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이 바꾼 세계사 ② 나바호 코드 토커, 태평양 전쟁을 바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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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코드 토커의 암호는 태평양 전쟁을 바꾼 언어의 힘이었다.

미군은 전쟁 전까지 학교와 기숙학교에서 인디언 언어를 금지했지만, 태평양 전선에서는 바로 그 언어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았다. 29명의 나바호 청년으로 시작한 코드 토커 부대는 기계보다 빠른 암호 통신으로 수많은 병사의 생명을 살렸고, 그 공로는 오랫동안 기밀로 묻혀 있다가 뒤늦게야 세상에 알려졌다.

최종 업데이트 2025-11-18

읽기 경로·예상 소요 코드 토커라는 발상 → 나바호 언어 선택과 첫 29명 → 깨지지 않은 코드의 구조와 속도 → 태평양 전선의 실제 전투 → 전후 침묵과 늦은 훈장 → 언어 억압과 기억 정치 순으로 읽으면 약 14~18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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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의 눈물의 길, 1838년 강제 이주 · ② 나바호 코드 토커, 태평양 전쟁을 바꾼 언어 · ③ 버팔로가 사라진 날, 대평원의 질서가 무너진 이유 · ④ 스탠딩 록과 석유 파이프라인, 21세기 인디언의 토지·환경 투쟁 · ⑤ 우운디드 니 점거 이후 인디언 권리 운동, 20세기 인권·정치사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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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을 바꾼 언어, 코드 토커라는 발상

코드 토커는 문자 그대로 “말로 코드를 주고받는 병사”를 뜻한다. 1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이 기존 암호를 연달아 해독하자 연합군은 인디언 병사들의 언어를 활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초크토 등 몇몇 부족의 언어는 적군에게 사실상 알려져 있지 않았고, 기록도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즉석 암호로 쓰기 좋았다. 이 실험은 효과를 입증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졌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독일과 일본은 이미 서구식 암호 체계를 연구했고, 무선 통신 감청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미국은 새로운 방식의 암호 통신이 필요했고, 일부 장교와 민간인이 다시 인디언 언어를 떠올렸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받은 언어가 나바호어였다. 사용 지역이 제한적이고, 음운과 문법이 복잡하며, 당시에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전쟁 전 미국 정부와 선교회, 기숙학교가 나바호어 사용을 억압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이 선택은 아이러니하다. 아이들에게 영어만 쓰라고 강요하던 나라가, 막상 전선에서는 나바호어를 누구도 깨지 못하는 비밀 병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코드 토커의 등장은 인디언 언어를 둘러싼 억압과 필요가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를 보여 주는 출발점이었다.

나바호 언어는 한때 금지의 대상이었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가장 강력한 군사 자산으로 소환되었다.

첫 29명의 나바호 청년, 실험에서 부대로

나바호 코드 토커 구상은 1942년 초 한 민간인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나바호 보호구역에서 자라 언어에 익숙했던 필립 존스턴은 나바호어를 이용하면 일본군이 결코 해독하지 못할 암호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고, 해병대 지휘부에 시연을 요청했다. 그는 나바호 청년 몇 명과 함께 모의 전투 상황을 연출해, 평문 메시지를 나바호어로 바꾸고 다시 영어로 되돌리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시연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기존 암호 장비로는 수십 분이 걸리던 메시지를 나바호 화자들은 수십 초 만에 주고받았다. 해병대는 처음에는 소규모 실험 부대부터 만들기로 하고, 1942년 봄 29명의 나바호 청년을 선발해 훈련소로 보냈다. 이들은 일반 해병과 같은 군사훈련과 함께 무선 통신·암호 작법 교육을 받았고, 동시에 전쟁에서 사용할 비밀 코드를 직접 만들어 나갔다.

초기 29명은 단순 통역이 아니라, 새로운 코드 체계를 설계하는 창안자였다. 어느 단어를 어떤 군사 용어에 대응시킬지, 알파벳을 어떻게 풀어 쓸지, 전투 중 실수와 혼선을 줄이려면 어떤 규칙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토론하며 체계를 다듬었다. 이들이 만든 기본 틀을 바탕으로 이후 수백 명의 나바호 코드 토커가 추가로 양성되어, 태평양 전선 전역으로 배치된다.

