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미키 17까지 이어진 한국 작품의 미국 진출을 다시 훑어 보며, 봉준호·박찬욱·이정재·이병헌·정호연이 2025년 11월 현재 어떤 자리까지 왔는지, 단순 성공·실패가 아니라 시장 구조와 인종·플랫폼 조건 속 위치를 함께 정리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14
읽기 경로·예상 소요 서론에서 2020년대 한국 작품의 미국 성적표를 간단히 정리한 뒤, ① 작품은 세계로 나가는데 얼굴은 왜 막히는지 ② 봉준호·박찬욱의 감독 브랜드가 어디까지 왔는지 ③ 기생충 배우들의 이후 행보가 왜 조심스럽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지 ④ 이정재·이병헌의 사례가 넷플릭스·디즈니 시대 한국 배우 좌표에 어떤 기준선을 주는지 ⑤ 정호연 이후 세대의 가능성과 리스크를 본 뒤 ⑥ 2025년 11월 현 시점에서의 ‘성공’ 기준선을 정리하는 순서로 읽으면 약 14~18분이 걸린다.
왜 작품은 세계로 나가는데, 얼굴은 여전히 막히는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을 모두 가져가며 미국 영화사에 남는 사건이 되었다. 같은 시기 넷플릭스에서 폭발적인 시청 기록을 세운 오징어 게임은 영어 자막·더빙을 넘어 밈과 코스프레, 유튜브 2차 창작까지 동원하며 전 세계 인터넷 문화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작품 차원에서만 보면 한국 영화·드라마는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라, 스트리밍·극장을 모두 포함한 세계 시장의 주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셈이다.
그러나 얼굴과 이름, 즉 배우와 창작자 개인의 경력을 기준으로 보면 그림은 다르다. 봉준호의 첫 할리우드 장편인 미키 17은 비평과 팬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와 마케팅을 감안한 손익분기점에는 미치지 못한 흥행으로 정리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시즌2와 시즌3는 전 세계 시청 기록을 새로 쓰며 플랫폼 역사급 성과를 냈지만, 참여 배우들의 다음 작업이 미국 스튜디오의 장기 프랜차이즈로까지 연결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HBO의 더 심퍼서이저, 디즈니 플러스의 더 아콜라이트 같은 작품은 또 다른 좌표를 보여 준다. 더 심퍼서이저는 베트남전 이후 이주민 커뮤니티를 그린 작품으로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미국 내 시청 규모는 특정 층에 제한된 소규모 히트에 가까운 양상을 보였다. 더 아콜라이트는 디즈니 플러스 2024년 시청 순위 기준 상위권 성적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와 팬덤 내 갈등, 스타워즈 브랜드 전략 등 복합적인 이유로 1시즌 후 연장이 중단되었다. K-콘텐츠에 출연한 한국 배우의 이름은 포스터와 기사 제목에 등장하지만, 장기 프랜차이즈의 중심에서 서사를 끌고 가는 위치는 여전히 쉽게 허락되지 않는 셈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2020년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창작자들이 서 있는 위치가 선명해진다. 작품은 플랫폼과 수상 시스템을 타고 글로벌 메인 무대에 반복해서 올라가지만, 개별 배우·감독의 커리어는 여전히 전통적인 장벽, 즉 인종과 국가, 나이, 언어, 프랜차이즈 구조의 제약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2025년 11월 현재의 성적표는 “작품은 완전히 들어왔지만, 사람은 아직 절반쯤만 들어와 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 한 줄 정리 } 2020년대 미국 시장에서 한국 작품의 진출은 이미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그 작품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이 장기 프랜차이즈의 중심까지 올라가는 일은 여전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 브랜드는 어디까지 왔나
봉준호의 커리어는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기생충 이전의 봉준호는 설국열차와 옥자를 통해 이미 한국을 넘어선 국제적인 감독이었지만, 여전히 “장르적 완성도가 높은 아시아 감독” 범주를 넘지 못했다. 기생충 이후, 봉준호는 미국과 유럽 비평계가 인정하는 월드 클래스 작가주의 감독으로 위치가 재정의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미키 17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영어권 배우, 거대 제작비가 결합한 첫 프로젝트였지만 결과는 복합적이다. 기대를 모았던 만큼 흥행은 다소 아쉬웠고, 감독 브랜드의 위상은 유지됐지만 “봉준호라면 어떤 소재를 맡겨도 흥행까지 보장해 준다”는 식의 낙관론은 한 번쯤 조정이 필요해졌다.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는 봉준호 개인의 성패를 넘어, 비영어권 감독이 메이저 스튜디오와 만날 때 생기는 구조적 긴장 때문이다. 미키 17은 원작 소설, 스타 배우, VFX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고가 프로젝트였고, 이러한 조합은 감독의 창작적 통제력과 스튜디오의 상업적 요구 사이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기생충 이후 미국 자본이 봉준호에게 기대한 것은 “또 하나의 기생충”이었지만, 감독이 선택한 방향은 장르 실험과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그 결과는 평단과 팬덤의 찬사, 그리고 손익 구조상의 부담이 동시에 기록된 작품이 되었다.
