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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센터로 읽는 현대건축 미학: 순백 모더니즘과 빛, 지형의 공공성

형성하다2025. 11. 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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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센터는 리처드 마이어의 순백 모더니즘, 이탈리아 트래버틴의 촉각적 시간, 언덕 위 로스앤젤레스의 빛과 전망을 합쳐 복합 문화캠퍼스에서 현대건축이 ‘질서·자연·체험’을 공공 미학으로 조직하는 방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3

언덕 위에 세운 새로운 도시, 게티센터의 탄생

게티센터는 산타모니카 산맥의 능선 위에 자리 잡은 대규모 문화 단지다. 1984년에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자로 선정된 뒤, 긴 인허가 과정과 공사 끝에 1997-12-16 일반에 개관했다. 낮은 고도 제한과 주변 경관 보존 조건이 강하게 작동해, 계획은 수직적 상징 대신 수평적 캠퍼스의 형태로 굳어졌다. 이 배경은 건물이 “기념비”가 아니라 “지형을 따라 확장되는 마을”처럼 읽히게 만든다. 언덕을 오르는 트램 이동 자체가 도시의 일상에서 분리되어 문화 공간으로 진입하는 의식을 구성하며, 게티센터의 미학은 이 전환의 장면에서 이미 시작된다.

게티센터의 미학은 개관 이전부터 지형과 규제 조건이 만든 수평적 ‘언덕 위 도시’에서 출발한다.

리처드 마이어의 모더니즘, 그리드와 순백의 질서

마이어 건축의 핵심은 기하학적 질서와 빛, 그리고 흰색이 만드는 명료함이다. 게티센터에서는 두 개의 자연 능선이 약 22.5도로 벌어진다는 지형 조건 위에, 서로 다른 그리드를 중첩해 캠퍼스 전체의 축과 시선을 조직했다. 갤러리 파빌리온, 연구시설, 광장, 정원이 그리드의 논리 속에서 배치되며 방문자는 공간을 “읽어가듯” 이동하게 된다. 흰색 알루미늄 패널과 유리의 반복은 이 질서를 시각적으로 고정해, 복잡한 프로그램을 하나의 언어로 통일한다. 결과적으로 게티센터는 모더니즘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경험을 정렬하는 방법론임을 증명한다.

게티센터의 그리드와 흰색은 기능을 미학으로 통합하는 현대 모더니즘의 설계법을 보여준다.

트래버틴과 금속의 대비, 촉각으로 완성되는 현대성

게티센터가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재료의 대비에 있다. 외장에는 대량의 트래버틴(석회질 석재)이 사용되었고, 그 위로 흰 알루미늄 패널과 유리가 맞물린다. 트래버틴 표면에는 화석 흔적과 결이 남아 있어 자연의 시간이 드러나는데, 매끈한 금속 패널의 공업적 정확성과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강화한다. 멀리서 보면 캠퍼스는 순백의 추상적 덩어리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돌의 거칠음과 미세한 공극이 손끝의 감각을 호출한다. 현대건축이 시각적 순수성과 물질적 현실을 동시에 품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 재료 조합에서 구현된다.

트래버틴의 자연 시간과 금속의 인공 질서가 겹치며 게티센터 특유의 촉각적 현대성이 만들어진다.

빛을 다루는 기술, 전시 공간의 보이지 않는 건축

게티센터의 실내는 “빛의 건축”이라는 마이어의 신념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무대다. 갤러리 상부의 천창과 루버 시스템은 자연광의 방향과 강도를 세밀하게 조절해, 작품 보호와 쾌적한 관람 조건을 동시에 맞춘다.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빛의 온도와 그림자가 천천히 이동하면서, 동일한 방도 매 순간 다른 분위기를 갖게 된다. 빛은 단지 비추는 요소가 아니라, 벽과 바닥의 면을 다시 조각하는 재료로 기능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설비와 계산이 관람 경험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게티센터는 현대 미술관 건축의 기준점을 제공한다.

게티센터의 자연광 제어는 기술을 숨긴 채 감각을 앞세우는 현대 미술관 미학의 모범이다.

동선과 정원, 건축이 풍경을 읽는 방식

방문 동선은 캠퍼스의 미학을 완성하는 마지막 층위다. 도착 광장에서 원형 로툰다를 지나 각 파빌리온으로 분기되는 흐름은, 그리드 질서 속에서도 개별 전시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되었다. 테라스와 다리, 계단은 실내와 실외를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며, 시선은 도시에 열리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온다. 중심부의 센트럴 가든은 로버트 어윈이 설계한 예술적 풍경으로, 건축의 정합성과 대비되는 유기적 곡선을 통해 캠퍼스에 숨을 불어넣는다. 정원은 휴식 공간을 넘어, 건축이 자연을 어떻게 내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시다.

트램에서 정원까지 이어지는 동선은 ‘도시에서 풍경으로’ 넘어가는 감각의 서사를 만든다.

현대건축 미학으로서의 평가, 절제와 공공성의 긴장

게티센터는 개관 전후로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아왔다. 순백의 질서가 지나치게 균질해, 삶의 복잡성을 지워버린다는 비판이 있었고, 언덕 위 입지가 엘리트적이라는 논쟁도 뒤따랐다. 반면 그 절제 덕분에 건축이 풍경과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테라스와 광장이 로스앤젤레스의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작동한다는 평가도 강하다. 실제로 게티센터는 박물관, 연구기관, 보존 연구시설, 정원이 하나의 캠퍼스로 결합된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순적 수용은 현대 모더니즘이 안고 있는 “순수성과 도시적 삶의 거리”라는 숙제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 자체가 미학적 가치가 된다.

게티센터는 모더니즘의 절제와 도시의 공공성이 맞부딪히는 지점에서 현대건축 논쟁을 지속시킨다.

맺음말

게티센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쪽의 평가에만 서지 않는 것이다. 그리드와 흰색이 만든 추상적 질서, 트래버틴이 남긴 자연의 시간, 그리고 LA의 빛과 전망이 교차하면서 이 캠퍼스는 하나의 거대한 “경험 장치”가 된다. 현대건축은 더 이상 형태의 새로움만을 겨루지 않는다. 삶과 풍경, 예술을 어떤 규칙으로 엮어내는지가 미학의 핵심이 된다. 게센터는 그 규칙을 가장 치밀하게, 그리고 가장 논쟁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게티센터는 형태보다 경험을 설계하는 시대의 현대건축 미학을 한눈에 보여준다.

참고·출처

게티센터의 위치, 설계자 선정 과정, 개관일 1997-12-16, 트램 접근 방식, 그리드 축과 재료 사용, 센트럴 가든의 계획과 완공 시점 등 기본 정보는 Getty Center 공식 소개와 관련 연혁 자료, 그리고 위키백과의 정리 내용을 교차해 확인했다. 지형 능선에 맞춘 22.5도 그리드 중첩과 캠퍼스 축 구성, 트래버틴과 알루미늄 외장 조합의 규모와 의도는 건축 해설 및 사례 연구 자료를 참조했다. 마이어의 모더니즘 철학과 빛 중심 설계, 자연광 조절 방식, 게티센터가 로스앤젤레스 건축 전통 및 공공성과 맺는 관계는 Getty Iris의 20주년 건축 비평 팟캐스트와 현대 건축 비평 글을 근거로 정리했다. 초기 고도 제한이 설계 개념을 수평적 캠퍼스로 바꾸는 데 미친 영향은 Los Angeles Times의 사전 비평 기사에서 확인했다.

위 자료들은 게티센터를 현대건축 미학의 사례로 읽기 위한 핵심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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