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위한 전쟁은 없다, 그러나: 일중 갈등 속 ‘후방 기지’가 된 한국의 선택과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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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유사시, 한국은 어디까지 끌려 들어갈 것인가를 한 번만 차분히 그려 본다.

일중 갈등이 격화된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은 이제 한·미·일과 중국·러시아·북한이 동시에 맞물리는 단일 작전 공간이 되고 있다.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동맹 구조와 해상 교통로, 반도체와 에너지 공급망을 통해 한국은 이미 이 갈등의 안쪽에 서게 되었다. 이 글은 대만 유사시 한미일 동맹이 한국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할지, 그 과정에서 국내 정치·경제·사회가 맞닥뜨릴 현실적 비용을 시나리오로 정리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7

다시 고조된 일중 갈등,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이 겹치는 지점

앞선 글 일중 갈등 격화, 대만·동중국해·한미일 안보 지형까지 흔들다에서 정리했듯, 최근 일본 총리가 대만 무력 침공을 가정하며 일본의 군사 대응 가능성을 언급한 뒤 중국의 강경 대응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주일 대사 초치와 비판 성명에 그치지 않고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자제를 권고하며 단체 관광과 일부 유학·문화 교류를 사실상 묶는 조치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일본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항공·면세·소매 업종의 주가가 크게 출렁이고, 엔·위안 환율과 함께 양국간 투자 흐름도 눈에 띄게 요동치고 있다. 같은 시기 대만 주변에서는 중국군의 항모 전단과 폭격기 편대 비행, 동중국해에서는 중국 해경선과 드론의 센카쿠 인근 상시 출현이 관측되며, 외교 갈등이 곧바로 해상·공중 군사 긴장으로 치환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은 남서 도서 방어를 명분으로 요나구니 등지에 장거리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고 주민 대피 계획을 갱신하며, 대만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을 전제로 한 작전 구상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일중 갈등은 외교 분쟁을 넘어 동중국해와 대만해협 전체를 하나의 전방 안보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대만 유사시 한미일 동맹이 한국에 그릴 ‘역할 그림’

한미일 안보 협력은 2023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상시 협의체’로 제도화되었고, 이후 공동성명과 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다년 계획의 연합훈련과 미사일 경보 정보 공유, 대잠·방공 협력이 구체화되었다. 대만 유사시라는 가정 아래 그려지는 기본 그림은 일본이 전방 기지와 해상·공중 전력을 제공하고, 한국은 미군과 연합군을 위한 후방 기지와 탄약·정비·의료·정보 지원을 맡는 ‘전방·후방 분담’ 구조다. 이 구도에서 주한미군은 북핵 억제와 동시에 대만 작전 지원 임무까지 겸하게 되고, 한국군 역시 공식 파병 여부와 별개로 정찰·공중급유·해상 보호 작전 등 간접 지원 범위를 어디까지 열어둘지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 주요 싱크탱크들은 이미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하는 ‘이중 위기’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탄약과 미사일을 상호 보충하는 3국 간 보급 협정을 논의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위치는 ‘대만을 돕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느 수준까지 후방 기지·보급·정보 자산을 제공할지, 그 대가로 어떤 확장 억제와 경제·기술 협력을 보장받을지라는 보다 냉정한 거래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만 유사시 한국은 방관자도, 직접 참전국도 아닌 ‘후방 전선의 핵심 기지’ 역할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내부의 정치·사회 갈등: ‘대만을 위한 전쟁’인가, ‘한국을 지키는 선택’인가

대만 유사시 한미일 공조를 둘러싼 국내 논쟁은 이미 예고편이 시작된 상태다. 한편에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직결된다”는 정부·외교 라인의 공식 입장이 반복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이 미국·일본의 전략에 과도하게 끌려 들어가 중국의 보복과 군사적 위협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치권은 ‘동맹 의무’와 ‘국익 중심 자율 외교’라는 두 구호를 쟁점화하며, 선거 국면마다 대만 이슈가 한미일 동맹과 대중 관계를 둘러싼 프레임 싸움의 도구가 될 위험이 크다. 특히 징병제와 예비군 제도로 전쟁의 부담을 감당하는 청년층, 중국에 수출과 관광 의존도가 높은 지역과 산업은 “대만을 위해 한국이 왜 희생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더 거세게 던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군과 외교·안보 관료 조직에서는 “대만에서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것이고, 이는 방위비 증액과 특정 무기 도입, 한미일 연합훈련 확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것이다.

