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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의 16년은 왜 독일을 멈추게 했나,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미뤄둔 위기

형성하다2026. 7. 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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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은 독일을 여러 위기에서 지켜냈지만, 위기를 봉합할 때마다 독일이 구조를 바꾸어야 할 이유와 시간을 함께 지워버렸다.

최종 업데이트 2026.07.12

메르켈의 실패는 독일을 망가뜨렸다는 데 있지 않다.

독일의 기존 성공 공식을 너무 오래 유지한 데 있다. 값싼 러시아 에너지와 거대한 중국 시장, 미국의 안보 우산과 유럽 단일시장이 동시에 작동하는 동안 독일은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안정은 미래를 준비한 결과가 아니라, 유리한 외부 조건이 구조적 결함을 가려준 시간에 가까웠다.

앙겔라 메르켈은 2005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었다.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크림반도 사태와 난민위기, 브렉시트와 코로나19까지 유럽을 흔든 위기는 끊이지 않았다. 메르켈은 그때마다 충돌을 피하고 타협점을 찾으며 독일과 유럽의 급격한 붕괴를 막았다.

그녀가 퇴임할 때 독일은 대중적 혼란에 빠져 있지 않았다. 실업은 낮았고 재정은 비교적 안정돼 있었으며 자동차와 기계, 화학과 산업재는 세계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했다. 메르켈은 극단적인 언어보다 계산과 조정, 기다림을 택한 지도자로 기억됐다.

그러나 메르켈이 떠난 뒤 불과 몇 년 만에 독일의 안정은 빠르게 흔들렸다. 러시아산 가스가 끊기자 에너지 가격이 제조업을 압박했고, 중국은 독일 자동차와 기계의 거대한 고객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변했다. 미국은 유럽이 더 많은 안보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했고, 독일 안에서는 낡은 철도와 부족한 전력망, 느린 디지털 행정과 투자 지연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이것을 모두 메르켈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독일 기업과 유권자, 산업계와 연립정부, 주정부와 유럽연합도 그 선택에 참여했다. 메르켈은 독일이 원하지 않았던 지도자가 아니라, 독일이 가장 오랫동안 원했던 지도자였다.

따라서 이 글이 묻는 것은 메르켈이 왜 독일을 망쳤느냐가 아니다. 독일 사회가 왜 16년 동안 기존 성공 공식을 바꾸지 않았으며, 메르켈의 안정적 통치가 어떻게 그 결정을 가능하게 했는가이다.

앞선 글인 독일 경제 위기는 왜 왔나: 러시아 가스, 중국 시장, 자동차와 제조업 신화의 성공 함정에서는 독일 경제가 멈춘 이유를 산업과 에너지, 수출 구조의 측면에서 살펴봤다. 이번 글은 그 구조가 왜 메르켈의 16년 동안 거의 수정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메르켈의 16년은 왜 안정의 시대처럼 보였나

메르켈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은 거대한 비전이 아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피하고, 상황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능력이었다.

그녀는 당의 고정된 이념보다 여론과 현실의 변화를 빠르게 읽었다. 기독민주연합의 보수적 전통에 속해 있었지만 사민당의 복지정책 일부를 받아들였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에는 기존의 원전 수명 연장 방침을 뒤집었다. 난민위기 때는 국경을 완전히 닫지 않았고, 유로존 위기에서는 독일 납세자의 반발과 유럽 통합의 붕괴 가능성 사이에서 타협을 찾았다.

이런 방식은 독일 정치의 중간지대를 넓혔다. 메르켈은 상대 정당의 의제를 흡수해 급격한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낮췄고, 독일의 주요 정당은 차이가 줄어든 채 거대한 합의 안으로 들어갔다.

정치적 갈등이 작아진 사회는 안정돼 보였다. 그러나 갈등이 사라졌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과 같지 않다. 원전과 석탄, 러시아 가스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 장기적 산업전략으로 재검토되지 않았다. 재정균형은 유지됐지만 철도와 전력망, 디지털 행정의 투자 부족은 누적됐다.

메르켈의 정치는 결정을 하지 않은 정치가 아니었다. 수많은 결정을 내렸지만, 기존 성공 모델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결정은 가능한 한 뒤로 미뤘다. 위기를 넘기는 능력은 탁월했지만 위기를 낳는 구조를 바꾸는 일에는 신중했고, 그 신중함이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로 변했다.

