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를 상상하던 시절의 문화사: 노래와 철도, 유라시아를 꿈꾸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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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예능이 만든 ‘국경 없는 한반도’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관광객 피격과 서해 충돌까지 이어지는 통일 낙관기의 균열은 앞선 글 통일을 믿던 짧은 시대: 소떼 방북에서 금강산 피격까지에서 먼저 정리했다.

통일 이후를 상상하던 시절, 노래는 가장 먼저 국경을 흐리게 만드는 도구였다. 운동회와 학예회, 기념식이 열릴 때마다 합창단은 자연스럽게 통일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1940년대에 발표된 동요가 세대를 건너 통일의 상징 노래가 되었고,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후렴은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되었다. 가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후렴의 한 줄과 멜로디만으로도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공유할 수 있었다. 정치 뉴스와 사설보다 먼저, 통일은 이렇게 노랫말 속에서 친숙한 감정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예능과 특집 프로그램도 국경을 넘어가는 감각을 화면으로 만들어 냈다. 주말 아침마다 방영되던 북한 전문 교양 프로그램은 분단선을 사이에 둔 군사 긴장보다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과 시장, 학교와 공연장을 보여 주려 했다. 남한 스튜디오에서 진행자가 설명을 곁들이고, 화면에는 평양 거리를 걷는 시민과 학생, 공원과 놀이공원 풍경이 이어졌다. “저곳에도 우리와 비슷한 하루가 있다”는 메시지는, 적대의 대상이던 북한을 통일 이후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남북 관련 예능에서는 퀴즈와 재연, 북한 말 따라 하기 같은 가벼운 장치로 웃음을 만들면서도, 같은 농담과 노래에 함께 웃을 수 있는 ‘하나의 겨레’라는 이미지를 반복했다.

남측 가수와 예술단이 북측 무대에 서는 장면은 그 상징을 극적으로 압축했다. 대형 합창과 합동 무대에서 남과 북의 가수들이 같은 곡을 부를 때, 화면 하단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자막이 자연스럽게 깔렸다. 남쪽 방송사는 이 장면을 길게 편집해 연말·연초 특집으로 다시 내보냈고, 시청자는 안방 소파에 앉아 평양 공연장을 바라보는 구도가 반복되었다. 국경은 여전히 굳건히 닫혀 있었지만, 노래가 흘러가는 순간만큼은 분단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음악 프로그램과 교류 공연은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상상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이런 장면들은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일상의 시간표 속에 박혀 있었다. 토요일 아침 TV를 켜면 북한 소식을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이 익숙하게 편성되어 있었고, 통일기원 콘서트와 특집 다큐멘터리는 연말 방학 시즌의 풍경처럼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통일 노래를 배우고, 집에 돌아와 TV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다시 익혔다. 통일은 거대한 선언문보다 합창과 예능, 특집 방송에서 먼저 현실의 이미지로 형체를 갖추었다. 노래와 예능이 만들어 낸 ‘국경 없는 한반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가상 공간처럼 작동했다.

통일 노래와 교류 예능, 북한 프로그램은 이념이 아닌 감정과 화면을 통해, 국경을 지운 한반도의 상을 일상의 풍경처럼 체험하게 만들었다.

지도와 철도, 유라시아를 향한 상상

지도는 통일 이후를 상상하던 시절의 또 다른 무대였다. 교실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 곁에는 종종 대륙 지도가 함께 붙었고, 사회 시간에는 선을 그어 한반도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까지 가는 노선을 표시하곤 했다. 교과서와 다큐멘터리는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굵은 색으로 이어 그리며,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모스크바와 파리까지 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 장의 그림 안에서 분단선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선로는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질렀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는 국경선이 아니라 철도선으로 설명되는 공간이 되었다.

정책 발표와 홍보 영상은 이 상상을 보다 구체적인 숫자와 사업명으로 채웠다. 한반도종단철도와 대륙철도 연결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언론은 ‘철의 실크로드’ ‘철도 실크로드’ 같은 표현을 제목에 올렸다. 나진·하산 구간 개보수, TKR과 TSR·TCR 연결, 남·북·러 물류사업 같은 용어는 경제 기사 속에 반복 등장하며 대륙과의 연결을 현실적인 과제로 느끼게 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 회의와 포럼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설명하며, 부산에서 출발한 화물이 철길을 따라 네덜란드 항만까지 간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지도와 철도 노선도는 통일 이후 한반도의 위치를 대륙의 관문이라는 언어로 새로 정의하는 도구였다.

