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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동자의 뉴턴 히스에서 만수르의 맨체스터 시티까지, 맨체스터 축구는 어떻게 세계 자본의 산업이 되었나

형성하다2026. 7. 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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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에서 맨체스터 축구까지

제국의 사적 권력, 산업도시의 모순, 노동자의 문화가 세계 자본의 자산으로 변한 과정을 잇는 세 편의 연작입니다.

첫 번째 장면

보스턴 차 사건과 아편전쟁은 왜 동인도회사라는 사적 권력에서 만나는가

국가의 이름을 빌린 회사가 무역과 전쟁, 의회와 금융을 움직이며 사적 이익을 제국의 책임으로 바꾼 구조를 살펴봅니다.

제국의 바깥에서 본토의 산업도시로

두 번째 장면

맨체스터리즘이란 무엇인가, 산업혁명의 도시가 노동운동과 여성참정권을 낳은 이유

자유무역과 산업자본의 도시가 노동자의 빈곤과 정치적 배제, 노동운동과 여성참정권 운동을 함께 만든 이유를 살펴봅니다.

공장과 거리의 공동체에서 경기장과 세계 시장으로

세 번째 장면

철도 노동자의 뉴턴 히스에서 만수르의 맨체스터 시티까지, 맨체스터 축구는 어떻게 세계 자본의 산업이 되었나

철도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가 만든 축구가 방송권, 국제 후원, 해외 자본과 도시개발이 결합한 세계 산업으로 변한 과정을 살펴봅니다.

맨체스터 축구는 노동자의 공동체에서 출발했지만, 그 공동체가 만든 충성심과 도시의 기억은 훗날 세계 자본이 가장 탐내는 자산이 됐다.

뉴턴 히스의 철도 노동자와 웨스트고튼의 교회 공동체가 만든 팀은 방송권과 국제 후원, 금융시장과 도시개발, 국가 이미지가 결합한 거대한 산업으로 변했다. 맨체스터 축구의 역사는 축구가 노동자에게서 자본으로 단순히 넘어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의 기억이 어떻게 세계시장의 상품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앞선 글인 맨체스터리즘이란 무엇인가, 산업혁명의 도시가 노동운동과 여성참정권을 낳은 이유에서는 면직물 공장과 자유무역이 키운 맨체스터가 노동자를 착취하면서도 노동운동과 참정권 운동을 함께 만들어낸 과정을 살펴봤다.

공장제 생산은 노동자를 기계 앞에 묶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같은 시간과 공간에 모았다. 노동자는 작업장과 철도차량기지, 교회와 주택가, 선술집과 빈 공터에서 서로를 만났다. 그들이 만든 공동체는 임금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퇴근 뒤 공을 차고, 같은 작업장의 동료를 응원하고, 자신이 사는 지역의 이름을 걸고 다른 동네와 겨루는 축구도 그 공동체에서 나왔다. 산업도시가 노동자를 집단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맨체스터의 축구 역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성장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는 노동자의 여가조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한 구단은 세계적 상표와 미국 증시, 부채와 사모자본의 논리 속에 들어갔고, 다른 구단은 아부다비 자본과 다구단 체제, 도시개발과 국가 이미지 전략의 중심이 됐다.

이 변화는 축구의 타락을 말하는 단순한 도덕극이 아니다. 노동자가 만든 문화가 세계적 가치를 얻자, 그 문화에 축적된 충성심과 기억, 도시 이름과 세대의 시간이 금융자산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과정이다.

뉴턴 히스, 철도 노동자는 왜 축구팀을 만들었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출발점은 1878년 만들어진 뉴턴 히스 랭커셔·요크셔 철도 축구단이었다. 팀을 만든 사람들은 뉴턴 히스 철도차량기지의 차량·화차 부서 노동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세계적 구단을 꿈꾼 사업가들이 모인 것이 아니었다.

철도는 산업혁명기의 맨체스터를 움직이는 혈관이었다. 원료와 상품을 나르고 노동자를 도시로 불러들였으며, 지역과 지역을 새로운 시간표 안에 묶었다. 철도회사는 수많은 노동자를 같은 규율 아래 일하게 했고, 작업장은 자연스럽게 직장 공동체를 만들었다.

