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말해도 처벌될 수 있는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가 정면 충돌하는 대표 규정이다. 허와 실, 폐지 시 파장, 현실적 대안을 한 번에 정리한다.
폐지는 고발을 살리되, 민사·사생활 보호장치가 필수다.
현행 제도는 공익적 문제제기까지 위축시키는 효과가 누적된다. 반대로 폐지만으로는 사생활 폭로와 신상털기를 막기 어렵다. 그래서 “형사 축소”와 “민사·프라이버시 강화”를 한 묶음으로 봐야 한다.
사실적시명예훼손죄는 무엇을 처벌하나
핵심은 “진실 여부”가 아니라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사실의 공개”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하도록 두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이 주로 거론되는데, 여기에는 ‘비방 목적’이라는 주관적 요건이 붙는다. 다만 실무에서는 문장 톤, 게시 맥락, 갈등 관계 같은 정황으로 ‘비방 목적’이 넓게 다투어지는 편이라 안전장치처럼만 기대하기도 어렵다.
중요한 예외가 형법 제310조다.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이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 규정이다. 문제는 ‘진실’과 ‘공익’의 입증 부담이 사실상 발언자에게 쏠리고, 공익 판단도 사안별로 흔들린다는 점이다. 같은 사실이라도 누가, 어떤 자리에서, 어느 범위로 공개했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형법은 ‘사실 공개 자체’도 처벌대상으로 두고, 예외는 공익 요건으로 좁힌 구조다.
허: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지점
진실이면 무조건 무죄라는 착각
가장 흔한 오해는 “사실이면 괜찮다”는 믿음이다. 현실에서는 진실 입증이 쉽지 않고, 설령 사실이어도 공익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처벌 리스크가 남는다. 특히 사적 관계의 갈등, 연애·가정사, 개인 건강·병력, 직장 내 소문처럼 공적 관심과 거리가 먼 영역은 공익이 약하다고 보기 쉽다. 결과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행위가 ‘무죄’가 아니라 ‘승부가 갈리는 소송’으로 변한다.
공익이면 표현 방식은 상관없다는 착각
공익 주장이 성립하려면 내용뿐 아니라 방법도 함께 평가된다. 불필요한 신상 공개, 과도한 조롱, 캡처·문서 원본의 무차별 배포처럼 명예 침해를 키우는 방식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공익 문제제기라도 “필요 최소한”을 넘는 순간, 공익 논리의 설득력이 급격히 약해진다. 그래서 공익과 표현 방식은 따로 놀지 않는다.
온라인은 ‘비방 목적’ 때문에 안전하다는 착각
정보통신망법은 ‘비방 목적’이 요건이라 언뜻 더 엄격해 보인다. 그러나 다툼은 대부분 정황 싸움으로 번지고, 당사자 간 감정적 갈등이 있으면 의도가 부정적으로 추정될 위험이 커진다. 게다가 온라인은 전파 범위가 넓어 피해 주장도 커지기 쉬워, 분쟁이 커지는 속도 자체가 다르다. “온라인이 더 안전하다”는 결론은 성립하기 어렵다.
진실, 공익, 비방 목적은 ‘말 한 줄’이 아니라 ‘맥락 전체’로 재단된다.
실: 이 제도가 실제로 만드는 효과
첫째, 위축 효과가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공익을 위해 말을 꺼내는 사람일수록 증거를 완벽히 갖추기 어렵고, 소송 자체가 부담이라 침묵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 쉽다. 둘째, 분쟁 해결이 ‘정정과 토론’이 아니라 ‘형사 절차’로 빨려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형사 고소는 협상 레버리지로 기능하면서, 사건의 본질인 안전 문제나 소비자 피해, 조직 내 부조리가 곁가지로 밀린다.
반대로, 제도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사생활 폭로형 공격, 전 애인·이웃·직장 동료를 겨냥한 신상 공개처럼 ‘진실이지만 잔인한’ 공격을 억제하는 효과가 존재한다. 민사로만 돌리면 피해자가 시간과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결국 이 제도는 “표현의 자유를 줄여서 사생활을 지키는”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 셈이다.
현행 구조는 ‘폭로 억제’에는 유리하지만 ‘공익 고발’에도 동일한 겁을 준다.
없어지면 생기는 일
먼저, ‘사실을 말한 것’만으로 형사처벌되는 영역이 줄어들면서 공익적 발화가 늘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후기,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2차 가해, 지역사회 권력형 문제처럼 지금도 말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특히 변화가 생긴다. 형사 리스크가 낮아지면 제보와 보도의 초기 문턱이 내려가고, 공론화 속도도 빨라진다. 이는 사회적 감시 기능 측면에서는 분명한 이익이다.