메르켈 시대의 독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라가 아니었다. 다만 변화가 기존의 생활수준과 수출 경쟁력, 재정균형을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됐다. 독일은 변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비용이 발생하는 변화를 계속 다음 정부로 넘겼다.

독일 제조업을 떠받친 네 개의 외부 조건

메르켈 시대의 독일 제조업은 기업의 기술력과 숙련노동, 중견기업 생태계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경쟁력을 가능하게 한 외부 조건이 함께 있었다.

첫째는 값싼 러시아 에너지였다. 독일의 화학, 철강, 유리, 제지와 기계산업은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이용해 원가를 낮췄다.

둘째는 중국 시장이었다. 중국의 고도성장은 독일 자동차와 공작기계, 화학제품과 산업설비에 거대한 수요를 만들었다. 독일 기업은 중국의 산업화를 돕는 동시에 그 성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셋째는 미국의 안보 우산이었다.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국이었지만 국방비 부담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냉전 이후의 평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국가 재원을 복지와 산업, 재정균형에 더 많이 배분할 수 있었다.

넷째는 유럽연합과 유로였다. 단일시장은 독일 기업에 넓은 내수시장과 통합된 공급망을 제공했다. 독일 경제의 생산성과 수출 경쟁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 공동통화는 독일 제품의 가격경쟁력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네 조건이 동시에 작동한 시기에 독일 모델은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에너지는 러시아에서 들어오고, 고부가가치 상품은 중국과 세계로 나갔다. 안보는 미국과 나토가 뒷받침했고 유럽연합은 독일 산업의 거대한 경제권이 됐다.

문제는 이 조건들이 독일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러시아의 정치적 선택, 중국의 산업정책, 미국의 안보전략과 유럽의 결속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메르켈의 독일은 외부 의존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다만 상호의존이 갈등을 억제할 것이며, 경제적 이익이 체제 간 경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일정 기간 합리적으로 보였고 실제로 큰 이익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익이 길게 이어질수록 대체 경로를 준비해야 할 정치적 압력은 약해졌다.

러시아 가스는 값싼 연료가 아니라 독일 산업의 전제였다

독일과 러시아의 에너지 관계는 메르켈 시대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냉전기 서독은 소련과 가스관 사업을 추진했고, 경제적 교류가 정치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는 동방정책의 전통도 오래됐다.

메르켈은 이 구조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재임기에는 원전과 석탄을 동시에 줄이는 에너지 전환이 추진되면서 가스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재생에너지는 빠르게 늘었지만 날씨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는 태양광과 풍력을 보완할 발전원과 산업용 열원이 필요했다.

가스는 석탄보다 탄소배출이 적고 발전량 조절이 쉬웠다. 독일은 가스를 재생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연결 연료로 봤다. 문제는 그 가스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분명한 경고였다. 메르켈은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제재를 주도했고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푸틴과 대립했다. 따라서 그녀를 단순한 친러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정치적 제재와 에너지 거래를 분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노르트스트림2를 안보 프로젝트보다 상업적 사업으로 다루려 했고, 러시아와의 가스 거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를 유지하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계산에는 경제적 논리가 있었다. 러시아도 가스를 팔아야 했고 독일도 안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했다. 상호의존은 전쟁의 비용을 높이므로 갈등을 억제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상호의존이 항상 대칭적인 것은 아니다. 공급을 중단했을 때 대체할 수 있는 쪽과 대체할 수 없는 쪽의 위험은 다르다. 독일은 러시아에 판매시장을 제공했지만 러시아 가스를 단기간에 대신할 터미널과 관망, 계약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과 가스 공급 축소는 그 차이를 드러냈다. 독일은 빠르게 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만들고 다른 공급선을 확보했지만, 더 비싼 에너지 가격은 화학과 금속, 유리와 비료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경쟁력을 직접 압박했다.

메르켈의 문제는 러시아와 거래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거래가 중단될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같은 비용으로 산업을 유지할 대체 구조를 충분히 만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값싼 가스는 경쟁력이었지만, 그 경쟁력은 독일 내부에서 생산된 기술이 아니라 외부에서 빌려온 조건이었다.