축구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비나 넓은 실내공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공과 빈터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다. 경기는 육체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오락이면서, 서로 다른 부서와 철도회사, 인근 지역이 경쟁하는 집단의식의 무대였다.

팀 이름에 회사와 작업장의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초기 축구단은 오늘날의 독립된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직장과 교회, 학교와 지역조직에 붙어 있던 공동체의 일부였다. 선수와 관중의 경계도 지금보다 흐렸다. 경기를 뛰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 모두 같은 거리를 걷고 비슷한 공장에서 일했다.

뉴턴 히스의 축구는 노동자가 자본과 분리된 순수한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철도회사라는 산업조직 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조직이 제공하지 못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문화였다.

회사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되기까지

뉴턴 히스는 철도 노동자의 팀으로 출발했지만, 리그에 참가하고 더 많은 관중을 모으면서 운영비가 커졌다. 경기장을 빌리고 선수를 확보하며 원정경기를 다니려면 안정적인 돈이 필요했다. 공동체의 놀이가 정기적인 흥행산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구단은 재정난에 빠졌고 1902년 존 헨리 데이비스를 비롯한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아 회생했다. 이때 이름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바뀌었다. 뉴턴 히스라는 한 지역과 철도회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도시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다.

이름의 변화는 구단이 성장한 방향을 보여준다. 지역 작업장의 팀은 더 넓은 맨체스터의 관중을 모으는 구단이 됐다. 1910년 올드 트래퍼드로 이동하면서 경기장은 단순히 공을 차는 빈터가 아니라 많은 관중을 수용하고 입장료를 거두는 대형 시설이 됐다.

축구단은 노동자 공동체의 바깥으로 성장했지만, 노동자의 기억을 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뉴턴 히스라는 출발점은 구단의 정통성과 서사를 구성하는 자산이 됐다. 철도 노동자가 만든 팀이라는 기억은 현재까지도 유나이티드가 자신을 설명하는 첫 문장으로 남아 있다.

공동체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사용하는 주체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팀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쌓았다면, 이후에는 구단이 팬의 충성심을 유지하고 상품의 차별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 역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인트마크스에서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시티의 출발은 뉴턴 히스와 다르다. 시티의 뿌리는 1880년 웨스트고튼의 세인트마크스 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에 있다. 실업과 폭력, 음주 문제가 심했던 지역에서 교회는 축구를 공동체를 묶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뉴턴 히스가 철도 노동자의 직장 공동체에서 출발했다면, 세인트마크스는 교회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두 팀이 태어난 조건은 비슷했다. 급속한 산업화가 사람을 도시로 끌어모았지만, 그들에게 안정된 공동체까지 제공하지는 못했다.

공장과 철도는 사람을 고용했지만 그들의 삶 전체를 책임지지 않았다. 도시의 주거환경은 열악했고, 노동시간 밖의 여가와 관계망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축구는 산업도시가 해체한 기존 공동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묶었다.

세인트마크스는 고튼을 거쳐 아드윅으로 이름을 바꿨고, 1894년 맨체스터 시티가 됐다. 이 역시 좁은 지역과 특정 조직의 이름에서 도시 전체의 이름으로 이동한 과정이었다. 두 구단 모두 공동체에서 시작했지만, 성장하기 위해 더 넓은 도시의 정체성을 차지해야 했다.

맨체스터라는 이름은 행정구역 이상의 자산이 됐다. 산업혁명, 공장, 노동자, 철도와 운하, 빈곤과 저항의 기억이 구단 이름 안에 들어갔다. 축구단은 도시를 대표했고, 도시는 구단을 통해 세계에 반복해서 노출됐다.

산업도시가 축구의 관중을 만들었다

축구가 맨체스터에서 성장한 이유를 노동자의 취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대규모 관중이 정해진 시간에 경기장으로 이동하고, 같은 경기 결과를 공유하며, 매주 입장료를 낼 수 있는 조건이 필요했다.