박찬욱의 경우 궤적이 다르다. 올드보이 이후 이미 칸영화제와 유럽 아트하우스에서 확고한 브랜드를 만들어 왔고, 아가씨와 결정, 떠난 자 같은 작품들은 미국에서도 꾸준히 회자되는 레퍼런스가 되었다. 다만 박찬욱의 미국 진출은 봉준호와 달리 “할리우드식 대형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한정된 예산과 배우로 만든 장르·멜로·스릴러의 변주에 가깝다. 이것은 예술적 완성도와 비평적 영향력 면에서는 유리하지만, 넷플릭스·디즈니·워너 브라더스가 원하는 “대량 소비 가능한 프랜차이즈”와는 거리가 있다. 박찬욱의 이름은 감독·영화학교·cinephile 세계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지만, 미국 대중이 당장 떠올리는 얼굴은 여전히 아니다.
따라서 2025년 11월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봉준호와 박찬욱은 모두 “작품과 이름이 세계 영화사에 박힌 감독”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위상이 곧바로 한국 배우·제작자 전체에게 넓은 길을 열어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두 감독이 만들어 낸 것은 문이 활짝 열린 고속도로라기보다는, 구조를 이해한 사람만이 찾아 들어갈 수 있는 복잡한 교차로에 더 가깝다.
{ 한 줄 정리 } 봉준호와 박찬욱은 세계 영화사에 자신들의 자리를 확보했지만, 그 성공이 곧바로 한국 창작자 전체의 넓은 통로로 변한 것은 아니며, 메이저 스튜디오와의 협업은 여전히 높은 진입 비용과 복잡한 리스크를 요구한다.
기생충 배우들은 왜 세계적 얼굴이 되지 못했나
기생충은 작품과 감독에게는 거의 모든 것을 안겨 주었지만, 배우들에게는 조금 다른 양상의 결과를 남겼다. 오스카 시상식 이후 송강호와 이정은, 장혜진, 최우식, 박소담 등 주요 배우들의 이름은 미국 시상식과 인터뷰, 영화제에서 꾸준히 회자되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25년 11월 현재까지를 돌아보면, 이들이 마블, DC, 스타워즈, 대형 넷플릭스 프랜차이즈의 장기 고정 캐스트로 편입된 사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 내에서는 여전히 최정상 배우이지만, 미국 산업 안에서는 한 번 강렬하게 등장한 후 조용히 사라진 얼굴로 기억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에는 여러 층위의 이유가 겹친다. 첫째, 기생충은 어디까지나 “봉준호의 영화”로 소비된 작품이었다. 관객은 영화 안의 인물을 깊이 기억하지만, 크레딧에 적힌 배우 이름보다는 감독의 이름과 사회적 메시지를 기준으로 작품을 회상한다. 둘째, 기생충의 주연 배우 대부분은 당시 이미 3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경력을 쌓은 중견 배우였다. 헐리우드가 장기 프랜차이즈의 얼굴로 발탁할 때 선호하는 “20대 초중반의 새로운 스타” 기준과는 간극이 있다. 셋째, 2020년 초 오스카 수상 직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에서 새 프로젝트를 물어야 할 2~3년의 골든 타임을 통째로 지워 버렸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요소는 산업의 관성이다. 미국 스튜디오와 에이전시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어느 나라·어느 인종의 배우를 어떤 역할에 배치할지 나름의 ‘검증된 공식’을 운영해 왔다. 기생충의 배우들은 그 공식을 흔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공식 자체를 다시 짜야 할 만큼의 구조적 변화까지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대신 기생충의 성공은 이후 한국 드라마·영화가 넷플릭스와 HBO, 디즈니 플러스로 진출할 때 “한국 배우가 나와도 관객이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는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기생충 배우들의 현재 위치는 실패라기보다는 “정점에서 한 번 강하게 각인된 뒤, 각자의 한국 커리어를 이어 가는 중견 배우”에 가까운 좌표로 보인다. 기생충이 열어 준 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이후 세대의 배우와 시리즈들이다. 오징어 게임, 더 아콜라이트, 더 심퍼서이저 같은 작품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 한 줄 정리 } 기생충의 배우들은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지만, 미국 프랜차이즈의 얼굴로 장기 고정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고, 그 대신 이후 세대 한국 배우들이 미국 시장으로 들어갈 때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이정재와 이병헌, 넷플릭스 시대 한국 배우 좌표
이정재의 미국 도전은 오징어 게임으로 시작되었다. 시즌1의 성공은 에미 어워즈 수상으로 이어졌고, 이정재는 비영어권 배우로서는 이례적인 규모의 글로벌 인지도를 얻었다. 이어서 넷플릭스가 준비한 시즌2·시즌3는 한국 드라마로서는 드문 스케일의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흐름은 이정재를 단발 캐스팅이 아니라, 하나의 시리즈 세계관을 관통하는 얼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디즈니 플러스의 스타워즈 시리즈 더 아콜라이트 주연 캐스팅은, 한국 배우가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의 중심 인물로 선택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다만 결과는 복합적이다. 더 아콜라이트는 2024년 디즈니 플러스에서 가장 많이 본 작품 중 하나로 집계되었음에도, 제작비와 시청 추이, 브랜드 전략, 팬덤 갈등 등을 이유로 1시즌에서 종결되었다. 이정재 개인의 연기와 인지도는 오히려 더 많은 관객에게 각인되었지만, 시리즈 자체는 장기 프랜차이즈가 되지 못했다. 이정재의 미국 커리어는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 기준으로 “성공과 불확실성이 동시에 기록된 실험”에 가깝다.