29명의 나바호 청년은 단순 통역병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언어 기반 암호 체계를 만든 설계자였다.

기계보다 빠르고 깨지지 않은 코드의 구조

나바호 코드의 핵심은 “언어 위에 다시 올린 언어”에 있다. 기본적으로 나바호어 문장 자체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해독이 어렵다. 여기에 코드 토커들은 군사 용어와 알파벳을 다시 나바호어 단어에 대응시키는 이중 구조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전함, 비행기, 지형, 숫자, 알파벳 하나하나가 동물·자연·일상 사물의 나바호어 단어로 치환되었다.

알파벳은 한 글자를 여러 개의 나바호어 단어로 표현하도록 설계했다. 같은 글자를 반복할 때마다 다른 단어를 써서, 적이 빈도 분석으로 패턴을 잡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코드 단어 수는 전쟁이 진행되면서 계속 늘어나 400개가 넘는 규모로 확장되었다. 모든 단어와 규칙은 코드 토커들이 암기로 익혔고, 종이로 남기는 일은 최소화했다.

실전에서 이 코드는 당시의 암호 장비보다 훨씬 빠르게 작동했다. 세 줄짜리 짧은 메시지는 20초 안에 암호화와 해독을 마칠 수 있었고, 긴 작전 지시도 몇 분이면 전선 곳곳에 전달됐다. 일본군은 전쟁 내내 나바호어 통신을 감청했지만, 언어나 코드 체계 모두를 끝내 해독하지 못했다. 나바호어 자체를 이해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고, 그 안에 숨겨진 이중 코드까지 따라잡는 것은 더욱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처럼 나바호 코드는 언어학적 난해함과 군사적 설계가 결합된, 전례 없는 구두 암호 체계였다. 동시에 그것은 학교와 기숙학교에서 “사용을 금지당하던 언어”가 얼마나 정교하고 유연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나바호 코드는 억압받던 언어 위에 다시 쌓은 이중 암호로, 당시 어떤 기계보다 빠르고 안전한 통신망을 만들어 냈다.

과달카날에서 이오지마까지, 전선의 그림자 병사들

나바호 코드 토커들은 1942년 과달카날 전투를 시작으로, 미 해병대가 치른 태평양 전선의 주요 상륙작전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뉴조지아, 부간빌, 타라와, 사이판, 괌, 펠렐리우, 이오지마, 오키나와까지, 섬마다 상륙과 진격, 포격 조정 명령이 무선으로 쏟아지는 곳에는 항상 코드 토커가 배치됐다. 이들은 최전선 참호에서 큰 무전기를 짊어지고, 전선의 다른 쪽에 있는 코드 토커와 나바호어로 대화를 나누며 작전 지시를 전달했다.

특히 1945년 이오지마 전투는 코드 토커의 역할이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좁은 섬에 밀집한 미군 부대는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고, 지휘관은 포격 목표와 부대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야 했다. 코드 토커들은 짧은 시간에 수백 통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오폭을 줄이고 고립 부대를 지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떤 지휘관은 “나바호가 없었다면 이오지마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전쟁 중과 직후, 코드 토커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계급장만 봐서는 평범한 무전병에 불과했고, 전투 기록에도 대개 “통신병” 정도로만 표기되었다. 사진 속에서도 이들의 얼굴은 다른 병사들과 뒤섞여 있으며, 나바호어로 오가는 대화는 오랜 시간 군사 기밀 속에 묻혀 있었다. 전선을 바꾼 언어의 힘은 오랫동안 전쟁사 책의 각주에조차 등장하지 못했다.

나바호 코드 토커는 태평양의 거의 모든 주요 상륙작전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작전의 눈과 귀 역할을 맡았다.

전쟁이 끝난 뒤, 침묵과 늦은 훈장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나바호 코드 토커의 이야기는 곧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미군은 나바호 코드가 향후 다른 전쟁에서도 쓰일 수 있다고 보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밀로 유지했다. 코드 토커들은 가족에게조차 자신이 전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 많은 이들이 “무전병으로 복무했다”는 정도만 남겼다. 이 기밀은 1968년에야 공식적으로 해제된다.