산업도시는 그 조건을 만들었다. 철도와 전차는 관중을 경기장으로 실어 날랐다. 공장 노동은 사람을 같은 시간표에 묶었고, 노동시간 단축과 토요일 오후 휴무의 확대는 집단적인 여가시간을 만들었다.

신문은 경기 결과와 선수의 이야기를 도시 전체에 전했다. 리그는 흩어진 친선경기를 정기적인 순위 경쟁으로 바꿨다. 경기장은 지역 주민이 같은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는 장소가 됐다.

축구는 개인이 혼자 소비하는 오락이 아니었다. 경기장에 함께 가고, 같은 구역에 서고, 같은 노래를 부르며, 다음 주에도 다시 만나는 반복적인 의례였다. 이 반복이 구단과 지역 사이에 세대가 이어지는 충성심을 만들었다.

자본이 훗날 구입한 것은 선수와 경기장만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관중이 쌓아 올린 기억과 관계였다. 승리의 순간뿐 아니라 패배와 강등, 사고와 재건의 기억까지 구단의 가치가 됐다.

축구단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경기장도 선수도 아니다.

선수는 이적하고 경기장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여러 세대가 같은 팀을 자신의 일부로 여겨온 시간은 돈으로 새로 만들기 어렵다. 세계 자본이 구단을 사는 이유도 바로 그 축적된 시간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떻게 세계의 구단이 되었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세계적 구단이 된 과정에는 경기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맷 버스비는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팀을 만들었고, 유나이티드는 영국 축구가 유럽대항전에 소극적이던 시기에 유럽 무대로 나갔다.

1958년 뮌헨 비행기 참사는 선수와 관계자, 언론인을 앗아갔다. 이 비극은 한 도시의 구단이 세계 축구팬에게 기억되는 계기가 됐다. 살아남은 팀이 다시 일어나 1968년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린 과정은 유나이티드의 세계적 서사가 됐다.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구단의 고통과 재건, 버스비의 팀과 젊은 선수들의 이야기가 경기 결과를 넘어선 감정적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지의 팬은 맨체스터에 살지 않아도 그 서사에 자신을 연결할 수 있었다.

1960년대의 텔레비전과 유럽대항전은 지역의 경기를 국경 밖으로 내보냈다. 1990년대 프리미어리그와 위성방송은 그 흐름을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알렉스 퍼거슨 시대의 지속적인 우승은 유나이티드가 세계시장에 진입한 결정적인 시간과 겹쳤다.

유나이티드는 축구단을 넘어 미디어 상품이 됐다. 유니폼과 후원계약, 해외투어와 방송중계, 선수의 초상과 구단 문양이 서로 연결됐다. 올드 트래퍼드의 좌석 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익구조가 만들어졌다.

지역 관중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성장의 중심은 경기장 밖으로 이동했다. 맨체스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팬도 중계방송을 보고 유니폼을 사고 구단의 온라인 콘텐츠를 소비했다. 지역 공동체가 만든 팀이 세계 소비자의 일상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미어리그는 경기를 방송상품으로 바꿨다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는 단순히 잉글랜드 1부리그의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상위 구단들은 방송권을 독립적으로 묶어 판매했고, 위성방송은 축구를 유료방송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핵심 콘텐츠로 만들었다.

경기의 가치는 경기장 안에서 판매한 입장권으로만 결정되지 않게 됐다. 한 경기를 동시에 지켜보는 세계 시청자의 규모가 광고와 중계권료, 후원계약의 가격을 결정했다. 선수의 몸과 구단의 역사, 경기장의 분위기가 하나의 방송상품으로 편집됐다.

프리미어리그의 공동판매는 개별 구단이 혼자 만들기 어려운 세계적 상품을 만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아스널 같은 인기 구단이 관심을 끌었지만, 리그 전체가 정기적으로 경쟁해야 방송상품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동판매가 모든 격차를 없앤 것은 아니다. 성적이 좋은 구단은 더 많은 방송 노출과 상금을 얻었고, 유럽대항전 수입과 상업계약까지 더해졌다. 성공은 다음 성공을 살 수 있는 자본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축구단의 상대는 같은 도시의 구단만이 아니었다. 유럽의 명문구단, 미국의 프로스포츠, 영화와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사람의 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가 됐다. 축구는 경기이면서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콘텐츠가 됐다.