이병헌의 경우 궤적이 조금 더 길다. 지 아이 조 시리즈와 레드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매그니피센트 세븐 등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추면서,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의 상한선을 조금씩 넓혀 왔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의 프론트맨 역할은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전 세계 시청자에게 각인시켰고, 2020년대 중반 들어서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여기에 최근 미국 제작사와 협업한 장기 프로젝트, 이 글에서 가칭 케데헌으로 지칭할 만한 새로운 작품까지 더해지면서, 이병헌은 “한국에서 온 카메오”가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 반복 등장하는 세계적 배우”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사례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정재와 이병헌 모두 인정받는 연기력과 수상 경력, 글로벌 팬덤을 갖추고 있지만,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의 장기 프랜차이즈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스스로 바꾸는 제작자·프로듀서 포지션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는 이들을 “검증된 조연 혹은 공동 주연”으로 꾸준히 기용하고 있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단계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배우들의 움직임은 점점 더 한국 내부 산업과 분리되기보다, 상호 의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의 인지도는 한국 내 광고·캐스팅에 다시 영향을 주고, 한국에서의 장기 활동은 미국 프로젝트의 일정과 역량을 제약한다. 이러한 교차 구조를 좀 더 넓은 문화·정치적 맥락에서 다룬 글로는 이전 글인 세계가 다시 연결되는 방법: 문화라는 조용한 힘이 있다. 2020년대 한국 배우의 미국 진출 역시, 결국 이런 상호 연결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 한 줄 정리 } 이정재와 이병헌은 넷플릭스·디즈니 시대에 한국 배우가 미국 프랜차이즈 중심부까지 접근한 드문 사례지만, 아직 프로젝트 전체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라기보다는, 검증된 얼굴이자 신뢰할 수 있는 공동 주연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호연 이후의 세대, 진행형 실험으로 남은 것들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글로벌 스타가 어떤 얼굴을 하고 등장하는지 보여 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델 출신이라는 이력, 게임 속 캐릭터의 서사, SNS와 패션·광고를 통한 이미지 확장이 한꺼번에 결합하면서, 그는 전통적인 영화·드라마 필모그래피를 넘는 방식으로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펜디·루이 비통 등 럭셔리 브랜드와의 협업, 각종 글로벌 캠페인은 정호연을 “배우이자 이미지 그 자체”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아직 진행형이다. A24와 BBC 필름이 공동 제작한 더 거버네시즈는 유럽 예술영화와 미국 인디 영화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으로, 흥행보다는 이미지와 필모그래피의 폭을 넓히는 데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 호프는 한국과 미국, 유럽 배우가 한데 섞인 대규모 SF 스릴러로, 정호연에게는 한국 감독·세계 배우들과 함께 서사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시험대가 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영어와 한국어가 혼재된 언어 환경, DMZ 인근이라는 지리적 설정, 할리우드 스타들의 참여가 결합된 구조로, 정호연에게는 오징어 게임과는 다른 종류의 글로벌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정호연 이후의 세대는 전통적인 영화·드라마만이 아니라, 패션·음악·SNS·게임 등 경계를 넘나들며 얼굴을 알리는 방식에 더 익숙한 배우들이다. 이들에게 미국 시장은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 중 하나로 기능한다. 오징어 게임 이후 등장한 각종 K-드라마와 영화, 글로벌 OTT 오리지널에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영어·한국어를 섞어 쓰고,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며, 동시에 한국과 미국·유럽의 광고 시장까지 오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연성이 곧바로 탄탄한 필모그래피와 장기 커리어로 이어지느냐는 점이다.
