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칸: 마지막이 아닌, 아직도 흐르는 강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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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칸족 이야기: 허드슨 강의 주권자에서 위스콘신까지

1. 허드슨 강을 따라 살아간 사람들

미국 뉴욕의 허드슨 강, 오늘날에는 고층 빌딩과 번화한 도시로 가득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훨씬 이전 이곳을 지배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마지막 모히칸’으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실제로는 ‘마히칸(Mahican)’이라 불렸던 원주민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무헤코니옥(Muheconneok)’, 즉 ‘멈추지 않는 물결의 강 사람들’이라 불렀습니다.


모히칸족에게 허드슨 강은 삶의 터전이자,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모히칸 사회는 모계 혈통을 따르는 씨족(Clan)들이 모여 연합체를 이룬 구조였습니다. 각 씨족은 늑대, 거북, 칠면조 등 동물을 상징으로 삼았고, 여러 마을이 힘을 모아 강력한 연방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롱하우스라 불리는 공동주택에서 함께 살며, 사냥·어로·농경(‘세 자매 작물’인 옥수수·콩·호박 재배)로 풍요로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허드슨 강을 따라 펼쳐진 그들의 영토는, 단순한 수렵민의 영역이 아닌, 활발한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강이라는 천혜의 교역로 덕분에 모히칸족은 내륙과 해안 부족을 잇는 중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왐펌’이라 불리는 조개껍데기 구슬은 화폐처럼 쓰였고, 이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질서와 문화를 누리던 주권자였습니다.

 

 

2. 전쟁과 유랑, 두 세기의 파도

비버 전쟁과 네덜란드의 등장

1609년, 탐험가 헨리 허드슨의 도착은 모히칸족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곧 네덜란드는 모피 무역을 위해 포트 오렌지(현 올버니)를 세우고, 모히칸족은 유럽산 철제 도구와 총을 얻는 대가로 비버 모피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거래는 결국 그들에게 ‘파우스트의 계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버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사냥터를 둘러싼 이웃 부족들과의 갈등이 극한의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이른바 ‘비버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쪽 이웃이자 강력한 경쟁자인 모호크족(이로쿼이 연방 소속)과의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더 많은 유럽 무기를 확보한 모호크족에게 1628년 결정적 패배를 당한 뒤, 모히칸족은 허드슨 강의 중심부에서 밀려나야 했습니다.

영국 시대와 스톡브리지의 실험

1664년, 영국이 네덜란드를 몰아내면서 백인 정착민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전염병, 전쟁, 토지 수탈로 궁지에 몰린 모히칸족은 마지막 생존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립니다. 선교사 존 서전트의 중재로 매사추세츠 서부 스톡브리지로 집단 이주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백인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은 ‘스톡브리지 인디언’으로 불리며,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는 독립군 편에 서서 ‘스톡브리지 민병대’를 조직해 싸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의 충성은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투기꾼과 정착민들에게 스톡브리지의 땅마저 빼앗기는, 또 한 번의 배신을 겪었습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마지막 유랑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은 오나이다족의 도움으로 뉴욕 중부로 이주했지만, 연방 정부와 주정부의 압력 속에 그 땅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1820~30년대, 모히칸족은 위스콘신이라는 낯선 서부 땅으로 마지막 유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3. 오늘을 사는 ‘멈추지 않는 강의 사람들’

위스콘신에 도착한 모히칸족은, 역시 동쪽에서 쫓겨온 먼시(Munsee, 델라웨어 계통) 부족과 만납니다. 두 집단은 깊은 동질감과 생존의 의지를 바탕으로 ‘스톡브리지-먼시 커뮤니티(Stockbridge-Munsee Community)’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이 공동체는 지금도 미국 연방 정부에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주권 부족입니다. 독자적인 헌법, 부족 의회, 사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자체 카지노 리조트를 운영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루었습니다.

 

수익은 의료, 교육, 주택, 환경 보호 등 부족민 복지에 재투자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문화와 언어를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거의 사라질 뻔했던 마히칸어 부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상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4. “마지막 모히칸”은 소설일 뿐

많은 사람들이 소설 『마지막 모히칸』의 주인공 ‘웅카스(Uncas)’를 진짜 마지막 모히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다릅니다. 백인이 만들어낸 비극의 신화가 아니라, 지금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멈추지 않는 강의 사람들’—그들이 진짜 모히칸입니다.

 

수백 년 전 전쟁과 이주, 질병과 배신, 그리고 강제 이주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모히칸족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신화가 아니라, 오늘도 이어지는 현실의 역사. 이들은 영원히, 그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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