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내란 우두머리 혐의 결심공판 구형은, 2024-12-03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의 계엄 통제와 국민주권을 거슬렀는지, 군·경 동원이 어디까지 불법이었는지, 그 후유증을 어떻게 단죄할지 가늠하는 날이다.
최종 업데이트 2026-01-09
내란은 민주공화국의 심장을 겨눠 권력을 탈취하는 범죄다.
형법이 내란을 최상단 범죄로 두는 이유는 단순한 폭력 때문이 아니다. 국민이 선거로 위임한 권력 구조 자체를 뒤집기 때문이다. “국체”가 흔들리면, 이후의 모든 정책과 분쟁은 규칙을 잃는다.
2026-01-09 구형이 의미하는 것
2026-01-09은 1심의 결심공판이자, 수사기관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공식 언어’로 남는 날이다. 구형은 판결이 아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정리된 증거와 논리를 토대로, 국가가 요구하는 처벌의 무게가 처음으로 숫자와 문장으로 고정된다. 이 단계부터 사회는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형사책임”이라는 프레임으로 사건을 다시 보게 된다.
이번 결심공판에서는 특검의 최종의견, 구형, 변호인의 최후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술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매우 좁게 정해져 있다. 그래서 구형은 곧 ‘국가가 본 사안의 성격’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선고는 그 다음 단계이며, 유죄·무죄와 형량은 재판부가 판단한다.
구형은 판결이 아니지만, 국가의 최종 평가가 기록으로 굳는 분기점이다.
내란죄가 ‘국체 범죄’인 이유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 박는다. 이 기본 구조가 흔들리면, 국회·정부·법원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형법은 바로 그 지점을 “국가권력 배제” 또는 “국헌 문란”의 목적이라고 표현한다. 즉 내란은 ‘정부 비판’이 아니라, 정부를 가능하게 하는 헌법 자체를 무력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다.
내란은 결과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는지 여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판례는 폭동을 단순한 난동이 아니라, 다수의 결합과 폭행·협박을 통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행위로 본다. 민주주의는 절차가 생명인데, 내란은 절차를 건너뛰고 “힘으로 규칙을 바꾸자”는 선언이 된다. 그래서 내란이 ‘성공’하면 법치가 사라지고, ‘미수’여도 사회가 받은 충격은 남는다.
내란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헌법적 국가 정체성 자체를 무너뜨리는 공격이다.
계엄과 내란의 경계는 헌법에 있다
계엄은 본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에서 군사적 필요나 공공질서를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제도다. 헌법 제77조는 계엄의 요건을 두고, 선포 즉시 국회 통고 의무를 부과한다. 또한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즉 계엄은 “무제한의 칼”이 아니라, 국회 통제 아래 제한적으로 쓰라는 “잠금장치 달린 도구”다.
문제는 계엄이 발동되는 순간, 영장제도·언론·집회·결사 등 기본권 제한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 권한은 ‘존재만으로도’ 국민에게 강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계엄이 정당한 요건과 절차를 벗어나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면, 그 자체가 헌정질서에 대한 폭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계엄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제도인데,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변질되는 순간 내란의 문턱에 닿는다.
계엄 남용은 국가긴급권의 행사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 공격으로 전환된다.
군·경 동원은 왜 더 무거운가
헌법 제5조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다. 군은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한 힘이지, 내부의 정치를 정리하는 도구가 아니다. 군이 정치에 투입되는 순간, 시민은 투표가 아니라 총구를 ‘정치의 최종심급’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 오해가 자리 잡으면 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붕괴한다.
경찰 역시 공권력의 얼굴이다. 집회·언론·정치적 표현이 위축되면 사회는 스스로 침묵하는 방향으로 학습한다. 법 집행기관이 정치적 명령 체계에 종속되면, 다음 정권에서도 똑같은 유혹이 반복된다. 그래서 군·경 동원은 단순한 직권남용을 넘어, 공화국의 “폭력 독점”이 사적으로 전용된 것으로 보이기 쉽다.
군·경의 정치 동원은 한 번 열리면 닫기 어려운 ‘국가폭력의 문’을 연다.
사회에 남긴 손해는 ‘불신의 복리’다
내란 혐의 사건이 남기는 가장 큰 손해는 물리적 피해만이 아니다. 시민이 서로를 의심하고, 제도를 믿지 못하게 되는 순간 사회적 비용이 폭증한다. 기업은 규제보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공무원 조직은 책임을 피하려 경직된다. 외교·안보 환경에서도 동맹과 투자 판단은 “규칙이 유지되는가”를 먼저 본다.
