등을 공격함
그러나 이 봉기는 3년 만에 진압되며 끝나고,
레나페족은 이제 어떤 식민 세력에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 4. 이주와 분열의 시작
- 1760~1770년대: 오하이오강 유역에서의 퇴거 압박
- **미국 독립전쟁기(1775~1783)**에는 일부가 미국, 일부는 영국, 일부는 중립이라는 내부 분열을 겪음
- 결국 1780~1820년대 사이, 레나페족은 다음 지역으로 차례로 이동하게 된다:
펜실베이니아 → 오하이오 → 인디애나 → 미주리 → 캔자스 → 오클라호마
※ 이 과정은 앞서 설명한 **인디언 이주법(1830)**과 맞물리며 최종 강제 이주로 이어진다.
🧭 5. 결과: 전투민족에서 망명민족으로
- 전쟁 당시엔 ‘군사적 실체’였던 레나페족은
- 19세기 초엔 완전한 추방 상태의 난민 집단이 되었고
- 연방 정부는 그들을 다른 부족의 보호구역 안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레나페족은 다섯 곳 이상으로 분산되어 존재하며
하나의 독립된 정치 공동체로서의 연속성은 붕괴되었다.
✅ 정리하며: 무너진 조약, 대가 없는 충성, 반복되는 추방
- 펜과 맺은 조약은 깨졌고,
- 프랑스를 위해 싸운 노력은 외면당했으며,
- 영국에게는 보복 대상이 되었고,
- 미국 정부에겐 그저 또 하나의 이주 대상이 되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 이후 레나페족의 운명은
‘어느 편에 서든 배신당하는 자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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