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남북 교류 열망은 어떻게 꺾였나: 외세에 의존한 통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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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평화 구상은 왜 외세 앞에서 멈췄는가, 그 구조를 묻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7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관광객 피격과 서해 충돌까지 이어지는 통일 낙관기의 균열은 앞선 글 통일을 믿던 짧은 시대: 소떼 방북에서 금강산 피격까지에서 먼저 정리했다.

통일 이후의 일상을 노래와 예능, 지도와 유라시아 철도로 상상하던 공기에 대해서는 별도 글 통일 이후를 상상하던 시절의 문화사: 노래와 철도, 유라시아를 꿈꾸던 한반도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이 글은 소떼 방북과 금강산 관광, 통일 이후를 상상하던 문화, 문재인 평화 프로세스까지를 잇는 한반도 통일 서사 3부작 가운데 한 편이다.

통일의 꿈을 정책으로 옮기다: 문재인의 평화 구상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촛불 정국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가 겹친 상황에서 출발했다. 전임 정부 탄핵과 미국의 ‘최대 압박’ 기조 속에서, 전쟁 위기와 경제 불안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새 정부가 내세운 것은 전통적인 흡수 통일론이나 단기적 안보 강화가 아니라, 남북·북미 대화를 연쇄적으로 열어 전쟁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겠다는 선언은 이 모든 전략을 포괄하는 상징적인 구호였다.

이 구상은 세 개의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북 정상 간 합의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전쟁 가능성을 현실 정치에서 밀어내는 것. 둘째, 북미 대화의 문을 열어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교환하도록 중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남북 경제 협력과 접경 공동 개발을 확대하는 것. 셋째, 이런 과정을 ‘민족 자주’와 동맹, 국제 제재 체제 사이에서 균형 있게 운영하겠다는 시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 야심 찬 설계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했고, 2018년 한 해 동안은 실제로 이 계획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문재인의 평화 구상은 전쟁 위기 속에서 남북·북미 대화를 연쇄적으로 열어 한반도 질서를 바꾸려는 야심 찬 정책 실험이었다.

판문점과 평양, 우리가 주도한다고 믿었던 짧은 순간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구상을 한 번에 눈앞의 현실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두 정상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았고, 회담 끝에 채택된 ‘판문점 선언’은 “더 이상 전쟁은 없으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선언문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 개선’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의를 함께 언급했다. 남북 간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서해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었다. 이 합의는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인 남과 북이 먼저 합의하고, 주변 국가의 참여를 나중에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는 군사·경제·사회 전 영역을 아우르는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부속 합의가 서명되었다. 비무장지대 일대의 포사격과 군사훈련을 중지하고, 감시초소를 시범 철수하며, 군사분계선 인근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등 구체적인 긴장 완화 조치가 합의에 포함되었다. 개성에는 상시 소통을 위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고,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와 착공식도 준비되었다. 판문점과 평양을 오가는 남북 정상의 장면은 “이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국내외에 반복해서 방영되었다. 2018년 한 해 동안은 실제로 그렇게 믿어도 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한때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될 수 있다는 착시를 만들어 낸 상징적 정점이었다.

하노이에서 멈춘 시간: 제재와 동맹이 만든 벽

그러나 남북 합의만으로 한반도 질서를 바꾸기에는 구조적인 벽이 너무 높았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었다. 북한은 대표적인 핵 시설인 영변 핵 단지 폐기를 제안하는 대신, 미국이 대북 경제 제재의 상당 부분을 해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영변 이외의 핵·미사일·생화학 무기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비핵화’와 단계별 검증을 요구하며, 제한적인 비핵화와 광범위한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스몰 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를 어디까지, 어떤 순서로 맞바꿀 것인지에 대한 양측의 간극은 결국 회담 결렬로 이어졌다.