기밀 해제 이후에도 공식적인 평가는 한동안 더뎠다. 1982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대통령은 나바호 코드 토커에게 감사 증서를 수여하고, 8월 14일을 ‘나바호 코드 토커의 날’로 선포했다. 2000년에는 나바호 코드 토커에게 의회 명예훈장 수여를 승인하는 법이 제정되었고, 2001년 워싱턴 의사당에서는 원년 멤버 29명을 대표해 생존자들에게 금메달이, 나머지 코드 토커 수백 명에게는 은메달이 수여되었다.

많은 코드 토커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생전에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전쟁 기억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떠난 이들도 많았다. 뒤늦게 열린 시상식과 기념식에서는, 손주 세대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대신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어졌다. 훈장은 늦게 도착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바호 공동체는 자신들의 언어와 전쟁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나바호 코드 토커의 공로는 1968년 기밀 해제와 2000년대 명예훈장 수여를 거쳐서야 비로소 공식 역사로 편입되었다.

언어를 금지하던 나라, 언어로 전쟁을 이긴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나바호 코드 토커의 활약 뒤에는 인디언 언어를 억압해 온 미국의 오랜 동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20세기 초 인디언 보딩스쿨과 선교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모국어를 쓰면 체벌을 받았고, 이름도 영어식으로 바꾸도록 강요받았다. 나바호어 역시 이 억압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과 공동체는 집과 의례 공간에서 언어를 지켜 왔고, 바로 그 언어 능력이 훗날 코드 토커 선발의 조건이 되었다.

전쟁 중 나바호어는 “미국의 비밀 무기”로 칭송받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디언 공동체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나바호 참전용사는 귀향 후에도 투표권·교육·주거 등에서 제약을 겪었고, 전쟁에서의 공로보다 인종적 편견이 먼저 돌아오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언어가 전선을 구했지만, 그 언어의 화자들은 여전히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모순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나바호 공동체는 코드 토커의 이야기를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는 투쟁의 일부로 기억해 왔다. 기념비와 박물관, 학교 교육에서 코드 토커의 사진과 증언은 “우리가 어떤 나라의 전쟁을 위해 싸웠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 나라가 우리 언어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되묻는 자료로 활용된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역사와 권력 관계가 응축된 정치적 공간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는 지점이다.

나바호 코드 토커의 이야기는, 억압받던 언어가 국가를 구하면서도 그 화자들이 여전히 차별을 겪는 복잡한 역설을 드러낸다.

인디언이 바꾼 세계사, 언어와 기억의 힘

체로키의 눈물의 길, 1838년 강제 이주가 인디언의 땅을 빼앗은 국가 폭력의 얼굴을 보여 준다면, 나바호 코드 토커는 그 폭력 속에서도 인디언 언어와 지식이 세계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바호어로 주고받은 수많은 메시지는 태평양의 전투 지형을 바꾸었고, 전후 미국의 전략 통신과 암호학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인디언 언어는 단지 전통 문화의 유산이 아니라, 전쟁과 기술, 정보의 시대를 관통하는 자산이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누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태평양 전쟁의 사진과 영화, 교과서에서 나바호 코드 토커는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은 단순한 재조명이 아니라, 인디언 공동체가 스스로의 경험을 서사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다. 전쟁과 국가, 승리와 패배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일에는, 언어와 기억을 되찾는 행위가 필수적이다.

“인디언이 바꾼 세계사”라는 시리즈 제목은 거창한 수식이 아니라, 실제로 인디언 언어와 지식, 노동이 세계사에 남긴 구체적 흔적을 따라가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나바호 코드 토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과 국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언어와 문화가, 어쩌면 또 다른 미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을 품고 있을지 다시 묻게 된다.

나바호 코드 토커는 인디언 언어와 기억이 세계사의 변곡점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인디언이 바꾼 세계사”의 두 번째 장이다.

참고·출처

나바호 코드 토커에 관한 내용은 미국 해병대와 해군 역사자료, 미국 국립 2차대전 박물관과 미국 인디언 국립박물관이 제공하는 코드 토커 관련 해설, 나바호 네이션과 관련 단체의 공식 자료, 2차대전 암호사 및 인디언 군복무에 관한 연구서를 종합해 정리했다. 특히 최초 29명 선발과 코드 구조, 태평양 전선의 주요 작전 참여, 1968년 기밀 해제와 2000년대 의회 명예훈장 수여 과정 등은 여러 1차·2차 자료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사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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