후쿠시마 이후의 원전 폐쇄는 결단이었지만 완성된 전략은 아니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메르켈 정부는 원전 가동 연장 방침을 뒤집고 단계적 폐쇄를 결정했다. 물리학자 출신 총리가 내린 이 결정은 독일 사회의 강한 반원전 여론을 반영했다.

원전 폐쇄 자체만으로 독일의 현재 에너지 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크게 확대했고,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과 새로운 산업 육성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은 발전원 하나를 없애는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전이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남북 간 송전망을 얼마나 빨리 확충할 것인지, 저장장치와 수요조절, 가스와 석탄의 감축 순서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가 함께 결정돼야 한다.

독일 북부의 풍력발전은 늘었지만 산업이 밀집한 남부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 건설은 지역 반발과 복잡한 인허가 속에서 지연됐다. 석탄발전도 줄여야 했기 때문에 가스의 역할은 오히려 커졌다.

결국 독일은 원전과 석탄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렸지만, 그 사이를 값싼 러시아 가스가 메우는 구조를 선택했다. 러시아 공급이 계속될 때에는 환경과 산업을 함께 지키는 현실적인 전환처럼 보였다. 공급이 흔들리자 두 정책 사이의 연결고리가 동시에 약점이 됐다.

메르켈은 원전 폐쇄라는 강한 결정을 내렸지만, 그 결정에 필요한 전력망과 저장, 대체 발전, 산업용 에너지 가격의 장기 설계를 같은 속도로 완성하지 못했다. 정치적 결단은 빨랐지만 물리적 기반시설은 느렸다.

이것이 메르켈식 안정의 특징이었다. 사회적 충돌이 커진 정책은 빠르게 조정했지만, 조정 이후에 필요한 긴 공사와 투자, 비용 분담의 갈등은 분산되고 지연됐다.

중국은 독일의 최대 고객에서 가장 강한 경쟁자가 됐다

메르켈 시대의 독일은 중국을 체제 경쟁자보다 수출시장으로 먼저 보았다. 중국의 도시화와 산업화는 독일 자동차와 공작기계, 화학과 정밀장비에 거대한 기회를 제공했다.

독일 자동차 기업은 중국 현지 합작회사를 통해 생산과 판매를 확대했다. 중국의 중산층이 늘어날수록 독일 고급차의 판매가 증가했고, 중국 공장이 자동화될수록 독일 기계와 부품의 수요도 커졌다.

이 관계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섰다. 독일 기업의 투자와 고용, 연구개발과 수익 전망이 중국 시장의 성장에 연결됐다. 중국에서 얻은 이익은 독일 기업의 실적과 국내 일자리에도 기여했다.

문제는 중국이 독일 제품을 영원히 구매하는 시장으로 남지 않았다는 데 있다. 중국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과 기술 학습,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이용해 자동차와 배터리, 태양광과 기계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높였다.

특히 전기차 전환은 독일 자동차산업의 기존 강점을 흔들었다. 내연기관과 변속기, 정밀기계에 축적된 기술력은 전기차와 배터리, 소프트웨어 중심의 경쟁에서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중국 기업은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규모를 확보한 뒤 유럽시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르켈 정부가 중국의 변화를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기술이전과 시장 접근의 비대칭성, 국유기업 지원과 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됐다. 그러나 독일은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 얻는 현재의 실익을 크게 보았고, 기업의 의존을 줄이기 위한 강한 산업적 전환은 뒤로 밀렸다.

외교적 긴장을 낮추고 경제교류를 유지하는 것은 실용주의일 수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가 장기전략이 되려면 관계가 바뀌었을 때 견딜 수 있는 대안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독일은 중국이 성장하는 동안 많은 상품을 팔았지만, 중국이 고객에서 경쟁자로 전환하는 속도보다 자국 산업의 전환이 느렸다. 독일 기업이 중국에서 얻은 과거의 수익이 미래의 경쟁력을 자동으로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중국은 독일의 성공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독일이 중국의 산업화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동안, 중국은 독일과 경쟁할 능력을 축적했다. 독일의 실패는 중국이 성장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을 수출 증가로만 읽고 산업질서의 전환으로 충분히 읽지 못한 데 있다.