또 하나의 후유증은 허위정보의 산업화다. 위기 국면에서는 소문이 이익이 되고, 분노는 정치적 연료가 된다. 극단적 언어가 정상 언어를 밀어내면, 사회는 타협 능력을 잃는다. 그 결과는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직업·계층 갈등으로 확장되며, 한 번 금이 간 공동체는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내란의 장기 손해는 ‘국가 신뢰자본’이 무너지는 데서 시작된다.
역사에 남는 교훈은 ‘예외의 상시화’ 금지다
한국 현대사는 국가긴급권이 반복적으로 남용되며 민주주의를 훼손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헌법은 계엄과 긴급권을 허용하면서도, 국회 통제와 사후 책임을 장치로 박아 두었다. 대법원은 과거 사건에서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내란 범주에서 다뤄 왔다. 이 축적된 법리는 “예외의 권한”이 정치적 목적에 흘러들지 않도록 경계선 역할을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기보다, 반복될 수 있는 구조가 남아 있을 때 되풀이된다. 계엄이 ‘한 번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다음은 더 쉬워진다. 그래서 형사재판의 핵심은 개인 처벌을 넘어, 사회에 “이 선은 넘을 수 없다”는 신호를 남기는 것이다. 그 신호가 약하면, 헌정질서는 매번 새로 협상되는 불안정한 규칙이 된다.
예외권한을 정치로 끌어오면, 공화국은 ‘항상 비상’ 상태로 미끄러진다.
왜 중벌이어야 하는가
중벌 논리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재발 방지와 헌정질서 복원의 문제다. 내란은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의 기본 규칙을 공포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그 시도가 “정치적 책임” 정도로 정리되면, 다음 시도는 더 대담해진다. 따라서 유죄가 인정되는 경우, 형량은 개인의 죄책을 넘어 사회적 학습효과까지 고려될 수밖에 없다.
다만 헌법 제27조가 보장하는 무죄추정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엄정한 증거 판단, 공개재판 원칙, 반대신문과 방어권은 내란 사건일수록 더 중요하다. 절차가 흔들리면 판결의 정당성이 약해지고, 그 틈으로 음모론이 자란다. 중벌은 절차적 정당성 위에서만 공화국을 지키는 힘이 된다.
현실적으로 사형은 법정형에 포함되지만, 한국은 1997-12-30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중형의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기형”과 그 집행 방식은 사회의 안전과 정의감, 국가의 인권 기준을 함께 시험한다. 결국 핵심은 ‘헌정질서 파괴 시도’에 대해 국가가 어떤 선을 세우느냐에 있다.
중벌의 목적은 보복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복원과 재발 억지다.
지금 필요한 3단계
첫째, 사실관계는 법정에서 끝까지 확인되어야 한다. 빠른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설득 가능한 결론이다. 증거와 법리로 정리된 판결만이 사회를 갈라놓은 이야기를 다시 제도 안으로 끌어온다. 판결문은 다음 세대가 읽는 국가의 기록이 된다.
둘째, 계엄과 국가긴급권의 작동 조건을 더 촘촘히 해야 한다. 국회 통고·해제 요구의 실효성을 높이고, 군·경 동원의 지휘 체계를 투명하게 남겨야 한다. 명령의 흔적이 남아야 책임도 남는다. 책임이 남아야 다시는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셋째, 허위정보의 확산을 ‘표현의 자유’와 구분해 다뤄야 한다. 폭력과 쿠데타를 미화하거나, 재판을 흔드는 조직적 조작은 사회적 안전을 직접 겨냥한다. 공론장은 단단한 규칙 위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공화국은 감정이 아니라 규칙으로 굴러간다.
사실 확정, 제도 보강, 공론장 방어가 재발을 막는 최소 3단계다.
참고·출처
법조문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5조, 제27조, 제77조와 형법 제87조, 제88조를 기준으로 정리했다. 재판 진행과 결심공판 일정, 구형 절차의 개요는 2026-01-09 보도 기준으로 SBS, 연합뉴스TV, 뉴시스, 한겨레 등의 기사 내용을 교차해 확인했다. 내란 법리와 판례 축은 대법원 1997-04-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전두환·노태우 사건) 공개 자료를 참고했다. 사형 집행 중단 관련 사실관계는 국가인권위원회 2025-10-09 성명과 국제앰네스티 공개 자료에 근거해 정리했다.
핵심 사실은 법령·판례·당일 보도에 근거해 교차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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