상장회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팬의 소유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세계화는 구단의 재무구조도 바꿨다. 구단은 주식시장에 들어갔고, 상표와 방송수입, 후원계약과 미래 현금흐름을 평가받는 기업이 됐다. 팬이 느끼는 소유감과 법률상 소유권이 완전히 분리됐다.

팬은 자신과 가족이 여러 세대에 걸쳐 구단을 지지했기 때문에 구단의 일부라고 느낀다. 그러나 의결권과 배당, 매각과 차입을 결정하는 권한은 주주와 이사회에 있다. 정서적 주인은 팬이지만 법적 주인은 자본이다.

2005년 글레이저 가문의 인수는 이 간극을 드러냈다.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금이 구단의 부담으로 옮겨졌다는 비판이 거셌다. 팬이 만든 충성도와 구단의 안정적인 수익이 인수금융을 감당하는 담보처럼 사용됐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성적이 흔들려도 막대한 상업수입을 만들어내는 구단이 됐다. 이것은 세계적 브랜드의 힘이지만 동시에 문제였다. 경기력이 나빠도 팬이 떠나지 않고 상품이 팔린다면, 소유자는 스포츠의 성공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우선할 수 있다는 의심이 생겼다.

이후 INEOS가 지분을 확보하고 축구 부문의 운영에 참여했지만, 유나이티드의 기본적인 소유구조가 팬 중심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글레이저 가문의 지배와 INEOS의 축구 운영, 미국 증시에 상장된 회사라는 세 층이 겹쳐 있다.

뉴턴 히스의 철도 노동자들이 만든 팀은 이제 노동자가 회비를 모아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다. 세계 팬의 충성심, 미국 자본시장, 영국 축구의 방송권, 글로벌 기업의 후원계약이 함께 움직이는 복합기업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전환점은 경기장이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세계적 자본을 받아들이기 전, 구단은 오랫동안 맨체스터의 중요한 지역 구단이었지만 유나이티드와 같은 세계적 상업력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우승과 강등, 승격을 반복했고 재정과 성적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중요한 전환점은 2002년 영연방경기대회를 위해 건설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이었다. 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은 축구장으로 바뀌었고, 시티는 2003년 메인 로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이 경기장은 구단이 처음부터 자체 자본으로 건설한 사유시설이 아니었다. 공공투자로 만들어진 대형 스포츠시설과 동부 맨체스터 재생계획이 구단 성장의 기반이 됐다. 이후 구단 자본이 경기장과 주변 지역에 추가로 들어왔다.

이 대목은 맨체스터리즘의 자유방임과도 거리가 있다. 현대의 거대 축구산업은 민간자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공이 교통과 토지, 경기장과 도시기반을 마련하고, 민간이 그 위에 상업시설과 브랜드를 결합한다.

시티의 성장은 국가와 시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결과가 아니었다. 지방정부의 도시재생, 공공 경기장, 해외 자본, 프리미어리그 방송시장이 서로 결합한 결과였다. 현대 자본주의의 대형 사업은 자유방임보다 이런 결합에 더 가깝다.

2008년 만수르는 무엇을 산 것인가

2008년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흐얀의 자본이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을 때, 눈에 먼저 보인 것은 선수 영입이었다. 막대한 이적료와 임금이 투입됐고, 시티는 중위권 구단에서 우승을 경쟁하는 팀으로 빠르게 변했다.

그러나 만수르가 산 것은 선수단만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시장인 프리미어리그의 회원권, 맨체스터라는 도시 이름, 오랜 지역 역사와 관중, 공공투자로 만들어진 경기장, 재개발 가능성이 큰 주변 토지와 세계 중계망에 접근할 수 있는 구단을 샀다.