균형재정은 국가의 건전성을 지켰지만 미래의 자산을 만들지 못했다

독일은 재정규율을 국가적 미덕으로 여겼다. 과도한 부채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기며, 정부가 위기 때 대응할 여력을 남기려면 평상시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메르켈 정부는 이 원칙을 강하게 유지했다. 연방정부의 신규 차입을 제한하는 부채제동장치가 헌법에 들어갔고, 한동안 신규 순차입 없이 예산을 편성하는 이른바 검은 제로가 정치적 성과로 제시됐다.

재정건전성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유로존 재정위기 속에서 독일의 낮은 차입비용과 재정여력은 위기에 대응하는 힘이 됐다. 문제는 부채와 투자를 거의 같은 위험으로 취급하면서 발생했다.

정부가 소비성 지출을 줄이는 것과 철도, 교량, 학교, 전력망과 디지털망에 대한 투자를 미루는 것은 같은 절약이 아니다. 후자는 미래의 생산성과 서비스 능력을 만드는 자산이다.

독일의 철도는 노후화됐고 장거리 열차의 지연은 일상적인 문제가 됐다. 공공행정은 종이 서류와 팩스에 대한 의존을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고, 기업과 시민은 느린 인허가와 복잡한 절차를 감당해야 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송전망과 산업 전환을 위한 충전시설, 반도체와 배터리 공장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도 빠르게 갖춰지지 않았다. 독일은 재정수지를 지켰지만 국가의 물리적 자산과 행정 역량이 같은 속도로 유지됐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낡은 철도와 교량, 느린 인터넷은 한 해의 재정적자로 바로 잡히지 않는다. 설계와 인허가, 전문인력과 공사능력을 장기간 축적해야 한다. 투자를 오랫동안 미룬 뒤 돈을 한꺼번에 투입해도 잃어버린 시간을 즉시 되살릴 수는 없다.

메르켈 시대의 재정규율은 독일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복지와 연금, 에너지 전환과 지방지원에는 많은 재정이 들어갔다. 그러나 장기간의 저금리 속에서도 국가 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현대화할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독일은 미래 세대에게 부채를 남기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낡은 철도와 부족한 주택, 지연된 전력망과 디지털 행정을 함께 남겼다. 국가의 부담은 국채 잔액으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독일은 군사력의 시간을 미뤘다

냉전 종식 이후 독일은 대규모 지상전이 유럽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낮게 봤다. 독일 통일과 유럽연합의 확대,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는 유럽이 군사적 대결의 시대를 벗어났다는 기대를 키웠다.

독일은 국제평화유지와 나토 임무에 참여했지만 군사력의 규모와 장비, 탄약과 준비태세에 대한 투자는 충분하지 않았다. 경제력에 비해 국방비 비중은 낮았고, 미국은 나토의 핵심 억지력과 정보·수송 능력을 계속 제공했다.

메르켈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국방비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변화는 느렸고, 독일군의 장비 가동률과 탄약 부족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다.

독일의 군사적 신중함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의 기억을 가진 국가에서 군사력 확대는 단순한 예산문제가 아니었다. 독일 사회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다자외교, 유럽 통합을 군사력보다 우선하는 평화전략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평화전략도 실패 가능성에 대비한 힘을 필요로 한다. 외교가 무너졌을 때 국가를 지탱할 방위력과 산업기반이 없다면 평화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선택에 의존하게 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은 시대전환을 선언하고 대규모 특별기금을 마련했다. 이는 새로운 위협이 갑자기 생겼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누적된 장비와 인력, 조달체계의 부족이 더는 감춰질 수 없게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메르켈의 독일은 미국의 안보 우산을 이용해 산업과 복지를 지켰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관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유럽에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안보의 외주화도 값싼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영구적인 조건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난민 수용은 인도주의적 결단이었지만 통합의 비용은 남았다

2015년 유럽 난민위기에서 메르켈은 독일 국경을 즉시 닫지 않았다. 전쟁과 박해를 피해 이동하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일의 헌법적 가치와 유럽의 인도주의적 책임이라는 판단이었다.

