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미국도, 그들에겐 끝내 조약을 지키지 않았다
18세기 후반, 레나페족은 이미 한 번 배신당한 경험이 있었다.
윌리엄 펜과의 조약은 아들들에 의해 무너졌고,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는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프랑스가 패망하면서 고립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1775년, 미국은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은 백인들의 내전이었지만,
레나페족과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에게는 생존을 건 외교적 함정이었다.
⚖️ 1.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미국 독립전쟁은 원주민들에게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 영국 왕실의 ‘옛 조약’을 믿고 잔류
- 새로운 식민지 국가인 미국의 편에 서서 주권 회복을 시도
- 중립을 유지하며 눈치 보기
레나페족은 여기서 세 갈래로 갈라진다.
⚔️ 2. 분열의 구체적 양상
① 보수파 – 친영국 진영
- "미국 정착민은 조약을 깼고, 땅을 빼앗은 자들이다"라는 인식
- 특히 오하이오 강 유역의 일부 레나페 공동체는 영국과 연합
📌 이들은 나중에 영국의 패배와 함께 대규모 추방을 당함
② 개혁파 – 친미 진영
- 미국 독립세력과 조약 체결을 시도
- 1778년, **미국 대륙회의(Congress of the United States)**는
레나페족과 사상 최초의 미국-원주민 조약을 체결함
"Delaware Nation이 독립한 원주민 연합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조항까지 포함됨
📌 그러나 이 조약은 불과 몇 년도 못 가 백인 민병대의 학살로 파기
③ 중립파 – 평화 유지 시도
- 대부분의 노인, 여성, 농경 중심 공동체는 중립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 어느 진영에서도 의심받으며 공격당하는 이중 고통을 겪음
🩸 3. 그 결과: 그나마 남은 연대까지 해체되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782년 3월 ‘그나든후튼 학살(Gnadenhutten massacre)’**이다.
- 기독교 선교사에 의해 개종한 평화적 레나페 마을 주민 96명이
- 미국 민병대에 의해 ‘영국 협력 혐의’로 학살당함
-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릎 꿇린 채 총살
이 사건은 레나페족 내부에 남아 있던 미국 측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붕괴시키고
결정적 분열의 기점이 된다.
🗺️ 4. 그 후: 이주는 계속되고, 통합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 독립전쟁 이후 미국은
레나페족을 조약 파기 대상이 아닌 '전쟁 협력자'로 간주했고 - 1790년대부터는 연방정부의 인디언 정책에 따라
캔자스·미주리·오클라호마로의 이주가 가속화
이 과정에서:
- 일부는 위스콘신으로 북상
- 일부는 캐나다로 탈출
- 일부는 체로키 자치구역에 병합
- 일부는 인정 부족조차 받지 못한 채 문서에서 사라짐
✅ 결론: 독립국가의 탄생과, 민족 공동체의 해체
미국은 독립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나페족은:
- 한때 '펜과의 조약'을 지킨 민족이었고
- 프랑스를 위해 싸웠고
- 미국과도 최초의 조약을 맺었지만
모든 조약에서 배신당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세 갈래로 찢겼고,
그 균열은 오늘날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 “독립”이라는 이름 아래, 레나페는 독립하지 못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이 땅을 가졌고,
누구보다 많이 조약을 맺었지만
어느 조약도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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