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나: 통일을 지운 체제
북한은 핵보유국이자 전쟁 파트너로, 통일 대신 적대 체제를 굳힌 단계에 와 있다.
핵·미사일 전력은 실전 운용을 상정한 ‘완성형’에 가까워졌고, 러시아와는 상호 방위에 준하는 군사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중국과의 교역과 부분적 국경 개방으로 제재를 버티는 한편, 헌법과 선전을 통해 남한을 영구한 적국으로 못 박으며 통일 담론을 스스로 지워 버렸다.
경제는 붕괴도 회복도 아닌 장기 버티기 국면에 머물고 있고, 사회 통제와 이념 재편은 더 강경해졌다. 한국이 마주한 북한은 더 이상 ‘언젠가 열릴 상대’라기보다, 장기간 관리해야 할 핵무장 적대국이라는 점을 전제로 보고 있어야 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7
핵·미사일: ‘완성형’에 가까워진 군사력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이제 단순한 실험 단계가 아니라, 주변국을 겨냥한 다층 실전 운용 구상에 근접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 의회조사국과 일본 방위백서 등 여러 공개 자료는 북한이 이미 탄도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수준으로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구체적인 탄두 수는 추정치마다 차이가 있지만,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 생산량을 감안한 분석에서는 수십 기에서 많게는 90기 안팎까지 언급된다. 즉, 서울과 도쿄, 주일·주한미군 기지, 괌과 알래스카를 포함한 다양한 표적에 맞춘 핵 위협 구도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2024년 이후 북한은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 16B와 극초음속 활공체를 결합한 시험 발사를 공개하며, 미사일의 생존성과 비행 궤적 변칙성을 과시했다. 일본 방위백서와 군사 전문 분석에 따르면, 화성 16B는 기존 액체연료 미사일보다 발사 준비 시간이 짧고, 이동식 발사대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선제 타격으로 제거하기가 훨씬 어렵다. 여기에 전술핵 운용을 염두에 둔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순항미사일까지 더해지면서 북한은 장거리 전략핵과 한반도·일본을 겨냥한 전술핵을 함께 갖춘 다층 핵전력을 추구하고 있다. 핵무기를 단숨에 포기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앞으로도 추가 실험과 배치를 통해 계속 다듬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은 ‘가능성’이 아니라 주변국을 겨냥한 다층 실전 운용을 상정한 단계까지 올라와 있다.
러시아와 중국: 제재 속에서 짜인 새로운 대외 축
북한의 대외 환경에서 가장 큰 변화는 러시아와의 군사·안보 협력이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었다는 점이다. 2024년 6월 평양에서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은 한 국가가 무력 공격을 받으면 다른 국가가 군사적 수단을 포함해 즉시 도움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냉전기 조약 이후 가장 강한 수준의 상호 방위 약속으로, 유엔 제재 아래 고립돼 있던 북한이 러시아와의 ‘전쟁 파트너’ 관계를 공식화한 셈이다. 실제로 2023년 이후 북한은 수백만 발에 이르는 포탄과 다수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러시아에 제공한 것으로 여러 정보기관과 연구기관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군사 지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 가능한 소모전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대가로 북한은 식량·에너지·현금뿐 아니라 위성·미사일·항공기 기술 등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보도는 수천 명 규모의 북한 병력과 공병, 지뢰 제거 인력이 러시아 서부 지역에 투입됐다고 전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보다 조용하지만, 경제 생명선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결정적이다. 북중 교역량은 코로나 이전 수준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고, 단둥과 신의주 등 접경 지역의 물류 인프라와 육로 교통은 단계적으로 재가동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서 전쟁 물자를 통해 외화를 벌고, 중국을 통해 제재로 막힌 물자와 연료를 보완하는 이중 구조를 만들어 장기 버티기 체제를 구축하는 중이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 파트너십, 중국과의 경제 생명선을 통해 제재 속에서도 장기 버티기용 외부 축을 만들어 냈다.