하노이 결렬은 곧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의미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해 쌓인 제재 체제와 미국 재무부의 금융 제재 없이는,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본격적인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남북이 합의문에 서명을 마쳐도, 은행과 선사, 보험사와 글로벌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 협력은 현실이 되기 힘들었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과 국제 제재 체제의 일원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 구상은 사실상 ‘미국의 제재 완화 의지가 있을 때에만’ 움직일 수 있는 구조였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남북이 함께 그린 청사진이 하노이의 테이블 위에서 멈춰 선 순간이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은 남북 합의가 미국과 국제 제재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 문재인식 평화 프로세스가 구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한국 내부의 반발과 피로: 평화 프로세스를 둘러싼 균열

외부의 제약과 별개로, 한국 내부에서도 평화 프로세스를 둘러싼 균열은 이미 자라나고 있었다. 보수 진영과 보수 언론은 평창동계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평양 예술단 공연, 정상회담과 군사합의 일체를 “평화 쇼” “퍼주기”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9·19 군사합의로 비무장지대 일대의 군사훈련과 포사격을 제한하고 감시초소를 철수하는 조치가 시행되자, 일부 예비역과 보수 정치권에서는 “북한만 이득을 보는 일방적 양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전방의 경계와 훈련 강도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정치적 공격의 언어와 결합해, 평화 프로세스 자체를 정권의 안보 무책임으로 몰아가는 논리로 확장되었다.

통일·평화를 향한 시도는 인권과 표현의 자유 논쟁과도 충돌했다. 남북 합의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중단이 명시되자, 정부와 여당은 접경 지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이는 남북 합의를 이행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과 함께 통과되었지만, 탈북민 단체와 시민사회, 국제 인권기구 일부는 “북한 정권이 싫어하는 표현을 남쪽 정부가 대신 막아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남북관계법 개정은 이후 위헌 논란으로 이어졌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국내 논쟁은 문재인식 평화 프로세스가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프로젝트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되었다. 남북 교류를 살리려는 시도가 동시에 국내 정치 자본을 소진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셈이다.

여론의 온도도 빠르게 식어 갔다. 2018년 세 차례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전쟁 위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안도감과 기대가 높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체감되는 평화의 이익이 없다는 인식과 함께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는 냉소가 확산되었다. 청년층에서는 통일과 평화보다 경제와 일자리, 삶의 비용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힘을 얻었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에너지를 남북 문제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그 에너지를 지탱해 줄 지반은 생각보다 얇고 쉽게 갈라지는 것이었다.

문재인의 평화 프로세스는 보수 진영의 반발과 인권·표현의 자유 논쟁, 여론의 피로 속에서 한국 내부의 정치적 기반을 빠르게 잃어 갔다.

북한 내부의 계산과 선전: 핵과 체제 안보가 먼저였다

북한 내부의 계산 또한 문재인식 남북 교류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김정은은 집권 초반부터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화했고, 이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에는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핵무기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제재를 버티며 체제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방향 전환에 가까웠다. 북한 지도부에게 핵은 체제 생존과 직결된 전략 자산이었고, 이를 근본적으로 포기하는 대신 부분적인 동결과 시설 폐기를 통해 제재 완화와 체제 인정, 경제 지원을 얻어내려는 구상이 더 현실적인 선택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그린 단계적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상은, 이처럼 핵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상대의 계산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국제 제재와 코로나19 국경 봉쇄가 겹친 시기에 북한 내부 경제는 추가적인 타격을 입었다. 석탄과 광물, 섬유와 수산물 수출이 막히고, 비공식 무역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선택한 것은 자력갱생과 외부 탓을 강조하는 선전이었다. 남한과 미국, 국제 제재를 동시에 비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주민에게 더 큰 인내와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평양의 권력 엘리트와 군부, 보안기관은 이러한 긴장과 봉쇄 상황에서 오히려 권한과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과감한 비핵화나 개방, 남북 경제 협력에 올인하는 선택은 내부 정치적으로 위험한 모험에 가까웠다. 문재인이 제안한 평화·경제협력 패키지는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체제 안보를 근본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하면서, 내부 권력 구조를 흔들 수 있는 요소를 지나치게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태도는 더욱 분명해졌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 포격 훈련을 재개하며 남북 군사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했고, 2020년에는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측을 “배신자”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관영 매체에 등장했고, 남북 합의 이행을 요구하던 언어는 남한을 압박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선전 도구로 바뀌었다. 남북 교류는 제재 완화에 도움이 되는 동안에는 유용한 카드였지만,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북한은 이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선택지로 다뤘다. 김정은 체제에게 남북 관계는 어디까지나 핵과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고, 문재인의 평화 구상은 그 우선순위 뒤편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 체제에게 남북 교류는 제재 완화 수단일 뿐이었고, 핵과 체제 안보를 건드릴 만큼 과감한 양보를 할 정치적 여유도, 내부 동기도 충분하지 않았다.