새 구단을 처음부터 만들었다면 얻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돈으로 선수를 살 수는 있지만, 19세기부터 이어진 역사와 지역의 기억, 기존 리그에서 보장된 경쟁 지위는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오래된 축구단은 독특한 자산이다. 낡고 적자가 나더라도 진입장벽이 높다. 새로운 기업이 돈만 들고 프리미어리그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구단을 인수해야 리그와 팬, 도시의 이름에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

만수르의 투자는 시티의 경기력을 바꿨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구단을 둘러싼 공간과 조직에서 일어났다. 훈련장과 아카데미, 경기장과 상업시설, 도시재생과 세계 여러 구단을 연결하는 사업체가 만들어졌다.

만수르가 산 것은 맨체스터의 과거였지만, 투자한 것은 미래의 유통망이었다. 한 구단의 우승에 돈을 넣은 것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 사람과 도시, 미디어와 기업을 연결하는 세계적 플랫폼을 만들었다.

에티하드 캠퍼스, 축구단이 도시개발 사업자가 되다

맨체스터 시티의 변화는 경기장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장 주변에는 훈련시설과 유소년 아카데미, 지역사회 시설이 들어섰고 오염된 옛 산업부지가 정비됐다. 축구단의 투자가 도시재생과 결합했다.

이 사업은 분명 지역에 실제 변화를 만들었다. 버려진 부지가 정리됐고 시설과 일자리, 방문객이 들어왔다. 맨체스터 시의회도 축구단의 투자와 동부 지역 재생을 연결했다.

그러나 도시재생이라는 말만으로 이 관계를 미화할 수는 없다. 공공은 토지와 교통, 경기장과 인허가를 제공하고, 민간은 그 공간을 브랜드와 수익사업으로 바꾼다. 지역사회가 얻는 편익과 기업이 확보하는 장기적 가치가 항상 같은 비율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경기장은 이제 2주에 한 번 경기를 치르는 장소로만 남을 수 없다. 호텔과 공연장, 상점과 박물관, 식음료와 관광이 결합해야 한다. 경기 당일 몇 시간의 관중을 연중 소비자로 바꾸는 것이 현대 경기장 사업의 목표다.

산업혁명기의 공장이 노동자의 하루를 시간표로 조직했다면, 현대의 축구지구는 팬의 여가를 소비동선으로 조직한다. 입장권을 산 팬은 교통과 숙박, 음식과 상품, 콘텐츠와 광고를 함께 소비한다.

이때 축구단은 도시 안의 한 기업을 넘어 도시를 설명하는 대표 이미지가 된다. 경기장 주변의 변화는 구단 브랜드의 일부가 되고, 구단의 성공은 도시재생 사업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시티풋볼그룹으로

맨체스터 시티가 세계 자본의 산업이 된 가장 선명한 증거는 시티풋볼그룹이다. 이 조직은 맨체스터의 한 구단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대륙의 축구단을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 묶었다.

다구단 체제는 단순히 구단 수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다. 선수 발굴과 육성, 지도자와 분석기술, 마케팅과 후원, 콘텐츠 제작과 구단 운영방식을 공유할 수 있다. 한 지역에서 발견한 선수를 다른 리그에서 성장시키고, 여러 구단을 통해 세계시장에 상시적으로 접근한다.

과거 유럽 명문구단은 해외 팬에게 유니폼과 중계방송을 판매했다. 시티풋볼그룹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해외시장에 상품을 수출하는 대신 현지 구단의 지분과 운영권을 확보해 시장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산업혁명기의 맨체스터 기업이 세계에서 면화를 가져와 천을 만들어 다시 세계로 팔았다면, 시티풋볼그룹은 세계 각지에서 선수와 데이터, 팬과 콘텐츠를 모아 하나의 축구 네트워크로 가공한다.

