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이 바꾼 세계사 ③ 버팔로가 사라진 날, 대평원의 질서가 무너진 이유
버팔로의 몰살은 몇 년 만에 대평원의 질서와 인디언의 운명을 뒤집었다.
19세기 후반 수천만 마리의 버팔로가 1천 마리 이하로 줄어들면서, 평원 인디언의 경제·건강·정치적 위치까지 한 번에 무너졌다. 이 글은 그 짧은 기간에 어떤 이해관계와 결정이 겹쳐졌고, 그 여파가 오늘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본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18
읽기 경로·예상 소요 버팔로와 평원 인디언의 공존 구조 → 철도·무기·시장 팽창과 폭발적 사냥 → 군대와 국가 전략, 의도된 멸종 → 경제·건강 격차로 남은 여파 → 복원과 회복 시도, 아직 남은 질문 순으로 읽으면 약 15~19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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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체로키의 눈물의 길, 1838년 강제 이주 · ② 나바호 코드 토커, 태평양 전쟁을 바꾼 언어 · ③ 버팔로가 사라진 날, 대평원의 질서가 무너진 이유 · ④ 스탠딩 록과 석유 파이프라인, 21세기 인디언의 토지·환경 투쟁 · ⑤ 우운디드 니 점거 이후 인디언 권리 운동, 20세기 인권·정치사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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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와 대평원 인디언, 움직이는 창고이자 세계관
유럽인이 대평원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북아메리카에는 대략 수천만 마리의 버팔로(아메리카 들소, 바이슨)가 풀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쇼쇼니, 라코타, 크리, 블랙풋, 샤이엔 등 평원 인디언에게 버팔로는 고기와 가죽, 뼈와 힘줄, 연료와 도구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움직이는 창고였다. 천막인 티피의 가죽과 겨울옷, 방패와 활, 북과 장식까지 삶의 거의 모든 물질적 기반이 버팔로에서 나왔다.
그러나 버팔로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세계관의 중심이기도 했다. 사냥 전후의 의례와 노래, 계절마다 반복되는 이동 경로,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신화는 버팔로 떼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었다. 사냥은 무제한의 포획이 아니라 공동체별 규칙과 금기를 동반했고, 장기간에 걸쳐 평원 전체의 개체 수를 심각하게 줄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 중반 기록에 따르면, 버팔로에 의존하던 평원 인디언 남성의 평균 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축에 속했을 정도로, 이 생태·경제 구조는 한동안 매우 튼튼했다.
이처럼 버팔로 떼는 평원 인디언에게 식량과 의복, 주거와 도구, 의례와 정체성을 동시에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하나의 동물이 사라지면 단일 품목을 대체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이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버팔로는 평원 인디언에게 식량을 넘어 세계관과 사회 질서를 지탱하던 축이었다.
철도와 무기, 시장이 만든 폭발적 사냥
버팔로의 대규모 감소는 19세기 중반 이후 철도와 시장, 무기 기술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가속화되었다. 1860년대 이후 대륙횡단 철도가 건설되면서 사냥꾼과 상인, 관광객이 평원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동부와 유럽 시장으로 가죽과 뼈, 고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철도는 버팔로의 이동로를 가르는 선이자, 사냥꾼을 실어 나르는 통로였다.
새로운 소총과 탄환은 사정을 넓히고 살상 속도를 끌어올렸다. 일부 ‘버팔로 헌터’들은 한 자리에서 수십, 많게는 백 마리가 넘는 개체를 쓰러뜨리고도 고기 대부분을 버린 채, 가죽과 혀만 챙기고 떠났다. 1870년대 남부 평원에서는 한 해 수백만 마리가 도살되었다는 통계가 남아 있을 정도로, 사냥은 산업이자 투기였다. 돈이 되는 것은 가죽과 뼈였고, 썩어 가는 고기와 피는 평원 곳곳에 쌓여 갔다.
이 시기에는 철도 승객이 창밖으로 보이는 버팔로 떼를 향해 총을 쏘며 ‘기념 사냥’을 하는 풍경도 기록에 남아 있다. 철도 회사와 사냥꾼, 가죽 가공업자와 동부의 가죽 산업이 얽힌 이 구조는, 평원 인디언이 수천 년간 유지하던 생태 균형과 전혀 다른 논리로 움직였다. 버팔로는 이동하는 살아 있는 친족이 아니라, 시장 가격이 오를수록 빨리 없애야 할 재고가 되었다.