동시에 부작용도 같이 온다. 진실을 빙자한 사생활 폭로, 불필요한 실명 공개, 캡처·대화 로그 유출 같은 ‘프라이버시 침해형 공격’이 늘어날 여지가 있다. 분쟁의 무게는 민사로 이동하는데, 민사는 시간과 비용이 커서 피해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 플랫폼 신고·임시조치 같은 사적 규율이 더 강해져, 법원이 아니라 플랫폼이 사실상 분쟁을 재단하는 장면도 늘 수 있다.
정리하면, 폐지의 최대 수혜는 “말할 수 있음”이고, 최대 리스크는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것의 경계가 흐려짐”이다. 그래서 폐지 논의는 단독으로 굴리기 어렵고, 개인정보·초상권·스토킹·불법촬영물·업무방해·협박 등 다른 규율과 함께 설계를 해야 한다.
폐지는 ‘형사 공포’는 줄이지만, ‘사생활 폭로’와 ‘민사 부담’이 함께 커질 수 있다.
현실적 대안: ‘전면 폐지’만이 답은 아니다
정책 선택지는 크게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사실적시 조항을 삭제하고 허위사실 명예훼손만 남기는 전면 정리다. 둘째, 사생활 침해가 큰 유형만 제한적으로 형사화하고, 공익 발언은 넓게 면책하는 부분 개편이다. 셋째, 형사절차의 남용을 줄이기 위해 고소 요건을 강화하거나, 공소 제기의 문턱을 높여 ‘형사화의 남발’을 막는 방식이다.
전면 폐지를 택한다면, 세 가지 보완이 따라붙어야 균형이 맞는다. 첫째는 민사 구제의 실효성 강화다. 신속한 임시구제, 명확한 정정보도·반론권, 실효적인 손해배상 체계가 없으면 ‘형사만 빠진 공백’이 된다. 둘째는 개인정보·초상권·신상공개 금지 같은 프라이버시 규율의 정교화다. 셋째는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는 반대 방향의 제도, 즉 내부고발 보호와 보복 금지의 강화다.
반대로 부분 개편을 택한다면, 핵심은 ‘공익 면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공익의 범위와 판단 요소를 더 명확히 만들고, 불필요한 신상 공개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같은 공익이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내용은 허용하되 개인정보는 제한’ 같은 층위별 규율이 실무 친화적이다.
정답은 한 줄이 아니라, 형사 축소와 민사·프라이버시 강화의 패키지 설계다.
실전 3단계: 말하기 전에 점검
1단계는 사실과 평가를 분리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와 “그 사람이 나쁘다”는 문장을 섞을수록 분쟁이 커진다. 사실은 날짜, 장소, 행위, 결과처럼 검증 가능한 요소로 좁히고, 감정 표현은 최소화하는 편이 안전하다. 캡처·원문 첨부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확 키운다.
2단계는 공익성과 필요성을 스스로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 정보가 다수의 안전, 거래의 공정, 조직의 책임성과 연결되는지 자문해야 한다. 공익 주장에 자신이 없다면, 공개 범위를 줄이거나 익명화하는 선택이 합리적이다. 실명, 얼굴, 연락처, 주소 같은 정보는 사실 여부와 별개로 피해를 폭발시키는 촉매가 된다.
3단계는 증거와 경로를 분리하는 것이다. 공개 글에 증거를 다 넣는 방식은 분쟁을 넓힌다. 공적 신고 채널, 언론 제보, 내부 감사 같은 경로를 먼저 쓰고, 공개는 ‘필요 최소한’으로 늦추는 전략이 실무적으로 유리하다. 이 글은 법률 자문이 아니라 일반 정보이므로, 사건이 걸려 있다면 실제 기록을 들고 전문 상담을 받는 쪽이 안전하다.
사실·공익·경로를 분리하면, 표현도 살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참고·출처
형법 제307조, 제310조, 제312조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의 현행 법령을 기준으로 확인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조문 역시 국가법령정보센터 현행 법령을 기준으로 확인했다.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합헌 여부와 논거는 헌법재판소 2021-02-25 선고 2017헌마1113·2018헌바330(병합) 결정 요지를 참고했다. 공익성 판단과 위법성 조각의 해석은 관련 대법원 판결 요지를 참고했다. 또한 자유권규약위원회(CCPR) 권고 및 국회 입법자료의 제안이유에 기재된 국제기구 권고 언급을 함께 검토했다.
조문·결정례·권고문을 교차 확인해, 주장보다 텍스트를 우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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