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유는 규정과 평가가 투명하게 고정될 때만 학생의 선택권이 된다.
서울대가 2027학년도 ‘융합AI광역’ 신설을 추진한다는 보도는 무전공과 AI교육을 결합한다. 쟁점은 비전이 아니라 전공선택과 배정, 평가 규칙이 언제 어떻게 고정되느냐다. 규정이 비면 학생은 불확실성을 비용으로 낸다. 정원, 예외, 출구, 평가를 문서로 못 박을 때만 신뢰가 생긴다.
최종 업데이트 2026.01.15
사건에서 구조로: 융합AI광역이 던진 질문
서울대가 학부대학 내 ‘융합AI광역’ 모집단위 신설을 추진한다는 보도는, 대학이 AI를 기초 언어로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1학년에는 기초 AI 과목을 의무로 수강하고, 2학년부터 전공 소속을 선택해 변경하는 구상이 제시된다. 이 구상은 한편으로는 AI 문해력의 보편화를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공 배정의 제도를 전면으로 끌어올린다. 학생에게 중요한 질문은 “배우게 해주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선택이 확정되느냐”다.
여기서 ‘융합’은 교육 슬로건이지만, 실제로는 학사 규정의 조합이다. 어떤 전공까지 가능한지, 무엇이 제외되는지, 언제 확정되는지, 기준은 무엇인지가 교육의 실체가 된다. 특히 신설 트랙은 승인 이후 세부가 확정되는 경우가 많아, 일정 기간 규정이 흔들릴 가능성이 생긴다. 그 흔들림은 대학의 행정 리스크가 아니라 학생의 생활 리스크로 번역된다.
한 번의 신설은 교육 비전보다 규정의 신뢰를 먼저 시험한다.
대학의 본질은 교육인가 선발인가
대학은 강의를 제공하는 기관이지만, 동시에 선발과 인증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강의는 외부에서도 얻을 수 있으나, 성적과 졸업, 전공 소속은 대학이 부여한다. 사회가 대학을 신뢰하는 핵심도 그 ‘인증’의 신뢰다. 그래서 교육의 내용보다 평가와 기준이 흔들릴 때 불신이 먼저 분출한다.
대학이 제공하는 것은 강의가 아니라 증명 방식이다
커리큘럼 표가 그럴듯해도, 학생 역량을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빈약하면 교육은 허공에 뜬다. 시험과 과제, 발표와 실습이 어떤 능력을 측정하는지 설명돼야 한다. 평가가 정확하면 학습은 축적되고, 평가가 부정확하면 학습은 요령이 된다. AI 시대는 결과물을 더 쉽게 만들기 때문에, 평가의 정확도가 더 중요해졌다.
선발이 강해질수록 교육은 통과의례가 된다
전공이 나중에 확정되는 구조에서는 1학년의 성적과 이수 전략이 사실상 선발 과정이 된다. 이때 학생은 탐색보다 안전한 점수를 먼저 생각한다. 교육이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점수 관리로 변질되기 쉽다. 대학이 유연성을 얻는 만큼, 학생은 불확실성을 떠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대학의 신뢰는 교육 철학이 아니라 선발과 인증의 규칙에서 생긴다.
자유전공의 자유가 흔들리는 지점
자유전공이 오해를 부르는 이유는 단어의 약속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이 기대하는 자유는 “가고 싶은 전공을 갈 수 있음”이다. 그러나 제도 설계에서 자유는 “입학 시점에 전공을 고정하지 않음”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두 정의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 자유는 혜택이 아니라 리스크로 체감된다.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범위와 예외로 측정된다
선택권의 크기는 가능한 전공의 범위로 결정된다. 제외되는 전공이 많거나, 특정 단과대가 닫혀 있으면 체감 자유는 작아진다. ‘원하는 전공 선택’이라는 문장이 예외 조항을 만나면 신뢰가 꺾인다. 학생은 예외 조항에서 인생의 분기점을 맞는다.
규정이 흐릿하면 선택은 착시가 된다
전공 소속이 바뀌는 순간에는 반드시 기준이 필요하다. 정원, 성적, 선이수, 평가 요소가 그 기준을 구성한다. 기준이 명확하면 경쟁은 불편해도 예측 가능하다. 반대로 기준이 늦게 확정되면, 학생은 도박판에 올라간 느낌을 받는다.
자유전공의 핵심은 자유가 아니라 전공 확정 규칙의 예측 가능성이다.
신설 트랙의 리스크는 어디에 쌓이는가
신설은 혁신일 수 있지만, 첫 세대에게는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위험의 본체는 과목명이 아니다. 약속이 문서로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먼저 흘러가는 데 있다. 학생은 한 학기를 되돌릴 수 없고, 그 시간은 비용으로 남는다.
