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억의 전설 '라 주망 등대(Phare de la Ju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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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브르타뉴 해안, 바람과 파도의 요람이라 불리는 그곳 한가운데 우뚝 솟은 등대 하나가 있다. 이름은 라 주방. 이곳은 수십 미터의 파도가 덮치고, 겨울이면 바람이 벼랑 끝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장소다. 오랜 세월 항해자들에게는 공포의 상징, 해양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어 왔다.
 
브르타뉴 해안, 특히 위쌍(Ouessant) 섬 근처의 이로아즈 해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해역 중 하나로 강력한 해류, 거대한 파도, 끊임없는 폭풍으로 인해 선박 운항이 극도로 위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1888년부터 1904년 사이에만 이 지역에서 30척의 선박이 난파되는 등 수많은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등대를 둘러싼 한 가지 전설에 열광한다. 바로, 등대지기에게 연봉 16억 원, 즉 백이십만 달러의 대가가 주어진다는 소문이다. 바다의 분노를 견디며 고독한 밤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 이 믿기 힘든 보상과 함께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를 휘감았다.
정말 저런 돈이 걸려 있다면, 당신은 폭풍 한복판의 등대에 홀로 남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등대의 존재는 신화적 이미지로 겹겹이 포장되어 갔다.
 
하지만 진실은 전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또 다른 드라마를 품고 있다.
이야기는 19세기 후반, 악명 높은 브르타뉴 해역에서 시작된다. 해류와 바람, 파도가 교차하는 이로아즈 해에서는 배가 자주 침몰했다. 1896년, SS 드럼몬드 캐슬이 암초에 부딪혀 250명 넘는 목숨이 사라지는 대참사가 벌어졌고, 등대 건설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사실, 그보다 한참 전 이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한 신사, 샤를 외젠 포트롱이라는 인물도 있었다. 그는 유언장에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 대서양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 등대를 세우라고, 자신의 죽음 이후 7년 이내에만 그 바람이 지켜진다면 거액을 내놓겠다고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라 주망 등대 건설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거대한 바위 위에 세우는 공사는 온갖 폭풍과 파도에 시달리며 7년 동안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겨우 완공된 1911년 겨울, 등대지기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등대의 불빛을 지키기 위해 고된 노동을 이어갔다. 그들의 임무는 단순히 불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렌즈를 닦고, 기계를 점검하고, 부식된 벽을 수리했다. 때론 겨울 폭풍에 창문이 산산조각 나고, 렌즈를 회전시키는 수은이 넘쳐 등대지기들이 맨손으로 독극물을 퍼내야 할 때도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그야말로 벼랑 끝의 삶이었다.
 
이 등대는 무려 24미터가 넘는 파도를 견뎌내야 했고, 겨울이 되면 수 주 동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험한 날에는 헬리콥터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등대지기는 어둠과 고독, 그리고 끊임없이 벽을 두드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살아야 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의 등대’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하지만 그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도 등대지기들은 그곳을 ‘집’으로 만들고자 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주방에 모여 뜨거운 수프를 나누었고, 폭풍이 잦아들 때면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평화를 누렸다. 그들만이 알던 조용한 기쁨이 있었던 것이다.
 
라 주망 등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89년 한겨울, 그 악명 높은 폭풍우의 밤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저기압 전선이 브르타뉴 해안을 강타하며 맹렬한 폭풍을 일으켰다. 시속 20~30미터(65~98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파도가 라 주망 등대를 덮쳤고 파도의 엄청난 힘은 등대 하층부 창문을 부수고, 현관문을 뜯어내며, 등대 내부를 침수시키고 심지어 가구까지 쓸어갔다.
사진작가 장 기샤르는 등대와 마지막 인간 등대지기들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다. 그날 밤, 등대 안에서는 테오도르 말고른이 구조 헬리콥터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 등대 뒤편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고, 바로 그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등대지기는 순식간에 위험을 깨닫고 재빨리 문을 닫아 목숨을 건졌다. 이 한 장의 사진은 곧 전 세계에 퍼졌고, 라 주망 등대를 영원한 상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1991년, 라 주망 등대는 완전 자동화되었고, 인간 등대지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오늘날 이 등대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제 라 주망은 인간의 외로움 대신 첨단 계측 장비를 품은 해양 실험실이 되어, 가장 극한의 바다 환경에서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한다.
등대의 역할은 변했지만, 매서운 파도와 싸워온 오랜 세월, 그리고 그곳을 지켰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바람 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는 오늘도 묻는다. 정말 저곳에서 일하면 16억 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사실은 아니다. 전설의 연봉은 없지만, 라 주망 등대가 남긴 진짜 유산은 바로 인간의 용기와 인내, 그리고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불빛 그 자체다.

라 주망은 오늘도 폭풍 한가운데에서, 현실과 신화의 경계에서 묵묵히 빛을 비춘다. 그리고 그 빛은, 세상 모든 이의 마음속에 길을 내고 있다.

이미지 제작: 형성하다 ❘ 블로그: 장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