물론 축구단은 면직물 공장이 아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역사와 팬이 있고, 모든 구단을 하나의 제품처럼 다룰 수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다구단 체제는 현지 정체성을 존중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적 운영망은 필요하지만, 상품의 가치는 각 지역의 고유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은 지역성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지역성을 보존하고 연출하며 판매한다. 맨체스터, 뉴욕, 멜버른, 요코하마가 모두 같은 이름과 색만 가진다면 매력은 줄어든다. 서로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만수르는 개인 투자자인가, 아부다비의 얼굴인가

맨체스터 시티의 소유를 설명할 때는 구분이 필요하다. 시티풋볼그룹의 지배주주는 만수르가 소유한 아부다비 법인이다. 법률적으로는 개인 소유의 투자구조다. 이를 곧바로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구단을 직접 소유한다고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만수르는 아부다비 왕가의 핵심 인물이자 아랍에미리트의 고위 정치인이다. 그의 경제적 활동과 국가의 이미지가 현실에서 완전히 분리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맨체스터 시티의 성공은 만수르 개인의 명성뿐 아니라 아부다비라는 이름의 인지도와 이미지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시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구단주 평가를 넘어선다. 비판하는 쪽은 축구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스포츠워싱이라고 본다. 반대쪽은 실제 투자와 도시재생, 고용과 경기력 향상을 정치적 의도 하나로만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두 주장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면 실제 구조를 놓치기 쉽다. 투자가 지역에 실질적 성과를 만들 수 있고, 동시에 그 성과가 투자자의 정치적·국가적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다. 도시재생과 이미지 전략은 서로 배제되는 관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도를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것이다. 축구단은 이제 기업의 상품광고보다 더 강한 감정적 연결을 제공한다. 팬은 항공사나 투자회사에 충성하지 않지만, 구단에는 세대를 이어 충성한다.

그 충성심과 함께 노출되는 도시와 국가, 기업의 이름은 일반 광고보다 깊은 효과를 낸다. 경기의 승리와 감동이 브랜드 이미지에 붙는다. 국가와 거대자본이 축구를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맨유와 맨시티는 서로 다른 자본주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를 단순히 전통의 구단과 돈의 구단으로 나누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유나이티드 역시 오래전부터 세계시장과 방송권, 후원계약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성장한 상업기업이다.

두 구단의 차이는 자본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자본이 들어온 방식에 있다. 유나이티드는 먼저 세계적 인지도와 수익력을 만든 뒤 그 가치가 금융자본의 인수 대상이 됐다. 이미 형성된 현금흐름과 팬층을 토대로 부채와 상장, 지분거래가 이뤄졌다.

시티는 세계적 구단으로 성장하기 위한 자본이 먼저 대규모로 투입됐다. 선수단과 훈련시설, 아카데미와 경기장 주변, 다구단 네트워크가 함께 만들어졌다. 미래의 가치에 돈을 넣어 세계적 자산을 구축한 방식이다.

유나이티드가 브랜드의 과거를 금융화했다면, 시티는 자본을 투입해 새로운 브랜드의 미래를 건설했다. 유나이티드에는 축적된 인기를 활용하면서 시설과 경기력에 충분히 재투자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시티에는 자본의 규모와 후원관계, 공정경쟁과 국가 이미지에 대한 의문이 따라붙었다.

한쪽은 오래된 명성과 팬의 충성심이 소유자의 수익과 부채를 떠받치는 구조를 보여준다. 다른 쪽은 거대한 외부자본이 성적과 시설, 도시공간과 국제 네트워크를 한꺼번에 바꾸는 구조를 보여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쟁은 두 팀의 성적만을 가르는 더비가 아니다.

오래된 세계적 브랜드를 금융자산으로 운용하는 방식과, 막대한 자본으로 구단·도시·세계 네트워크를 함께 건설하는 방식이 같은 도시에서 맞붙는 장면이다.

팬은 고객이 되었지만 고객으로만 남지 않는다

현대 구단은 팬을 소비자로 계산한다. 입장권과 유니폼, 유료방송과 멤버십, 온라인 콘텐츠와 관광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으로 본다. 팬 한 명이 평생 만들어낼 수익도 기업의 계산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팬은 일반 소비자와 다르다. 자동차나 휴대전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브랜드를 바꿀 수 있지만, 오랫동안 지지한 구단을 성적이나 가격 때문에 쉽게 바꾸지는 않는다. 구단은 이 충성심 덕분에 안정적인 수요를 얻는다.

동시에 팬은 자신을 단순한 고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구단의 색과 이름, 경기장과 문양, 역사와 지역사회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유자가 구단을 마음대로 바꾸려 할 때 팬이 저항하는 이유다.