리스크의 핵심은 고정된 약속의 유무다
필수 과목이 매년 안정적으로 개설되는지, 전임 교원이 충분한지, 졸업 요건이 변동되지 않는지가 먼저다. 신설 트랙은 운영 주체가 바뀌거나, 제도가 손질되면서 규정이 달라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규정이 바뀌면 학생의 설계도는 붕괴한다. 그래서 신설은 비전보다 먼저 안전장치를 제시해야 한다.
출구가 없으면 선택은 도박이 된다
제도는 항상 실패 가능성을 내장한다. 그 실패를 흡수하는 장치가 출구다. 전공 전환, 전과, 복수전공, 일반 트랙 이동이 불이익 없이 가능한지 명시돼야 한다. 출구가 제도화되면 신설은 도전이 되고, 출구가 없으면 신설은 실험이 된다.
신설의 위험은 내용보다 규정 변동과 출구 부재에서 커진다.
AI 시대의 평가는 대학을 살리거나 무너뜨린다
AI 시대에 대학이 해야 할 일은 AI를 ‘막는 것’이 아니다. AI가 존재하는 환경에서도 역량이 드러나는 평가를 만드는 것이다. 결과물만 제출받는 방식은 취약해지고, 과정과 검증이 핵심이 된다. 이 전환을 못 하면 대학은 인증기관으로서 신뢰를 잃는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 증명이 된다
자료 수집 경로, 가정, 분석 절차, 검증이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짧은 시간에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내는 실습형 평가가 중요해진다. 구술과 토론은 이해의 깊이를 드러낸다. AI를 썼는지 여부가 아니라, 책임 있게 검증했는지가 기준이 된다.
AI+X는 도구 교육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사고 훈련이어야 한다
AI를 사회에 적용한다는 말은 책임이 따라온다는 뜻이다. 데이터의 편향, 오류의 전파, 의사결정의 책임을 다루지 못하면 융합은 구호가 된다. 인문·사회 영역에서 더 중요한 것도 바로 이 책임의 설계다. 그래서 AI+X는 툴 강의가 아니라 검증과 윤리, 설명가능성을 포함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 경쟁력은 평가의 정밀도와 검증 체계에서 나온다.
해법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규정과 평가다
불신은 감정이 아니라 정보의 공백에서 생긴다. 대학과 정책이 해야 할 일은 먼저 문장을 비우지 않는 것이다. 전공 선택의 범위와 예외, 확정 시점, 배정 기준을 앞줄에 고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 평가를 AI 시대에 견디게 바꿔야 한다.
규정을 앞줄에 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택 가능 전공의 범위, 제외 전공, 배정 절차, 기준은 한 장 문서로 정리돼야 한다. “자유롭게 선택” 같은 문장은 조건을 숨기면 즉시 신뢰를 잃는다. 조건이 있다면 조건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학생의 선택이 계산 가능한 선택이 된다.
평가 재설계는 선택권의 실질을 지키는 장치다
선택권은 평가의 신뢰가 있어야 유지된다. 평가가 무너지면 선발은 요령 경쟁이 되고, 교육은 형식이 된다. 과정 중심, 실습 중심, 구술 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 대학이 이 전환을 해내면, 신설과 융합은 비전이 아니라 제도가 된다.
투명한 규정과 AI 시대 평가가 갖춰질 때만 ‘자유’는 계약이 된다.
AI 시대에는 결과물보다 과정 기록과 검증, 재현성이 역량의 증명이 된다.
단어를 믿지 말고, 그 단어가 작동하는 규칙과 평가 를 확인하라.
참고·출처
서울경제 2026.01.15 보도에 포함된 ‘서울대 학부대학 내 융합AI광역 모집단위 신설 추진’ 내용과, 기사에 제시된 추진 일정 및 방향 설명을 바탕으로 문제의 구조를 정리했다. 본문에서 제시한 대학의 평가 재설계와 전공배정 신뢰의 논점은 국내 대학 학사 규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전공 확정 절차와 AI 확산 이후 평가 방식 변화의 일반 원칙을 토대로 구성했다.
'사회 > 사회 구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부가 서학개미 복귀를 말할 자격을 잃은 구조 (0) | 2026.01.16 |
|---|---|
| 검정고무신 저작권 전쟁의 끝, 2026.01.08 대법원 확정까지의 30년 (0) | 2026.01.15 |
| 서울 쓰레기 비용은 지금, 지방 에게 전가되는 이유 (0) | 2026.01.08 |
| 상투어 사과는 국민을 우롱한다, ‘심심한 사과’가 책임을 지우는 방식 (0) | 2026.01.07 |
| 국방부 예산 미지급 논란의 구조: 불용 줄이기 압박이 만든 연말 현금절벽 (0) |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