이 결정은 메르켈 정치의 중요한 장면이었다. 여론을 따라 결정을 미루던 모습과 달리, 그녀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독일이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민 수용이 독일에 실패만 남긴 것은 아니다. 많은 난민이 언어교육과 직업훈련을 거쳐 노동시장에 들어갔고, 고령화와 인력 부족을 겪는 독일에 새로운 인구와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대규모 수용이 성공하려면 주택과 학교, 언어교육과 지방행정, 치안과 노동시장 통합에 충분한 역량이 필요하다. 난민의 수용 결정은 중앙정부가 했지만 일상의 비용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직접 감당했다.

주택 부족과 행정 지연, 문화적 충돌과 일부 범죄는 난민 전체에 대한 불안으로 확대됐다. 기존 정치가 지역의 불만과 통합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조정하지 못하면서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우파 정당이 성장할 공간이 커졌다.

난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극우가 성장했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동서독 격차, 지역 쇠퇴, 유럽 통합에 대한 불신과 기존 정당의 대표성 약화도 함께 작용했다.

다만 메르켈 정부는 인도주의적 결정을 내린 뒤 그것을 지속 가능한 사회통합의 장기계획으로 충분히 연결하지 못했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과 공동체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정착시키는 것은 다른 단계의 국가능력을 요구한다.

메르켈의 문은 열렸지만 독일의 주택과 학교, 행정과 정치적 설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때도 정치적 결단과 물리적 수용능력 사이의 간극이 반복됐다.

메르켈은 유럽을 구했지만 유럽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메르켈의 독일은 유럽연합의 가장 강한 국가였다. 유로존 재정위기에서 독일의 결정은 그리스와 남유럽 국가의 재정, 유럽중앙은행의 역할과 유로의 존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지원의 대가로 긴축과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재정규율을 지키지 않은 국가에 조건 없는 지원을 제공하면 도덕적 해이가 생기며, 유로존 전체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논리였다.

이 원칙에는 타당성이 있었다. 하나의 통화를 사용하면서 국가별 재정책임이 분리된 유로존은 애초부터 불완전한 구조였다. 독일 납세자가 다른 국가의 부채를 무제한 부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긴축은 위기국가의 수요와 투자, 고용을 더 줄였고 유럽 안에서 독일의 흑자와 남유럽의 적자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위기는 봉합됐지만 유로존의 재정통합과 공동투자, 위험분담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뒤로 밀렸다.

브렉시트에서도 메르켈은 영국과의 충돌을 낮추려 했지만 단일시장의 원칙을 훼손할 수는 없었다. 영국이 떠난 뒤 독일은 유럽을 지키는 데 기여했지만, 유럽연합은 안보와 에너지, 디지털과 산업정책에서 여전히 느린 의사결정 구조를 드러냈다.

메르켈은 유럽의 여러 위기를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했다. 그러나 유럽이 위기에 강한 연방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이 안정을 우선한 만큼 유럽도 대규모 공동투자와 권한 재편보다 기존 제도의 유지에 머물렀다.

독일의 안정과 유럽의 안정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동시에 독일의 변화 지연은 유럽 전체의 변화 지연이기도 했다.

독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국가로 남았다

독일 산업의 강점은 정밀한 기계와 공정, 숙련노동과 품질관리였다. 그러나 제조업의 경쟁축이 기계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반도체와 인공지능으로 옮겨가는 동안 독일의 전환은 느렸다.

독일 행정은 개인정보 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중시했다. 이러한 원칙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했지만, 디지털 행정과 데이터 이용을 늦추는 명분으로도 작용했다.

공공기관에서는 종이서류와 우편, 팩스가 오래 남았고 지방마다 다른 행정체계는 전국적인 디지털 서비스의 통합을 어렵게 했다. 기업은 공장을 지을 기술과 자본이 있어도 느린 인허가와 복잡한 규정에 부딪혔다.

자동차산업에서도 독일 기업은 엔진과 섀시, 생산공정에는 강했지만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플랫폼에서는 반복적인 지연을 겪었다. 전기차는 자동차를 기계제품에서 배터리와 반도체,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이동기기로 바꿨다.

메르켈은 과학과 기술을 이해하는 지도자였지만 독일 국가 전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다시 설계하지는 못했다. 연구지원과 산업정책은 이어졌지만 행정과 교육, 통신망과 데이터 규칙을 한 번에 바꾸는 정치적 충돌은 피했다.