철도와 신형 무기, 가죽 시장이 결합하면서 버팔로 사냥은 생계가 아니라 투기적 산업으로 폭주했다.
군대와 국가 전략, “버팔로를 죽이면 인디언을 굴복시킨다”
버팔로 몰살은 단지 시장의 과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인디언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부 군인과 정치인은 버팔로를 제거하면 평원 인디언의 저항을 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록에는 “버팔로를 죽이면 인디언을 정복할 수 있다”, “버팔로가 있는 한 그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독립적이다”라는 식의 발언이 남아 있다. 전쟁 대신 버팔로를 향한 전선을 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이었다.
공식적인 ‘멸종 명령’이 문서로 내려졌는지 여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지만, 군대와 정부가 버팔로 사냥을 묵인하거나 장려한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일부 장교는 사냥꾼에게 이동과 보호를 제공했고, 의회 속기록에는 버팔로 사냥이 평원 개척과 인디언 약화를 돕는다는 취지의 발언이 올랐다. 군대가 직접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버팔로 사냥 산업이 인디언 전쟁의 맥락 속에서 작동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19세기 말에 이르면 수천만 마리에 이르던 버팔로는 야생에서 수백 마리 수준으로 줄어든다. 일부 연구는 북미 전체 야생 개체 수가 500마리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라 추정하며, 다른 자료에서는 미국 전역에 몇 백 마리만 남았다고 기록한다. 이 수치는 단순한 생태 데이터가 아니라, 평원 인디언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기반 대부분이 붕괴했음을 의미했다.
버팔로 몰살은 군사적 목표와 시장의 이해가 겹친 결과였고, 평원 인디언에게는 전쟁보다 잔혹한 포위망이 되었다.
몇 년 만의 붕괴, 경제·건강·인구에 남은 상흔
버팔로가 사라지면서 평원 인디언은 단순히 주요 식량원을 잃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경제 체제로 강제 전환되었다. 수렵과 이동에 맞춰 구성된 사회 구조는 농업과 배급, 제한된 이동만 허용되는 보호구역 체제로 바뀌었고, 자율적으로 사냥하고 물자를 나누던 공동체는 식량 배급과 군·행정 당국의 허가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굶주림과 질병, 폭력과 강제 이주가 겹치며 사망률이 치솟았다.
최근 역사경제학 연구는 버팔로 몰살이 가져온 충격이 단기간을 넘어 수세대에 걸쳐 이어졌다는 점을 수량적으로 보여 준다. 버팔로에 크게 의존하던 부족 출신 남성의 평균 키는 19세기 중반 세계에서 가장 큰 축에 속했지만, 버팔로가 사라진 뒤 태어난 세대에서는 평균 키가 2~3cm 이상 급격히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영양 상태와 보건 환경이 단기간에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소득과 자산 격차 역시 극적으로 벌어졌다. 버팔로 의존도가 높았던 부족들은 20세기 후반 이후에도 다른 원주민 공동체에 비해 1인당 소득이 20~40퍼센트 정도 낮은 수준에 머무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농업 생산성이나 자치권, 특정 법 적용 여부 등을 통제해도 이 격차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버팔로 몰살로 인한 급격한 자원 상실과, 이후 대체 자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 정책들이 겹친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평원 인디언의 관점에서 보면, 버팔로의 멸종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계급과 건강, 교육과 정치 참여에 이르는 전 분야의 ‘역전’을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한때 키와 건강, 이동성과 식량 자급에서 강점을 보이던 공동체가, 몇 년 사이 가장 취약한 위치로 밀려난 것이다.
버팔로의 상실은 평원 인디언의 키와 소득, 건강까지 뒤집어 놓은 거대한 경제·인구 충격으로 남았다.