2025년 11월 현재까지 드러난 정호연의 미국 성적표는, 과장 없이 표현하면 “훌륭한 출발과 신중한 실험이 동시에 진행 중인 상태”다. 하나의 캐릭터로 전 세계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뒤, 예술영화와 대형 장르 영화라는 서로 다른 축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성공과 실패를 단정 짓기에는 이르지만, 앞으로 등장할 한국 배우·모델 출신 글로벌 스타들이 어떤 경로를 밟게 될지 가늠하게 해 주는 중요한 선례가 된 것은 분명하다.
{ 한 줄 정리 }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으로 얻은 세계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예술영화와 대형 장르 영화 사이에서 새로운 경로를 실험 중이며, 그 결과는 이후 세대 한국 배우들의 미국·유럽 진출 경로를 가늠하게 해 주는 중요한 선례가 되고 있다.
2025년 11월, 무엇을 ‘성공’의 기준선으로 삼을 것인가
2025년 11월 현재까지의 좌표만 놓고 보면, 한국 작품의 미국 진출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각종 K-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미키 17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한 번의 돌풍”이 아니라, 플랫폼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지속적인 공급의 시대를 열었다. 반면 개별 배우·감독·제작자의 커리어는 여전히 인종과 언어, 프랜차이즈 구조, 스타워즈나 마블 같은 기존 브랜드의 전략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성공과 실패는 한 작품의 흥행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의 장기적인 포지션 변화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2020년대 중반 한국 창작자의 미국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선은 세 가지쯤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 작품의 단발 성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플랫폼과 장르에서 반복되는 캐스팅과 기회가 있었는가. 둘째, 이름과 얼굴이 포스터와 기사 제목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제작·연출·프로듀싱 단계까지 접근했는가. 셋째, 인종차별과 정치 갈등, 플랫폼의 비용 절감 압박 등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지속적인 협업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봉준호와 박찬욱, 이정재와 이병헌, 정호연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준선을 조금씩 끌어올려 온 인물들이다.
다만 이 기준선 역시 고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정치적 분위기, 아시아인을 향한 시선, 스트리밍 플랫폼의 재편, 극장 개봉 환경의 변화는 앞으로도 몇 년 간 한국 창작자들의 성적표를 계속 흔들 것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로, 혹은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선구적 시도로 다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5년 11월에 쓸 수 있는 문장은 강한 단정이 아니라 “현재까지 드러난 경향의 정리”에 가깝다.
결국 이 시기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작품의 흥행 여부 때문이 아니라, 이후 등장할 케데헌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와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배우·감독들을 해석할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좌표를 세밀하게 기록해 두는 일은, 앞으로 또 다른 한국 작품과 얼굴들이 미국 시장에서 겪게 될 복잡한 행로를, 감정적인 찬반이 아니라 구조와 맥락의 언어로 읽어 내기 위한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 한 줄 정리 } 2025년 11월 현재의 성적표는 완결된 결론이 아니라, 한국 창작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어떤 조건을 만나고 무엇을 조금씩 바꾸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중간 점검표이며, 이후 세대의 성공과 실패를 해석할 기준선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참고·출처
이 글에서 언급한 미키 17의 제작·흥행 규모와 평가, 오징어 게임 시즌2·시즌3의 시청 기록, 더 아콜라이트의 방영·시청 추이와 연장 중단, 더 심퍼서이저의 평단 반응, 호프와 더 거버네시즈 등 정호연 관련 프로젝트의 기본 정보는 2024~2025년 기준 주요 영화·방송 데이터베이스, 스트리밍 플랫폼 발표 자료, 국내외 언론 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세부 수치는 향후 업데이트와 집계 방식에 따라 일부 달라질 수 있으며, 본문에서는 구조와 경향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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