독일의 아날로그적 신중함은 기존 산업의 품질을 지키는 데 유리했지만, 새로운 시장에서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하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안정은 완성된 기계를 관리하는 데는 강했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산업을 만드는 데는 느렸다.

숄츠의 실패는 메르켈 시대와 단절된 사건이 아니었다

메르켈의 뒤를 이은 올라프 숄츠 정부는 출범 직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맞았다. 가스 공급과 국방, 난민과 물가, 기후정책과 산업지원이 동시에 흔들렸다.

숄츠 정부는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하고 군사비를 확대하며 재생에너지와 반도체, 배터리 투자를 추진했다. 그러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는 재정과 환경, 성장정책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충돌했다.

외부 충격이 너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부가 들어섰더라도 러시아 가스의 급격한 단절과 세계 공급망 변화, 중국 경쟁의 심화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숄츠 정부의 혼란은 메르켈 시대와 완전히 분리된 실패가 아니었다. 메르켈 시기에 미뤄둔 선택을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과 국방력 재건, 디지털화와 철도투자, 자동차산업의 전환과 재정규칙의 조정이 동시에 요구됐다.

메르켈은 하나의 문제를 다른 문제와 분리해 순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후임 정부는 분리돼 있던 문제들이 동시에 연결되는 순간을 맞았다. 가스를 줄이면 산업비용이 올라가고, 국방비를 늘리면 다른 투자를 줄여야 했다. 기후정책을 강화하면 가계와 기업의 비용 문제가 커졌고, 부채제동장치를 지키면 대규모 전환투자가 어려워졌다.

안정의 시대에 내려야 했던 결정은 위기의 시대에 더 비싼 결정이 됐다. 숄츠의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만큼, 그에게 남겨진 선택의 시간이 짧았던 것도 중요하다.

독일이 잃은 것은 성장률보다 변화할 시간이었다

독일은 여전히 유럽 최대 경제국이며 강한 제조업과 연구기관, 숙련노동과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경제가 곧 붕괴한다는 식의 진단은 과장이다.

독일 자동차와 기계, 화학과 제약산업의 기술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높은 고용과 사회보장, 연방제와 직업교육 역시 다른 국가가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자산이다.

문제는 변화의 비용이 한꺼번에 커졌다는 데 있다. 에너지 가격을 낮추면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고, 중국 의존을 낮추면서 수출과 기업수익을 지켜야 한다. 국방비와 인프라 투자를 늘리면서 복지와 재정건전성도 유지해야 한다.

각각의 과제는 따로 놓고 보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과제가 동시에 겹치면 사회적 합의와 재정, 행정과 산업의 전환능력이 시험받는다.

메르켈의 16년 동안 독일은 이 전환을 더 낮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금리는 낮았고 재정은 좋았으며 기업의 수익과 중국 수요도 강했다. 러시아 가스가 흐르고 미국의 안보가 유지될 때 대체 에너지와 군사력, 디지털 인프라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조건들이 좋았기 때문에 변화를 서두를 이유가 없어 보였다. 현재의 성공이 미래 준비를 늦추는 역설이었다.

독일이 잃은 가장 중요한 자산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돈은 국채와 세금, 유럽 공동재정으로 조달할 수 있지만 송전망을 건설하고 군대와 행정을 바꾸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시간은 단축하기 어렵다.

메르켈은 독일의 미래를 파괴한 지도자가 아니다.

그녀는 현재의 성공이 이어지는 동안 미래의 위험을 관리 가능한 문제로 남겨둔 지도자였다. 그러나 관리 가능한 문제는 사라진 문제가 아니었다. 해결하지 않은 위험은 외부 조건이 무너지는 순간 서로 연결돼 돌아왔다.

안정은 언제 국가의 가장 위험한 중독이 되는가

안정은 국가 운영의 중요한 가치다. 시민과 기업은 정책이 급격히 뒤집히지 않을 때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고, 민주주의는 타협을 통해 충돌을 줄여야 한다.

메르켈이 독일과 유럽에 기여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위기 속에서 감정을 자극하지 않았고, 독일의 경제력으로 다른 국가를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다. 과학과 제도, 협상과 연합을 중시했다.