미·중·러·일, 각자의 계산과 방해공작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교류와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 내부의 의지와 별개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둘러싸인 채 움직여야 했다. 각 국가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통일과 평화가 어떤 형태로, 누구의 주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들 국가의 의지와 제재, 동맹과 경제 관계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여지를 좁혀 놓았다. 문재인의 평화 구상은 처음부터 네 방향에서 동시에 당겨지는 줄다리기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셈이다.

이 네 국가의 시선과 움직임은 공개 발언과 외교 문서, 제재 결의와 군사·경제 정책을 통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를 둘러싼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었고, 중국은 북한과 한국 양쪽의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적 완충지대를 관리하는 입장이었다. 러시아는 에너지와 철도,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활용해 존재감을 유지하려 했고, 일본은 납치 문제와 미사일 위협, 역사 갈등과 결부된 안보 인식을 바탕으로 강경한 대북 제재 노선을 견지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느 한 나라라도 선뜻 제재 완화와 평화 체제 전환에 힘을 실어 주지 않으면, 문재인의 구상은 선언과 사진, 합의문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처음부터 미·중·러·일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와 제재·동맹 구조 속에서, 네 방향으로 동시에 끌려가는 줄다리기 위에 놓여 있었다.

미국: 제재와 동맹, 평화 프로세스를 잠그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문제에서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었다. 오랜 기간 유지된 한미동맹과 유엔 제재 체제, 미국 재무부의 금융 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동시에, 남북 간 대규모 경제 협력과 인프라 사업을 사실상 허가제 영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개적으로는 정상 간 톱다운 대화를 허용하고, 싱가포르·하노이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협상에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고수하며, 영변 일부 폐기와 같은 제한적 조치와 대규모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거래에는 선을 그었다. 문재인 정부가 그린 점진적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교환 구조는 이 지점에서 미국의 입장과 충돌했다.

미국의 입장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은 동맹 복원과 긴밀한 공조를 강조했지만, 대북 제재 틀은 유지되었고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대담한 제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주한미군과 확장억제에 의존하는 안보 구조를 유지하는 한, 미국의 제재와 동맹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는 선택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과 같은 사업은 모두 미국의 암묵적 허용이나 제재 예외 인정 없이는 실행되기 어려운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는 결국 미국이 열어 주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프로젝트였고, 하노이 결렬 이후 그 범위는 현저히 좁아졌다.

중국: 완충지대와 사드, 남북 교류를 견제하다

중국은 한반도를 미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중요한 완충지대로 바라보았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향한 압박 카드이자, 한반도를 미군이 장악한 통일 국가로 만드는 시나리오를 막아 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동시에 한국은 중국에게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이며, 사드 배치 이후 보여준 것처럼 경제적 영향력을 통해 압박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전쟁은 안 된다”는 기조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때,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이를 지지하면서도 제재 완화와 비핵화 협상의 속도 조절에서는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해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한반도 평화 체제가 미·일 동맹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사드 배치 이후 남겨진 상처는 문재인 정부의 선택지를 더 제약했다. 중국은 관광·유통·문화 콘텐츠를 겨냥한 비공식 경제 보복을 통해 한국에 강한 메시지를 보냈고, 이 경험은 이후 한국 정부가 안보와 외교에서 미국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는 선택을 할 경우 다시 비슷한 부담을 겪을 수 있다는 경고로 작용했다. 남북 교류가 너무 빠르게 진전되어 주한미군 재배치나 미사일 방어 체계 논의로 이어지는 것 또한 중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였다. 중국은 평화와 대화를 지지한다는 원론을 유지하면서도, 제재 완화나 비핵화 로드맵에서는 자신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와 수준을 선호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구상한 ‘남북 주도 평화 체제’가 중국의 전략적 계산과도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러시아: 관여하되 책임지지 않는 주변 플레이어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였다. 극동 개발과 에너지·철도 사업,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위치는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러 3각 협력 구상과 함께 시베리아 가스관, 철도 연결, 항만과 물류 협력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러시아는 원칙적으로 이러한 구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며, 한반도에서의 전쟁 방지와 대화 재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투자와 제재 완화, 북핵 문제에서의 적극적 중재라는 측면에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러시아의 대북·대미 관계는 한반도보다는 유럽 안보와 자국 경제 제재 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북핵 문제에서 러시아는 제재의 엄격한 이행보다는 완화와 현실적 타협을 말했지만, 그렇다고 제재를 완전히 무력화할 만큼 강하게 나서지도 않았다. 남북·러 3각 협력이 본격화되려면 유엔 제재와 미국의 금융 제재가 완화되어야 했지만, 그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협력 파트너’라기보다 ‘관여하되 책임지지 않는 주변 플레이어’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가 기대했던 철도와 에너지 프로젝트는 종이 위의 설계도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웠고,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실질적으로 견인하거나 방해하는 주연이 아니라, 스스로 역할을 제한하는 조연에 가까웠다.