시민단체와 청년 캠페인은 이러한 철도 구상을 생활 언어로 번역했다. 온라인과 거리에서 진행된 철길 잇기 운동은 “기차 타고 유럽 가자” 같은 구호를 내세워, 복잡한 물류 전략을 여행과 모험의 이야기로 바꾸었다. 청년 참가자들은 한반도 지도와 유라시아 지도를 붙여 놓고, 기차 여행 루트를 직접 그려 보는 워크숍을 열었다. 어떤 모임에서는 가상의 열차 시간표를 만들고, 어느 도시에서 며칠을 머물지 계획하는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통일은 이때 더 이상 추상적인 평화나 민족 서사가 아니라, 휴가 계획과 항공권 대신 열차표를 고르는 상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런 상상은 문화 콘텐츠에도 스며들었다. 여행 프로그램과 교양 다큐멘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유럽 철도 여행을 소개하면서, “언젠가 이 노선이 부산과 서울, 평양과 신의주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멘트를 덧붙였다. 한반도 남쪽 항구에서 출발한 화물이 부산항에서 배를 타지 않고 곧바로 북측 철도에 실려 유럽 내륙까지 들어가는 그림도 자주 등장했다. 지도 속 선로와 방송 속 열차는 통일 이후의 시간을 선행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철도와 유라시아 지도는 통일을 단순한 체제 통합이 아니라, 이동과 연결의 혁신으로 이해하게 만든 하나의 프레임이었다.

한반도와 시베리아, 유럽을 잇는 철도 노선도는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대륙의 관문으로 상상하게 만든 집단적 설계도였다.

상상이 사라진 뒤, 무엇이 남았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통일을 다루는 노래와 프로그램은 눈에 띄게 표정이 달라졌다. 학교와 행사장에서 익숙하게 부르던 통일 노래는 세대가 바뀌면서 점점 덜 불리게 되었고, 오래된 동요를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자는 논쟁이 언론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대표되던 정서가, 분단의 상처보다 경제와 안보,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냉담한 현실 인식과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통일을 노래하던 합창 무대는 예전만큼 자주 편성되지 않았고, 대신 학교 현장에는 입시와 진로, 경쟁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통일은 여전히 시험 문제와 교과서에는 남아 있지만, 노래와 공연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북한을 다루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도 점차 변했다. 오랫동안 남북 교류와 북한 사회 소개를 중심에 두었던 프로그램들은, 점차 핵 개발과 미사일, 제재와 인권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는 형식으로 기울었다. 같은 제목을 달고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라도, 초창기에는 ‘북한의 일상과 사람들’을 보여주던 데서 시간이 흐를수록 군사·외교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가 늘어났다. 방송사는 남북관계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을 다루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통일 이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내용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빈도만 유지된 채, 안보와 위기 관리의 문장 속에서 소극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도와 철道를 둘러싼 상상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한때 교실과 홍보 영상에서 자주 등장하던 유라시아 철도 노선도는, 남북관계 경색과 함께 현실성이 낮은 그림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과 대륙철도 연계 구상이 차례로 지연되거나 중단되면서, “부산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간다”는 구호는 설득력 있는 미래상이 아니라 과거에 잠시 유행했던 슬로건처럼 느껴졌다. 정책 문서 속에서는 여전히 철도의 가능성이 언급되지만, 일상 뉴스와 대중문화에서 유라시아로 향하는 선로를 상상하는 장면은 크게 줄어들었다. 철도와 지도가 만들어 주던 넓은 시야는, 현실 정치와 외교 갈등 앞에서 점차 접혀 들어갔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위험 관리와 비용 계산의 언어였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언젠가 함께 살게 될 날’을 떠올리기보다, 안보 공백과 재정 부담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언론과 토론 프로그램은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대신, 당장 눈앞의 위기를 어떻게 관리할지, 어느 시점까지 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남북 문제를 다루는 예능과 교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통일 이후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장면은 많지 않다. 한때 교실과 노래, 지도와 방송 속에서 활발하게 오갔던 상상은, 그렇게 서서히 사라지고 난 뒤에도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공통의 언어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통일 이후를 그려 보던 노래와 지도, 방송이 사라진 자리를, 분단을 전제로 위험과 비용을 계산하는 건조한 언어가 조용히 대신하게 되었다.

이처럼 통일 이후의 상상력이 점점 자리를 잃어 가는 한편, 정치의 영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가 한 번 더 통일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그 실험이 어떻게 외세와 구조적 제약 속에서 멈추었는지는 문재인의 남북 교류 열망은 어떻게 꺾였나: 외세에 의존한 통일의 꿈에서 이어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