버팔로의 귀환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세기 들어 일부 목장주와 보호 운동가, 부족 지도자들이 흩어진 버팔로를 모으고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종 자체는 멸종 위기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오늘날 북미에는 야생·반야생·사육 개체를 합쳐 수십만 마리의 버팔로가 존재하며, 국립공원과 보호구역, 사유지와 부족 토지 곳곳에서 다시 초원을 뛰어다닌다. 이 과정에서 국가·주 정부·부족·민간 단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거나 갈등을 겪어 왔다.
최근에는 원주민 주도의 버팔로 복원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부족은 전통 영토에 버팔로 떼를 다시 들여오고, 이를 통해 토양을 되살리고, 버팔로 고기를 활용한 식단과 자치 경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이어 가고 있다. 버팔로는 다시 한 번 식량과 문화, 영성을 잇는 존재로 자리 잡으면서, 동시에 기후와 생태 회복 논의 속에서도 중요한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종의 숫자가 회복되었다고 해서, 19세기 후반의 충격이 남긴 경제·건강 격차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평원 인디언 공동체는 여전히 빈곤과 실업, 보건·교육 격차에 직면해 있으며, 버팔로 복원은 이 긴 과정을 되돌리는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버팔로가 돌아오는 풍경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유는, 그 그림자에 여전히 미해결 과제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버팔로의 복원은 종의 귀환일 뿐 아니라, 평원 인디언이 스스로의 경제와 존엄을 회복하려는 긴 여정의 한 장면이다.
인디언이 바꾼 세계사, 사라진 버팔로와 뒤집힌 운명
체로키의 눈물의 길, 1838년 강제 이주가 인디언의 땅을 빼앗은 국가 폭력의 얼굴을 보여 주고, 나바호 코드 토커, 태평양 전쟁을 바꾼 언어가 억압받던 언어가 전쟁과 기술을 뒤집은 순간을 보여 준다면, 버팔로의 몰살은 한 종의 파괴가 평원 인디언과 미국, 더 넓게는 세계 경제 질서를 바꾼 장면이다. 버팔로가 사라지면서 평원은 곧 소와 밀, 철도와 곡물 시장의 공간으로 재편되었고, 이는 미국이 ‘세계의 곡창’과 육류 수출국으로 떠오르는 길과도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사적 변화는, 평원 인디언의 삶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버팔로가 없었다면 인디언이 평원을 막고 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당시 정책 입안자들의 시선은, 자연과 공동체를 장애물로만 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반대로 버팔로 복원과 인디언 주도의 토지·식량 주권 회복은, 세계사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던 이들이 다시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를 쓰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인디언이 바꾼 세계사”라는 제목 아래 이 글이 보여 주려는 것은, 인디언이 늘 피해자이자 방관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버팔로와 함께 살아가던 평원 인디언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버팔로를 되찾으려는 오늘의 선택까지 모두가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문제는 그 힘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존중받고 기록되는가 하는 것이다.
버팔로의 몰살과 복원은 평원 인디언이 세계사 속에서 잃어버린 것과, 다시 되찾으려는 것을 함께 비추는 거울이다.
참고·출처
버팔로 개체 수와 멸종 위기에 관한 수치는 19세기 북미 버팔로 사냥과 개체 수 변화를 다룬 역사·생태 자료, 특히 16세기 이후 수천만 마리에서 19세기 말 수백 마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연구와 연대기를 종합해 정리했다. 철도와 가죽 무역, 신형 소총이 사냥을 가속화했다는 내용은 버팔로 사냥 산업과 철도 확장을 분석한 환경사·경제사 연구를 참고했다.
군과 정부가 버팔로 사냥을 사실상 장려하거나 묵인했다는 부분은 인디언 전쟁기 군사 기록과 의회 발언, “버팔로를 죽이면 인디언을 정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당시 장교 증언을 바탕으로 서술했다. 버팔로 의존 부족의 평균 키와 소득이 장기적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은 평원 인디언의 신장 자료와 20세기 이후 1인당 소득 자료를 연계한 역사경제학 연구를 참고했으며, 버팔로 몰살이 단기간의 충격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격차의 한 축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버팔로 복원과 원주민 주도의 회복 시도는 북미 여러 부족과 비영리 단체, 국제 보전 기구가 최근 발표한 버팔로 복원 프로젝트 소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각 부족별 역사와 내부 논쟁, 복원 과정의 세부는 부족별 아카이브와 구술사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흐름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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