이 모순은 현대 축구산업의 중심에 있다. 구단은 팬의 충성심을 상품화해야 성장하지만, 그 충성심을 일반 소비자의 구매습관처럼만 다루면 구단의 정통성이 무너진다.

그래서 세계 자본은 팬을 고객으로 만들면서도 공동체 구성원처럼 대해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반복해 강조하고, 지역사회 사업과 팬 협의를 내세우며, 구단이 여전히 도시와 함께 있다는 이미지를 유지한다.

지역성은 세계화의 반대가 아니다. 세계시장에 팔기 위해 더 정교하게 관리되는 원산지가 됐다. 뉴턴 히스와 세인트마크스의 이야기가 지금도 반복되는 이유는 오래된 역사가 현재의 상품가치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축구는 자본에 빼앗겼는가

맨체스터 축구의 변화를 노동자의 문화를 자본이 빼앗았다는 문장 하나로 끝내기는 어렵다. 프로축구가 성장하려면 경기장과 선수, 교통과 방송, 조직과 투자가 필요했다. 자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 축구산업도 존재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노동자의 취미 가운데 축구가 세계적 스포츠가 된 이유도 시장과 기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철도는 원정경기를 가능하게 했고, 신문은 결과를 전했으며, 텔레비전과 위성방송은 지역 경기를 세계의 콘텐츠로 만들었다.

문제는 자본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의사결정권을 갖고, 누가 위험을 부담하며,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에 있다. 팬과 지역사회가 만든 가치가 구단 가격에 반영되지만, 매각과 차입, 이전과 가격 결정에 팬의 권한은 제한돼 있다.

구단의 시장가치는 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하지만 팬은 그 가치의 법적 소유자가 아니다. 노동자 공동체가 시작한 문화가 금융자산이 된 뒤에도 이 간극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축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기장의 노래와 지역의 기억, 가족을 따라 형성된 지지는 여전히 팬이 만든다. 다만 그 위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적 가치를 통제하는 권력은 팬에게서 멀어졌다.

맨체스터는 다시 세계 자본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의 맨체스터는 세계에서 면화를 가져와 천을 만들고 다시 세계시장에 판매했다. 공장과 철도, 운하와 금융이 도시를 세계 생산망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맨체스터의 굴뚝은 대부분 멈췄지만, 도시는 축구를 통해 다시 세계의 돈과 시선을 끌어들인다. 방송신호는 경기장을 떠나 세계로 퍼지고, 세계의 팬과 기업, 관광객과 투자금이 다시 맨체스터로 들어온다.

과거에는 면직물이 도시의 대표 상품이었다. 지금은 경기와 선수, 역사와 라이벌 관계, 경기장의 분위기와 도시 이름이 상품이 됐다. 물질을 생산하던 도시는 감정과 이미지를 생산하는 도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생산방식이 바뀌었어도 구조에는 닮은 점이 있다. 세계의 자원과 시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장악한 쪽이 더 큰 이익을 얻는다. 19세기에는 항구와 공장, 무역망이 중요했고, 오늘날에는 방송권과 데이터, 후원계약과 구단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뉴턴 히스의 철도 노동자는 세계 자본의 산업을 만들려고 축구팀을 조직하지 않았다. 웨스트고튼의 교회 역시 국가 브랜드와 도시개발 사업을 위해 팀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산업도시에서 관계와 질서를 만들기 위해 공을 찼다.

하지만 바로 그 관계와 질서가 가장 값비싼 자산이 됐다. 자본은 공을 차는 행위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충성심과 기억을 오래된 구단에서 발견했다. 노동자가 만든 공동체가 강했기 때문에 세계 자본도 그 공동체를 필요로 했다.

맨체스터 축구는 노동자의 문화가 사라진 자리에 자본이 들어온 역사가 아니다.

노동자가 만든 문화가 너무 강한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금융자본과 해외 투자자, 도시정부와 국가 이미지 전략이 그 위에 올라탄 역사다. 뉴턴 히스에서 만수르까지 이어지는 길의 중심에는 언제나 돈보다 먼저 팀을 자신의 일부로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