대만 유사시는 동맹과 자율 외교, 징병과 세대 부담을 둘러싼 한국 내부의 오래된 균열선을 다시 크게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시작되는 경제·해상·반도체 충격

대만해협은 한국 에너지 수입과 수출 물동량 상당수가 지나는 해상 교통로이고, 대만은 반도체·장비·IT 공급망에서 한국과 경쟁자이자 협력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여행 자제 권고와 단체 관광 중단, 콘텐츠·수산물 수입 제한 같은 경제 보복 카드가 반복되어 왔듯, 대만 유사시에는 한국에도 유사한 조치가 향할 수 있다. 미국이 안보와 공급망을 이유로 반도체와 첨단 부품에 고율 관세와 투자 제한을 걸고, 중국이 이에 맞서 한국 기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과 소비자 불매, 규제 조사를 늘린다면,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는 체감 가능한 충격을 받게 된다. 이미 미국과 대만, 한국은 각각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관세 협상을 통해 ‘자국 중심 공급망’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미묘한 협력과 경쟁, 견제가 교차하고 있다. 앞선 글 2025 APEC 이후, 탈세계화와 재편된 동맹 구조의 현주소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정학과 공급망이 한꺼번에 재편되는 국면에서 한국은 안보 선택이 곧 산업 전략과 기업의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만해협 위기는 곧바로 유가·해상 운임·반도체와 중국 시장 리스크로 번져, 전쟁이 없어도 한국 경제를 압박하는 구조적 충격을 만든다.

군사력·인구·동맹을 같이 보는 ‘현실적인 강군’ 설계

일중 갈등과 대만 문제는 결국 한국 군사력의 방향을 다시 묻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미 한국·일본·대만 군사력: 위협은 커지는데 증강 계획은 모호하다한국 군대, 사람부터 모자란다: 인구 절벽 속 상비군·예비군에서 정리했듯, 한국군은 병력·예산·장비 규모에 비해 정찰·대잠·미사일 방어·지휘통제 등 핵심 영역이 과도기 상태에 있고, 인구 감소로 인해 병력 구조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대만 유사시 후방 기지·보급·정보 지원까지 요구되는 시나리오를 얹으면, 단순히 더 많은 무기와 더 큰 예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 문제가 된다. 앞으로 한국이 현실적인 강군을 설계하려면, 한반도 국지전·북핵 억제·대만 유사시 후방 지원이라는 세 가지 임무 중 어느 수준까지를 자국 군사력과 동맹에 각각 배분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KF-21·KSS-III·미사일 방어·우주·사이버·무인기 같은 개별 전력 계획이, 인구와 예산 제약 안에서 어떤 순서로 배치되어야 하는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군사력 논의가 “더 센 군대”나 “핵무장” 같은 구호를 넘어서, 실제로 감당 가능한 임무와 장기 설계의 언어로 바뀌지 않는다면, 대만 유사시 논쟁은 다시 감정과 구호만 남는 공허한 싸움이 될 것이다.

대만 유사시를 상정한 군사력 논의는, 결국 한국이 어떤 전쟁을 감당할지와 어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동맹과 외교를 어떻게 설계할지의 문제다.

한국이 지금부터 정리해야 할 최소한의 질문들

대만 유사시는 아직 상상 속의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그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그려 보는 작업은 전쟁을 피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첫째, 한국 사회는 대만해협 위기에서 자국의 역할과 한미일 공조 수준을 둘러싼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단지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선언을 넘어, 정보 공유·후방 지원·제재 참여·파병 여부를 단계별로 구분한 현실적인 옵션이 필요하다. 둘째, 반도체·배터리·조선·자동차·콘텐츠처럼 중국과 미국, 대만 시장에 동시에 의존하는 산업에 대해, 대만 유사시 각 단계에서 발생할 법적·금융·공급망 리스크를 가시화하고, 기업과 정부가 나눠 져야 할 부담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셋째, 징병제·예비군·동원체계가 대만해협 위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청년 세대와 솔직하게 논의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이 질문들을 피한 채 ‘대만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이분법만 반복한다면, 실제 위기가 왔을 때 한국은 준비되지 않은 채 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만 유사시 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군사력·경제·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타협할 것인지에 대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