통일을 지우고 남한을 ‘영구한 주적’으로 규정하다
대내 정치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한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폐기하고, 영구한 적성 국가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남한을 “주요 적국”이며 “변함없는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헌법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남한을 별도의 국가이자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오랫동안 유지되던 ‘민족 내부의 통일 대상’이라는 서사를 접고, 제도적으로도 두 국가 체제를 고정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상징의 수준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처럼 통일을 상징하던 시설은 철거 또는 방치되고,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와 남북 경제협력의 흔적도 정리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평양문화어 보호법’처럼 남한식 표현과 외부 문화를 단속하는 강력한 법률이 도입되면서, 주민들의 언어와 일상에서 남한과 통일 이미지를 지우려는 시도가 강화되고 있다. 북한 매체의 대남 보도는 ‘동족’ 대신 ‘적국’이라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남한 정부와 사회를 적대적 사례로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통일은 더 이상 현실적인 목표라기보다, 과거 선전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에 가깝다.
북한은 헌법과 상징, 선전을 통해 남한을 통일 상대가 아닌 영구한 적대 국가로 고정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붕괴도 정상화도 아닌 장기 버티기 경제
경제 측면에서 북한은 여전히 유엔 제재와 자체 구조적 한계로 인해 만성적인 저성장과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에너지·정제유·금속·해운을 겨냥한 제재는 산업 전반의 회전 속도를 떨어뜨리고,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는 식량난을 주기적으로 악화시킨다. 한국과 국제 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많은 군수 공장과 일반 공장은 전력과 원자재 부족으로 30퍼센트 안팎의 가동률에 머무는 반면, 러시아에 포탄과 탄약을 제공하는 일부 군수 공장은 최대치에 가깝게 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마당과 비공식 시장 경제는 주민 생계의 핵심 축이 되었지만, 당국은 필요에 따라 통제를 강화하거나 완화하는 방식으로 통제와 생존 사이에서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닫혔던 국경은 2024년 러시아 관광객을 제한적으로 받는 것으로 일부 재개되었고, 이후 중국과의 인적·물적 교류도 단계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관광과 개방 경제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외화 수입과 물자 조달은 러시아와 중국에 편중되어 있고,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잠깐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 패턴이 반복된다. 주민들에게는 자력갱생과 충성을 요구하는 선전이 지속되지만, 현실의 생계는 비공식 시장과 국경 밀무역, 국가 사업 참여라는 복합적인 구조로 버티고 있다. 이 모든 정황을 감안하면, 북한 경제는 붕괴 직전도, 정상 국가로 회복된 것도 아닌, 제재와 전쟁 파트너십을 활용한 장기 버티기 국면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북한 경제는 제재와 전쟁 파트너십, 비공식 시장을 엮어 붕괴도 회복도 아닌 ‘장기 버티기 체제’로 고정되는 중이다.
한국이 마주한 북한: 무엇을 전제로 봐야 하는가
이러한 변화들을 종합하면, 한국이 마주한 북한은 더 이상 ‘언젠가는 통일 협상의 상대로 돌아올 수 있는 나라’라는 전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 핵·미사일 전력은 한미동맹과 일본을 동시에 겨냥한 억지·위협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러시아와의 군사 파트너십은 한반도 위기가 다른 전장과 직결될 위험을 키우고 있다. 헌법과 선전을 통한 대남 적대 고정은 남북 간 정권 변화나 일시적 대화가 구조를 바꾸기 어렵게 만들고, 경제와 사회 통제는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체제’라는 북한 지도부의 자신감을 일정 부분 뒷받침해 준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웃에 있는 핵무장 적대국을 장기간 관리한다는 전제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억지·방어·위기관리·제재·인도적 지원의 조합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동시에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에 더 깊이 의존할수록, 한반도 문제는 동북아 전체 전략 경쟁의 일부로 더 강하게 흡수된다. 이는 대만 유사시 또는 동중국해·동해에서의 위기가 한반도와 분리되어 관리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군사력 구조와 한미일 안보 협력, 대중 관계와 제재 정책은 모두 ‘북한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라는 현실 인식 위에서 북한을 과소평가하면 억지와 방어가 약해지고, 과대평가하면 불필요한 공포와 과도한 군비 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
북한은 ‘언젠가 변할 상대’가 아니라, 장기간 관리해야 할 핵무장 적대국이라는 전제아래 한국의 안보·외교·경제 전략이 존재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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