그러나 안정이 현재의 이해관계를 바꾸지 않기 위한 명분이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동차기업의 중국 수익, 산업계의 값싼 가스, 유권자의 낮은 에너지 비용, 정부의 균형재정과 미국의 안보 우산을 동시에 유지하려 하면 어느 하나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메르켈의 독일은 위험을 몰라서 움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움직였을 때 발생할 갈등이 현재의 안정에 미칠 영향을 더 크게 봤다.

이 때문에 독일의 변화는 대부분 충격이 발생한 뒤 시작됐다. 후쿠시마 뒤 원전정책이 바뀌었고, 우크라이나 전쟁 뒤 가스와 국방정책이 바뀌었다. 중국의 전기차가 시장을 흔든 뒤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국가적 문제가 됐다.

위기 이후의 빠른 변화는 결단처럼 보이지만, 위기 이전에 준비했을 때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안정은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어야 하지만 메르켈 시대에는 위험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도 작동했다.

이 문제는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선 글인 영국은 왜 10년 만에 총리 6명을 거쳤나, 대처 이후 무너진 정치와 산업에서 살펴봤듯 영국은 제조업을 줄이고 금융과 부동산에 의존하면서 정치가 먼저 흔들렸다.

독일은 제조업을 지켰지만 에너지와 시장, 안보를 외부 조건에 맡기면서 산업이 뒤늦게 흔들렸다. 영국은 지도자가 계속 바뀌었고 독일은 한 지도자가 16년을 지켰다. 정치의 모습은 정반대였지만 성공의 비용을 미래로 미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또한 유럽 폭염과 RE100, 에어컨을 비웃던 친환경 윤리는 왜 반도체 앞에서 무너지는가에서 다뤘듯 유럽은 에너지와 자원, 제조와 안보의 비용을 외부에 맡긴 채 규범의 심판자로 행동해 왔다. 메르켈의 독일은 그 유럽 모델이 가장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중심이었다.

메르켈 이후 독일이 바꿔야 할 것은 지도자의 성격이 아니다

독일이 필요한 것은 메르켈보다 더 강한 지도자나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에너지와 산업, 재정과 안보를 서로 분리된 정책으로 다루지 않는 국가 전략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려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망과 저장장치, 안정적인 보완전원과 산업용 전력가격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원전과 가스를 둘러싼 이념적 논쟁만으로 제조업의 전환을 완성할 수 없다.

중국과의 교역도 단절과 의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기업은 중국시장에서 계속 사업하되 핵심 부품과 원료, 기술과 판매수익이 하나의 국가에 지나치게 묶이지 않도록 공급망과 시장을 분산해야 한다.

재정규율은 유지하되 장기투자를 일반 지출과 같은 방식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철도와 교량, 전력망과 디지털 인프라는 미래 세대에 부채만 남기는 지출이 아니라 생산능력을 넘겨주는 자산이다.

안보에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유럽이 스스로 방위할 수 있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에너지와 통신의 회복력을 갖춰야 한다.

이 모든 변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전기요금과 세금, 국채와 규제, 공장과 주거지역을 둘러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메르켈 시대의 정치가 가장 잘했던 것은 이 충돌을 늦추는 일이었다. 메르켈 이후의 독일이 해야 할 일은 충돌을 숨기지 않고 누가 어떤 비용을 부담할지를 공개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메르켈의 16년은 실패한 시대가 아니었다.

독일은 그 기간 높은 고용과 수출, 재정안정과 유럽의 정치적 중심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메르켈은 여러 위기에서 독일과 유럽의 붕괴를 막았고, 극단보다 타협이 강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녀가 지켜낸 안정은 독일이 미래를 준비했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러시아의 가스와 중국의 수요, 미국의 안보와 유럽 단일시장이 그 준비의 필요성을 가리고 있었다.

메르켈의 가장 큰 정치적 성공은 독일이 흔들리지 않게 만든 것이었다. 동시에 가장 무거운 유산은 독일이 흔들리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만든 것이었다. 독일이 잃은 것은 성장률 몇 퍼센트가 아니라, 더 낮은 비용으로 변할 수 있었던 16년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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