일본: 납치·미사일·역사 갈등이 만든 냉기

일본의 대북·대한 관점은 납치 문제와 미사일 위협, 역사 문제와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북한에 납치된 자국 민간인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해 왔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일본 상공과 인근 해역을 위협하는 현실 속에서 강경한 대북 제재 노선을 유지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대화를 통해 평화와 통일의 장기 구상을 밀어붙일 때, 일본은 이러한 움직임이 납치 문제와 미사일 위협을 희석시키고 자신들이 중시하는 안보 이슈를 주변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북일 관계 정상화와 납치 문제 해결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면, 일본이 이에 동참할 유인은 크지 않았다.

한일 관계의 악화는 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강제동원과 수출 규제,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이어지면서 서울과 도쿄 사이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다. 한미일 공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일본이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보완하는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대북 제재 유지와 미사일 방어, 억지력 강화를 우선하면서, 남북 교류 확대와 제재 완화에는 신중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한국이 북미·남북·한미일이라는 삼각 축을 동시에 관리하며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일본은 직접적인 방해공작의 주체라기보다는, 문재인식 평화 구상이 역내 안보 프레임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외세에 의존한 통일의 꿈, 그 이후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교류와 평화 프로세스는 분명 한 시대의 열망을 응축한 시도였다. 전쟁 위기를 피부로 느낀 세대와 촛불 이후 정권 교체를 경험한 시민들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나지 않는 질서를 만들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정치적 모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판문점과 평양,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오가는 정상들의 모습은 이 기대가 단순한 희망 고문이 아니라,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한국 내부의 정치와 여론이 얽힌 복잡한 구조 위에서 펼쳐졌다. 문재인의 평화 프로세스는 그 구조 속에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건드렸고, 결국 그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는 빠르게 냉각되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금강산과 개성 일대의 남측 시설이 일방적으로 철거되는 장면은 2018년의 설렘과 기대가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북한은 남한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였고, 한국 내부에서는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피로와 회의가 커졌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대북 강경 노선과 동맹 강화 기조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고, 남북 합의는 사실상 사문화되거나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통일과 평화를 향한 낭만적 상상은 ‘위기 관리’와 ‘현상 유지’라는 건조한 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때 통일의 꿈을 정책으로 옮겨 보려 했던 시도는, 외세와 내부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이 경험이 남긴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무겁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줄이고 통일과 평화를 향한 길을 넓히려면, 어느 수준까지 외세와 제재 체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민족 자주’와 동맹, 국제 규범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문재인의 평화 프로세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시도했지만, 구조적 제약과 내부 균열, 북미·미중 경쟁의 격화 속에서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통일을 향한 열망은 여전히 한국 사회 어딘가에 남아 있지만, 이제는 외세에 의존한 꿈이 아니라, 구조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한 시대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실패가 다음 시대의 현실적인 상상을 위한 자료가 되는 일만은 막을 수 없다.

문재인의 남북 교류 열망은 남북 내부의 한계와 미·중·러·일의 계산, 제재와 동맹 구조 속에서 외세에 의존한 통일의 꿈으로 머무른 채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