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 이야기 6: MZ·청년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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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의 눈에서 보면 김 부장은 더 이상 닮고 싶은 성공이 아니라, 현실의 벽에 가까운 상사다.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김낙수는 부모 세대가 부러워할 만한 완성형 중산층이지만, 청년·MZ 노동자의 눈에서는 이미 도달 불가능한 기차처럼 보인다.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조건은 취준과 계약직·플랫폼 노동을 전전하는 세대에게 공감의 언어가 아니라 위화감의 언어다. 이 글은 MZ의 시선에서 김 부장을 바라볼 때 드러나는 세대 간 거리감과 구조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정리한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29

서울 자가 김 부장, MZ에게는 애초에 못 타는 기차

MZ 청년에게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은 이론상 존재하는 기준일 뿐, 현실적으로는 거의 닿지 못하는 좌표에 가깝다. 취준 과정에서 수십 장의 이력서를 보내고, 인턴과 계약직·파견직을 반복해도 정규직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경험이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 사이 수도권 집값은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내 집 마련은 처음부터 포기 목록에 들어간 지 오래다. 이런 세대에게 김 부장은 “열심히 하면 도달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 애초에 출발역부터 다른 기차를 탄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김 부장이 위기를 겪을 때, MZ의 반응은 단순한 연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 정도 커리어와 자산이 있어도 저렇게 흔들린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안전을 찾아야 하나”라는 냉소가 함께 따라붙는다. 사다리 꼭대기 근처에 도달한 사람이 여전히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다리 자체의 유효성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김 부장은 세대에게 더 이상 ‘꿈의 종착역’이 아니라, 위험한 노선의 끝에 서 있는 안내판처럼 비친다.
MZ의 눈에서 서울 자가 김 부장은 도달 목표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선로를 달리는 기차에 가깝다.

꼰대 미화냐 구조 비판이냐, 엇갈리는 시선

MZ 시청자가 김 부장을 볼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감정은 “또 꼰대 미화인가”라는 의심이다. 부하는 갈아 넣으면서 집에서는 상처 입은 가장으로 그려지는 서사는 이미 익숙하다. 회사에서 가해자였던 상사가 가정과 개인사로 넘어오면 갑자기 피해자로 재포장되는 구조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다. 김 부장이 부하에게 했던 말과 선택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그의 눈물과 공황은 쉽게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상사의 고통이 이해되더라도, 그 고통이 아래 세대에게 전가된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동시에, 이 드라마를 구조 비판으로 읽는 MZ도 분명 존재한다. 임원 승진과 명퇴 압박, 회사 밖에서 정체성을 상실하는 중간관리자의 공포를 보며, “이 구조에서는 어느 세대도 안전하지 않다”는 냉정한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시선은 개별 상사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세대 전체를 소모품으로 만드는 시스템에 초점을 맞춘다. 꼰대 미화와 구조 비판 사이에서 갈라지는 반응 자체가, MZ가 김 부장을 단순 캐릭터가 아니라 구조를 읽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MZ에게 김 부장은 꼰대 미화와 구조 비판 사이에서 동시에 의심되고 활용되는 모순적인 상사다.

김 부장은 내 미래인가, 내 머리 위의 벽인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청년에게 김 부장은 잠재적인 미래와 장애물 두 얼굴로 겹쳐 보인다. 한편으로는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가 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상상 속 모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 머리 위에서 구조를 굳히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팀장과 부장이 조직의 규칙과 관행을 붙잡고 버틸수록, 아래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김 부장이 억지스러운 희생과 충성을 요구할 때, MZ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벽을 동시에 보는 기분을 느낀다.
정규직 트랙 바깥에 있는 청년에게는 이 감각이 더 날카롭다. 플랫폼 노동과 프리랜서, 단기 계약과 프로젝트 단위로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김 부장은 아예 다른 세계 사람이다. 매달 고정 급여와 퇴직금을 전제로 움직이는 고민 자체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김 부장이 회사에서 겪는 모멸과 불안을 보면서, “정규직 트랙에 올라탄다고 해서 이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나”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생긴다. 김 부장은 어떤 청년에게는 닮고 싶지 않은 미래이고, 어떤 청년에게는 애초에 접근할 수 없는 벽이다.
MZ에게 김 부장은 동시에 언젠가 닮게 될지도 모르는 그림자이자, 지금 머리 위에서 길을 막고 선 벽이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사, MZ가 읽는 감정의 공백

MZ는 김 부장을 보며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상사”라는 모순을 동시에 인식한다. 그는 부하의 공을 가로채고, 조직 논리를 이유로 야근과 과도한 책임을 떠넘긴다. 회의실에서의 말 한마디와 평가표의 점수가 후배의 연봉과 커리어를 결정하는 자리를 이미 너무 오래 점유해 왔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임원 승진 실패와 명퇴 압박, 공황 발작을 겪는 김 부장의 내면을 세밀하게 비춘다. 이 지점에서 일부 시청자는 상사의 상처에 공감하고, 다른 일부는 “그 상처가 결국 아래를 향해 흘러내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MZ의 눈에서는 이 감정의 공백이 선명하게 보인다. 상사는 자신의 상처를 말할 수 있지만, 부하는 그 상처에 희생된 시간과 건강, 기회를 이야기할 언어와 장을 갖지 못한다. 김 부장이 눈물과 고백을 통해 인간적인 얼굴을 되찾을 때, 청년 노동자는 그 장면을 받아들이면서도 묻는다. “그럼 우리 세대가 감당한 건 누가 설명해 주는가.” 드라마가 상사의 인간성을 복원하는 동시에, 하위 세대의 감정과 기록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이 공백은 더 크게 느껴진다.
MZ는 김 부장의 상처를 보면서도, 그 상처가 아래 세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말해지지 않는 공백을 읽어 낸다.

맺음말, MZ의 눈이 드라마에 던지는 질문

MZ의 눈으로 ‘서울 자가 김 부장’을 볼 때, 이 드라마는 단순한 중년 남성의 위기극이 아니라 끊어진 사다리 위에서 세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실험처럼 보인다. 김 부장은 부모 세대가 믿어 왔던 성공 공식의 거의 완성형이지만, 그 자리에 선 삶이 결코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청년 세대는 그 모습을 보며 “저 자리까지 가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이 공식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가 남아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회사와 계급 구조가 누구에게 실제적인 안전을 주고 있는지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MZ에게 이 드라마는 상사의 사정에 공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사와 부하 모두를 소모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묻는 텍스트에 가깝다. 김 부장을 이해할수록, 그와 닮아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함께 커진다.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을 꿈꾸는 대신, 전혀 다른 궤도를 상상하려는 시도가 이 드라마를 매개로 더 분명해질 수 있다. MZ의 시선이 겹쳐지는 순간, 김 부장은 한 명의 불행한 가장을 넘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성공 서사의 얼굴로 남는다.
MZ의 눈은 김 부장을 통해 상사의 사정이 아니라, 더 이상 믿기 어려운 성공 공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연속 리뷰는 김부장 이야기 1: 부하 직원의 눈으로 본 김 부장, 한국식 대기업 중간관리자의 초상, 김부장 이야기 2: 김부장이 바라보는 회사, 김부장 이야기 3: 상무의 눈으로 보는 김부장, 김부장 이야기 4: 가족의 눈으로 보는 김부장, 김부장 이야기 5: 서울 자가 김 부장과 형, 김부장 이야기 6: MZ·청년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김 부장 까지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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