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이야기 5:서울 자가 김 부장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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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과 형의 삶은 끊어진 계급 사다리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9

장남과 차남, 뒤집힌 기대가 만든 계급 아이러니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형 김창수는 한때 부모가 모든 기대를 걸었던 장남이다. 공부도 잘했고, 집안의 미래처럼 취급되던 인물이다. 반대로 동생 김낙수는 늘 비교의 대상이던 차남이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ACT 대기업 부장과 서울 자가라는 두 가지 티켓을 손에 쥔다. 표면적인 계급 사다리 위에서는 형제가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그러나 이 역전은 “능력 있는 사람이 올라간다”는 깔끔한 서사를 증명하기보다, 누가 제도권 경쟁에 적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형의 능력과 성실함은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동생의 경력과 학력만 제도 안에서 ‘성공’으로 기록된다.
형제의 뒤집힌 운명은 능력보다 제도 적응력이 계급을 나누는 한국식 현실을 드러낸다.

서울 자가·대기업 vs 카센터, 두 계급의 진짜 좌표

동생 김부장은 대기업 정규직과 서울 자가라는 조합으로 상징되는 한국 중산층의 상단부에 서 있다. 명함과 직함, 연봉과 퇴직금, 아파트 평형과 시세가 그의 계급을 정의하는 지표다. 그는 스스로를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여기지만, 그 성공은 회사라는 구조와 부동산 시장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 언제든 인사표와 금리, 경기 변동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불안정한 안정이다. 반대로 형 김창수의 좌표는 카센터라는 작은 작업장에 찍혀 있다. 그는 거대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매출과 기술, 단골과 신뢰라는 보다 직접적인 자산을 통해 버틴다. 제도권 밖이라 낮춰 보이기 쉬운 자리지만, 최소한 누구 눈치를 보며 이름과 직함을 지켜야 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삶을 나란히 놓고 보면, ‘위’와 ‘아래’라는 직선형 계급 구도가 어색해진다. 회사와 집값에 인생이 종속된 중간관리자의 삶이 과연 자영업자의 삶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지, 드라마는 대답을 유보한 채 질문만 남긴다. 계급은 월급과 평형표로 쉽게 나누어지지만, 실제 삶의 통제권과 존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배분되어 있다는 사실이 형과 동생 사이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조직 자본과 기술·관계 자본의 충돌 속에서, 누구를 ‘위’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애매해진다.

위기 앞에서 무너지는 가짜 안정, 드러나는 진짜 기반

김부장의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은 대기업 정규직과 서울 자가가 동시에 균열을 보일 때다. 승진 실패와 명예퇴직 압박, 사기와 공황 증상이 겹치면서, 그가 신뢰해 온 모든 안전장치가 한꺼번에 의미를 잃는다. 인사권자의 말 한마디와 계약서 한 줄, 시세 그래프 몇 칸이 그의 계급 좌표를 순식간에 끌어내린다. 구조가 허락한 ‘성공’이 구조가 거둬 가는 ‘위기’로 전환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때 김부장이 찾아가는 곳이 바로 형의 카센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형의 작업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서류와 직급이 아닌 얼굴과 손, 기술과 시간으로 유지되는 공간이다. 조직이 잘라 버린 사람도, 시장이 가치를 낮게 책정한 인간도 일단 들어오면 차를 고치듯 다시 굴러가게 만드는 곳이다. 동생은 자신의 명함이 더 이상 쓸모없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이 공간에 발을 들인다. 위기 앞에서 진짜 기반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여기서 선명해진다. 회사와 아파트를 잃었을 때 남는 것과, 애초에 그런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가진 것을 나란히 보라는 요구가 형과 동생의 재회 장면에 숨겨져 있다.
위기 순간에 남는 기반은 직급과 평형이 아니라, 삶을 다시 굴릴 수 있게 해 주는 기술과 관계다.

두 남자의 실패와 존엄, 멈춰 선 계급 사다리의 자화상

형과 동생은 서로를 보며 동시에 우월감과 열패감을 느낀다. 김부장은 형의 삶을 보며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형은 동생을 보며 “명함 하나에 매달려 흔들리는 삶이 저게 다인가”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두 사람 모두 부모 세대가 믿어온 ‘성공 공식을’ 따르려 했지만, 결과는 어느 쪽도 완벽한 승자가 될 수 없는 지점에서 만난다. 한쪽은 조직이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고연차 관리직이고, 다른 한쪽은 경기와 사고 건수에 매달린 자영업 노동자다. 실패의 모양은 다르지만, 둘 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사다리를 보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조용히 선언한다. 계급 사다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위로 열린 구조는 아니라는 것을. 김부장과 형의 대비는 “누가 더 잘 살았느냐”를 겨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계급 이동이 막힌 시대를 증언하는 서사에 가깝다. 어느 쪽도 완전히 무너지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올라서지도 못한 채, 서로의 삶을 거울 삼아 버티는 두 남자의 얼굴에서 한국 중년 남성 계급 구조의 피로와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형과 동생의 삶은 더 이상 위로 열려 있지 않은 계급 사다리 위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멈춰 선 얼굴들이다.

맺음말, 형제로 읽는 한국 계급 구조의 날 선 단면

김부장과 형 김창수는 한국식 계급 구조의 두 축을 한 가족 안에 압축한 인물들이다. 하나는 대기업과 부동산에 기대 선 제도권 중산층, 다른 하나는 기술과 몸으로 버티는 비제도권 노동·자영업층이다. 드라마는 이 둘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누기보다,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불안과 책임, 체념과 자존을 병렬로 놓는다. 그 사이에 놓인 불편한 감정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계급을 말할 때 피하고 싶은 진실에 가깝다.
이 형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더 위냐”가 아니라 “어디에 서 있는 나도 결국 비슷한 사다리 위가 아닌가”라는 자각이다. 김부장의 회사와 서울 자가, 형의 카센터와 작업복은 서로 다른 계급 기호처럼 보이지만, 둘 다 균열과 한계를 품고 있다. 두 남자의 거친 대화와 서툰 연대는, 계급 이동 신화를 믿기 어렵게 된 시대에 남은 몇 안 되는 현실적인 대화 방식이다. 형제로 읽는 이 계급 구조의 단면이 날카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속에 각자의 현재와 가까운 그림자가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김부장과 형의 대비는 더 이상 위가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 속에서 서로를 거울 삼아 버티는 한국 중년 남성의 초상이다.
서울 자가 김 부장 연속 리뷰는 김부장 이야기 1: 부하 직원의 눈으로 본 김 부장, 한국식 대기업 중간관리자의 초상, 김부장 이야기 2: 김부장이 바라보는 회사, 김부장 이야기 3: 상무의 눈으로 보는 김부장, 김부장 이야기 4: 가족의 눈으로 보는 김부장, 김부장 이야기 5: 서울 자가 김 부장과 형, 김부장 이야기 6: MZ·청년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김 부장 까지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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